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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221화 (221/234)

< 73화 초유신 (1) >

-화르르륵!

사방이 불꽃으로 뒤덮은 도로를 걸어오는 붉은 가면의 사내.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황헐은 그가 누구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놈이다.’

350여 년 전, 이무기의 진원과 사체를 빼앗고 오랫동안 동고동락 해왔던 동료와 사랑하는 여인인 이령 마후연을 앗아간 그 괴물 같던 노인.

십여 초식을 겨루면서 그 자의 무공이라고 확신한 황헐이다.

-으득!

“이노오오옴!”

황헐이 이를 갈면서 거칠게 몸에 붙어 있던 링거 줄들을 뜯어냈다.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바람에 급하게 대응했던 그였다.

도로 주변에 나뒹굴고 있는 버스들.

그 안에는 청두시의 비밀 은거지를 지키고 있던 극도육무문의 도객들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팔 할이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싸늘한 시신이 되고 말았다.

“제법 강해졌구나. 허허허. 그때는 노부의 공격을 셋이서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더니 말이야.”

가면 안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황헐이 인상을 찡그렸다.

굉장히 젊은 목소리였다.

‘다르다.’

그 노인에 대한 증오심으로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황헐이었다.

한데 이 목소리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네놈.....누구냐?”

“흠. 노부를 벌써 잊은 게냐?”

붉은 가면의 존재가 황헐을 향해 들고 있던 도를 던졌다.

-슉!

날아온 도가 저절로 움직이며 고명한 초식을 펼쳤다.

이기어도법이었다.

“흥!”

황헐이 자신을 향해 도초를 펼치는 도를 향해 절묘하게 상체를 움직이며 피해내더니, 도신의 가운데를 쳐냈다.

-차차차차차창!

도신이 부서지며 도의 파편들이 붉은 가면에게로 날아갔다.

파편 하나마다 강기가 실려 있는 고도의 수법이었다.

단순히 펼치는 것 같았지만 도의 파편들은 정확하게 붉은 가면의 전신 요혈들을 노렸다.

“허허허.”

붉은 가면이 손바닥을 거꾸로 들어올리고서 밑으로 내렸다.

그러자 날아오던 파편들이 중력에 영향을 받기라도 한 듯이 바닥으로 떨어져 박혀버리고 말았다.

“아까운 도가 부서졌구만.”

“빼앗은 도로 생색을 내지 마라.”

부서진 도는 도객들이 타고 있던 버스에서 나온 것 중 하나였다.

붉은 가면을 쳐다보는 황헐의 눈빛은 혼란스러웠다.

목소리는 젊었지만 이렇게나 고절한 무공 실력은 그 350여 년 전에 만났던 노인이나 마신 천여운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환골탈태를 한 것인가.’

그 확률이 가장 높아보였다.

어찌 되었든 젊어졌다거나 그런 건 상관없었다.

사랑하던 연인을 죽인 원흉이 눈앞에 있었다.

-팟!

황헐이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도로가 부서지며 땅이 날카로운 형태로 변하며 위로 튀어나왔다.

-쿠르르! 파파파파팍!

오령(五靈)의 기운 중에 토기를 일으킨 것이다.

붉은 가면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쿵!

붉은 가면이 앞으로 진각을 내딛었다.

그러자 그를 향해 가시처럼 공격해오던 바닥의 돌들이 으스러지며 흩어졌다.

“토기가 약하군. 이런 식으로 활용해야지.”

붉은 가면이 다시 한 번 바닥에 진각을 밟았다.

-쿵!

그와 동시에 황헐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바닥에 돌들이 마치 거대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동서남북으로 가두려고 했다.

-화르르륵!

그런데 돌들에 불꽃이 붙으며 지열이 생겨나 용암처럼 바뀌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허공에서 푸른 스파크가 일어나더니, 강렬한 뇌전이 유일하게 열려 있는 활로인 위에서 밑으로 내리쳤다.

‘오행을 이런 식으로 다루다니.’

분노와 별개로 황헐이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보조적으로 오령의 기운을 다뤘던 자신과 달리 붉은 가면의 존재는 능숙할 정도로 이를 다루고 있었다.

‘하나!’

황헐의 손에서 흐릿한 무형도가 생겨났다.

그 상태에서 황헐이 무형도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서 바닥에 내리 꽂았다.

-쾅!

“하압!”

-촤촤촤촤촤촥!

바닥을 파고든 무형도의 기운이 여덟 갈래로 뻗어나가, 주위를 압박하는 용암처럼 달궈진 돌벽들을 패도적인 도세로 갈라버렸다.

극도신무 제 칠초식 팔선도경(八僊刀競)이다.

-쾅!

그 사이에 허공에서 생겨난 뇌전이 번개처럼 황헐에게로 내리쳤다.

그러나 뇌전에 맞은 것처럼 보였던 황헐의 신형이 흩어지듯이 이형환위로 사라지며, 어느새 붉은 가면의 앞으로 나타났다.

-스륵!

황헐이 무형도로 극도신무의 제 오 초식 극쾌살도(極快殺刀)를 펼쳤다.

발도술로 극쾌의 도초를 펼치는 기술이었다.

-촥!

황헐의 무형도가 붉은 가면의 목을 가르려고 했다.

그런데 그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무형의 도를 붉은 가면이 바로 코앞에서 고개를 살짝 밑으로 숙이며 피해냈다.

‘이걸 피해?’

그 상태에서 황헐의 가슴으로 주먹을 뻗었다.

황헐이 뒤로 틀면서 공중제비를 돌았다.

-콰콰콰콰콰쾅!

붉은 가면의 존재의 주먹에서 뻗어나온 권경이 앞으로 수십 미터 가량 뻗어나가며 도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권경에 휩쓸려서 날아갔을 것이다.

‘큭.’

피하기는 했는데, 노화된 몸으로 허리가 비명을 지르는 듯 하다.

이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이 공중제비를 돌면서 거리를 벌리려고 하는 황헐을 향해 붉은 가면의 존재가 검결지를 뻗었다.

-슉!

무형검이 생겨나며 황헐을 꿰뚫으려고 했다.

“헛!”

황헐이 쥐고 있는 무형도의 도신을 방패삼아 흐트러진 자세로 이를 막아냈다.

-까가가가가강!

부딪친 무형검들에서 찢어질 듯 한 소리가 나오며 스파크가 튀었다.

‘무슨 기운이?’

얼핏 보기에는 잘 막은 듯 했지만,

-파앙!

“크헉!”

붉은 가면의 존재가 만들어낸 무형검에 실린 엄청난 진기에 의해 황헐의 몸이 포탄이라도 된 것처럼 뒤로 튕겨나갔다.

그러나 황헐 역시도 백전노장다웠다.

날아가는 그 짧은 찰나에 붉은 가면의 존재를 향해 수도를 그었다.

그러자,

“큭!”

검결지를 내뻗고 있던 붉은 가면의 존재가 뒤로 다섯 보 가량 밀려났다.

붉은 가면의 틈새로 핏줄기로 보이는 것이 흘러내렸다.

-꽉!

붉은 가면의 존재가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는데, 그것은 짧은 찰나에 황헐이 그를 향해 심도(心刀)를 펼쳤기 때문이었다.

“제법이군. 이 노부에게 피를 흘리게 하다니.”

-쩌저저저저적!

붉은 가면의 발바닥 쪽에서 날카로운 예기가 흘러나오며, 바닥이 도로 벤 것 마냥 갈라지며 균열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심도를 몸 밖으로 배출시킨 것이었다.

-콰드드드드드드!

그 사이 포탄처럼 튕겨나가던 황헐이 바닥에 무형도를 꽂고서 겨우 멈춰 섰다.

땀에 젖은 얼굴만 보아도 굉장히 지쳐보였다.

‘엄청난 대결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블레이드 식스의 회장인 금성룡이 혀를 내둘렀다.

그야말로 절세고수들의 대결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격차가 있었다.

마신과의 싸움 이래로 황헐이 이렇게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대는 처음 보았다.

‘어째서 어르신께서 MS그룹을 극도로 경계했는지 이제 알겠구나.’

저런 괴물이 숨어있으리라 누가 짐작 했겠는가.

금성룡이 자신의 팔목에 있는 스마트폰을 켜보려고 했다.

하지만 배터리라도 나간 것처럼 스마트폰은 켜지지가 않았다.

‘빌어먹을.’

저 붉은 가면의 존재가 나타나면서 스마트폰들이 전부 꺼졌는데, 아무래도 전자기 펄스인 EMP를 쓴 것 같았다.

일부러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시키기 위함이었다.

‘마신에게 연락을 취해야 하건만.’

이러다가 정말 사달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금성룡이 초조한 눈으로 붉은 가면의 존재를 쳐다보다 문득 한 가지를 떠올렸다.

그것은 블레이드 식스의 연구부서에서 개발했다는 전자기 펄스 캔서가 부착된 특수 전화기였다.

‘3호차에 실었다고 했었나?’

금성룡이 3호차 버스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복된 버스들 중에 불에 타고 있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제발 3호차가 무사하기를 바랐다.

그때 금성룡의 두 눈에 무언가가 띠었다.

‘아!’

그것은 반으로 두 토막이 나있는 3호차 버스였다.

다행히 다른 버스들처럼 불타고 있지 않아서 특수 전화기가 무사할 확률이 높았다.

금성룡이 붉은 가면의 눈치를 보았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저 자의 일격조차 막아내기 힘들었다.

‘어르신과 싸울 때를 노려야 해.’

놈의 이목에 띠지 않기 위해 금성룡이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몸을 낮췄다.

불길에 몸을 가리고 기회를 엿보았다.

그런 그를 아직까지 눈치 채지 못했는지 붉은 가면이 황헐을 향해 다가갔다.

붉은 가면이 말했다.

“계속 숨어 있지 그랬나? 그랬으면 계속 목숨을 건졌을 텐데 말이야. 그 늙은 계집이 노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진 보람을 무색하게 만드는군.”

자극하는 그의 말에 황헐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마후연.’

황헐의 머릿속에 그녀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피에 얼룩져서 동귀어진을 했던 그녀의 처절한 희생을 너무도 쉽게 모독했다.

황헐이 분노해서 소리쳤다.

“이노오오오옴!”

“와라.”

가면의 틈새로 보이는 붉은 안광.

그 안광 속에 자리하고 있는 눈동자는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오랜만에 벌이는 제대로 된 대결을 즐기고 있었다.

-우웅!

황헐의 손에 오행의 기운이 모여들며, 오색빛깔의 무형도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자연경의 경지에 오른 자가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위력을 지닌 오행도였다.

“그래. 더욱 이 노부를 즐겁게 해다오.”

붉은 가면의 존재가 그를 향해 여유롭게 걸어왔다.

그런 그를 향해 황헐이 소리쳤다.

“이곳이 네놈과 노부의 무덤이다.”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하고 있는 황헐이었다.

그 동안 질긴 목숨을 부지해왔던 것도 오직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후연. 놈을 저승으로 데려가리다.’

그래야 자신을 살린 그녀를 저승에서 떳떳하게 볼 낯이 있었다.

황헐이 오행도로 기수식을 취했다.

모든 역량을 다해서 놈에게 부딪치기 위해 전 기운을 끌어 모았다.

그때였다.

-슥!

자신을 향해 걸어오던 붉은 가면의 존재가 어딘가로 검결지를 내뻗었다.

그 순간 큰 폭발음이 들려왔다.

-콰아아앙!

폭발은 버스가 터지면서 일어난 것이었다.

버스의 근처까지 다가왔다가 폭발로 인해 뒤로 튕겨나간 금성룡의 모습이 보였다.

금성룡이 망연자실한 눈으로 불타오르는 버스를 쳐다보았다.

“쯧쯧,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거라. 아가.”

붉은 가면의 존재의 말에 금성룡이 절망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눈치 채지 못했을 거라 여겼는데, 오히려 자신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었다.

주변의 경계에 전혀 소홀함이 없던 것이다.

‘.....끝이다.’

금성룡이 고개를 푹 숙였다.

더 이상 외부와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다.

오랜 세월 명맥을 이어왔던 극도육무문이 오늘 종말을 고할 지도 몰랐다.

“그럼 마지막 즐거움을 맛보실까.”

-우우우웅!

붉은 가면의 존재의 주변에 오색 빛이 일렁이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의 주변으로 백 개의 오색 빛을 내뿜는 병장기가 오행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노부의 백무도를 보여주마.”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위.

오행도를 만드는 것만으로 전력을 다해야 하는 황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찌 이런.....’

자신이 발전한 동안 저 괴물 역시도 강해지긴 매한가지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동귀어진을 생각했던 그의 머릿속이 새까맣게 물들어갔다.

그런데 앞으로 다가오던 붉은 가면의 존재가 갑자기 멈춰 섰다.

-탁!

붉은 가면의 존재가 갑자기 고개를 돌린 상태에서 중얼거렸다.

“이놈이....”

그와 함께 붉은 가면의 주위로 떠올라 있던 백 자루의 오행 병장기들이 사라지더니, 이내 그가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갑자기 그가 가버리자 황헐이 영문을 알 수 없어했다.

‘어째서?’

*  *  *

청두시 고속도로에서 110km 가량 떨어진 사막의 돌산.

그 돌산에 숨겨져 있는 거대한 기지 안에 수많은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수많은 시신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가고 있는 검은 양복에 뒷짐을 지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바로 천여운이었다.

[emergency! emergency! emergency!]

기지의 스피커로 비상사태를 알리는 경고음이 계속 들려왔다.

< 73화 초유신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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