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라릿샤 (3) >
대공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마왕.....아니 타우라 때문이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그런 대공을 야왕, 조쉬프 공작이 빤히 쳐다보았다.
못마땅한 눈빛을 하고 있는 걸로 보아 여전히 그를 탐탁지 못하게 여기는 듯 했다.
“칼리아프 그대와는 할 말이 없네.”
그래도 처음과 달리 어느 정도 공대는 해주었다.
칼리아프 대공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조쉬프 공작. 그대를 몰라보았다고는 하지만 과거 우리의 교분을 생각한다면 조금 지나치네.”
그 말에 조쉬프 공작이 노기가 서린 목소리로 답했다.
“라릿샤께서 그리 되시고도 타우라 그놈을 왕으로 인정한 그대에게 내 좋은 말이 나올 것 같나?”
“하아.”
칼리아프 대공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그가 어째서 자신에게 이렇게 사납게 구는지 알 수 있었다.
조쉬프 공작은 전대 마왕의 최측근으로서 충성심이 깊은 자였다.
“......그때는 전쟁 중이었네.”
칼리아프 대공이 자신의 상황을 해명했다.
이에 조쉬프 공작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전쟁이 끝났는데 어째서 율법을 어긴 타우라의 죄를 묻지 않은 것인가!”
“조쉬프 공작.....일단 본 대공의 말을 들어보게.”
“듣기 싫소!”
결국 칼리아프 대공 역시도 참지 못했다.
“그럼 자네 말대로 제 3차 대전쟁이 끝난 후유증도 수습하지 않고서 당장에 죄를 묻자고 당대 마왕의 자리를 차지한 그와 내부 전쟁이라도 벌여야 했단 말인가!”
칼리아프 대공에게도 자신만의 타당한 명분이 있었다.
일족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면서 까지 전쟁을 치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조쉬프 공작의 생각은 달랐다.
“명분. 명분. 명분....그런 식으로 하나 하나 명분을 찾다가 무슨 수로 그런 버러지 같은 역적 놈을 잡는 단...”
“그만.”
그때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천여운이 개입했다.
나지막했지만 위압감이 담겨 있는 그의 목소리에 조쉬프 공작이 입을 다물었다.
칼리아프 대공도 한 발자국 물러섰다.
천여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네가 알고 있는 것을 전부 소상히 이야기 해보아라.”
“그 말씀은?”
“라릿샤.....아니 내가 어찌 사라졌던 것인지 이야기 하라.”
천여운은 라릿샤가 어떤 연유로 사라졌고 그가 어째서 지구로 간 것인지 궁금했다.
이에 조쉬프 공작이 과거를 회상하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곳 지하 수감소에 들어온 후로 해를 세는 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때가 분명 3차 대전쟁 중이었음은 기억합니다.”
이곳 행성은 강대한 두 일족이 패권을 다투고 있었다.
그것이 아리샤의 일족과 탈리샤의 일족이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각자의 일족들을 이끌고 전쟁을 치러왔다.
“1차, 2차 대전쟁 때와는 달리 전쟁이 길어지면서 모두가 지쳐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라릿샤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말이냐?”
조쉬프 공작이 떨리는 눈으로 답했다.
“이 황무지나 다름없는 행성을 가지자고 전쟁을 치르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차라리 다른 곳에서 비옥한 대지를 찾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그의 말에 칼리아프 대공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 거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 행성은 수천여년 동안 긴 1차, 2차 대전쟁을 치르면서 하늘은 빨갛게 그리고 땅은 황폐하기 그지없게 변했다.
과거에 찬란했던 문명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라릿샤 다운 말씀이시다.’
그를 곁에서 모셔왔던 칼리아프 대공이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모셨던 최고의 주인이시자 진정한 왕이었다.
“그래서?”
“라릿샤께서는 전쟁 와중에도 틈틈이 게이트로 이동하여 직접 여러 행성들을 살피셨습니다.”
“......이미 이주를 결정했군.”
천여운의 그 말에 조쉬프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칼리아프 대공이 의아해했다.
‘어찌?’
지금까지 라릿샤에게 그런 작은 언급조차 듣지 못했던 그였다.
그의 마음이라도 읽기라도 한 듯 조쉬프 공작이 말했다.
“최전방의 사령관인 그대를 불러서 이것을 일일이 논할 상황 같소.”
“그럼 누구와 상의를 한 것이오?”
“......누구일 것 같소?”
당시에는 다섯 대공이 존재했었다.
그들 중에서 차기 왕으로 거론되는 자는 칼리아프와 타우라뿐이었다.
“타우라.”
“라릿샤께서는 우리 두 공작과 타우라.....그놈과 함께 적합한 행성을 찾고 있었소.”
“그게 지구였나?”
“그렇습니다. 그 행성에 사는 생명체들은 전투력도 미천하기 그지없었고, 저희에게 위험이 될 만한 요소도 적었습니다.”
마족의 입장에서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이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하위 마족들만 나서도 충분히 쓸어버릴 수 잇을 만큼 말이다.
충분히 동의는 하지만 인간의 입장으로 그가 하는 말이 거슬렸던 천여운의 표정이 묘하게 굳어져갔다.
이를 의식하지 못한 조쉬프 공작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타우라 그놈도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계획에 긍정적인 의견을 보였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지?”
근본적인 마찰이 있었을 것이다.
조쉬프 공작이 분한 얼굴로 이를 갈면서 말했다.
-으득!
“놈이 설마 왕좌에 야욕을 품고 있을 줄은 그때만 하더라도 눈치채지 못했었습니다.
“야욕이라.....”
“신의 무능함에 부디 벌을 내려주시옵소서.”
조쉬프 공작이 바닥에 강하게 머리를 찧었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하던 이야기나 계속 해라.”
“.......구체적으로 지구 이주 계획이 구체화될 무렵 타우라 그놈이 갑자기 이를 전면 반대의 입장을 취했습니다.”
느닷없는 그의 반대에 두 공작들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로 인해 한참 잘 진행되고 있던 이주 계획은 잠시 중지될 수밖에 없었다.
한참 전쟁을 치르는 도중이었기에 라릿샤 역시도 전력의 감소를 의식했는지, 자신의 의견에 반한 타우라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 타우라란 놈은 왜 반대한 거지?”
“놈이 왕좌에 야욕을 가졌기 때문일 겁니다.”
조쉬프 공작은 그것을 야욕 때문일 거라 확신했다.
그런 그의 말에 천여운이 실망스럽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모르는군.”
“네?”
“놈이 왜 반대했는지를 정확히 모르는 구나.”
“그건.....”
그 말에 조쉬프 공작이 입을 다물었다.
천여운의 말대로 정확한 사유에 대해서는 그 역시도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짐작 가는 이유가 있었다.
“말해라.”
“.......회의 도중 그때를 기점으로 타우라가 반대 의견을 보이긴 했습니다.”
“그때?”
“라릿샤께서 이주 계획을 위해서 자주 지구로 시찰을 나가셨었는데, 어느날 회의 때 인간들과의 공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었습니다.”
“인간과의 공조?”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들어본 바로는 그들은 마치 지구로 이주하여 식민지화하겠다는 이야기에 가까웠다. 그런데 공조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에 천여운 또한 의아해했다.
“라릿샤께서는 지구의 인간들이 미개하나 그들은 빠르게 문명을 발달시키고 있으니, 그들과 공조한다면 일족에도 도움이 될 거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놈의 태도가 미적지근하게 바뀌어갔습니다.”
“어떻게 말이느냐?”
“......기르는 가축을 상대로 무슨 대화가 필요하겠습니까? 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은 천여운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타우라라 불리는 현 마왕은 인간을 철저히 가축처럼 여기고 있었다.
인간인 천여운의 입장에서는 불쾌하다 못해서 어이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그 라릿샤는 어째서 인간과 공조를 주장한 거지?’
생각해보면 그것도 이상했다.
라릿샤는 이들과 같은 입장이었다.
무엇이 되었든 라릿샤의 의중을 움직인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서 놈은 그걸 기점으로 모반을 꾸민 것이냐?”
“아마도 그랬을 겁니다.”
“아마도?”
“놈이 모반을 꾀한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구 이주 계획이 잠시 중지되었으나 여전히 전쟁은 진행 중이었다.
작고 큰 규모의 전쟁은 시시각각 벌어졌고 상황에 따라서는 라릿샤를 비롯한 대공들, 그리고 그 측근들 역시도 나서야 했다.
조쉬프 공작이 뜬금없이 칼리아프 대공에게 물었다.
“칼리아프 대공.....그 날을 기억하나?”
“그 날?”
“탈리샤가 북쪽으로 친정을 내려왔던 그 날을 말이다.”
“......그 날이었군.”
칼리아프 대공의 얼굴이 무거워졌다.
천여운이 물었다.
“무슨 말이지?”
“3차 대전쟁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전쟁이 다섯 차례 정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탈리샤가 직접 북쪽으로 기습 친정을 내려왔을 때였습니다.”
일족의 수장들 역시도 당연히 전장을 나선다.
하지만 수장이 당하면 일족 전체에 큰 타격이 있는 만큼 라릿샤나 탈리샤가 직접 부딪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북쪽 전선이 급격하게 무너지면서 탈리샤가 직접 나섰다는 전보를 받은 라릿샤와 저희 두 공작은 전선으로 나갔습니다.”
양대 일족의 수장들의 격돌.
그것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대전이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양대 일족의 세력의 4할 이상이 그곳으로 투입되는 사태마저 벌어졌다.
“그래서 이겼나?”
“라릿샤께서는 사흘밤낮으로 탈리샤와 전투를 벌였습니다.”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이걸 들어보면 탈리샤라는 그 자 역시도 굉장한 강자인 듯 했다.
“결과는?”
“라릿샤께서 놈에게 치명상을 입히는데 성공했습니다.”
“다행이군.”
“하나.....라릿샤께서도 많은 마력소모와 중한 상처를 입으셨기에 전선에서 성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말에 천여운이 말없이 생각했다.
‘양패구상이로군.’
이겼다기 보다는 서로 중상을 입은 상황이리라.
아마도 저쪽 역시도 라릿샤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혔을 거라 기뻐했을 것이다.
사기를 위해서 서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하는 게 나은 상황이었다.
“탈리샤가 치명상을 입은 중요한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저희 측근들은 군대를 이끌고 북진했습니다.”
“라릿샤를 성으로 보내고 말이냐?”
-쿵!
조쉬프 공작이 다시 한 번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신의 불충입니다. 아무리 명이라고 해도 저희 중 한 명이라도 라릿샤의 곁을 지켰어야 했는데.”
결국 그것이 시발점이 된 것이다.
천여운이 칼리아프 대공에게 물었다.
“네 녀석은 뭘 한 거지?”
“......그때 서남쪽 전선에서 탈리샤 일족을 막고 있었소.”
당시 탈리샤가 북쪽 전선을 수차례나 넘을 수 있었던 것은 이중 공략 때문이었다.
남쪽으로 대군이 몰리면서 대공들은 그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거군.”
대략 상황이 보였다.
결국 마왕성에는 중상을 입은 라릿샤 혼자만 남아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타우라란 놈이 그때를 노렸군.”
“그렇습니다. 동부 전선을 책임지고 있던 놈이 움직이는 것을 칼리아프 대공이나 제 입장에서는 알 수 없었습니다.”
조쉬프 공작이 죄스럽다며 연신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그는 진심으로 그때를 후회하고 있었다.
못해도 자신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 확신했다.
-슥!
천여운이 진기로 그가 자책하는 것을 막았다.
사정은 이해하지만 자신은 라릿샤가 아니었기에 죄를 청할 필요가 없었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그 말에 이마가 찢겨나가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는 조쉬프 공작이 멈칫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제가.....다시 성으로 복귀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벌어졌을 때였습니다.”
북쪽 전선에 있던 두 공작에게 전보가 올라왔다.
그것은 라릿샤가 율법에 따라 타우라를 인정하고 마왕을 승계했다는 전보였다.
이를 믿을 수 없었던 조쉬프 공작은 전선에서 벗어나 곧장 마왕성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저는 그것을 믿지 않았기에 타우라 그놈을 추궁했습니다.”
현 마왕인 타우라는 율법을 어길 참이냐고 오히려 그를 다그쳤다.
강한 의구심이 들었지만 아리샤의 갑옷부터 마왕의 힘을 승계한 타우라를 일개 공작인 그가 어찌해볼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지?”
“저는 진상을 밝히기 위해 그날 성에 남아 있었던 일족들을 조사했습니다.”
“위험했을 텐데.”
어찌 보면 적의 소굴이 되었을 마왕성이었다.
그런데도 위험을 감수하고서 진실을 규명하려 했던 조쉬프 공작이었다.
“타우라는 당시 마왕의 힘을 완전히 체화하지 못했기에 그때가 아니면 기회가 없었습니다.”
조쉬프 공작은 그 틈을 노렸다.
그렇게 며칠 간 은밀히 수소문한 끝에 그는 정보원을 찾아냈다.
마왕성의 호위 일족이었던 그 자는 공교롭게도 그날 근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마왕성으로 들렸다가 타우라로 짐작되는 목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지?”
“타우라가 이런 말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구가 좋다면 평생 지구에서 썩으십시오.]
그것이 호위 일족이 들었던 말이었다.
그 후로 그는 현 마왕인 타우라가 바깥으로 나와 마왕성 주변에 있던 자들이 무참히 학살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천운으로 살아남은 그는 두려움으로 마왕성을 도망쳐 숨었다.
“저는 그 자에게 증언을 요청했고 현 마왕이 율법을 어겼다는 것을 빌미로 끌어내리려고 했습니다.”
율법을 어기고 반란을 일으킨 현 마왕.
그를 처단하기 위해 조쉬프 공작은 전선에 있는 고위급 마족들에게 연락을 취해 힘을 집결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제가 놈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당연히 타우라의 측근들은 그를 감시하고 있었다.
미처 연락을 취하기도 전에 그들에 의해서 잡힌 조쉬프 공작은 마왕성에 지하 깊숙한 곳에 유폐를 당했다고 한다.
“용케 죽이지 않았군.”
“그는 저를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여전히 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마왕이 교체 되면서 전력의 약화가 일어났다.
그런 상황 속에서 타우라 역시도 섣불리 그를 죽일 수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를 따르는 수많은 작위 급 마족들과 북쪽 전선에 있는 아리샤의 마지막 측근 역시도 반발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폐 되어 있는 동안 저는 조금씩 마력을 회복했습니다.”
처음과 달리 계속되는 전쟁으로 감시가 소홀해졌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조쉬프 공작은 탈출했다.
“탈출한 저는 우선 몸을 완전히 회복하기 위해 숨었습니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었다.
몸을 회복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회복하고 나왔을 때는 제 3차 대전쟁이 끝나고 일족이 안정기를 취해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 사이 타우라 그놈은 견고히 자리를 잡았더군요.”
조쉬프 공작은 이를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현 마왕에 대한 여론을 바꾸기 위해 자신과 뜻을 함께 할 자들을 구하기 위해,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을 소문내기 시작했다.
“적어도 아리샤에 대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라면 이에 호응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말과 함께 조쉬프 공작이 칼리아프 대공을 노려보았다.
왜 호응하지 않았냐고 추궁하는 눈빛이었다.
이 모습에 천여운이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칼리아프. 네가 말한 소문의 진상자가 여기 있었군.”
이에 칼리아프 대공이 한탄하며 말했다.
“자네였단 말인가. 그 소문을 낸 자가?”
“그게 무슨 소리지?”
“나 역시 진상을 알고 있는 자를 찾기 위해 수소문을 하고 있었네.”
“수소문을 했다고?”
여태껏 칼리아프 대공이 현 마왕에게 굴복하여 현실에 수긍했다고 생각했던 조쉬프 공작이었다.
조쉬프 공작은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결국 서로가 엇갈린 셈이었다.
“어찌 이런 일이.....”
만약 그들이 그때 만나게 되었더라면 현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물론 지금 마왕의 힘을 생각한다면 확률은 지극히 낮지만 말이다.
천여운이 조쉬프 공작에게 물었다.
“그럼 네놈은 그 타우라 놈에게 붙잡혀서 이곳에 유폐된 것이냐?”
“......아닙니다.”
“아니라고?”
“유일하게 놈을 피해서 숨을 수 있는 곳은 이곳 바무트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최악의 지하 수감소라 불리는 바무트.
설마 누가 이곳으로 도망치리라 상상하겠는가.
그것만이 그들의 추적을 막을 수 있으리라고 판단한 조쉬프 공작은 과감히 스스로의 발로 이곳으로 들어왔다.
“이곳에서 살아남아.....죄수들의 힘이라도 모아서 어떻게든 라릿샤에게 반기를 든 그놈을 신의 손으로 처단하고 싶었습니다.”
지푸라기로 붙잡는 심정으로 그는 차악을 선택했다.
그들의 손에 붙잡혀봐야 결과는 죽음뿐이었다.
“조쉬프 공작.....”
그의 충심에 칼리아프 대공이 진심으로 감격했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라릿샤를 위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일족의 미래와 명분만을 생각했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고 부끄러워졌다.
“그대야말로 진정 라릿샤의 충신이오.”
진심이 담긴 그의 말에 조쉬프 공작도 한결 마음이 풀렸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본인 역시도 대공의 충정을 의심하고 있었소.”
서로에 대한 오해가 풀린 그들의 눈빛에 적의가 사라졌다.
조쉬프 공작이 천여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라릿샤를 뵙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이 이 순간을 위한 고행이라....”
-웅성웅성!
그때 바깥 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있지 않아 조쉬프 공작의 휘하 마족인 외눈박이 마족이 누군가를 부축해서 움막 안으로 들어왔다.
“알루소 후작?”
그는 칼리아프 대공의 휘하 마족이었다.
바무트 지하 수감소 내 환경에 적응 못한 그가 힘겹게 고개만 끄덕였다.
“무슨 일이느냐?”
“전.....전하.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바깥을 지키고 있던 그가 무리해서 수감소 안까지 들어온 것에는 분명 시급한 문제가 있어서일 것이다.
칼리아프 대공의 물음에 알루소 후작이 말했다.
“자취를 감췄던 마왕 폐하께서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뭐?”
대공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신변에 뭔가 문제가 생겼으리라 확신했었는데, 이천 년 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지금.....폐하께서.....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게이트?”
대공이 의아해했다.
지금까지 자취를 감췄다가 나타나서는 게이트로 향한다?
무슨 의도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째서?”
“그, 그게 이상합니다. 정보원의 말로는 마왕 폐하께서 당장 지구로 친정을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천여운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석좌에서 일어났다.
“방금 뭐라고 했지?”
"지, 지구로 친정을...."
친정(親征).
그것은 우두머리가 직접 정벌을 나선다는 의미였다.
"하!"
천여운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 67화 라릿샤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