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라릿샤 (1) >
칼리아프 대공과 베프만 공작은 무의 수치를 읽을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진 않다.
그러나 그들 정도 되면 상대가 어느 정도 수준의 전투력을 갖고 있는지 정도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강하다.’
그들이 처음 야왕의 최측근들을 보았을 때 평이었다.
다가올 때 넘치는 자신감과 기세.
그리고 풍겨져오는 범상치 않은 마력은 그들이 공작 급을 상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촥!
천여운에게는 고작 일검에 불과했다.
앞으로 걸어가던 천여운이 가볍게 검결지를 긋자 그들은 힘 한 번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그대로 목이 잘려나갔다.
‘......매번 느끼지만 정말 괴물이다.’
둘의 생각이 이럴 진데 그들을 부리는 야왕은 어떻겠는가.
그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던 야왕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졌다.
‘일검?’
직접 본게 아니었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팍!
목이 잘려나간 두 마족의 가슴을 꿰뚫고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핵을 쥐고 있는 오른손과 왼손이었다.
점점 고동이 약해져가는 핵을 천여운이 그대로 뽑아내버렸다.
‘핵을?’
야왕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미 목을 벤 이상 승부는 끝이었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곳 바무트 지하 수감소의 숨겨진 비밀 중 하나 때문이었다.
마력의 체계가 완전히 바뀌면서 지상과 달리 이곳에서 부상을 입게 되면 절대로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이곳에 있는 마족들은 늘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하게 되면서 바깥에 있는 마족들보다 훨씬 강한 전투력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이런 이유로 야왕은 천여운의 행동을 의아하게 여겼다.
-우우웅!
그때 천여운의 오른팔목 부근에서 음산한 푸른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러더니 두 손에 들어있던 핵이 푸른 빛으로 감싸지더니, 이내 그 빛이 천여운의 안으로 스며들며 핵이 부서졌다.
-파스스스!
천여운이 두 눈을 감고서 뭔가를 음미하듯 부르르 떨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야왕의 녹색 안광이 지금까지와 다르게 크게 흔들렸다.
‘지금 그건....’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다른 마족들은 모르겠지만 그는 저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능력 흡수!”
야왕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곁에 있던 외눈박이 마족이 의아해했다.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어서였다.
-팟!
그 순간 야왕이 신형이 앞으로 번개처럼 튕겨져 나가 천여운을 향해 뻗어나갔다.
핵에 담겨 있던 능력을 흡수한다고 잠시 무방비 상태가 되어 있는 천여운을 향해 야왕이 목을 움켜쥐려 했다.
“누구 마음대로!”
칼리아프 대공이 빠른 속도로 앞으로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야왕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팍!
그것을 야왕이 가볍게 잡아냈다.
-부르르르!
발차기를 잡아낸 야왕이 오른손이 작게 떨려왔다.
야왕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마왕 후보자답군. 벌써 익숙해졌나?’
발차기에 실린 마력은 굉장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칼리아프 대공은 이곳 환경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상당한 힘을 내고 있었다.
“그래도 멀었다.”
-우우웅!
야왕의 오른손에 녹색 빛이 일렁였다.
녹색 빛에서는 강한 악취와 더불어 불길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야왕이 그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위험하다.’
그 기운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칼리아프 대공이 붙잡힌 상태로 몸을 틀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그것을 멈춰야만 했다.
뒤에 천여운이 있었다.
‘큭.’
비켜서는 순간 이 괴이한 힘을 천여운이 당할 지도 몰랐다.
대공이 마음을 바꿔먹고서 전신에 마력을 집중하여 주먹을 견뎌내려 했다.
-쾅!
야왕의 주먹이 칼리아프 대공의 복부를 강타했다.
그 순간 녹색 빛이 그의 복부로 스며들며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헉!”
“미련한 놈. 고작 뒤에 녀석을 보호하기 위해 나의 독권에 맞서다니.”
녹색 빛의 비밀.
그것은 지독한 독이었다.
원래부터 독을 다루던 능력을 가지고 있던 야왕은 이곳 바무트 지하 내에서 흘러나오는 독가스와 독기를 모아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다.
-치이이이!
“끄으으으!”
그의 주먹에 닿은 칼리아프 대공의 갑주가 녹아내렸다.
그리고 복부의 색이 검게 변색되어 갔다.
굉장한 고통이 암습해옴에도 칼리아프 대공은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래도 명색이 과거 마왕 후보자다운 기개로구나. 독기로 속이 진탕이 되어서 움직이기도 벅찰 텐데.”
야왕이 그를 칭찬했다.
이미 수많은 싸움을 통해 그는 이 주먹의 힘을 확인했다.
어지간한 공작 급의 마족들 역시도 주먹 한 번이면 독기에 진탕되는 것을 넘어서 몸이 녹아내리고 만다.
‘대단한 마력이군.’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력이 괴물이라는 소리였다.
“무엇 때문에 너 같은 남자가 이 자를 보호하려는 것이더냐?”
칼리아프 대공은 왕에 가까운 자였다.
그런데 인간으로 추정되는 자를 보호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칼리아프 대공이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본....대공의...주인이시다.”
그 말에 야왕이 기가 차다는 듯이 소리쳤다.
“주인? 하! 천하의 칼리아프 대공이 인간을 주인으로 모신단 말이냐! 설마 라릿샤의 검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이냐?”
야왕은 천여운의 힘을 눈치 챘다.
핵을 흡수하는 순간부터 아리샤의 검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칼리아프 대공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속을 뒤집어 놓는 독기를 마력으로 제어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여전하시군. 크큭. 정녕 나를 모르겠느냐?”
야왕이 물었다.
그러나 칼리아프 대공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녹색 피부에 주름으로 가득한 얼굴에 녹색 빛이 흘러나오는 두 눈.
그가 아는 자들 중에 누구도 이런 자는 없었다.
야왕이 실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됐다. 어차피 네놈 같은 위선자 녀석도 죽일 작정이었다. 그냥 죽어라.”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는지 야왕이 그를 향해 다시 한 번 독기를 담은 주먹을 날리려고 했다.
야왕의 주먹이 빠르게 대공의 정중앙 가슴을 노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앙!
주먹이 닿으려는 찰나 야왕이 엄청난 반탄력에 의해 몸이 십 미터가 넘게 튕겨나갔다.
-파파파파파파!
“크윽!”
야왕이 당혹스러운 눈으로 대공을 노려보았다.
‘내 주먹을 튕겨내?’
독기를 버티기도 바쁠 텐데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를 튕겨낸 힘은 칼리아프 대공이 낸 것이 아니었다.
천여운이 칼리아프 대공의 등에 손을 얹고 있었다.
“수하된 도리를 알고 있군. 칼리아프.”
칼리아프 대공이 힘겹게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당연한 말씀을.....”
천여운이 피식 웃었다.
사실 능력을 흡수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시험삼아 칼리아프 대공의 행동을 지켜보았던 그였다.
과연 힘에 억눌려 말로만 충성을 한 것인지 아닌지 말이다.
칼리아프 대공은 그의 시험에서 통과했다.
“독기라....빼내주지.”
“그게?"
-우우웅!
"헛?"
천여운이 칼리아프 대공의 등에 손을 얹은 채로 그의 체내로 진기를 불어넣었다.
마력과는 완전히 다른 체계이지만, 천여운 정도로 숨을 쉬듯이 진기를 다룬다면 체내에 영향을 주는 것을 피할 수 있다.
-파팍!
천여운이 짧게 등을 손바닥으로 쳤다.
그러자 칼리아프 대공의 체내에 있던 독기가 바깥으로 스멀거리며 흘러나왔다.
“크웩.”
심지어 입에서도 녹색 연기가 나왔다.
‘독기를 밀어내?’
야왕이 칼리아프 대공은 회생시킨 천여운의 능력에 눈살을 찌푸렸다.
최고로 독기를 높인 것은 아니었지만 타인이 저런 식으로 해독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천여운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놈이 이곳의 우두머리인가 보구나.”
그 정도는 다른 마족들의 태도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 천여운을 녹색 안광으로 노려보던 야왕이 입을 열었다.
“네놈은 대체 무엇이냐? 인간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렇고, 어째서 라릿샤의 검을 가지고 있는 거지?”
“라릿샤의 검?”
야왕의 입에서 나온 라릿샤라는 말에 천여운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이는 칼리아프 대공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라릿샤라는 아리샤의 옛 원래 표현을 알고 있는 자는 자취를 감춘 현 마왕과 자신 정도밖에 없었다.
“네놈 누구냐?”
칼리아프 대공의 물음에 야왕이 기괴한 목소리로 웃어댔다.
“크하하하핫. 이제야 관심을 가지는 것이더냐? 늦었다. 네놈은 진즉에 본 공작을 알아보고서 신하된 도리를 하지 못한 것을 사죄해야 했다.”
“공작?”
칼리아프 대공이 혼란스러운 눈빛이 되었다.
그때 야왕이 바닥을 향해 손을 내리쳤다.
-팍!
“전부 죽어라.”
그 순간 바닥에서 악취와 함께 독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천여운이 재빨리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칼리아프 대공과 뒤에 있던 베프만 공작의 신형이 튕겨나가 뒤로 날아갔다.
“흐헛!”
그러기가 무섭게 바닥에서 녹색 빛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반경 50미터에 이르는 규모의 독기를 머금은 빛은 공동의 천장까지 닿았다.
“주인!”
칼리아프 대공이 녹색 기둥을 보며 소리쳤다.
조금만 늦었다면 자신들 역시도 이 독기가 가득한 빛에 휩쓸렸을 것이다.
야왕이 키킥 거리며 비웃었다.
“멍청한 놈. 저딴 놈들을 살리자고 자신을 희생...”
-꽉!
그때 누군가 그의 뒤에서 머리통을 움켜잡았다.
“설마 그걸 못피할 거라 여긴 건 아니겠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야왕이 녹색 안광이 흔들렸다.
그 짧은 찰나에 독 기둥을 피해서 자신의 뒤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
“라릿샤를 알고 있다니 네놈이 알고 있는 게 꽤 많겠구나.”
-꽈악!
천여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야왕이 키득거리며 웃더니 말했다.
“실수했구나. 내 몸에 직접 손을 대다니.”
-파아아아악!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야왕이 머리에서 녹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독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전신으로 독을 뿜어낼 수 있고, 심지어 눈에서는 독기로 만들어진 광선마저 뿜어낼 수 있다.
야왕이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늦었다. 이미 네놈의 손을 타고서 독기가 전신...”
-콰득!
“끄아아아아악!”
야왕이 두개골을 파고드는 손가락에 비명을 질렀다.
고통도 잠시였고 그는 여전히 독기를 뿜어대고 있는데, 자신의 머리에서 손을 놓지 않고 있는 천여운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네, 네놈 미친 것이냐? 독기에 손이 녹...”
“그게 어쨌다는 거지?”
“뭐?”
야왕은 현재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고 있는 마족들의 반응을 보면 대충 그림이 나왔다.
“말도....안 돼.”
“야, 야왕의 독기가 통하지 않아.”
야왕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녹색 빛은 천여운에게 스며들지 않고 오히려 흩어지고 있었다.
독기도 일종의 기운이었다.
그 기운을 상대가 압도적으로 능가한다면 전혀 소용이 없었다.
‘안 되겠어. 비장의 수로 남겨놓으려고 했건만.’
-으득!
야왕이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가리려고 했다.
그러나,
-촥!
“끄악!”
그가 손을 들어올리기도 전에 팔꿈치 채로 잘려나갔다.
“이, 이.....”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방해받은 야왕은 당혹스러웠다.
천여운이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식상하군.”
그리고는 가볍게 검결지를 휘저었다.
그러자 야왕이 남은 한쪽 팔 역시도 어깨 채로 잘려나가 버렸다.
-촥!
“끄으으으!”
연달아 전해져오는 고통에 야왕이 더 이상 전신으로 독기를 뿜어내던 것을 유지할 수가 없었는지, 그것이 이내 수그러들었다.
바닥에 떨어진 양팔을 보면서 야왕이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서, 설마 진각성을 아는 것인가?’
그러지 않고는 사전에 차단할 리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진각성을 하면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뭐 이런 멍청한 착각을 하진 않겠지.”
‘!?’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읽힌 야왕이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대, 대체 이놈 뭐야?’
야왕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진각성을 성공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뒤에 있는 이 괴물 같은 자는 모든 기회를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천여운이 그의 머리통을 잡고 있는 채로 물었다.
“라릿샤에 대해서 뭘 알고 있지?”
그 말에 야왕이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졌다고 내가 네놈에게 주저리주저리 뭔가를 말할 것 같으냐!”
야왕은 애초에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곳에 왔을 때부터 자신은 죽은 자나 마찬가지로 여겼던 그였다.
“죽일 테면 죽여라!”
야왕의 외침에 오히려 휘하 마족들이 당혹스러워 했다.
자신들이 왕으로 받드는 자가 저렇게 무력하게 당할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야왕이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목숨을 던질 작정이었다.
“원통하구나. 원통해. 라릿샤여. 아무 것도 못하고 떠나는 이 불충한....”
“이 모습이라면 알겠지?”
“뭐?”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아아앙!
엄청난 풍압과 함께 야왕의 뒤에서 폭풍이라도 몰아치는 듯한 기세가 뿜어져나왔다.
머리가 붙잡혀 있던 야왕이 손이 놓여 지면서 앞으로 튕겨나가 바닥을 굴렀다.
“크윽!”
두 팔이 없어서 균형을 잡는 것이 힘들었다.
앞을 구른 야왕이 겨우 중심을 잡고서 몸을 일으켰다.
'!!!'
그 순간 그의 녹색 안광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이......이럴 수가.....”
야왕은 어찌나 놀랐는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검은 불꽃의 화신과도 같은 모습.
이것은 그가 꿈에서나 그리던 그 모습이었다.
“라....라릿샤!”
< 67화 라릿샤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