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214화 (214/234)

< 70화 기억 (1) >

눈앞에서 벌어진 말도 안 되는 광경.

그것을 본 모든 마족들이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마왕은 그들에게 신적인 존재다.

그리고 마왕은 일족에 있어서 최고이자 최강의 전사이다.

그런 마왕이 같은 일족이나 탈리샤의 일족도 아닌 한낱 벌레로 여겼던 인간에게 패하는 광경.

그것은 모든 마족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폐하!”

마왕의 심장부인 가슴을 관통한 천여운의 손.

저것이 뽑히는 순간 마왕이란 존재는 한줌의 재가 될 것이다.

“.....주인님의 힘이 이 정도였다니!”

마왕이 등장하고 나서 망연자실함으로 넋놓고 있던 샤케나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천여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런 마족들과 달리 천마신교의 교인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난리가 났다.

“와아아아아아아!!!”

“마신! 마신! 마신!”

모두가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고 여겼다.

일대를 뒤흔들던 허리케인과 천둥번개, 그리고 지진.

그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이런 절망을 뒤집어 놓은 천여운은 천마신교에 있어서 영웅이자 전설이었다.

“히히히, 봤지? 봤지? 내가 주군이 이길 거라고 했잖아.”

허봉이 신이 나서 호들갑을 떨었다.

“크흠, 내가 아니라고 한 적이 있더냐.”

“불안해 해놓고는. 히히히.”

“후우.”

이에 백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도저히 따라잡지 못하겠군.’

주군으로 모셨지만 무(武)를 익히는 자로서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멀어져버렸다.

솔직한 심경으로 넘을 수 없는 벽 그 자체였다.

-댕그랑! 댕그랑!

마족들의 상당수가 전의를 상실했는지 가진 무기를 떨궜다.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존재들 간에 승패가 갈렸으니, 당연히 양측의 싸움은 자연스럽게 중지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뭣들 하는 거냐!”

“당장 무기를 들어라!”

군단장들이 다그쳤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수로요?”

“그, 그건....”

군단장들의 말문이 막혔다.

지상에 있는 양측의 전력을 전부 합쳐도 천여운은 커녕 마왕조차 어찌할 수 없는데, 무슨 수로 전쟁을 이어나가겠는가.

아무리 호전적인 마족들이더라도 상황 판단 능력마저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끄으으....

핵을 붙잡힌 마왕이 고통의 신음을 내뱉었다.

그의 심경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본 왕이.....본 왕이 또 다시 패배를 하다니.....’

이번에는 절대 방심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새로운 깨달음마저 얻었기에 어떠한 존재도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 확신은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아직 아무 것도 하지 못했건만.’

그가 이 지구로 오게 된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라릿샤를 향한 복수심 때문이었다.

그조차 이루지 못한 채 이런 식의 죽음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대로....이대로!

마왕의 두 마안에서 강렬한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회광반조(回光返照)하는 촛불처럼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불태우려고 하는 것인지, 그의 전신에서 마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마왕이 분노의 일갈을 내질렀다.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

-푸욱!

-컥!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여운이 몸속에서 손을 빼냈다.

-쿵쿵!

천여운의 손에는 미친 듯이 뛰고 있는 마왕 타우라의 핵이 들려있었다.

마왕이 두 눈이 커져서 그것을 쳐다보았다.

천여운이 그런 마왕의 핵을 장난감 다루듯이 툭툭 위로 던져대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어. 끝이야.”

-이....이.....노오오오옴.....

왕으로서의 품격은 더 이상 없었다.

천여운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마왕의 눈동자 초점이 점차 흐려져 갔다.

핵이 몸에서 빠져나간 이상 육신을 지탱할 수 있는 마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맙게 받아가마.”

천여운의 오른손목 흑철 보호대에서 푸른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기운이 손에 들고 있는 마왕의 핵을 감싸 안았다.

‘마왕의 힘을 흡수하려는 건가.’

그 광경을 칼리아프 대공이 숨을 죽이고 쳐다보았다.

사실 이 전투를 보면서 천여운의 무한한 힘에 경이로워하고 있던 그였다.

그리고 승부가 끝나면서 한 가지 진지한 의문이 들었다.

‘마왕조차 능가하는 힘을 지닌 주인이 마왕의 권능과 그 힘을 전부 얻게 되면 과연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하더라도 오싹해지는 순간이었다.

-파아아아아아아!

바로 그때였다.

마왕의 핵에서 검은 기운이 폭사되어 흘러나왔다.

핵에 잠들어 있던 역대 마왕들의 마력이 유형화된 것이었다.

-고오오오오오오!

유형화된 마력은 반항이라도 하는 것처럼 사납게 바뀌어 천여운을 위협했다.

마치 마족이 아닌 존재인 천여운에게 절대 굴복할 수 없다는 것처럼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까부는군.”

천여운이 이를 굴복시키려는지 천마기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흉폭한 기운이 발산되며 마왕의 핵에서 뿜어져 나오는 역대 마왕들에게 전승되던 마력을 억누르기 시작했다.

“반항해도 소용없다. 네놈들이 마왕이라면 나는 마신이다.”

천마기가 흉폭한 마수처럼 마력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어떠한 기운마저도 먹어치우는 천마기의 앞에서는 마력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사납게 굴던 마력들의 기세가 약해졌다.

-슈우우우우우!

한 번 빨아들이기 시작한 마력들이 우후죽순 밀려들어왔다.

그 마력에는 마왕의 권능마저 담겨 있었다.

-두근!

마력이 체내로 들어오자 천여운이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천여운이 바라보고 있던 시야가 검게 물들어갔다.

-우우우웅!

여타의 핵을 흡수했을 때는 머릿속에 정보를 전이 받는 정도에 그쳤는데, 갑자기 수많은 영상이 필름처럼 흘러나오며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그것은 마왕 타우라의 기억인 듯 했다.

여타의 마족들과 다르게 그 존재 차체가 차원이 달랐기에 강한 정신이 핵의 마력에 깃든 모양이었다.

마왕 타우라의 수천 년의 기억들.

그것들의 대다수는 오직 전투로만 점철되어 있었다.

그러다 그가 강하게 각인하고 있던 기억들이 구체화 되었다.

-슈우우우우!

빠르게 필름처럼 흘러나오던 기억의 중추 속에서 연기처럼 이때의 상황이 뚜렷하게 구현되어 갔다.

이때 마왕 타우라의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것은 증오와 더불어 강한 실망감이 표출되고 있었다.

[안됩니다! 지금 라릿샤께서 회복 중이십니다.]

성큼성큼 걸어서 알현실로 들어가려 하는 그를 마족들이 제지했다.

그런 마족들을 타우라가 단숨에 죽여 버리고는 알현실의 문을 강제로 열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검은 마력의 구 속에서 만신창이가 되어서 몸을 회복하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저게 라릿샤?’

다른 마족들과 마찬가지로 이국적인 외모를 지녔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모습이 낯설지가 않았다.

뭔가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다.

[타우라?]

두 눈을 감고 있던 그 존재가 눈을 뜨고서 바라보았다.

온전히 마왕 타우라의 기억이었기 때문에 그 눈빛이 자신을 향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혜안을 지니고 있었다.

[라릿샤.]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랬지요. 한데 이때가 아니면 기회가 없으니까요.]

이때 마왕 타우라의 감정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눈앞에 검은 구 속에 있는 존재는 굉장히 약해져 있는데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탁!

마왕 타우라가 어떤 기기 장치를 내려놓았다.

그것은 게이트를 작동시키는 장치였다.

타우라가 그것의 버튼 같은 것은 만지자 얼마 후에 알현실의 천장으로 커다란 블랙홀 같은 것이 생겨났다.

[지금 무얼 하는 게지?]

[마지막으로 라릿샤의 의중으로 바꿔보려고 합니다.]

[무엇을 말이느냐?]

[지금 당장 제게 명을 내려주십시오. 이 게이트를 타고 들어가 먼저 지구 상에 있는 벌레들을 전부 처리하라고 말입니다.]

타우라의 그 말에 검은 구속에 있던 라릿샤란 존재의 인상이 무섭게 굳어졌다.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타우라가 말했다.

[제가 알고 있는 라릿샤는 이런 분이 아닙니다. 오직 일족을 위하셔야 하는 게 아닙니까? 고작 인간 계집 하나 때문에 벌레들에게 자비를 베푸신 다뇨.]

‘인간 계집?’

천여운이 그 말에 흥미로워했다.

어째서 라릿샤가 인간들과의 공조를 제안했는지, 그 진짜 원인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타우라의 말에 라릿샤가 경고했다.

[타우라. 더 이상의 무례는 용서하지 않는다.]

그 말에 타우라가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댔다.

[크하하하하하하핫!]

그러더니 라릿샤를 향해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탈리샤의 검에 핵을 찔리셨다는 정보가 정확한가 보군요.]

[........]

그 말에 라릿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타우라가 천천히 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지금 당장 지구로 가서 당신을 약하게 만든 모든 것을 제거하고 원상태로 돌려놓겠습니다. 제 충정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타우라!]

[가장 먼저 그 계집을 죽여서 수급을 보내겠습니다.]

-와장창!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회복 장치나 다름없는 검은 구를 뚫고서, 라릿샤가 타우라를 향해 날아왔다.

당장에라도 그를 찢어발길 듯한 기세였다.

그러나,

[고작......이게 답니까? 정말 약해지셨군요.]

심각한 부상을 입은 라릿샤는 그를 죽일 힘이 없었다.

상극이라 불리는 탈리샤의 검에 핵이 관통 당했다는 정보는 정확했다.

타우라가 라릿샤의 머리와 가슴을 붙잡았다.

[제게 무슨 능력이 있으신지 아시지요?]

[타우라.......]

[약해진 당신이 우리 일족을 이끄는 일은 더 이상 불가능할 듯 하군요. 그리고 그 나약해진 심성도 말이죠.]

[비뚤어졌구나. 타우라.]

그를 바라보는 라릿샤의 눈빛은 분노나 증오가 아니었다.

마치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그런 식으로 쳐다보지 마십쇼!]

-고오오오오!

타우라가 자신의 흡수 능력을 일으켰다.

약해졌다고는 하나 이를 반항할 수 있을 터인데, 라릿샤는 굳은 인상으로 그가 마력을 흡수하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뒀다.

한참에 걸려서 마력을 거의 다 흡수해가는 타우라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비아냥거렸다.

[실망스럽군요. 최고의 전사란 분이 반항조차 하지 않다니.]

온갖 전의를 다지고 두려움을 극복하려 했던 그였다.

이렇게 쉽게 일이 풀리자 한편으로는 허무했다.

그런 그에게 라릿샤가 말했다.

[본 왕 하나로 끝내 거라.]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네가 일족을 이끄는 것을 허락할 터이니, 지구에는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말라.]

-으득!

모든 힘을 빼앗기는 와중에도 지구를 염려하는 라릿샤의 태도.

그 모습에 타우라는 실망스럽다 못해서 라릿샤가 너무나도 증오스러웠다.

그렇게나 존경해왔던 최고의 전사.

그가 일족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마음을 빼앗겨 저렇게 희생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콱!

타우라가 라릿샤의 몸을 번쩍 들어올렸다.

[무슨 짓을 하려는 게냐?]

[끝까지 당신은 저희 일족을 등한시하는군요.]

[그게 아니다. 타우라......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됐습니다. 당신이란 존재가 일족을 어찌 생각하는지 잘 알았습니다. 그렇게 지구가 좋다면 평생 지구에서 썩으십시오.]

[타우라!]

[그 상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죠.]

큰 부상을 입은 것도 모자라 모든 마력을 빼앗았다.

이 상태에서 지구로 떨어진다면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우라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라릿샤의 몸을 게이트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비뚤어졌군.’

타우라의 기억을 본 천여운의 평이다.

라릿샤의 말대로 그는 제대로 비뚤어져 있었다.

-스멀스멀!

그리고 다시 타우라의 기억이 빠르게 흘러들어왔다.

다른 기억들은 그에게 크게 각인되지 않았는지 단순한 정보로만 보였다.

그때 또다시 어느 순간에 기억이 구체화되었다.

열려 있는 게이트 앞에 선 마왕 타우라가 혼자서 뭔가를 대뇌였다.

[본 왕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겠어. 놈이 죽었는지 아닌지.]

강한 집착.

그리고 의구심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죽어가는 라릿샤를 게이트 너머로 던져버린 그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혹시나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을 받고 있었다.

‘폐하께서 율법을 어기고 마왕을 해하였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추적 중이던 조쉬프 공작이 사라졌습니다.’

많은 요소들이 그에게 중압감을 주고 있었다.

율법을 어기고 일족의 영웅을 죽였다는 오명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압박감.

그것이 마왕 타우라로 하여금 게이트를 다시 열게 만들었다.

-슈우우우우!

게이트를 열고서 지구로 넘어온 마왕 타우라는 자신의 권능을 사용해 지구상에 마력을 가진 존재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일말의 마력만 가지고 있다면 그 위치를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높은 곳에서 마력의 파장을 발산하면 알 수 있겠지.’

마왕은 상공 높은 곳으로 올라가 레이더처럼 마력을 발산했다.

무한에 가까운 마왕의 마력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런데 마력을 발산한지 고작 반나절 채도 되지 않았을 때, 상공으로 전혀 예상지 못한 존재가 나타났다.

[인간?]

검은 장포를 휘날리는 강인한 인상의 사내.

기억 속에서 보이는 그 사내의 모습에 천여운이 놀라워했다.

‘조사님!’

그는 천마 조사였다.

설마 마왕 타우라가 자신의 1대조 조상과 조우했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놀라워하고 있는데, 천마 조사가 마왕 타우라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이곳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 말에 마왕 타우라가 놀라서 대처하려고 했는데,

천마 조사가 그를 향해 검결지를 뻗었다.

-콰드드드득!

그 순간 일대의 공간이 뒤틀리며 천마 조사의 신형이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검은 점 하나가 마왕 타우라의 몸을 관통했다.

-푸슝!

그것은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끄아아아아악!]

마왕 타우라의 가슴에 구멍이 뚫리며 그의 신형이 수백 미터가 넘게 날아갔다.

< 70화 기억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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