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216화 (216/234)

< 71화 변혁의 실마리 (1) >

“노사보다 강하다고요?”

은색 가면을 쓴 존재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초 노사가 망원경에 집중하도록 내버려뒀기에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그로서는 납득하기 힘들었다.

“세상에서 노사를 이길 수 있는 자가 존재합니까?”

당사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니었지만 오만한 신뢰를 보이고 있었다.

은색 가면의 존재는 초 노사를 진정한 천하제일의 강자로 여겼다.

그런 그의 물음에 초 노사가 속모를 표정을 짓더니, 이내 피식하고 웃으며 답했다.

“강한 것과 이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지.”

여전히 자신감을 잃지 않은 모습에 은색 가면 속의 눈동자가 초승달을 그렸다.

초 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수확물들을 거두게 해야지.”

“아!”

“다른 십이지들을 소집해라.”

그 말을 들은 은색 가면의 사내가 몸을 파르르 떨더니 기쁜 목소로로 말했다.

“드디어 때가 되었군요.”

은색 가면의 한가운데 이마 부근.

그곳에는 축(丑)이라는 글자의 표시가 새겨져 있었다.

“노사의 명을 따릅니다.”

-슉!

은색 가면의 존재의 신형이 허공에 녹아들 듯이 사라졌다.

뛰어난 경공 실력을 지닌 고수였다.

그가 사라지고 초 노사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거지.”

*  *  *

용천 그룹의 회장인 천유장의 앞에 선 방위군 사령관 소장 조윤.

그의 태도는 사건이 벌어지기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대하는 태도 하나하나에 공손함이 묻어났다.

“계속 군사들을 주둔시킬 겁니까?”

“아이고. 설마 그러겠소. 피해 수습만 끝난다면 곧바로 철수할 터이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런 소장 조윤의 태도를 장교들 누구 하나 나무라지 않았다.

그들 역시도 같은 마음이었다.

종말이나 다름없던 마왕을 격퇴시키고, 마족의 군대를 굴복시킨 용천 그룹의 부회장을 오히려 경이로워할 수밖에 없었다.

군력으로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압도적인 강함을 견식한 그들은 확신했다.

‘한동안 용천 그룹의 세상이다.’

이것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다고 여겼다.

어째서 국방부의 부장인 안우홍이 일개 그룹과 군부를 동등한 선에서 협약을 맺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딱!

소장 조윤이 손을 튕기자 장교 중 한 사람이 가방을 들고 왔다.

가방 안에는 보안 시스템이 적용된 핸드폰이 들어있었다.

“이건?”

“흠흠, 제남시 방위군 총사령관실의 직통 번호가 있는 보안 핸드폰이오. 게이트 관련이나 무슨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이곳으로 직통으로 연락하시오.”

파격적인 배려였다.

적극적으로 용천 그룹의 행보에 협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천유장이 흡족함을 감추지 못했다.

‘선조님 덕분에 모든 것이 원만하게 풀어지는구나.’

모든 것이 천여운 덕분이라고 여겼다.

물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천유장이 부지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려나?'

사태 수습을 위해 자신은 중진들을 데리고 방위군 사령관에게로 왔지만 문득 부지 안에서 어떻게 일이 일단락 지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그였다.

용천 그룹의 부지 안.

그곳에는 흩어져 있던 마족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칼리아프 대공 계와 바무트 지하 수감소에서 나온 마족들은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고, 마왕 휘하의 마족들은 처분을 기다리는 입장이여서 분위기가 어두웠다.

그들 모두가 향후가 결정될 대화에 집중했다.

“제 10군단장 보토 후작이 새로운 마왕 폐하께 영원한 충성을 다짐합니다.”

“제 11군단장 옥소드 후작이 새로운 마왕 폐하께 영원한 충성을 다짐합니다.”

마족들을 이끄는 고위 마족인 군단장들이 충성 맹세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것은 일족의 율법에 의거한 맹세였다.

아무리 강자존에 의거한 삶을 살아가는 마족들이라고 할지라도 그 체계를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일족이 흔들리기에 일인자에 대한 충성을 확실히 한다.

‘흠.’

천여운이 그런 그들의 충성을 지켜보았다.

사실 번거로운 절차가 싫어서 생략할까 했지만 마족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은 필요하다고 여겼다.

“이상 모든 군단장들의 충성 맹세가 끝났나이다. 폐하.”

제 1군단장 후작 알케미르가 대표로 말했다.

마왕 군을 이끄는 중추 인사인 그는 참 미묘한 기분이었다.

어찌 본다면 자신이 아무 곳에나 게이트를 열라는 것에서 이런 결과가 일어난 것일지도 몰랐다.

그랬기에 심경이 착잡하기만 했다.

“이거 주군께서 마음만 먹으면 중원 정복도 쉽게 하는 거 아냐?”

허봉이 괜히 너스레를 떨면서 말했다.

그런 그의 말에 백기가 아무 대답 없이 군단장들을 비롯한 주변의 마족들을 살펴보았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전력들이었다.

하위 마족들조차 절정의 고수들을 능가한다.

게다가 백작 이상의 마족들은 현경의 고수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졌다.

‘중원 정복? 세계 정복도 가능하겠군.’

이 정도 전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해보였다.

이들의 수장이 된 천여운이 마음만 먹는다면 세계 정복도 꿈은 아니었다.

이미 무림 협회도 거의 수중에 들어 온데다가 국방부 부장과도 협약을 맺었고, 게이트로 친다면 S급 위험 개체와 동급으로 놓이는 마족들 위에 군림했다.

심지어 SS급 게이트 키퍼 두 사람이 천여운의 비서인데다가, 상고 시절부터 존재해왔던 대요괴 구미호마저도 그를 따랐다.

사실상 지구에서 최대 규모의 전력을 보유한 셈이었다.

‘에메스 그룹인가 하는 곳은 건드리면 안 될 분을 건드렸군.’

현재 천여운에게 유일하게 대적하고 있는 집단은 MS 그룹뿐이었다.

이쯤 되면 오히려 MS 그룹이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척!

칼리아프 대공과 조쉬프 공작이 예를 취했다.

겨우 몸을 회복한 조쉬프 공작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는 마왕 타우라가 죽고서 라릿샤가 다시 복권했다는 생각에 기쁘기만 했다.

“폐하. 어찌 하실지 명을 내려주십시오.”

칼리아프 대공이 천여운에게 의중을 물었다.

그것은 향후 마족들의 거취나 혹은 천여운이 마계로 갈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천여운에게 모든 결정권이 있었다.

“흠.”

천여운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현재 이곳에 있는 마족들만 해도 칠천 명에 이르렀다.

당장에 상주할 곳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불필요한 전력이다.’

천여운은 이들 모두가 이곳에 머무르는 것을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만이 이들을 통제할 수 있다.

한데 천여운 본인은 언젠가 다시 원래 있던 시간대로 돌아가야 하는 처지였다.

‘내가 없는 상황에서는 혼란만 가중되겠지.’

교주인 천우진이나 소교주 천유장.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마음에 결정을 내린 천여운이 입을 열었다.

“칼리아프.”

“네. 폐하.”

칼리아프 대공이 고개를 들어 천여운의 명을 들으려 했다.

그런데 천여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너를 차기 마왕으로 임명한다.”

‘!!!’

그 말을 들은 모든 마족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막 새로운 마왕에 대한 충성 맹세가 끝났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마왕의 좌를 양위한다는 선언을 했으니 말이다.

“폐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조쉬프 공작이 당황해서 천여운에게 말했다.

“들은 그대로다. 칼리아프를 마왕으로 임명한다고 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폐하.”

양도 당사자인 칼리아프 대공 역시도 당혹스러워 했다.

마왕의 좌라는 것이 이렇게 쉽게 포기하고 넘겨줄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아니었다.

만약 자신이 그 자리를 받으려면 모든 마족들을 납득시킬 만한 역량을 갖춰야 하는데, 천여운은 마왕의 권능 없이도 선대 마왕을 쓰러뜨린 존재다.

무슨 수로 마족들이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을 동의하겠는가.

-팍!

칼리아프 대공이 머리를 숙이며 두 손을 모아 간청했다.

“부디 말씀을 거둬주십시오. 폐하.”

“그렇습니다. 폐하. 일족들 누구 하나 납득하지 못할 겁니다.”

조쉬프 공작 역시도 머리를 숙이며 반대했다.

이제야 겨우 제 자리를 찾았다고 여겼는데, 다시 혼란스러워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천여운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의아해하는 그들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나는 천마신교와 너희 일족 모두를 돌보아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 내가 어느 한 곳의 왕으로 묶여있을 수는 없다.”

그 말에 칼리아프 대공과 조쉬프 공작의 표정이 묘해졌다.

사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지구에 있는 인간들은 약해빠진 존재였기 때문에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자들이었다.

속내는 굳이 이런 하찮은 것들마저 이끌 필요가 있나?

이것에 가까웠다.

그들의 표정에서부터 드러나는 속내에 천여운은 더욱 마음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내가 떠나면 절대로 통제되지 못할 녀석들이다.’

아무리 충성을 맹세해도 기본 바탕에는 힘의 억눌림이 작용했다.

그들이 납득할 만한 힘이 없다면 절대로 따르지 않으리라.

‘확실하게 눌러둘 필요가 있군.’

-고오오오오!

천여운의 전신에서 강렬한 천마기가 발산되었다.

검은 기운이 스멀거리며 사방을 잠식하는데, 마족들 모두가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원래 강했던 천여운이 마왕의 힘을 흡수하고 나서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큭.’

‘어찌....’

방대한 힘에 억눌린 마족들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것은 칼리아프 대공이나 조쉬프 공작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천여운이 마족들 모두가 들리도록 진기를 실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마신. 왕보다 위에서 군림하는 존재다.”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는 마족들의 심령을 자극했다.

이는 마왕의 권능 중의 하나였다.

마족들을 더욱 강한 마력으로 위압하고 억누르는 힘이었는데, 전 마왕보다 배로 강한 천여운이 사용하니 두렵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천여운이 칼리아프 대공의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내가 누구지?”

“폐....폐하는.....”

“나는 왕이 아니다. 다시 묻겠다. 내가 누구지?”

위압감이 담긴 천여운의 목소리에 칼리아프 대공이 힘겹게 입을 뗐다.

“위, 위대한 마신이십니다.”

“나는 왕의 위에 군림하는 존재다.”

천여운은 그들의 머릿속에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각인시키고 있었다.

마왕보다 더욱 상위 존재임을 말이다.

천여운이 군단장들을 쳐다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누구인지 각인이 되었느냐?”

압도적인 힘.

그것에 억눌린 군단장들이 힘겹게 동시에 답했다.

“마신이십니다.”

-스르륵!

그들에게 원하는 대답을 들은 천여운이 기운을 갈무리시켰다.

마왕의 권능과 힘에 억눌려서 힘겨워하던 군단장들이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칼리아프 대공 역시도 창백한 인상이 되어 있었다.

이번 일로 그들은 확실하게 각인했다.

‘......이분은 우리가 함부로 휘두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의 분노를 사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마족들마저도 전멸시킬 수 있는 괴물이었다.

천여운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네게 왕의 자리를 주지. 마족들을 통치하라. 칼리아프.”

-척!

칼리아프 대공이 예를 갖추며 답했다.

“마신의 명에 따릅니다.”

결국 마왕의 권능 같은 실권은 여전히 천여운이 쥐고 있는 채로 귀찮은 일만 그대로 넘긴 셈이었다.

선왕이 되어 왕을 휘두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군단장들이나 조쉬프 공작, 심지어 칼리아프 대공 본인 역시도 이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어떤 불만도 내뱉지 못했다.

‘됐군. 돌려보내기만 하면 되나.’

이들을 마계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한 천여운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쓸만한 전력들만 남겨두고서, 게이트로 보내는 편이 나으려나 싶어서 군단장들을 둘러보던 천여운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이들은 게이트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 그렇다면 지구상에 있는 게이트 역시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제멋대로 열리는 게이트.

이로 인해 지구는 수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인 것이다.

< 71화 변혁의 실마리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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