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마왕 현신 (1) >
-슈슈슈슈슉!
이천 명에 이르는 마족들이 누군가의 뒤를 따르고 있다.
선두에서 엄청난 마력을 풍기면서 위압적인 포스를 풍기고 있는 청은발의 존재.
그는 현 마왕 타우라였다.
진군을 하는 군대처럼 오열을 맞춰서 날아가고 있는 마족들의 눈빛은 전쟁터로 가는 장엄한 사기보다는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했다.
‘대체 왜 그러시는 거지?’
침묵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가 공통적인 의문을 가졌다.
이미 마왕성에서 고위 마족들 중에 이십여 명이 마왕의 손에 흡수당해서 죽었다.
다짜고짜 지구로 친정을 가겠다고 한 마왕.
그에 반한 자들은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라릿샤가 대체 누구지?’
자취를 감쳤다가 이천 여년 만에 나타난 마왕은 라릿샤라는 존재에 대한 엄청난 분노를 불태우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명칭인 듯 한데 그들은 알 수 없었다.
마왕의 뒤를 따르는 군단장 중 한 명인 알케미르 후작이 한 마족에게 물었다.
“징집 소집령에 대한 답변은?”
마족이 손에 들고 있는 단말기를 확인하며 답했다.
“북쪽 최전선에 있는 도르도 대공 전하께서는 탈리샤 일족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고 하여 정중히 거절 요청을 했습니다.”
“칼리아프 대공 측과 에버단 대공 측은?”
“에버단 대공은 게이트와 가깝기 때문에 진군을 시작했습니다. 다만 칼리아프 대공 측에서는 아직까지 아무 답변이 없습니다.”
“흥. 그럴 만도 하지.”
마왕이 자취를 감춘 후에 최측근들과 대립했던 칼리아프 대공이다.
징집 명령을 받아들일 리가 만무했다.
결국 전선에 참여하는 전력은 마왕성 측과 삼대공 중 하나인 에버단 대공 측뿐이었다.
‘뭐 이 정도로 충분하겠지.’
알케미르 후작은 그렇게 생각했다.
마왕이 왜 저렇게 분노를 불태우는 지는 알 수 없지만 고작 인간 따위를 상대로 이 정도 전력을 투입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행성 정벌인가.’
이 전력이라면 지구는 사흘 내로 정복할 자신이 있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탈리샤의 일족들.
그들과 휴전 불가침 조약을 맺기는 했으나, 자신들의 전력이 약해지는 기미가 보인다면 언제라도 쳐들어 올 것이다.
‘......두 대공이 남아있는 편이 나을지도.’
알케미르 후작은 차라리 잘 됐다고 여겼다.
적어도 최고 전력이라 불리는 북쪽 전선과 서쪽 전선이 남아있는 편이 안전했다.
안심하고 친정을 다녀와도 될 것 같았다.
“다 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은 게이트가 있는 서남쪽에 도달했다.
성내에는 이미 에버단 대공과 그가 이끄는 천 명의 마족 군단이 자리잡고 있었다.
“신 에버단이 마왕 폐하를 뵙나이다.”
에버단 대공이 오랜만에 만난 마왕의 모습에 감격하며 무릎을 꿇었다.
마왕은 전혀 감흥이 없는지 차갑게 손을 들어 올리고는 주위를 살폈다.
“책임자와 방백들은 어디 간 거지?”
그런데 원래라면 게이트를 이동 장치를 지키고 있어야 할 책임자와 방백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제가 왔을 때도 성내가 비어있었습니다.”
에버단 대공의 말에 마왕이 알케미르 후작을 쳐다보았다.
이에 그가 당혹스러워했다.
“그, 그게....”
알케미르 후작뿐만 아니라 다른 고위 마족들 역시도 영문을 몰랐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어젯밤 칼리아프 대공 측에서 베프만 공작을 게이트로 보내서 점령한 상태였다.
이를 에드휘 공작이 알아차렸지만 그는 마왕에게 죽었다.
“상관없다. 게이트를 열어라.”
마음이 다른 곳에 있는 마왕이 이를 개의치 않고서 명령했다.
“하아.”
긴장했던 알케미르 후작과 군단장들이 안도의 숨을 쉬었다.
비어 있는 대규모 이동 게이트 장치는 다행히도 마왕 휘하의 고위 마족들도 다룰 수 있었다.
알케미르 후작의 보좌인 디토 백작이 게이트 이동 장치를 조작했다.
“후작 각하. 지구의 어디로 좌표를 조정할지?”
그의 물음에 알케미르 후작이 마왕의 눈치를 보았다.
직접 물어보자니, 마왕이 무차별적으로 고위급 마족들을 죽인 모습이 떠올랐다.
괜히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 두려웠던 알케미르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아무데나 열어라. 어차피 지구로 친정을 나가는데 어딘들 상관있겠느냐.”
“알겠습니다.”
디토 백작이 게이트의 좌표를 살폈다.
마침 최근 게이트가 연결되었던 곳이 지구였다.
‘여기로 연결하면 되겠군.’
잘됐다고 생각한 디토 백작이 최근 열렸던 좌표로 게이트를 열었다.
* * *
같은 시각 용천 그룹 부지.
그곳에는 공교롭게도 현재 제남시 방위군이 출동해 있는 상태였다.
용천그룹 부지 내에서 열린 게이트로 인해서 방위군의 사령관이 군대를 소집해서 몰려와 있었고, 이를 용천 그룹 회장인 천유장과 중진들이 수습 중이었다.
“지금 본인더러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이오?”
제복을 입은 콧수염의 중년인이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는 제남시 방위군 총사령관 소장 조윤이었다.
원래라면 사령부에서 지휘를 하는 그였지만 유래 없이 방벽 내부에서 열린 게이트로 직접 군대를 이끌고 온 참이었다.
“진정하시죠. 조 소장님.”
회장인 천유장이 달래듯이 말했다.
그러자 총사령관 조윤이 전투의 흔적들로 가득한 용천 그룹 부지 주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를 높였다.
“이것은 어찌 설명할 것이오? 내 눈이 잘못되었다고 할 참이오?”
이 흔적들은 블레이드 식스와의 전투 흔적이었다.
“후우, 이건 게이트와 전혀 무관합니다. 이건 다른....”
“용유천 회장! 일개 사기업이 정부와 군을 상대로 기밀을 만들 작정이오?”
용유천은 천유장의 가명이었다.
천마신교의 명예와 이미지가 회복되어서 합병이 완료되는 데로 원래의 이름을 다시 쓸 계획이었지만 아직까지 대외적으로 그렇게 알려져 있다.
‘작정을 했군.’
천유장이 속으로 혀를 찼다.
최근 용천 그룹이 국방부와 정식으로 협약을 맺은 것 때문에 제남시 방위군에서는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게이트를 빌미로 꼬투리를 잡을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럴 때를 대비한 패가 있었다.
“정히 그렇다면 자세한 사항은 국방부의 안우홍 부장님과 대화를 해보시는 게 어떻겠소?”
“하!”
국방부의 최고 수장인 안우홍 부장이 있었다.
아무리 조윤 소장이 이곳 제남시 군부의 총사령관이라고 해도 안우홍 부장의 말 한마디면 좌천되는 것도 일은 아니었다.
“지금 본 소장을 상대로 상관을 들먹이면서 협박을 하려는 것....”
분위기가 험악하게 흘러가는 와중이었다.
그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쿠르르릉! 우우웅!
천둥 번개라도 치는 듯한 굉음이 하늘에서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용천 그룹 부지 위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상공에서 검은 블랙홀처럼 보이는 거대한 구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방위군의 소교 한 명이 달려와 소리쳤다.
“사, 사령관님. 지금 게이트가 열리고 있습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열리는 광경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보고 있었다.
천유장은 위에서 열리는 게이트를 보면서 난처함을 금치 못했다.
‘선조님께서 돌아오신 건가?’
타이밍이 공교롭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의 난처함과 달리 게이트에서 나온 존재는 예상지 못한 것들이었다.
-슈슈슈슈슈슉!
중세 갑주를 입고 나타난 수천 명에 이르는 미형의 인간과 닮은 존재들이 게이트를 통과해 나타났다.
“인간?”
그 모습에 사령관 조윤과 군인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게이트에는 여러 위험 등급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것이 지적 능력을 가진 존재가 나타나는 특수 개체형이었다.
“특수.....개체?”
얼핏 보아도 수천 명에 이르는 자들이 전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저런 존재들이 절대 인간일 리가 없었다.
사령관 조윤이 다급히 소리쳤다.
“전군 전투 준비!”
“전군 전투 준비!!!”
그의 명령에 장교들이 복창하며 소리를 질렀다.
-위잉! 철컹!
용천 그룹 부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40여대의 ZRV-30의 전차 옆 부위에서 기계식 고정 장치가 내려와 땅에 박혔다.
구경 130mm의 구경에 포신이 위로 올라가며 허공에 떠있는 특수 위험개체들을 동시에 겨냥했다.
“사격 준비!”
군용 트럭에서 내린 이천여 명의 보병들이 포를 비롯해 기관총을 겨냥했다.
이미 게이트 전을 준비하고 있던 방위군이었기에 대응은 빨랐다.
‘미치겠군.’
‘하필 여기에?’
천유장과 용천 그룹의 중진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선조인 천여운이 돌아온 줄 알았더니, 뜬금없이 정말로 위험 개체들이 나타나버렸다.
덕분에 용천 그룹 부지가 전쟁터가 되기 직전이었다.
그때 열려 있는 게이트에서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우우우웅!
청은발을 흩날리며 나타난 미형의 존재.
그가 나타나자 허공에 떠있는 수천 명의 갑주를 입은 자들이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누가 보아도 우두머리임을 알 수 있었다.
“저게 알파 개체인가 보구나!”
사령관 조윤은 그 존재가 알파 위험 개체라고 확신했다.
그 다음 조윤의 선택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전군 격발!”
“격발!!!”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장교들이 뒤이어 소리쳤고, 포격과 기관총이 동시에 격발을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두두두두두두두두!!!
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포신 소리.
기관총이 연달아 울리는 격발 소리들로 용천 그룹 부지가 뒤덮였다.
수많은 불빛들이 용천 그룹 상공에 떠있는 수천 명의 특수 위험 개체들을 향해 쇄도했다.
‘일거양득이로군.’
사령관 조윤은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수 개체들이 시 내부로 빠지기 전에 게이트 입구에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용천 그룹 부지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으니, 그 피해는 모두 그들이 감당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사, 사령관님!”
“저걸 보십쇼!”
장교들이 놀라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상공을 수놓고 있던 수많은 포와 총알들이 뭔가에 막힌 듯이 그들에게 닿기도 전에 그대로 흩어지듯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파스스스스스!
“대, 대체 이게 무슨.....”
이 엄청난 화력은 저들에게 아무런 타격조차 주지 못했다.
닿지도 못하는데 무슨 타격을 주겠는가.
이를 막고 있는 것은 단 한 명의 존재였다.
“오오오!”
“역시!”
특수 개체, 아니 마족들이 그 존재를 경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청은발의 위압적인 존재 마왕이 손을 내밀고 있었는데, 거대한 마력장이 그들을 둘러싸면서 포격과 사격을 무력화시켰다.
“하찮은 것들.”
마왕의 시선이 포를 쏘고 있는 전차들로 향했다.
사격보다도 저것들이 성가셨다.
마왕이 둘러싸고 있는 전차들 중 한 대를 향해 검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사라져라.”
-팟!
그 순간 마왕의 손가락에서 흰 빛이 흘러나오며 이내 포격을 하던 전차 한 대를 관통했다.
-콰아앙!
광선에 뚫린 전차가 그대로 폭발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마왕이 광선을 쏘고 있는 손가락으로 열을 맞춰서 둘러싸고 있는 전차들을 차례로 긋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쾅!
마왕의 손가락에서 나온 광선은 전차들을 차례대로 폭발시켰다.
이에 당황한 전차 안에 있던 군인들이 누구 할 것 없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도, 도망쳐!”
“뛰엇!”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상황이 일어났다.
무엇으로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광선에 닿은 전차들은 그대로 폭발했고, 그것은 불과 몇 초 만에 오십여 대를 전부 부서버리는 상황을 만들었다.
“대, 대체 저게 뭐야?”
사령관 조윤과 장교들은 말도 안 되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지금껏 수많은 위험 개체들을 상대해온 그와 군인들이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천유장이나 용천그룹의 중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괴물은 대체 뭐지?”
* * *
용천 그룹 본사 부회장실.
창문을 통해서 상공을 쳐다보고 있는 마족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샤케나 역시도 같았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샤케나 저놈들도 너의 일족들인 거냐?”
대장로 문란영의 물음에 샤케나가 얼이 빠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허공에 떠있는 마족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래. 주군은 안 오고 어째서 저놈들이 저렇게 떼거지로?”
허봉이 마족들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하나하나가 인간을 압도하는 전투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런 놈들이 수천 명이나 나타났으니, 아무리 허봉이라고 해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막아야 겠어.”
백기가 창문 밖을 쳐다보며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위군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특히 저 손가락으로 광선을 쏘아서 전차 부대를 전멸시킨 저 괴물은 말이다.
문란영 역시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밖으로 신형을 날리려하는데, 샤케나가 다급히 만류했다.
“자, 잠깐만요. 언니!”
“왜 그러지?”
“그만두세요.”
“뭐?”
“지금 당장 항복하지 않으면 이곳에 있는 인간들 모두 죽을 거에요.”
샤케나의 그 말에 문란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저, 저분은 여기 있는 어떤 누가 나서도 어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잔뜩 겁먹은 그녀의 태도에 모두가 의아해했다.
늘 호전적인 모습만 보이던 샤케나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백기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저게 뭐길래 그러는 거지?”
그 말에 샤케나가 두려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마, 마왕 폐하세요.”
“마왕?”
마왕이라는 말에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렇다면 여기에 있는 마족들의 수장이라는 존재가 아닌가.
백기가 주변에 구속되어 있는 마족들을 살펴보았다.
‘두려워.....하고 있다.’
칼리아프 대공 측에 속해 있는 그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만큼 압도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려워하는 샤케나에게 허봉이 말했다.
“뭘 그리 무서워해. 우리에겐 이 분이 계시잖아.”
허봉이 말한 이 분.
그녀는 바로 대요괴 금모 구미호였다.
천여운이 아니고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
그런데 그녀를 쳐다보았던 허봉이 순간 당혹스러워 했다.
‘어라?’
금모 구미호가 지금까지와 달리 굉장히 심각한 눈빛으로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강한 경계심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허봉이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
“구미호님?”
이에 금모 구미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너희들......전부 도망치는 게 좋겠어.”
“네?”
반문하는 허봉을 향해 고개를 돌린 금모 구미호가 모두를 쳐다보며 말했다.
“전부 죽을지도 몰라.”
천하의 금모 구미호가 낯선 존재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마력을 정확하게 가늠할 수 없는 인간들과 달리 그녀는 확연하게 체감하고 있었다.
이 일대 전체를 뒤엎고 있는 불길한 마력을.
“싸워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기에는 이르지 않나?”
백기의 그 말에 그녀가 코웃음을 쳤다.
“.....그런 수준이 아니야.”
저 마왕이란 존재는 그저 손짓만으로 이곳 전부를 지워버릴 수 있을 만큼 말도 안 되는 마력을 풍기고 있었다.
그녀는 순간 고민에 빠졌다.
자신만이라고 한다면 어떻게든 도망치는 게 가능할 듯 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인간들은 절대로 저 괴물 같은 존재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어떻게 하지?’
저 마왕이란 놈도 문제지만 그 옆에 있는 은발의 남자도 만만치 않았다.
풍겨지는 마력만 보면 적어도 자신과 동급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 자는 마왕의 다음 서열이라 할 수 있는 에버단 대공이었다.
‘이 녀석들이 죽으면.....천마가 상심하겠지.’
두려운 와중에도 천여운이 상심할까봐 걱정스러운 그녀였다.
그때 에버단 대공이 시선을 돌렸다.
“.....늦었군.”
금모 구미호가 탄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그녀가 그들의 힘을 얼추 짐작했듯이 에버단 대공 역시도 이 일대에서 자신과 버금가는 요력을 풍기고 있는 금모 구미호를 알아차렸다.
“폐하.”
에버단 대공의 부름에 마왕이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알아서 처리하라는 의미였다.
“감사합니다.”
에버단 대공이 호승심으로 가득 찬 미소를 짓더니 이내 본사 건물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파앙!
금모 구미호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소리쳤다.
“모두 도망쳐!”
그 외침과 함께 그녀가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와 동시에 금모 구미호의 몸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우우우웅!
황금빛은 인간의 형태에서 한없이 커지더니 이내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거대한 여우의 형태로 바뀌었다.
< 68화 마왕 현신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