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마왕 현신 (2) >
-웅성웅성!
용천 그룹의 부지가 혼란스러워졌다.
부지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거대한 포격과 사격 소리에 놀란 모든 교인들이 건물 밖으로 뛰어나왔다.
수천 명에 이르는 마족들이 허공에 떠있는 모습에 교인들은 본능적으로 위기가 닥쳤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최, 최악이야.’
‘어떻게 이런 일이...’
허공을 날 수 있는 것만 보아도 지금까지 그들이 겪었던 어떤 적들, 혹은 게이트 위험 개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능공허도를 펼치고 있는 절세고수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이렇게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그들을 일깨운 것은 교주 천우진이었다.
-챙!
천우진이 보검을 뽑고서 소리쳤다.
“대 천마신교의 교인들이여. 모두 정신 차려라! 본교의 보금자리 위로 게이트가 열렸다. 이대로 방관하면서 지켜볼 작정이더냐!”
교주가 나서자 대장로 왕신이나 단초진 등의 중진들과 각 종파의 종주들도 교인들을 통솔하며 진열을 가다듬었다.
“적습에 대비하라!”
“전투 준비!”
“충!!!”
그들이 외치는 소리에 지상이 소란스러워졌다.
용천 그룹의 부지 내에 있는 천마신교의 전력 역시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에 합류한 북해빙궁과 빙종의 전력까지 합치면 무공을 쓸 수 있는 인원만 해도 사천여 명에 가까웠다.
-타타타타타타탕!
총알 세례가 빗발치는 허공.
마왕 타우라가 지상에 전열을 가다듬으며 빠른 속도로 운집하는 천마신교의 교인들을 보더니, 주위에 있는 각 군단장들에게 명했다.
“전부 쓸어버려라.”
“Yes, Your Majesty!!!”
제대로 된 전장의 느낌이 나자 군단장들도 사기가 올랐는지 흥분된 얼굴로 외쳤다.
마왕에 의해서 강제로 끌려왔다고는 하나 원래부터 호전적인 이들이다.
전투 앞에서는 그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각 군단은 지상에 있는 벌레들을 전부 섬멸시킨다. 진격!”
“와아아아아아아아!!!”
-팟! 팟! 팟!
하위 마족들로 구성된 군단병들이 소리를 지르며 지상으로 몸을 날렸다.
수천 명에 이르는 이들이 빠르게 내려오는 모습에 천마신교의 모든 교인들이 긴장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기공 부대 준비!”
-우웅!
종주들의 외침에 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고수들이 검기와 도기를 발현했다.
지상 전력에서 절반에 가까운 이들의 병장기에 흰빛의 기(氣)와 푸른 빛의 강기가 일렁이는 모습은 진풍경이었다.
“격발!”
“격발하랏!”
-촤촤촤촤촤촤촤촤촥!
기와 강기로 이루어진 공격들이 위로 솟구쳤다.
“크하핫, 벌레들 주제에 제법 격하게 반항하는구만.”
“대응해줘라!”
“마력탄을 날려랏!”
그 모습에 마족들 또한 마력을 끌어올려 지상을 향해 마력탄을 날렸다.
시작은 원거리 공격에 의한 대결이 되었다.
-콰콰콰콰콰쾅!
기와 마력이 부딪치며 허공에서 수많은 불꽃과 섬광이 터져 나왔다.
상공와 지상 사이가 격렬해졌다.
무서울 정도로 굉음 소리를 내며 부딪치는 기와 마력의 대결은 그저 전초에 불과했다.
-파파파파팍!
불꽃과 섬광을 꿰뚫고서 마족들이 지상에 도달했다.
양측이 수천 명에 이르는 천마신교의 교인들과 마왕이 이끄는 마족들이 부딪쳤다.
접전이 된 순간부터 이것은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채채채챙!
‘이놈들은 대체?’
‘강하다.’
마족들과 부딪친 천마신교의 교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이 가진 전투력은 상식을 넘어섰다.
남작 급이나 자작 급에 불과한 하위 마족들이라고 해도 그들이 지닌 힘은 무림인으로 치면 적어도 절정에서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수준이었다.
“크헉!”
“컥!”
섣불리 부딪쳤던 일류 무위 이하의 교인들이 순식간에 봉변을 당했다.
방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투 경험, 힘, 피지컬, 능력 모든 면에서 마족들이 압도적으로 우위였다.
물론 모두가 그들에게 밀리는 것은 아니었다.
-쩌저저저적!
격렬한 전장 속에서 대장로 단초진이 장법을 펼칠 때마다 마족들이 얼어붙었다.
그런 이점을 살려 북해빙종의 종파인들이 얼어버린 마족들을 깨부쉈다.
-콰직! 콰직!
철퇴를 휘두르는 것마냥 두 자루의 무쌍검을 휘두르는 왕신이나 일곱 자루의 이기어검을 다루며 파죽지세로 마족들을 죽여나가는 대호법 마라윤 등.
천마신교 내에서도 명성을 떨치는 고수들이나 종주급 고수들은 마족들을 상대로도 용맹을 떨쳤다.
하지만 덕분에 고위급 마족들에게 노출되어버렸다.
“괜찮은 놈들도 있구나. 하핫.”
“이 인간은 내가 상대하겠다.”
상위 서열의 백작 급 마족들이 참전해 종주들을 향해 달려들면서 접전이 되었다.
양측이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지만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
‘상황이 좋지 않다.’
이들을 지휘하는 교주 천유장의 눈에는 전체적인 상황이 보였다.
아직까지 마족들은 모두가 전투에 참여한게 아니었다.
후작 급 이상의 군단장들은 팔짱을 끼고서 지켜보는 상황이었고 이를 악물고 싸우는 천마신교과 달리 마족들은 여유롭게 전투를 즐겼다.
마치 사냥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선조님 휘하의 선배님들도 도와주셔야 할 것 같은데.’
백기나 문란영, 허봉을 말했다.
그들이 참전하지 않고는 이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천유장은 곧 그들이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우우우웅! 파앗!
본사 건물 쪽에서 들리는 엄청난 굉음.
그와 동시에 황금빛 광선이 뿜어져 나오며 부지의 바닥을 갈랐다.
-콰콰콰콰쾅!
“헉!”
“피, 피해라!”
광선의 파괴력에 마족들이고 교인들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피했다.
이를 피한 이들의 눈에 엄청난 전투가 눈에 들어왔다.
“여우?”
본사 건물의 근방에서 거대한 여우와 화려한 갑주를 입은 마족 한 명이 말도 안 되는 위력의 공격을 날려대며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전투는 완전히 격이 달랐다.
‘젠장.’
금모 구미호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요력을 모아서 광선을 내뱉었는데, 저 괴물 같은 놈이 그것을 가볍게 튕겨내 버렸다.
덕분에 그 여파가 교인들에게까지 미쳤다.
“크하하하핫! 좋구나. 좋아. 버러지 같은 인간 놈들만 상대할 줄 알았더니, 이런 재미를 볼 줄이야.”
반면 에버단 대공은 사기가 제대로 올랐다.
인간을 상대로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그는 금모 구미호와 겨루면서 기분이 한껏 올라서 전투를 즐기고 있었다.
“본 대공을 더 즐겁게 해주어라.”
그런 에버단 대공의 태도에 그녀가 전략을 바꾸었다.
‘더 상공으로 날아가자.’
이곳에서 싸웠다가는 오히려 교인들에게 피해를 미칠 것 같았다.
그를 유인해야겠다고 여긴 금모 구미호가 위로 날아오르려고 했다.
그러나,
-스륵!
“속이 훤히 보이는구나. 짐승아.”
어느새 에버단 대공이 날아오르려는 그녀의 위에서 나타나, 두 손을 깍지 끼고서 머리를 내리쳤다.
-콰앙!
-께게게게겡!
머리를 울리는 고통에 그녀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와중에도 절대로 떨어지면 안 된다고 여겼는지 금모 구미호가 몸을 비틀어서 꼬리를 회전하며 충격을 약화시켰다.
-끄으으.
덕분에 본사 건물에 부딪칠 뻔한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필사적으로 주위에 피해가 가지 않게 하려는 그녀의 모습에 에버단 대공이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게 신경 쓰여서 제대로 겨루지 못하는가 보군. 그렇다면 내가 그 고민을 덜어주마.”
-슥!
에버단 대공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사방에서 흰빛의 마력구들이 건물 주변을 가득 메웠다.
-우우웅!
‘아차!’
금모 구미호가 당혹스러워했다.
그녀가 자신의 아홉 개의 꼬리 중 네 개를 움직여 재빨리 본사 건물을 휘감으려고 했다.
에버단 대공이 이를 비웃었다.
“늦었다. 짐승.”
에버단 대공이 주먹을 쥐는 시늉을 하자 마력구들이 일제히 본사 건물로 쇄도했다.
-안돼에에에에에!
바로 그때였다.
본사 건물로 날아가던 마력구들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위로 날아가 버렸다.
-파파파파파파팟!
“음?”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벌어진 일에 에버단 대공이 의아해했다.
그 순간 에버단 대공의 몸 역시도 갑자기 균형을 잃고서 위로 솟구쳤다.
-휘이이익!
“엇?”
그 모습에 금모 구미호가 영문을 몰라했다.
그런 그녀의 귓가로 누군가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이에요!”
그것은 중력 마녀 유소화의 외침이었다.
그녀가 비기 그라비티 필드(Gravity Field)를 펼치면서 이 주변 안의 중력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덕분에 에버단 대공이 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화르르르르륵!
사방에서 화염의 구들이 수백 개나 나타났다.
‘이건?’
금모 구미호가 본사 건물의 옥상을 쳐다보았다.
옥상 위에 허봉과 문란영이 두 손을 들고서 화기(火氣)로 만들어낸 화염의 구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봉봉!”
“알았어요!”
두 사람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에버단 대공을 향해 화기를 집중했다.
그러자 화염의 구들이 일제히 에버단 대공을 향해 쇄도했다.
-슈슈슈슈슈슈슈!
“이것들이!”
중력장에 휩쓸리고 있는 에버단 대공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염의 구들을 보면서, 마력을 발산해서 이를 튕겨내려고 했다.
그러나 예상지 못한 또 다른 지원이 있었다.
-휘이이이이잉!
“아닛?”
에버단 대공의 주변으로 갑자기 엄청난 바람이 몰아쳤다.
바람은 주변의 산소를 대량으로 집중시켰다.
“빨리 해요!”
이것을 일으킨 자는 천여운의 세 번째 비서인 임소혜였다.
중력이 제멋대로인 그라비티 필드 내에서 바람을 조절하는 것이 힘들었는지 그녀가 허봉과 문란영을 보챘다.
물론 그러지 않아도 화염의 구들은 에버단 대공에게 닿았다.
“이, 이런!”
-콰콰콰콰콰콰콰쾅!
화염의 구들이 닿는 순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중력장으로 대공을 본사의 훨씬 위 상공까지 치솟게 만들지 않았다면 그 폭발의 여파로 건물이 통째로 날아가 버릴 정도였다.
-파파파파팡!
“하압!”
옥상에서 미리 준비 중이던 백기가 무형각으로 날아오는 폭발의 여파를 막아냈다.
네 사람이 공격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들의 모습에 금모 구미호가 입 꼬리가 씨익하고 올라갔다.
-제법이잖아.
도망치라고 하는데, 아직까지 건물 안에서 버티고 있어서 걱정했던 그녀였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연계된 공격을 보여줄 줄은 몰랐다.
-그럼 확실하게 해야지.
금모 구미호가 입을 쩌억 벌리고서 요력을 집중했다.
-고오오오오!
그리고는 폭발이 연달아 일어나는 곳을 향해 황금빛 광선을 쏘았다.
-푸슝!
아까 전에는 튕겨냈지만 저렇게 중력장과 엄청난 폭발 속에 갇혀 있다면 절대로 피할 수 없으리라.
-콰아아아아앙!
광선이 정확하게 폭발이 일어나는 한 가운데를 직격했다.
폭발을 꿰뚫은 광선에 허봉이 쾌재를 불렀다.
“예에! 됐어!”
중원에서 최강이라 불리는 자들이 합공을 펼친 연계기였다.
금모 구미호에 생사경의 고수, SS급 이능력자 두 명이 전력을 다해서 공격했는데, 어떤 누가 이를 막을 수 있겠는가.
-털썩!
엄청난 마력을 발산하는 대공을 붙잡아 두기 위해 뇌의 과부하마저 감수해가며 전력을 다한 유소화와 임소혜가 지쳤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완전....괴물이에요.”
“더는 못할 것 같아요.”
이마에 곤두선 핏줄과 흐르는 코피만 봐도 무리한 것을 알 수 있었다.
S급 알파 위험 개체마저도 가볍게 능가하는 대공 급의 존재를 묶어둔 것만으로도 그들은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금모 구미호가 그들을 칭찬했다.
-잘했다. 그래도 제일 성가신 놈들 중 하나를 처치한 거니....이런!
말을 하던 도중 금모 구미호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고오오오오오!
대기마저 흔들리는 엄청난 마력.
그녀를 따라서 위를 쳐다보는 허봉과 문란영, 백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이 바라보는 하늘이 은빛으로 물들었다.
“이, 이게...”
“모두 피해에에에엣!”
누구 할 것 없이 동시에 소리쳤다.
그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은빛 섬광이 본사 건물을 향해 직격으로 내리쳤다.
음빛 섬광은 본사를 비롯한 일대를 전부 부숴버릴 기세였다.
-휘리리리리리릭!
그때 아홉 개의 거대한 꼬리가 본사 건물과 옥상을 통째로 감쌌다.
그 상태에서 금모 구미호가 은빛 섬광을 향해 입을 벌려서 모든 요력을 한 점으로 모아 황금빛 광선을 쏘았다.
-우우우우웅! 푸슝!
내려치는 은빛 섬광과 광선이 부딪쳤다.
그러나 완전히 규모 면에서 다른 두 힘의 간극은 컸다.
황금빛 광선은 고작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은빛 성광에 그대로 먹혀버리고 말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은빛 섬광이 그대로 금모 구미호와 본사 건물을 뒤덮었다.
사방에 돌풍이 일어나며 본사 주변 건물들이 박살이 나며 파편들이 여기저기 튀어나갔다.
-파파파파팍!
“끄악!”
“으억!”
근방 부지에서 격렬히 전투를 벌이던 교인들과 마족들마저 돌풍과 파편들로 인해 부상을 입고 튕겨나가고 말았다.
여기저기서 피해가 속출할 만큼 엄청난 위력이었다.
“이, 이건 대체 뭐야?”
본사를 뒤덮은 연기에 교주 천유장이 넋이 나갔다.
방금 전에 벌어진 그 은빛 섬광으로 인해 주변에서 싸우던 수백 명이 다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자신들마저도 피해를 입은 상황 속에서 마족들은 뭐가 좋은지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
“진각성이다!”
마족들이 바라보는 본사 위쪽의 상공.
그곳에선 전신이 은색으로 뒤덮이고 붉은 두 눈만이 보이는 괴인이 있었다.
그는 진각성한 에버단 대공이었다.
-빌어먹을 것들이 감히 본 대공이 진각성을 하게 만들다니.
환호성을 지르는 마족들과 달리 진각성을 펼친 것에 자존심이 제대로 상한 에버단 대공은 분노에 찬 눈으로 연기로 뒤덮인 밑을 쳐다보았다.
꼼짝도 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연계기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한 그는 진각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
대공의 입에서 기가 차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리석은 짐승이로고. 그 와중에 제 몸을 희생해 막은 것이더냐?
연기가 걷히고 있는 본사 건물.
그곳에는 털이 새까맣게 타들어간 금모 구미호가 보였다.
타들어가다 못해서 피부 전체가 전신 화상을 입은 것처럼 핏물과 고름이 흘러내리는 모습은 끔찍하기마저 했다.
-스르르르르!
건물을 감싸고 있던 타들어간 꼬리가 힘없이 밑으로 내려갔다.
본사 옥상 위에 있던 허봉과 문란영, 백기 등이 피부가 붉게 달아올라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유소화와 임소혜는 기절해서 쓰러져 있었다.
“구미호님! 괜찮아요?”
금모 구미호 덕분에 은빛 섬광에서 무사했던 허봉이 소리쳤다.
그러나 감싸고 있던 꼬리가 떨어지자 금모 구미호는 몸이 그대로 축 늘어져서 건물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쿠우웅!
“구미호니이이임!”
허봉 말고도 다른 두 사람도 다급히 건물 밑을 내려다보았다.
타들어간 얼굴의 반쪽만 드러난 금모 구미호.
멍하게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금모 구미호의 눈동자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도망쳐.]
금모 구미호는 죽어가고 있었다.
말조차 할 수 없기에 눈빛으로 자신의 의지를 전달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바보 같네.’
금모 구미호는 스스로 미련스럽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구하지도 못하고 다 같이 죽을 상황에 왜 이런 짓을 했을까 의문마저 들었다.
하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천마......’
그와 닮은 천여운이 실망하는 모습을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제 것이라면 끔찍이 여기는 녀석이 자신의 것을 잃었을 때 얼마나 상심할까?
‘내가 죽어도 슬퍼할까?’
금모 구미호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그냥 보고 싶어.’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어리석은 짐승.”
그런 금모 구미호와 옥상에 있는 천여운의 수하들을 내려다보고 있던 에버단 대공이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비를 베풀어주지. 다 같이 죽여주마.”
-고오오오오!
에버단 대공의 손끝에서 은빛 섬광이 일어났다.
은빛 섬광의 크기는 방금 전에 내리쳤던 그 일격보다도 훨씬 커졌다.
에버단 대공은 이 일대를 통째로 날릴 작정이었다.
“두 번의 기적은 없다. 짐승. 그리고 본 대공을 곤욕스럽게 만들었던 인간 놈들아.”
진각성으로 하고도 한 번에 죽이지 못한 수치스러움.
그것을 갚아줄 요량이었다.
은빛 섬광으로 뒤덮이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허봉과 백기, 문란영의 눈빛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막을 수 없는 힘에 대한 절망감.
그것보다는 주군인 천여운을 실망시키고 간다는 것에 대한 절망감이 컸다.
‘주군.’
‘천마이시여.’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런 그들에게로 거대한 은빛 섬광이 내리쳤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드드드드득!
은빛 섬광이 내려치려는 곳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며 이내 블랙홀처럼 인력장이 발생했다.
회오리치는 검은 공간.
그 속으로 내려치던 은빛 섬광이 그대로 흡수되듯이 빨려 들어가 버렸다.
“이럴 수가?”
“서, 섬광이 사라졌어.”
다시 한 번 내려치는 은빛 섬광의 피해에 대비하려고 하던 교인들과 마족들이 갑자기 벌어진 이상 현상에 놀라워했다.
당사자인 에버단 대공은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뭐지? 지금 이건?’
진각성을 한 자신의 힘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같은 대공 급이나 혹은 마왕이 아니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오오오오오오오!
-오싹!
그때 위에서 느껴지는 섬뜩할 정도의 살기에 대공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은빛 섬광을 일으킨다고 미처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게이트? 대체 언제?
상공에 어느새 거대한 게이트가 열려 있었다.
그리고 게이트의 아래로 검은 슈트를 입은 한 존재의 모습이 보였다.
“주구우우우운!!!”
이를 본 허봉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게이트 속에서 나타난 존재.
그는 바로 천여운이었다.
바닥에 죽은 듯이 누워서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는 금모 구미호의 금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늦었잖아.’
하늘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것만 같았다.
천여운의 등장에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천마신교의 교인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마신! 마신! 마신!”
진각성한 에버단 대공의 엄청난 힘에 기세가 억눌려 있던 인간들의 사기가 갑자기 치솟자 마족들이 당혹스러워했다.
‘이놈들 갑자기 사기가?’
-우웅! 우웅! 우웅!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열려 있는 게이트에서 수많은 인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얼핏 보아도 천오백 명 가량은 되어 보이는 그들은 마족들이었다.
-카, 칼리아프?
에버단 대공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천여운의 우측 옆으로 나타난 금관을 쓴 붉은 망토의 마족은 칼리아프 대공이었다.
‘저 자가 어떻게 여길?’
그리고 천여운의 좌측으로 녹색 안광에 검은 누더기 망토를 입은 엄청난 마력을 내뿜고 있는 마족이 나타났다.
그는 지하 수감소의 지배자 조쉬프 공작이었다.
마력 체계가 뒤집힌 세상에서 나온 그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녹색 머리카락에 훤칠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찌 할까요?”
“하명하시지요. 나의 주인이여.”
고개를 숙이는 두 고위 마족들의 태도.
그 모습을 본 마왕 휘하의 마족들이 영문을 알 수 없어했다.
‘저들이 어째서?’
천여운이 지상을 쳐다보며 살기어린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한 놈도 남김없이 전부 죽여라.”
이에 칼리아프 대공이 대기하고 있는 마족들을 향해 위엄있게 소리쳤다.
“들었나? 우리의 주인께서 명하셨다!”
“Yes, Your Majesty!!!”
-슈슈슈슈슈슈!
엄청난 함성과 함께 게이트에서 나타난 마족들이 일제히 지상을 향해 돌진했다.
< 68화 마왕 현신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