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바무트 지하 수감소 (3) >
“칼리아프!
자신을 부르는 기괴한 목소리에 칼리아프 대공이 언덕 위를 쳐다보았다.
녹색 피부에 녹색 안광.
누더기와 같은 검은 망토를 걸치고 있는 괴인.
처음 보는 낯선 모습에 칼리아프 대공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본 대공을 알고 있나? 죄수여.”
죄수라는 말에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마족들의 표정이 한순간에 경계심에서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들은 자신들을 죄수, 흉악범 취급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이곳에 갇힌 것만으로도 지옥과도 같았다.
“이놈!”
“죄수?”
보통 마족들은 대공의 존재만 보아도 겁을 먹거나 두려워한다.
그런데 이들은 확실히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와서 그런지 오히려 적의를 드러냈다.
야왕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녹색 피부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나를.....알아보지 못하는 건가?’
야왕의 눈빛이 실망감으로 물들었다.
“본 대공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죄수여.”
칼리아프 대공이 다시 한 번 언덕 위로 소리쳤다.
그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야왕이 크큭거리며 웃더니 입을 열었다.
“거짓된 위선자 놈. 세월이 흘러도 변한 것이 없구나.”
“거짓된 위선자?”
칼리아프 대공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처음 보는 것도 모자라 죄수에 불과한 자가 자신을 모욕했으니 말이다.
그때 베프만 공작이 안절부절하지 못하며 말했다.
“전하. 저기 제 딸이....”
“알고 있다.”
칼리아프 대공 역시도 그녀를 발견한지 오래였다.
다만 지금 분위기로 봐서 죄수들을 처리해야 아이린 후작을 데려갈 수 있을 듯 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죄수들을 통솔하는 건가?’
이곳 바무트 지하 수감소에 갇힌 죄수들은 서로 동료가 아니었다.
그런데 마치 그들은 누군가의 명을 기다리는 것 마냥 포위한 채로 가만히 서있었다.
칼리아프 대공이 야왕과 마족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수감된 것도 모자라 소멸되고 싶은가 보지. 죄수들아.”
“소멸? 크하하하하하하. 소멸이란다.”
야왕이 기괴한 목소리로 웃어댔다.
그러더니 칼리아프 대공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곳이 네놈이 있던 바깥세상과 똑같다고 생각하나보구나. 네놈은 스스로 지옥문을 열고서 들어온 거다.”
“크하하하핫!”
“킬킬킬킬.”
야왕의 말에 포위한 마족들이 호응하듯이 웃어댔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갇혀 있는 놈들 주제에 헛소리가 많군.”
목소리의 주인은 천여운이었다.
오직 칼리아프 대공에게만 신경이 가있던 야왕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를 섬뜩한 녹색 안광으로 쳐다보던 야왕이 말했다.
“네놈......설마 인간인가?”
야왕의 말에 마족들이 웅성거렸다.
뭔가 자신들과 다르다고 여겼지만 인간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던 그들이다.
‘뭐지?’
야왕은 의아해했다.
바깥만 하더라도 인간이 버틸 수 있는 환경 조건이 아니었다.
그런데 더 가혹한 이곳 바무트 안에 들어와서 멀쩡하게 입을 여는 모습이 뭔가 범상치가 않았다.
‘허장성세인가.’
야왕은 이를 허세로 여겼다.
이곳 바무트는 누가 되었든 오랜 시간 버티기 힘들다.
자신 역시도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 몇 달을 괴로워하며 지냈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푸스스스!
베프만 공작이 자신의 코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연기에 당혹스러워했다.
“이건?”
아까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여겼지만 이상했다.
몸이 더욱 무거워진 것을 넘어서 움직이는게 거북하게 느껴졌다.
“베프만?”
“저...전하....뭔가 이상합니다.”
칼리아프 대공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 역시도 이곳에 내려온 후로 이상 징후에 마력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한데 고위 작위인 베프만 공작이 이를 버티지 못할 정도로면 이곳 환경이 정말 최악이라는 의미였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언덕 위 마족들 중 583만의 전투력을 지닌 근육질의 마족이 입 꼬리를 올리며 야왕에게 말했다.
“바무트의 수혜를 제대로 맛보았군요.”
공작이라고 해도 이곳에서는 모두가 동등했다.
다른 623만의 전투력을 가진 노란 입술의 마족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곧 이곳이 지옥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
이곳 바무트는 마족에게 있어서 최악의 장소였다.
그 비밀을 깨닫는 순간 저들은 절망을 겪게 되리라고 확신했다.
야왕이 손을 들어 올리며 명했다.
“칼리아프 놈을 제외하고 전부 죽여도 좋다.”
“와아아아아아아!!!”
그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포위하고 있던 마족들이 일제히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삼백여 명이나 되는 흉터투성이의 마족들의 기세는 보통이 아니었다.
칼리아프 대공이 피식 웃었다.
“건방진 것들.”
말은 이렇게 하면서 상당히 전의가 오른 모양이다.
그는 원래 호전적인 전사다.
칼리아프 대공이 호기 넘치는 목소리로 천여운에게 말했다.
“나의 주인께서 나서실 필요 없소. 내 선에서 처리하겠소이다.”
“전하!”
베프만 공작이 나서려고 하자 대공이 괜찮다며 다독였다.
“자넨. 이곳에 먼저 적응하게.”
공작이 나서기에는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대공은 자신의 선에서 빠르게 이들을 정리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린 후작이 위험할 지도 몰랐다.
-팟!
칼리아프 대공이 달려드는 그들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그리고 공간을 마블링처럼 휘어서 단숨에 이 많은 마족들을 처리하려 했다.
이를 바라보는 야왕의 눈매가 반달을 그리고 있었다.
“멍청하긴.”
-우우웅!
‘응?’
대공이 능력을 발휘하자 사방의 공간이 휘어질 듯하더니,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어째서?’
대공이 이해할 수 없어했다.
능력을 아무리 발휘하려고 해도 뭔가 강한 반발력에 의해 원상태로 돌아왔다.
처음 겪는 일에 대공이 당혹스러워 했다.
“크하하핫.”
언덕에 있는 마족들이 이를 보며 비웃었다.
대공이라고 해서 조금이나마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623만의 전투력을 가진 마족이 피식거리며 말했다.
“역시 바무트에 적응하지 못하는군요. 하긴 대공이고 할 것 없이 마력 체계가 역장에 의해 완전히 바뀐 공간에서 뭘 하겠습니까?”
그 비밀은 바로 이곳 지하 공간에 있었다.
행성 내부의 정반대된 힘의 작용으로 마력 체계가 뒤바뀐 곳이 바로 바무트 지하 수감소였다.
그들은 대공이든 누가 오든 두렵지 않았다.
자신들은 수많은 세월에 걸쳐 이곳에 적응했고 그 많은 흉악한 자들 속에서 경쟁을 통해 살아남았다.
“크크크큭. 꼴이 우습게 되었구나. 칼리아프.”
야왕이 그 모습을 보면서 비웃었다.
이런 날이 오기만을 고대했는데 드디어 그 순간이 왔다.
이곳에서 바깥의 100은 0이나 마찬가지였다.
“네놈은 끝이다.”
벌떼처럼 달려드는 마족들은 칼리아프 대공을 뼈속까지 해체할 기세였다.
이를 음미하듯이 야왕이 흥분된 눈으로 쳐다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누구 선에서 끝난다는 건지.”
그 말과 함께 천여운이 앞으로 나섰다.
“주인. 잠깐 기다려보시오!”
-슥!
뜻하지 않게 마력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자존심이 상한 칼리아프 대공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진각성을 하려 했다.
그러나 마력을 일순간에 최대치로 응축했다가 폭발시키는 진각성이다. 그런데 마력이 통제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쉽게 이뤄질 리가 만무했다.
“.......”
“됐다. 그냥 가만히 있어라.”
“크흠."
칼리아프 대공이 민망했는지, 연신 헛기침을 하며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멍청한 놈. 칼리아프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쯧쯧.”
야왕이 그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찼다.
칼리아프 대공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죽일 작정이었는데, 제 손으로 무덤을 파는 격이라 생각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쾅!
뒷짐을 지고 있던 천여운이 바닥을 향해 진각을 밟았다.
그러자 칼리아프 대공과 베프만 공작이 있는 주변을 제외한 바닥들이 갈라지며 날카로운 돌기둥들이 무차별적으로 튀어나왔다.
-파파파파팍!
“끄악!”
“컥!”
선두에서 달리고 있던 마족들이 방심하다 날카로운 돌기둥에 몸이 꿰뚫리고 말았다.
그 광경에 야왕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수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떻게 힘을 쓰는 거지?”
이곳에서 능력이나 마력을 발휘하려면 오랜 세월에 걸쳐 적응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게 힘을 발휘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돌기둥을 피해서 공격해!”
그러나 이곳의 마족들은 바깥에 있는 자들보다도 훨씬 전투 경험도 많고 악바리들이었다.
처음을 제외하고는 돌기둥들을 요리조리 피해서 달려들었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용없다!”
“죽엇!”
천여운의 근방으로 접근해온 다섯 명의 마족들이 동시에 합공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여운이 뒷짐을 풀지 않고서 앞으로 걸어갔다.
다섯 마족들의 손에서 각양각색의 마력이 구체화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며 천여운을 위협했다.
그 순간,
-푸푸푸푸푹!
“컥!”
“끄악!”
허공에서 검은빛 무형의 검이 나타나 그들의 핵을 정확하게 찔렀다.
갑작스럽게 당한 그들의 공격은 닿지도 못한 채, 그대로 재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그 광경에 마족들이 당혹스러워 했다.
“뭐, 뭐야?”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저벅저벅!
그런 그들의 반응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지 천여운은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향하는 곳은 언덕 쪽이었다.
“역시 내 주인답군. 베프만!”
“네. 전하!”
칼리아프 대공과 베프만 공작이 서둘러서 그 뒤를 따랐다.
자신들이 어째서 마력을 쓸 수 없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천여운은 전혀 그 영향을 받고 있지 않았다.
“지금 뭣들 하는 거야! 빨리 놈들을 죽여!”
언덕에 있는 야왕의 수하 마족들 중에 외팔이 소리쳤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방금 전에 있었던 광경 덕분에 마족들이 멈칫거리며 망설이고 있었다.
‘이걸 무슨 수로?’
심지어 그가 외친 그 순간에도 조심스러웠다.
그저 걸어오는 것뿐이었는데, 천여운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그들을 위축시켰다.
‘저 호전적인 놈들이 겁을 먹어?’
저들은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는 전사들이다.
그런데 알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힘에 겁을 먹고 있었다.
‘저놈은 어째서 바무트의 영향을 받지 않는 거지?’
야왕이 의문을 가졌다.
이곳에 갇힌 죄수들 중에는 탈리샤의 일족들도 있었다.
그들조차도 바무트에 갇히게 되면 무력해져서 힘을 쓰지 못했다.
‘칫.’
어찌 되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간 휘하 마족들의 사기가 꺾이게 생겼다.
분위기 반전이 필요했다.
야왕이 자신의 양쪽 편에 서있던 공작들조차 능가하는 전투력을 지닌 두 마족들을 쳐다보았다.
583만, 623만의 전투력을 가진 대단한 자들이다.
“너희들이 나서야 겠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처리하죠.”
“저놈을 소멸시키겠습니다.”
두 마족이 천여운에게 겁먹은 마족들의 모습에 혀를 차면서 언덕의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그들의 뒷모습은 듬직했다.
그들은 이곳 바무트 지하 수감소에 갇힌 마족들 중에 야왕을 제외하면 최강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외팔의 마족이 무력하게 엎드려서 이것을 지켜보고 있는 아이린 후작에게 이죽거렸다.
“계집. 좋은 구경하게 생겼구나.”
“뭐....뭐가 말이죠?”
“저 두 분은 야왕께서 오시기 전에 지하 수감소에서 패권을 다투던 괴물들이지. 저들이 나선 이상 저놈은 더 이상 날뛰지 못한다.”
그런 그의 말에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던 아이린 후작이 갑자기 비웃음을 쳤다.
“하!”
이에 불쾌감을 느낀 외팔이 마족이 짜증을 냈다.
“이년이 미치기라도 했나.”
“당신이야 말로 착각하고 있군요.”
“뭐?”
“여기 있는 자들 중에서도 누구도 내 왼쪽 눈을 터뜨린 자는 없었어요.”
“왼쪽 눈?”
그녀의 능력을 정확히 모르는 외팔의 마족이 무슨 소리냐는 식으로 반문했다.
이에 그녀가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천여운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두 마족을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예언했다.
“저들이 과연 얼마나 버틸까요?”
-꽉!
“으윽!”
외팔이 마족이 그녀의 백발을 거칠게 움켜잡으며 소리쳤다.
“이년이 보자보자 하니까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얼마나 버텨? 오냐. 이참에 내기 하나 할까? 저분들의 손에 놈은 시체조차 남아나지 않는다에 이 남은 한 팔도 걸...”
-촥!
그때 뭔가를 가르는 선명한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
그 순간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천여운을 향해 걸어가던 바무트 수감소 내 최강이라 불리던 두 마족의 목에 검은 선이 생겨났다.
그러더니 이내 그들의 목이 옆으로 흘러내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데굴데굴!
바닥을 뒹구는 두 머리통.
그들의 얼굴 표정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당한 건지도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공동에 있는 모든 마족들이 경악한 나머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특히,
“걸....걸....”
과감하게 자신의 하나 남은 팔을 걸겠다고 하려 했던 외팔이 마족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66화 바무트 지하 수감소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