< 73화 초유신 (3) >
‘적당히 봐주고 있었군.’
놀라는 것은 잠시였다.
무모의 존재가 원래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천여운에게 말했다.
“네 의도대로는 된 것 같구나. 마신. 주의를 끄는 데는 확실히 성공했다.”
덕분에 극도신의 마지막 유산이라 할 수 있는 황헐과 금성룡이 살아남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무모의 존재는 전혀 아쉬움이 없어보였다.
오히려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네 적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우를 범했구나.”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기회지.”
여유롭기는 천여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에게 무모의 존재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데 우리는 네놈의 강함을 인지하고 있는데, 네놈은 우리를 알고 있느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여운의 머리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오색 빛깔을 머금고 있는 오행검이었다.
‘오행검?’
그 말은 상대가 자연경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행검이 머리를 꿰뚫을 기세로 날아오고 있었는데, 천여운은 무모의 존재를 놓지 않은 채 검결지만을 들어올렸다.
-우우웅!
그러자 그의 앞에서 오행검이 방패처럼 생겨났다.
-파앙! 콰콰콰콰쾅!
두 오행검이 부딪치며 강한 파동이 일어나며 반경 50미터가 함몰되었다.
대자연의 오행의 기운을 응집한 것이 바로 오행검이다.
그 위력은 무형검을 월등히 뛰어넘었다.
‘역시 빠르군.’
천여운이 오행검을 만드는 속도에 무모의 존재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진기로 몸을 통제받고 있지만,
‘자폭 시스템은 가동시킬 수 있지.’
-고오오오!
무모의 존재의 전신이 붉은 빛으로 물들며 열기가 치솟았다.
그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리며 한기를 일으켰다.
-쩌저저저적!
무모의 존재는 폭발을 하기도 전에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자폭하려 했던 무모의 존재가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굳어버렸다.
-팟!
그 찰나에 천여운의 앞으로 붉은 가면이 나타나 엄청난 속도로 수도를 날렸다.
천여운이 동시에 수도로 대응했다.
-팡!
두 사람의 수도가 부딪치자, 서로 반발력에 의해서 튕겨나갔다.
-콰앙!
두 사람이 신형이 동시에 기지 벽을 부딪치며 그곳을 무너뜨렸다.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붉은 가면의 진기가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에 수도에 실은 진기는 마족들 중에서도 대공 급 이상의 존재는 되어야 막을 수 있을 정도였다.
-두드득! 두드득!
무너진 벽속에서 반쯤 부서진 붉은 가면이 걸어 나왔다.
목을 양옆으로 꺾는 것이 몸을 푸는 듯 했다.
-팍!
붉은 가면의 존재가 자신이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서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의 얼굴이 드러나자 천여운이 눈매가 가늘어졌다.
“사요기?”
천살성인 사요기와 같은 얼굴이었다.
그 모습에 천여운은 문득 MS 그룹의 숨겨진 기지 중 하나에서 발견한 사요기의 클론들을 떠올렸다.
“네놈도 클론인가?”
그런 천여운의 물음에 사요기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자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허허.”
노인 같은 웃음소리.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웠다.
그 자가 천여운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틀렸다. 노부가 오리지널이지.”
“오리지널?”
“그렇지 않아도 네놈이 참으로 보고 싶었다. 노부가 나름 심혈을 기울여 키운 그 아이를 그리 만들었으니 말이다.”
“키워?”
그 말을 들은 천여운의 머릿속에 많은 기억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사요기가 이야기 했던 또 다른 천살성 노인.
그리고 은자림에서 들었던 MS그룹과 연관이 있다는 그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던 절대적인 고수에 관한 이야기.
이를 종합하면서 천여운은 눈앞에 있는 남자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초유신.”
“호오.”
“네놈이 사요기를 키운 그 노인이구나.”
“노부를 알고 있었나?”
이번에는 남자, 아니 초유신이 놀라워했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자들이라고 해봐야 세상과 등진 은자림의 몇몇 장로들뿐이었다.
하지만 초유신은 그것에 굳이 국한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는 절대적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비밀은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저벅저벅!
천여운 역시 앞으로 걸어 나오며 초유신을 향해 말했다.
“네가 오리지널이라면 어째서 네놈과 같이 위험한 천살성들의 클론들을 만든 거지? 세상을 어지럽히기라도 할 작정이었나?”
“세상을 어지럽혀? 허허허허허.”
초유신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어댔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럴 목적이었다면 진즉에 노부가 나섰겠지. 그렇지 않나?”
이 말을 허투루 듣기에는 초유신에게서 풍겨지는 살의는 일반적인 범주를 넘어섰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원망해야만 생겨날 듯 한 살의였다.
저런 살의를 뿜어대면서도 허허거리며 웃는 낯인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인간은 참으로 미약한 존재지. 수많은 발전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도 꽃처럼 유한하여 결국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빠진다.”
인간의 짧은 수명을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그였다.
초유신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무리 강해져도 결국 스스로 약해져서 죽어가는 이런 어리석은 육신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느냐?”
그런 초유신의 말에 천여운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처음에는 클론들을 만든 목적이 자신과 같은 천살성들을 늘려서, 위험한 전투 집단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여겼다.
한데 이 자의 말을 들어보면 마치 영생을 원하는 듯 하다.
그것이 대체 클론들을 만든 것과 무슨 연관일까?
문득 천여운의 머릿속에 아까 전 무모의 존재와 초유신이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나로구나.]
[시간을 끄는 역할이 될 줄은 몰랐지만 뒷정리를 부탁한다. 본체.]
[수고했다. 이제 뒤는 이 노부가 맡도록 하마. 나여.]
그리고 자신을 오리지널이라고 칭했던 초유신.
이것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며 천여운에게 하나의 가설을 만들어주었다.
‘육신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그대로 복제할 수 있는 건가?’
그 물음에 답한 것은 나노였다.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뇌의 모든 기억 정보를 데이터화 시킨 전뇌를 다른 육체로 이양하는 기술이라면 가능합니다.]
더욱 미래의 기술을 가진 나노가 만들어진 시기에는 어렵지 않은 기술이었다.
다만 이 기술 자체는 법적으로 금지가 되었다.
영혼의 유무(靈魂)는 그 시기에도 갑론을박이 많았지만, 단순히 기억을 복제하는 것은 그 사람의 혼을 이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새로운 육신과 혼에 기억만을 불어넣는 것에 불과하다는 중론이 제기되었기 때문이었다.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천여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었군. 그런 식으로 영생을 탐하고 싶었나?”
결국 그 수많은 클론들이 자신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남들보다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 천여운이었지만 초유신의 사상과 생각에는 경멸스럽기만 했다.
그런 천여운의 말에 초유신이 웃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어찌 이 노부의 위대한 뜻을 알겠느냐.”
“위대한 뜻?”
“영생을 탐해? 그것은 그저 부가적인 것이다.”
“부가적? 헛소리를 잘도 늘어뜨리는군.”
“무를 추구하는 자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법. 완벽한 정신을 갖추고 있어도 그 육신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하등 의미가 없게 되지.”
-고오오오오!
-우웅! 우웅! 우웅!
말이 끝남과 동시에 초유신의 기운이 급격히 상승하며, 주변에 백 자루의 오행의 기운으로 만든 병장기들이 생성되었다.
주변에 모인 방대한 자연지기에 천여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완벽한 자연경이다.’
그 말은 오령의 진원을 취했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내공의 제한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했다.
초유신이 웃으면서 말했다.
“한때 참으로 아쉬웠다. 노부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겨준 자를 천마신교의 2대 천마가 없앴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말이다. 이제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겠구나.”
-팟!
초유신이 천여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백 자루나 되는 오행의 병장기들이 일제히 천여운을 향해 쇄도했다.
“노부의 백무도를 받아보아라.”
초유신이 손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그러자 병장기들이 백여 명의 절세고수들이 합공을 펼치는 것처럼 각자 초식을 발휘했다.
-슈슈슈슈슈슈!
천여운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백 자루를 전부 다루는 것인가?’
그 역시도 나노의 연산 능력으로 백 자루가 아니라 수십 만의 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이 가능하다.
한데 초유신은 그런 연산 능력이 없이 순수한 자신의 능력만으로 백 자루나 되는 병장기들의 초식을 펼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 초식들은 마치 좌검우도처럼 정확하게 맞물리는 완벽함마저 보였다.
무림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엄청난 초식이었다.
‘과연 어떻게 막을 것이냐?’
이미 천여운의 역량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는 그였다.
그렇기에 이렇게 완벽하고 막강한 초식을 펼치면서도 천여운이 쉽게 당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때 천여운이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콰드드득!
사방의 공간이 뒤틀리며 날카로운 예기가 흘러나왔다.
공간 자체가 검처럼 변한 것이다.
초유신의 눈빛이 반짝였다.
‘역시 공간을 다루는군.’
멀리서 지켜보았었지만 직접 보게 되니, 한 차원 다른 경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차차차차차차창!
오행검들이 펼치는 초식이 뒤틀린 공간에 의해 만들어진 예기에 부딪쳤다.
그러자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던 오행검들이 산산조각이 나듯이 부서져서 공간속에 휘말리고 말았다.
황헐조차 기겁을 했던 백 자루의 오행 병장기들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오행 병장기들이 사라지자 천여운이 그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막았다. 이제 뭘 보여줄 거지?”
천여운의 그 물음에 초유신이 박수를 쳤다.
-짝짝짝!
“대단해. 아주 대단하군!”
“놀랄 틈이 없을 텐데.”
“노부 역시도 자연경이 끝이 아닐 거라 확신했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보게 되니 확실히 길을 알겠구나!”
초유신의 그 말에 천여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역량을 보았음에도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흥분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공간검을 쓰기를 바랐던 것처럼 말이다.
“고맙구나. 노부가 가야할 길을 알려줘서.”
“과신이 심하군.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나.”
그런 천여운의 말에 초유신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곳에 들어온 것이 네 실수다.”
-슥!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판단한 천여운이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뒤틀린 공간 속에서 날카로운 예기들이 튀어나와 초유신을 에워 쌓다.
그 순간이었다.
-파파파파파파팍!
초유신을 노리던 예기들이 일제히 방향을 틀었다.
천여운의 머릿속에 나노의 음성이 들려왔다.
[공간을 움직이는 벡터 값과 방향이 강제로 조정되었습니다.]
‘뭐?’
제멋대로 움직인 날카로운 예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가 기지의 곳곳을 파괴시켰다.
공간을 다루는 힘에 영향을 준 정체모를 힘에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렸다.
초유신이 웃으면서 말했다.
“늦었군. 비.”
그때 초유신이 있던 곳의 발바닥이 열리며 엘리베이터처럼 뭔가가 올라왔다.
단단한 보호관이 열리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색 가면에 B라는 문자가 새겨진 자였다.
‘비 가면.’
그는 MS 그룹을 움직이는 간부 십원 중의 일인이자, 총수를 보좌하는 최측근이었다.
천여운의 손에 대부분의 간부들이 죽었지만 유일하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던 두 사람 중 한 명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죄송합니다. 등록에 시간이 걸렸습니다.”
“상관없다. 시간을 맞췄으니. 에이!”
초유신의 외침에 통로의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EV 산공 필드를 가동하겠다.
-우우우웅!
그때 기지 바닥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가 솟구쳤다.
‘이건?’
천여운이 바닥을 쳐다보았다.
그 에너지가 발산되는 순간, 천여운의 체내에서 움직이던 진기가 둔화되었고 일대의 대자연의 기운들이 전부 흩어져버렸다.
-초산공 시스템과 광역 EV필드가 성공적으로 가동되었다.
스피커 속에서 총수 A의 기계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초유신이 웃으면서 말했다.
“스스로 무덤에 들어섰구나.”
“많이도 준비했군.”
“외부에서 겪었던 것들과는 다를 게다. 이 기지에 있는 것은 진짜 완성형이니까.”
굳이 그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껴졌다.
기지의 깊숙한 바닥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기운은 무림 협회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방대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네놈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텐데.”
이 안에서는 누구나 똑같은 입장이었다.
그 말에 B 가면이라는 자가 비웃음을 흘리더니, 손가락을 까딱 거렸다.
-콰드드득!
천여운이 있는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그의 주변으로 떨어졌다.
-쿠쿠쿠쿠쿠쿵!
정확하게 천여운이 서있던 위치만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B 가면을 쓴 자가 자신의 가슴 부분에 부착된 푸른 빛의 자기장을 내뿜는 에너지 장치가 보였다.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저 장치가 힘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초유신이 B 가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굳이 이런 장치가 없더라도 최강의 이능력자인 이 친구와 노부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범은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하는 법이지.”
초유신은 B 가면을 쓴 자를 최강의 이능력자라 표현했다.
그러고 보니 이들을 배신하고 천여운의 수하가 된 십원 중의 일인인 H 가면인 오현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비와 씨 둘 중 한 사람이 최강의 이능력자라고 들었습니다.]
정확하게 어떤 능력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천여운의 공간검에 펼쳐질 때 벡터 값에 영향을 주어서 방향이 틀어지게 만들었다.
만약 나노가 한 말처럼 정말로 벡터 값이나 방향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자라면 사상 최강이라 불려도 과언이 아닌 괴물이었다.
-뚝! 뚝!
뭔가 물방울 같은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초유신이 고개를 돌려 B 가면을 쳐다보았다.
B 가면의 턱 부분에서 핏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리했군.’
초유신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뇌의 과부하가 컸을 것이다.
공간을 뒤트는 벡터 값에 영향을 주었으니 꽤 벅찼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단 한 번의 조종만으로 피를 흘릴 정도면 단독으로 천여운과 싸우는 것은 무리였다.
‘상관없다. 한두 번만 벡터 값을 조종해서 막아낸다면 그 사이에 노부가 놈을 죽일 수 있으니.’
찰나의 순간이면 승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결과는 났다.
지금 천여운은 함정에 걸려들었고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었다.
설사 이 초산공 시스템을 억지로 헤치고 무리해서 무위를 발휘한다고 해도 이 상황에서는 자신을 이길 수 없다.
스피커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고의 조건을 갖춘 실험체다. 제압해라. 초유신.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럴 참이다.”
지상 최강이라 불리는 존재인 마신 천여운의 육체.
그들이 가장 얻고 싶은 육체였다.
-저벅저벅!
초유신이 그를 향해 걸어왔다.
가슴에 부착된 자기장 장치가 진기를 쓸 수 있도록 해주었지만, 그 역시도 3km에 이르는 광대역으로 펼쳐진 EV 필드 속에서 오행검을 원격으로 다루는 것은 힘들었다.
아마도 이 일대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에너지에 벡터를 조종할 수 있는 B 가면만이 원거리 공격이 가능할 것이다.
‘오로지 놈을 막기 위해 준비한 것이니.’
절대로 벗어날 방법이 없을 거라 확신했다.
아무 말을 하지 않는 천여운에게 초유신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다. 마신.”
그때 천여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의지도 벡터로 정의를 내릴 수 있나?”
“......!?”
그 말을 듣고서 의아해했던 초유신이 순간 당황해서 소리쳤다.
“에이 당장 비를 밑으로 들어....”
바로 그때였다.
“컥!”
비 가면이 자신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몸을 부들부들 떨던 비 가면의 틈새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이....이 힘은 대체?”
그리고 이내 바닥에 쓰러졌다.
-으득!
“심검!”
초유신이 이를 갈았다.
모든 것을 다 계산했다고 생각했는데, 유일하게 염두 하지 못한 힘.
그것이 바로 의지의 힘이라 불리는 심검이었다.
실제 하는 모든 벡터를 조종할 수 있는 B 가면이라고 해도 의지로 이루어진 심검만큼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역시 네놈은 안 되겠구나. 에이. 놈을 죽인다.”
초유신은 천여운을 잡아서 될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다.
조금의 틈만 있어도 활로를 열 수 있는 괴물이 바로 마신 천여운이었다.
그때 천여운이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무리다! 아무리 네놈이 자연경을 넘어섰다고 해도 이 일대 전체로 펼쳐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여운이 손바닥을 위로 향해서 뭔가를 들어 올리는 것처럼 파르르 떨면서 손을 위로 움직였다.
초유신은 그가 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억지로 진기를 유동시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무리라고 했을 텐....”
-쿠르르르르!
그때 지축이 강하게 흔들렸다.
“아닛?”
-쩌저저저저저적!
-콰드드득!
기지 전체에 균열이 일어나며 바닥과 벽면 전체가 갈라질 만큼 엄청난 진동이었다.
너무 심하게 흔들려서 서있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네놈 대체....”
그때 스피커 속에서 총수 A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A의 목소리에 초유신이 이해할 수 없어서 물었다.
“에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
-기지 전체가......떠오르고 있다.
‘!!!’
안에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일.
재앙이라도 닥친 듯한 이 거대한 지진은 MS 그룹의 본단 기지가 단단한 지층에서 떠오르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바깥에서는 돌산의 산맥 전체가 떠오르는 말도 안 되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 이놈?'
천여운이 경악해하고 있는 초유신에게 말했다.
"함정이 작구나."
< 73화 초유신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