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초유신 (2) >
그것은 불과 20분 전의 일이다.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 블레이드 식스의 금성룡 회장.
이로 인해 부속실장 비막헌이 우려의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흠.]
그때부터 천여운의 사고는 조금 더 폭넓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다급할 정도로 급한 용무가 있었다는 금성룡 회장.
어지간한 일로는 극도육무문만으로도 처리가 가능했고, 그들에게는 황헐이라는 걸출한 절대자가 있었다.
‘황헐이 상대할 수 없는 적이 나타났군.’
그럴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
황헐이 상대할 수 없는 적이라면 MS그룹의 중추가 움직였을 것이다.
중추가 직접 움직일 만큼 극도육무문을 처리하기 위해 저들이 나섰다는 그 말은,
‘찾았구나!’
천여운은 확신했다.
극도육무문이 MS그룹의 본진을 찾았을 거라고 말이다.
[막헌.]
[네. 천마이시여.]
[블레이드 식스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탐색 좌표가 어디지?]
천여운은 극도육무문에서 마지막으로 탐색한 장소의 좌표를 확인했다.
그들의 본진으로 짐작되는 곳을 확인할 때마다 보고서를 메일로 보냈던 블레이드 식스였다.
천여운의 의도를 알아차린 비막헌이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그들의 탐색 경로를 중심으로 위치를 추려보겠습니다.]
그렇게 추려진 장소는 총 세 곳.
일일이 이동을 해서 움직여야 하는 블레이드 식스와 달리 천여운은 공간이동으로 그 일대를 살펴보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추려진 장소의 두 번째인 사막의 돌산에서 기지를 찾아냈다.
다른 기지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삼엄한 경비 시스템은 이곳이 저들의 본진일 거라고 확신이 들게 만들었다.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인간 전투 병기부터 시작해, MS 그룹에서 개발한 전투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고작 입구 부근에서만 수백 명에 달할 정도였다.
-쾅! 쾅!
“끄악!”
“컥!”
다만 천여운의 힘이 너무 강했다.
정면에서부터 뒷짐을 진 채, 일직선으로 걸어가고 있는 천여운은 손 하나 까딱이지 않고 적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 다가오기도 전에 진기에 의해 머리가 터지거나, 혹은 벽에 처박혀서 죽는 사태가 연이어 벌어졌다.
[emergency! emergency! emergency]
비상사태를 알리는 경고음.
이 강대한 적이 들어왔음을 기지의 메인 시스템이 인지하고 있었다.
기지의 중추에 있는 수많은 CCTV 화면들이 일제히 한 사람의 존재를 비췄다.
그는 천여운이었다.
[제 4섹터 돌파. 유전자 변이 생체병기 5할 기동 정지.]
[제 5섹터 돌파. 신체개조 병기 4할 기동 정지.]
빠른 속도로 섹터들을 돌파해오는 천여운.
그의 행동은 메인 방어 시스템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전략이나 전술이 없었다.
어떤 적이 단독으로 정면 돌파를 시도하겠는가.
오만하다 못해 광오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 광오함은 현실이었다.
-쾅! 쾅!
CCTV 화면에 천여운은 손 하나 까딱이지 않고 적들을 죽였다.
유전자 변이 생체 병기들과 신체 개조 병기들이 계속해서 천여운을 막기 위해 쏟아지듯이 달려들었지만 생채기는커녕 반격 30미터 내로 접근도 하지 못했다.
-픽!
화면 중 하나에 근방의 지도가 보였다.
지도 속에서 붉은 점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엄청난 속도로 이동해오고 있지만 적어도 이곳까지 도착하려면 15분 정도는 걸릴 듯 했다.
이 기세라면 저 괴물 같은 적이 중추에 도달하기까지 3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메인 시스템의 정중앙에 있는 컴퓨터의 검은 화면에 타자가 쳐졌다.
-베이스 중추를 보호하기 위한 임시 시퀀스 변경에 돌입.
-메인 시퀀스 넘버링 1932.
-기록된 뇌 정보를 실험관의 01, 02, 03, 04, 05, 06, 07, 08 전뇌체로 전이.
-우우우우웅!
메인 시스템의 컴퓨터들이 과열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중추에 있는 수많은 유리관들 중에 일부 액체들이 들썩거리며 움직였다.
액체 속에 담겨 있는 인간 형태의 무언가가 경련을 일으켰다.
-드르르르르!
-업로드 60%
-업로드 70%
-업로드 80%
-차차차창!
업로드가 진행되는 도중에 02번, 05번 08번이라 적혀 있던 유리관이 깨지면서 인간의 육신으로 보이는 것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것의 머리 부분이 수박이 깨진 것 마냥 터져 있었다.
-02, 05, 08 전뇌체 업로드 실패.
-업로드 90%
-업로드 100% 완료.
화면 속에 업로드가 완료되었다는 문구가 뜨자, 경련을 일으키던 육신들이 안정화되었다.
유리관 속의 밑에 배수관이 열리며 안에 있던 액체가 밑으로 빠졌다.
액체가 완전히 빠지자 유리관이 열렸다.
-철컹!
유리관이 열리며 공기가 유입되었고, 안에 있던 인간 형태의 무언가에 머리에 헬멧처럼 씌워져 있던 기기가 해제되었다.
그러자 5명의 털 하나 없는 인간 형태의 존재들이 동시에 오바이트를 했다.
“쿨럭...쿨럭!”
입에서 토사물이 흘러나왔다.
액체 속에서 막 깨어나서 그런지 호흡도 벅차했다.
하지만 금방 안정화되었다.
-위잉!
바닥에서 모니터 화면들이 올라와 그들의 눈앞에서 멈춰 섰다.
모니터 화면 속에 A라는 문자가 새겨진 가면의 사내가 출력되었다.
다섯 개의 화면의 스피커에서 동시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먼저 사과부터 하지. 계획이 조금 어긋났다. 데이터를 이전하고 본체가 도착할 때까지 놈을 막아야 한다.
그 말에 다섯 존재들이 동시에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본체?”
* * *
한편 천여운은 섹터 8이라 적힌 곳을 통과하고 있었다.
수많은 적들이 튀어나와 천여운을 막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썼다.
하지만 천여운은 여전히 뒷짐을 지고서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않고 그들을 전부 처리했다.
전력에서 완전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지루하게 만드는군.”
사실 천여운은 좀 더 빠르게 중추로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러나 두 가지 목적 때문에 이렇게 일일이 전부 처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이들의 모든 전력을 전부 제거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현재 위기에 처한 극도육무문에게서 적들의 시선을 자신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내가 네놈들의 기지를 부수는 게 더 빠르겠군.’
지금 상태에서는 그것이 더 빠를 듯 했다.
그런데 앞으로 나아가던 천여운의 눈빛이 묘해졌다.
‘물러나고 있다.’
계속해서 자신을 막기 위해 달려들던 기척들이 일제히 물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앞 쪽에서 지금까지와 달리 방대한 역량들이 느껴졌다.
엄청난 살의를 가진 존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나서는 건가.’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다가오는 자들이 기운이 상당히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천여운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우우우우웅!
그러자 수백여 자루의 이기어검강들이 허공에 생겨났다.
천여운이 검결지를 쥐고서 앞으로 뻗자, 이기어검강들이 일제히 쇄도했다.
-슈슈슈슈슈슈!
통로를 빼곡하게 메운 이기어검강들은 다가오는 자들을 꼬챙이로 만들 기세였다.
그런데 멀리서 붉은 섬광이 보이며 이기어검강들이 소멸되어갔다.
“호오.”
이기어검강을 없앤 존재들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무모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머리털, 눈썹까지 모든 털들이 없는 근육질에 나신인 자들이었다.
특이한 모습에 흥미로워하던 천여운이 손을 내민 상태에서 비틀었다.
그러자,
-콰드드드득!
달려오는 그들의 앞에 공간이 일그러지며 비틀렸다.
선두를 내달리고 있던 무모의 존재가 일그러지며 인력을 일으키는 공간 속으로 그대로 휩쓸리고 말았다.
“끄악!”
덕분에 다른 무모의 존재들이 동시에 물러났다.
어떻게 대응 하려나 지켜보았는데, 그들이 각자 천장과 양 옆의 벽, 그리고 밑으로 뚫고 들어갔다.
애써 비틀린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피했다.
옳은 선택이기도 했다.
-쾅!
곧바로 천여운이 있던 위쪽 천장이 뚫리면서 무모의 존재가 나타났다.
무모의 존재가 천여운을 향해 퇴법을 펼쳤다.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이건?’
그 퇴법은 소림사의 항마연환신퇴(降魔連環神腿)였다.
그것도 매우 능숙하고 완벽하여 소림신승이 나타나 펼치는 것만 같았다.
천여운이 한 손을 뒷짐 진 상태로 한 손으로 이를 막아냈다.
-파파파파파파팍!
그때 양 옆의 벽을 뚫고서 두 무모의 존재가 나타나 절초를 펼쳤다.
각기 다른 무공을 펼쳤는데 천여운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우측에서 펼치는 무공은 천마신교의 상위종파 중 하나인 파부종의 부법인 오마부경(五魔不景)이었다.
‘본교의 무공?’
그리고 좌측의 무모의 존재는 사파의 무공인 녹림패왕의 무공 패도무적권(霸道無敵拳)을 펼쳤다.
이들은 정사마의 최고의 무공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허점마저 없는 완벽한 초식들이다.
-파파파파팍!
물론 보통 고수들이라면 이 광경에 당혹스러울 만도 하지만, 이들이 상대하는 자는 지상 최강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존재다.
천여운이 한 손을 뒷짐 진 상태에서 진각을 밟았다.
-쾅!
그 순간 바닥에 균열이 일어나며 바닥의 파편들이 예기를 머금고서 사방으로 튀었다.
-촤촤촤촤촤촤촤!
‘파편에 검기를 실었어?’
무모의 존재들이 펼치던 초식으로 이를 막아냈다.
하지만 파편에 실린 진기가 보통이 아니었기에 완벽하게 막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파편들 하나하나가 초식처럼 요혈을 노린다.’
파편들이 검기만 실린 것이 아니었다.
하나하나를 세세히 조종하는 것처럼 교묘하게 요혈들을 노려왔다.
-푸푸푸푸푹!
결국 세 무모의 존재들의 요혈들을 파편이 꿰뚫고 말았다.
파편에 맞은 무모의 존재들이 뒤로 튕겨나가 벽면에 부딪치고, 위에서 노렸던 자는 천장을 도로 뚫고 날아갔다.
천여운이 작게 중얼거렸다.
“노리다말고 피한 것이냐.”
-쿵!
천여운이 다시 한 번 진각을 밟자, 뒤쪽의 바닥이 갈라지며 무모의 존재 한 명이 보였다.
밑에서 노리려다가 진각음을 듣고서 거리를 벌린 것이다.
-슥!
천여운이 손을 내밀자, 무형검 세 자루가 생겨나며 그 자에게로 날아갔다.
-슈슈슉!
무형검을 본 무모의 존재가 양손에 검결지를 쥐고서 들어올렸다.
그러나 검결지를 들어 올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모의 존재가 인상을 콱 구기며 중얼거렸다.
“바보 같은 짓을 했군.”
-푸푸푹!
그런 사이에 무형검 한 자루가 무모의 존재의 머리를 관통하고, 남은 두 자로가 심장과 복부를 꿰뚫었다.
무형검에 당한 무모의 존재가 축 늘어졌다.
죽은 듯 했다.
그런데 다른 무모의 존재들을 쳐다본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스멀스멀!
파편에 요혈들을 꿰뚫린 그들의 몸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그런데 천여운이 놀란 것은 그게 아니었다.
‘푸른 피?’
파편을 맞은 자들부터 무형검에 꿰뚫린 자들의 몸에서 푸른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털이 없는 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무공을 쓸 줄 아는 인간이었는데, 붉은 피가 흐르지 않았다.
천여운이 죽은 무모의 존재를 향해 손을 뻗어서 돌리는 시늉을 했다.
-파악!
그러자 그자의 몸이 뒤로 돌려졌다.
나신인 놈의 등의 날개 뼈가 있는 쪽이 피부 이음새가 돌출되어 있었다.
의아하게 보고 있는데, 요혈을 완전히 재생한 무모의 존재들 중 하나가 천여운을 향해 검초를 펼쳤다.
-촤촤촤촤촤촤!
손에 흰 빛이 응집해 있었는데, 강기와 흡사했으나 기운이 달랐다.
천여운이 검결지에 검강을 실어 초식을 막아냈다.
-차차차차창!
푸른 스파크가 튀겼다.
직접 부딪친 천여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내공이 아니다.’
미묘한 이질감을 느꼈지만 제대로 탐색하면서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분명 이 무모의 존재는 운기법이나 내공의 운용법 자체가 무공에 근간하고 있었지만 기운은 내공이 아니었다.
-차차차창!
초식을 펼치는 수준이 매우 뛰어나다.
더군다나 하나의 무공에 정형화된 것이 아니라, 무당파의 검법을 썼다가 화산의 검법 등 다양한 무공들을 동시에 펼쳤다.
‘이놈 정체가 뭐지?’
천여운 자신 이외에 다양한 무공을 펼칠 줄 아는 자는 처음 보았다.
자신이야 나노를 통해 마도관 시절에 수천 가지의 정사마의 무공을 섭렵했다고 하지만, 이 무모의 존재는 몸으로 체득한 듯 했다.
반면 놀라기는 무모의 존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본래 무공이 아니긴 하더라도 계속 초식을 바꾸는데, 전혀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막아내다니....’
마치 천여운은 이 모든 초식을 아는 것처럼 허점을 노려왔다.
한 무공을 두 초식 이상 쓰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그때 천여운이 그의 검결지를 쥐고 있는 손목을 붙잡았다.
-팍!
-파르르르르!
무모의 존재가 모든 기운을 끌어올렸지만, 애초에 천여운의 진기를 버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천여운이 그 상태에서 입을 열었다.
“네놈들.....숨기는 게 많구나.”
그런 천여운의 물음에 무모의 존재가 버거워하면서도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숨기지 않았다. 이 육체로는 이게 한계일 뿐이다.”
“이 육체?”
천여운이 의아해했다.
마치 지금 자신의 몸이 원래의 것이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이딴 육체가 아니라면 네놈과 즐거운 대결이 되었을 거다. 마신. 내 역할이 고작 이런 것인게 아쉽군.”
-고오오오오!
그 순간 천여운이 지나쳐온 통로 끝에서 엄청난 위압감이 풍겨져왔다.
흉흉한 살의와 더불어 강렬한 기운이 기지를 뒤엎을 기세로 다가오고 있었다.
코끝을 자극하는 피 냄새.
-저벅저벅!
붉은 가면에 전신이 피로 얼룩진 존재가 걸어왔다.
그것을 보면서 손목이 잡혀 있는 무모의 존재가 향을 음미하듯이 코를 벌렁거렸다.
“흐음. 꽤나 즐겼나 보군.”
“나로구나.”
붉은 가면의 사내가 무모의 존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에 무모의 존재가 씁쓸하다는 목소리로 답했다.
“시간을 끄는 역할이 될 줄은 몰랐지만 뒷정리를 부탁한다. 본체.”
붉은 가면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이제 뒤는 이 노부가 맡도록 하마. 나여.”
-팟!
그때 다른 무모의 존재가 천여운의 뒤를 노렸다.
이에 천여운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상태로 가볍게 뒤로 손가락을 튕겼다.
-파앙!
“크헉!”
무모의 존재가 허공에서 뭔가에 맞은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가 버렸다.
날아가는 그의 가슴이 부분이 통째로 구멍이 나있었다.
-쾅!
일격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에 손목이 붙잡혀 있던 무모의 존재가 놀란 눈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천여운이 그와 붉은 가면의 사내를 쳐다보며 피식하고 웃고는 말했다.
“시간을 끈 게 네놈들 같나?”
< 73화 초유신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