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215화 (215/234)

< 70화 기억 (2) >

‘방금 그건....’

생생하게 구체화된 기억.

그것을 본 천여운의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천마 조사가 방금 전에 펼친 초식은 자신이 상상했던 영역을 넘어섰다.

천여운 본인은 공간을 검처럼 다뤘다면, 천마 조사는 마치 공간 자체와 일체화된 것처럼 자유자재로 다뤘다.

‘조사님을 뛰어넘었다고 여겼건만.’

공허경의 경지에 오르면서 천마 조사를 넘었다고 생각했던 천여운이다.

한데 지금 그 한 초식만으로 여전히 격이 다름을 알 수 있었다.

[끄으으으.]

가슴이 꿰뚫리면서 튕겨나간 마왕 타우라의 가슴이 빠르게 재생했다.

타우라는 혼란에 빠졌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자가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것부터 시작해, 그가 했던 말이 굉장히 마음에 걸렸다.

‘그럴 리가 없다.’

라릿샤는 뿌리부터가 마족이었다.

방금 전 그 자는 분명 인간이었는데, 대체 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마왕 타우라가 양손을 펼쳤다.

-차차차차차착!

그러자 검은 공간이 열리며 그곳에서 흑철들이 나와 그의 전신으로 붙었다.

갑주의 형태로 변한 그것은 아리샤의 갑주였다.

어찌 되었든 방금 전의 그 일격으로 상대가 절대로 방심할 수 없는 적이라는 것을 판단한 타우라는 곧바로 갑주를 착용했다.

‘방금 전에는 기습적으로 당했다만 이제는 통하지 않...’

-우웅!

그때 밑에서 공간이 일렁이며 누군가의 주먹이 튀어나왔다.

타우라의 턱을 주먹이 가격했다.

-쾅! 우드득!

[컥!]

턱을 맞은 타우라가 위로 빙글빙글 돌면서 날아갔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타우라의 마안에서 안광이 감돌자, 허공에서 검은 손이 생겨나 벽처럼 그가 튕겨나가는 것을 막아냈다.

-우웅!

‘온다.’

공간이 울리는 느낌.

이를 감지한 타우라가 민첩하게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그 순간 거대한 검은 손에 구멍이 뚫렸다.

-팡!

이를 보는 천여운이 제법이라고 여겼다.

확실히 마왕 역시도 전투 감각은 탁월한 것이 두 번 정도 당하자, 상대의 공격에 빠르게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상대는 천마신교의 전설인 천마 조사였다.

무림 역사를 통틀어 무력만으로는 누구도 따를 자가 없다고 전해온 인물.

-쾅!

[크악!]

피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느새 타우라의 앞으로 나타난 천마 조사가 그의 턱을 차올렸다. 그 상태에서 천마 조사의 신형이 타우라를 스치고 지나갔다.

-촤촤촤촤촤촤촥!

이것이야 말로 쾌속함의 정수인가.

천마 조사가 스치고 지나가자 뒤늦게 검의 궤적이 선을 그렸다.

궤적이 그리는 검식 하나하나가 교묘하게 아리샤의 갑주가 없는 틈 사이 부위들을 전부 베어버렸다.

[크억! 이, 이노오옴!]

마왕 타우라가 고통을 참고서 반격을 가하려 했지만,

천마 조사가 검결지를 뒤로 잡아당겼다가 앞으로 찌르자, 그의 머리통이 그대로 날아가버렸다.

-팡!

순간 타우라의 의식까지도 동시에 날아가버렸다.

마족 특유의 재생력이 없었더라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촤르르르륵!

머리가 재생하자마자 타우라는 자신의 상황을 인지했다.

날카로운 예기가 자신의 전신에 박혀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심지어 가슴의 핵에도 그 예기가 향해 있었다.

[움직이면 후회할 거다.]

경고를 하는 천마조사를 노려보던 타우라가 물었다.

[.......네놈 대체 누구냐?]

자신은 왕이었다.

그런 자신을 이렇게 몰아붙일 수 있는 인간은 처음이었다.

그때 천마 조사가 그에게 낮은 어조로 말했다.

[나는 모든 것을 어둠으로 인도하는 찬란한 불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타우라의 핵이 미친 듯이 뛰었다.

설마 하고 생각했었다.

[말도......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한참을 부정하며 믿을 수 없어하던 타우라가 입을 열었다.

[어째서....어째서 당신이 그런 모습으로 살아있는 것입니까? 라릿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천여운 또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천마 조사더러 마왕 타우라는 라릿샤라고 불렀다.

한데 천마 조사는 인간이지 않는가.

그 의문의 해답을 가진 사람은 오직 천마 조사뿐이었다.

[네게는 참으로 고맙게 여기고 있다. 타우라여.]

긍정을 의미하는 말.

그 말에 타우라가 충격을 받았는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체 어떻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왜 우리들의 모습이 머나먼 행성에 있는 지구의 인간들과 흡사할까?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지 않느냐?]

그 말에 마왕 타우라가 의아해했다.

한때 그 역시도 지구에 처음 왔을 때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다른 행성들과 다르게 유독 이 행성의 존재들은 자신들과 닮았다.

체내의 구조가 다르기는 해도 외양이 이렇게까지 닮는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우리 일족의 뿌리는 이곳에서 기원되었다.]

[그, 그게 무슨?]

[모든 행성들 간에는 게이트가 존재하지. 우리 일족은 그 게이트를 타고서 우리들의 행성 마계(魔界)에 정착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마왕 타우라는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일족에 있어서 4세대였지만 그가 알기로 라릿샤는 마지막 1세대가 낳은 2세대 존재였다.

일족에 있어서 세대를 잇는 도표나 다름없었다.

[이곳의 몇 배나 되는 중력. 희박한 공기, 수많은 위험 개체들이 넘쳐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 일족은 진화를 거듭했다.]

생물은 환경에 맞게 어떤 식으로든 진화한다.

그들은 척박한 마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육체적으로 진화했다.

[우리가 진화를 했다고? 저 하등한 인간에게 비롯되어서 말입니까?]

[하등하다라.....그들은 그저 이곳에 맞춰서 최적의 상태로 진화된 것뿐이다.]

그런 천마 조사의 말에 타우라가 어처구니가 없어하더니, 비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당신은 이 환경에 맞춰서 진화를 했다는 겁니까?]

그 말에 천마 조사는 부정하지 않았다.

이에 타우라가 언성을 높였다.

[헛소리 집어치우십시오! 그딴 게 진화라고 말씀하는 겁니까? 당신이 한 것은 퇴화입니다. 고작 오십 년도 살지 못하는 하등한 인간이 된 것이 진화? 하!]

타우라는 이상하게 분노심이 끓어올랐다.

야심과 실망, 증오로 끌어내렸지만 눈앞의 존재는 자신이 평생 존경을 마지않았던 일족의 왕이었다.

그런 왕이 하찮은 인간이 되었다?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실망과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혔다.

[하찮은 인간에게 빠진 것도 모자라서 이제 일족이란 사실마저 포기하다니, 당신 같은 구제불능은 죽어마땅합니다!]

-콰득! 콰득! 콰득!

타우라가 전신에 박힌 예기를 무시한 채 억지로 움직였다.

팔 다리가 뜯겨져 나가는데도 엄청난 의지를 보였다.

천마 조사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왕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않을 것이냐?]

[그딴 소리를 당신에게서 듣고 싶지 않습니다!]

-차차차차차착!

타우라의 몸을 감싸고 있던 아리샤의 갑주들이 무구의 형태로 바뀌었다.

검과 도, 채찍, 륜, 지팡이의 형태가 된 무구들이 마왕의 마력을 내뿜으며 동시에 천마 조사를 향해 쇄도했다.

[죽엇!]

-파파파파파팟!

[어리석은 짓.]

천마 조사가 검결지를 움켜쥐고서 앞으로 내질렀다.

마왕의 마력을 담은 신물들이라 할지라도 마왕조차 상대가 되지 않는데, 무구들만 공격한다고 상대가 될 리가 만무했다.

‘역량의 일원화.’

천마 조사의 검결지에서 뻗어 나온 검은 광선이 쇄도해오는 무구들에 부딪쳤다.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푸른 섬광이 일어나며, 무구들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그 중 우연치 않게 정면으로 튕겨나간 무구를 천마 조사가 잡아냈다.

-팍!

그것은 바로 검이었다.

마왕의 마력을 머금고 있던 검이 파르르 떨면서 천마 조사의 손에 벗어나고 싶어 했다.

-웅우웅웅!

[벌써 나를 잊은 게냐.]

마왕의 권능과 마력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검이었다.

천마 조사가 천마기를 일으키며 검이 담고 있던 마력을 강제로 억눌렀다.

그리고는 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너는 내가 데리고 가야겠구나. 훗날 녀석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군.]

[그것은 본 왕의 것이다!]

아리샤의 무구들 중에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검을 빼앗긴 마왕 타우라가 분노로 일갈을 내질렀다.

이에 천마 조사가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그만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

[뭐?]

위를 쳐다보자 그곳에 게이트가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가지고 온 게이트를 여는 장치가 보이지 않았다.

[라릿샤!]

-콰득! 콰득! 콰득!

마왕 타우라가 예기에 의해 전신이 잘리는데도 이것을 참아가며, 양손을 교차시키며 올려 마왕체로 변하려고 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천마 조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끝까지 어리석구나.]

그 말과 함께 천마 조사가 검결지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박혀 있던 예기가 멋대로 폭주하며 마왕 타우라의 전신이 찢겨나갔다.

-촤촤촤촤촤촤촤!

[끄아아아아악!]

핵이 있는 가슴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전부 잃은 마왕 타우라.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타우라.]

그런 그를 천마 조사가 진기로 강제로 게이트로 밀어 넣었다.

절규하듯이 소리를 질러대도 소용없었다.

[라릿샤아아아아아아!]

게이트를 통과하여 마왕성의 옥좌로 복귀한 마왕 타우라.

그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라릿샤아아아아아!]

한낱 인간으로 퇴화한 존재에게 처참하게 패배한 심경은 자존감을 무너뜨렸다.

-끼이이이이익!

문이 열리며 전신이 찢겨나간 그의 앞으로 세 측근들이 나타났다.

갑자기 모습을 감춘 그를 찾던 세 공작들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 마왕 타우라를 향해 탐욕스러운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

순간 마왕 타우라의 머릿속에 자신이 라릿샤를 배신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 배신의 업보가 고스란히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당신도 이런 기분이었습니까?’

문득 타우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구체화되었던 기억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것이 타우라의 머릿속에 강하게 박혀있던 마지막 기억이었다.

-팟!

천여운이 감았던 두 눈을 떴다.

전신을 충만하게 감싸고 있는 새로운 기운.

마왕 타우라의 핵이 가지고 있던 모든 마력을 흡수하면서 천마기가 몇 배는 강해졌다.

오령의 영력이나 요기를 흡수했을 때보다도 상성이 좋았다.

‘조사님이.....라릿샤였다니.’

진실을 알게 되자 기분이 묘해졌다.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럼 내게도 마족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인가.’

어찌 본다면 분명 그랬다.

피가 옅어 졌을지는 몰라도 천마 조사의 직계라 할 수 있는 천가의 사람들은 전부 그 피를 이어받은 셈이었다.

‘......이게 중요한가.’

사실 이것을 알았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천마 조사는 천마 조사였다.

그는 여전히 천마신교의 전설이자 그 시초였다.

그리고 천여운 본인도 여전히 인간이었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니 하나 있기는 했다.

‘조사님. 당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제가 다시 이어받았군요.’

-파아아아아앙!

천여운이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가 내리자, 강렬한 풍압과 함께 엄청난 기운이 폭사되며 그의 모습이 검은 불꽃의 화신처럼 바뀌었다.

-라....라릿샤!

핵이 빠져나오면서 죽어가던 마왕 타우라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최후의 순간에 라릿샤의 모습을 보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 어떻게....어떻게.....

그런 마왕 타우라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천여운이 속으로 피식 웃더니,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했지?

‘!!!’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왕 타우라의 두 눈이 터질 듯이 커지더니, 이내 몸에 균열이 일어나며 재가 되어 흩어져버렸다.

마지막까지도 라릿샤로 인해 고통 받은 마왕 타우라였다.

그때 지상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이는 천마신교의 교인들과 천여운 휘하의 마족들이 외치는 함성 소리였다.

지상으로 내려온 칼리아프 대공이 상공에 있는 천여운을 가리키며 마왕 휘하의 군단장들과 마족들에게 소리쳤다.

“새로운 마왕 폐하이시다! 예를 갖춰라.”

“크윽.....”

-쿵! 쿵! 쿵!

그런 그의 외침에 머뭇거리던 마족들이 전부 무릎을 꿇었다.

눈앞에서 현 마왕이 재가 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선택권이 없었다.

*  *  *

같은 시각.

용천 그룹의 부지에서 40km 가량 떨어진 한 고산의 산봉우리.

그곳에 한 거대한 광학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것을 누군가가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뒤에 있던 은색 가면을 쓴 존재가 물었다.

“초 노사. 아직도 입니까?”

초 노사라 불린 뒷모습만 보이는 존재가 신음성을 내뱉었다.

“흐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난감하군.”

“네?”

초 노사라 불린 존재가 고개를 돌리며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노부보다 강할 것 같군.”

< 70화 기억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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