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TRA 알파 위성 (3) >
주위를 둘러본 천여운의 표정이 묘해졌다.
지적 생명체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괴이한 형태의 이들은 흔히 말하는 외계인에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다른 행성의 생명체일 거라 판단되었다.
한데 이들 중에서 인간과 흡사한 형태의 생명체가 존재했다.
-저벅저벅!
천여운이 하반신이 함선 바닥에 박혀 있는 천족에게 다가갔다.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 듣지 않았기에 백색의 날개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아마 서양인들이 보았다면 천사라고 여겼으리라.
[지구와 비교하여 산소 분포도가 80% 적합. 함선 내부에서 호흡이 가능합니다.]
들려오는 나노의 음성에 천여운이 헬멧을 해지했다.
-스스스!
슈트의 헬멧이 분해되며 천여운의 피부로 흡수되었다.
두려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던 천족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인.....간?”
정체모를 괴물이라 여긴 존재가 인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떻게 인간이 이런 힘을?”
믿기지가 않았다.
천여운이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네놈 탈리샤의 일족인가 뭔가 하는 것이냐?”
‘!?’
그 말에 천족이 당혹스러워했다.
자신들을 탈리샤의 일족이라 부르는 이들은 오직 마족, 즉 아리샤의 일족뿐이었다.
이것만으로 그는 천여운이 마족과 관련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들과......무슨 관계냐? 인간.”
천여운이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손으로 살짝 들어 올리는 시늉을 했다.
-부웅!
“헛?”
그러자 바닥에 박혀 있던 천족의 몸이 위로 떠올랐다.
밧줄로 꽉 묶어놓은 것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질문은 내가 한다.”
‘무, 무슨 위압감이 이렇게....’
그저 말을 내뱉었을 뿐인데 굉장한 위압감에 짓눌렸다.
천족은 마치 자신들의 상위 존재인 대전사들이나 수장의 앞에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내 그것이 모독이라 생각되었는지 이를 부정했다.
“이, 인간 따위에게 할 말은 없다!”
“자부심이 강하군.”
“하찮은 인간이 위대한 천족과 말을 섞...”
-탁!
천여운이 그의 양팔을 붙잡았다.
무슨 짓을 하려나 싶어 천족이 당황스러워 했다.
“지금 뭘 하려는...”
-콰직!
“끄아아아아아악!”
양팔이 뜯겨져 나가며 천족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뜯겨져 나간 부위에서 붉은 색이 아닌 푸른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다르군.’
마족과 대립한다고 해서 신체 구조가 그와 흡사할 거라 여겼던 천여운이다.
한데 피의 색이 다르긴 하지만 인간처럼 액체의 피가 흘러나왔다.
“끄어어어어.”
팔이 뜯겨져 나간 고통으로 천족이 괴로워했다.
“위대한 것 치고는 인간과 별 차이가 없군.”
“끄으으으....이노오오옴.”
천족이 분노를 토해냈지만 몸이 강제로 진기에 의해 묶여 있기 때문에 어쩔 방법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물었다.
“탈리샤라는 놈이 지구의 게이트에 손을 댄 것이냐?”
질문을 하면서도 사실상 천여운은 그들이 저지른 짓이라고 확신했다.
조쉬프 공작의 말대로라고 한다면 이런 수법으로 행성을 지배하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네, 네까짓 인간 놈에게 그런 것을 말할 것 같으냐?”
천족이 끅끅거리면서 자존심을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흔들리는 눈빛을 보면 정곡을 찌른 듯하다.
‘역시인가.’
분명 이들이 스타게이트의 중추를 건드린 것이 확실했다.
다만 그들이 어째서 게이트에 손을 대고도 여전히 관망을 유지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천여운이 천족에게 말했다.
“네놈들이 그렇게 추앙받는 것을 좋아한다지? 한데 어째서 게이트를 열어둔 채로 계속 내버려둔 거지?”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들의 진짜 진의를 알아야 했다.
‘이놈 대체 뭐지? 아리샤의 일족들이 인간들과 손을 잡은 건가?’
계속해서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자 천족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자신들이 행성을 지배하는 방식에 대해서 이 정도까지 잘 알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마족과 연관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어떠한 정보도 넘겨서는 안 돼.’
천족이 이를 악물었다.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정보의 유출을 막아야만 한다고 여겼다.
-푹!
그런 그의 가슴에 천여운의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끄어어억!”
“입이 얼마큼 무거운지 시험해볼까.”
“끄으으으....주, 죽여라!”
죽음을 각오한 천족이 눈을 부릅뜨고서 외쳤다.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자를 천여운은 좋아했지만 이런 경우는 예외였다.
“그래?”
-콰드드득!
천여운의 손가락이 더욱 파고들면서 천족의 가슴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마족처럼 심장부라 할 수 있는 핵이 있다면 그것을 압박해 놈을 밀어붙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응?’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렸다.
분명 가슴에서 뛰는 고동이 느껴진다.
한데 마족과 달리 그 힘의 원천이라기 보다는 단순히 혈액을 순환시키는 기관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킥.”
그때 천족이 일그러진 얼굴로 피식하고 웃었다.
“네놈 우리를 잘 모르는군.”
“뭐?”
“하지만 네놈을 살려두면 일족에게 큰 후환이 되겠지?”
천족의 눈동자에 맺힌 악의.
그 악의는 놈이 뭔가 꿍꿍이를 감추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천족이 큰 소리로 소리쳤다.
“DILITO HAMSUN JAPOCK SEQUENCE GADONG!”
[디리토 함선 자폭 시퀸스 가동!]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함선 조종실의 기계들에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파칙!
이와 함께 조종실의 온도가 급격하게 치솟았다.
천족이 입 꼬리를 올렸다.
이들 종족을 하찮게 여겼지만 27년 동안이나 이곳에 상주하면서 그 언어를 익히게 된 것이 신의 한수였다.
이곳은 수억광 년에 이르는 우주를 날아다니는 함선이다.
워프 시스템을 가동하기 위해 갖춘 메인 에너지 중추가 폭발하게 되면 핵 폭발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녔다.
천족이 천여운을 비웃으면서 말했다.
“크크크큭, 네놈은 끝이다. 나와 함께 가자꾸...”
-슉!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야가 회전하듯이 뒤틀렸다.
잠시 어지럽더니 천족이 함선 특유의 냄새가 아닌 청정한 공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
천족의 흔들리는 두 눈으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주변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인기척들.
“주군!”
“천마이시여!”
천여운을 부르는 목소리들.
천족은 그제야 이곳이 함선이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쾅!
그때 하늘에서 폭발음과 함께 흰빛이 원형으로 뭉쳐지는 것이 보였다.
지상으로 맹렬한 바람이 몰아쳤다.
고도 1,000km 가까이 떨어진 곳에서의 폭발이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강한 위력을 지녔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주었다.
“뭐.....실패했군.”
천여운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비, 빌어먹을! 이놈 공간 이동을 할 줄 알았던가?’
이에 천족의 눈빛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목숨마저 각오한 자폭 시퀀스가 허망하게 끝난 것이다.
“이제 네놈들이 어째서 관망 상태를 유지했는지 그 입으로 말해주실까?”
천여운의 물음에 천족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동반 자살을 하려고 했던 계획이 어긋났다고 해서 이들에게 모든 정보를 털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라도 기밀을 지켜야 했다.
“웃기는 소리! 네놈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까득!
천족의 두 눈에 흰빛의 안광이 서렸다.
천력을 폭주시켜서 스스로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 천여운이 그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콱!
“여기였군.”
천족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랬다.
천족의 중심부는 마족과 달리 가슴 정중앙이 아닌 머리였던 것이다.
자살을 하기 위해 강한 에너지가 응집되면서 천여운은 곧바로 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스스스스!
천여운의 오른쪽 팔목에서 음산한 푸른 기운이 흘러나왔다.
‘내 예상이 맞다면.’
천여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 이건 대체?’
머리로 집중되는 기운을 폭사시키려는 천족이 마지막에 와서 음산한 기운에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곧 그 의문이 풀어졌다.
-쩌저저저적!
“끄어어어.”
천족의 머리부터 새하얗게 서리가 내린 것처럼 변색되어갔다.
그리고 전신을 비롯한 날개마저도 하얗게 변색되어 생기를 완전히 잃은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버렸다.
-엑? 죽여버린 거냐옹?
천여운의 등 뒤에서 어깨로 올라온 금모 구미호가 의아해했다.
정보를 캐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날려 버렸다고 여긴 탓이었다.
그때였다.
-스멀스멀!
싸늘한 시신이 된 천족의 몸에서 흐릿한 무언가가 올라왔다.
유령처럼 보이는 모습에 이를 처음 본 금모 구미호를 비롯한 일부 천여운의 수하들조차도 놀라워했다.
“헛?”
“유령?”
흐릿하지만 죽은 천족의 모습과 동일한 날개 달린 유령의 모습.
그것은 바로 고스트였다.
천여운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성공이군.’
예상이 들어맞았다.
마족과 달리 천족은 고스트로 만드는 일이 가능했다.
놈의 육신에 손을 파고 넣었던 천여운은 마족과 달리 천족의 육신이 인간과 상당히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생기를 지닌 존재는 어떤 것이라도 고스트로 만들 수 있는 천여운이다.
그리고 고스트가 된 존재는,
-슥!
손을 닿는 것만으로도 죽기 전에 떠올렸던 기억을 읽어낼 수 있다.
고스트가 된 천족과 접촉한 천여운의 머릿속으로 필름처럼 그의 기억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15분 가량 천족이 떠올린 기억들.
그것에는 천여운이 물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린 것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천족이 입체영상으로 구현된 머리에 은색 관을 쓴 백색 날개에 금발의 미청년에게 항변을 했다.
[대신관이시여.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하아.]
천족이 답답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차라리 이 행성을 수중에 넣고 저 많은 인간들을 신도로 부려서 찾게 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주제 넘은 판단!]
그런 천족을 대신관이라 불린 존재가 다그쳤다.
이에 당황한 천족이 한쪽 무릎을 꿇고서 죄를 청했다.
[어, 어리석은 사제가 불경을 저질렀습니다. 벌을 주시옵소서.]
[선을 넘지 말라. 젊은 사제여. 그대의 임무에 집중하라. 사라진 그분의 존체를 찾는 일은 대전사들이 할 것이다.]
[알겠나이다.]
그의 말이 끝나자 입체 영상이 꺼졌다.
수신이 완전히 끊긴 것을 확인한 천족이 불만에 가득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그마치 27년이다. 이 지긋지긋한 우주에서 행성이나 내려다보는 것이! 제 놈은 천계에 가만히 앉아서 지시나 내리는 주제에....]
-으득!
불만이 많이 쌓였었는지 이를 갈았다.
천족이 자리에서 일어나 유리창으로 다가가 푸른 빛의 지구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대체 언제까지 6대 탈리샤님의 존체를 찾는 일에 매달려야 한단 말인가. 아리샤에 집착하다가 사라지신 그분이 이 작은 행성에 정말 있는 것일까?’
이것을 마지막으로 천족이 떠올렸던 기억들이 끝났다.
감고 있던 눈을 뜬 천여운의 표정이 묘해졌다.
뭔가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접했기 때문이었다.
‘정복이 목적이 아니었나?’
고스트가 된 천족의 기억대로라고 한다면 그들은 6대 탈리샤라는 존재를 찾고 있는 듯 했다.
심지어 기억 속의 느낌대로라고 한다면 생사여부조차 모르고 있다.
27년이나 되는 세월 동안 이것에 매달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천여운이 날카로워진 눈매로 고스트가 된 천족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이놈들의 수장인 탈리샤가 지구에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 탈리샤란 존재가 아리샤에 집착한다고 했다.
그 말은 놈이 자신의 선조인 천마 조사를 찾기 위해 지구에 왔다는 말로 들렸다.
그러고 보면 과거 마계에서 벌어졌던 대전쟁 당시 탈리샤와 아리샤가 전투를 벌이다가 서로 큰 부상을 입었다고 했었다.
‘흠.’
이 천족의 기억만으로는 모든 것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천족의 목적이 단순히 지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때 부속실장인 비막헌이 달려와 말했다.
“천마이시여.”
“왜 그러느냐?”
“천마께서 자리를 비우셨을 때, 블레이드 식스의 금성룡 회장에게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금성룡? 무슨 일로?”
“MS그룹 관련해서 급한 문제가 생겼다고?”
“뭐? 그걸 왜 이제 이야기하는 거지?”
천여운의 물음에 비막헌이 난처하다는 얼굴로 답했다.
“그, 그게....”
이를 허봉이 대신해서 말했다.
“주군께 제가 머릿속으로 말씀드렸는데, 아무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허봉이 말한 머릿속으로 말했다는 것은 그의 머리에 심어져 있는 나노 폭탄을 개조한 나노머신의 주파수 대화 기능을 의미했다.
원래 지구 내에서는 이 주파수 대화가 원활하게 가능했다.
그러나,
[열권에 진입하면서 주파수의 도달 영역을 벗어났습니다.]
나노가 어째서 천여운이 연락을 못 받았는지 알려주었다.
“아아....”
그런 문제가 발생할 줄은 몰랐던 천여운이다.
그래도 위성 알파 개체를 처리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기에 비막헌에게 다시 금성룡 회장에게 전화를 걸라고 명했다.
“알겠습니다.”
비막헌이 급히 스마트폰으로 연락을 취했다.
그런데 발신음이 계속 흘러가는데도 금성룡 회장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비막헌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천마이시여.....전화가 되지 않습니다.”
* * *
청두시의 동북쪽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이곳에서 사십분 만 더 가면 지하 고속 기차를 탈 수 있는 청두시 역이 나온다.
그런 고속도로 한 복판에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도로 한가운데에 거대한 구멍이 나있었고, 주변에 파손된 버스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사방이 불로 치솟은 고속도로는 마치 전쟁을 방불케 했다.
“쿨럭.....”
부상을 당한 것인지, 피투성이가 된 금성룡 회장이 연신 피를 토하며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귀가 찢겨져 나갈 만큼 강렬한 금속성들이 연달아 흘러나왔다.
-채채채채채채채챙!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에서 황헐이 정체불명의 누군가와 엄청난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황헐과 대립하고 있는 자는 붉은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전신이 피로 얼룩져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오싹하게 만들고 있었다.
-채채채채채챙!
십여 초식 가량을 쉴 새 없이 맞부딪치다가, 황헐의 신형이 뒤로 튕겨나갔다.
-파파파파파팍!
"크윽!"
거의 구르다시피 할 정도로 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던 황헐이 겨우 멈춰 섰다.
황헐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의 눈동자가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놈이다.’
< 72화 TRA 알파 위성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