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기습 (2) >
칼리아프 대공의 성채에 다섯 배는 되어 보이는 화려한 붉은 성.
이곳은 일족들의 수장인 마왕의 성이다.
성내에 있는 한 별관.
별관의 원탁 테이블에 세 명의 인물들이 앉아 있었다.
테이블 주변에 서있는 다른 마족들보다도 위엄을 갖추고 있는 이들은 마왕의 심복이자 최측근이라 불리는 세 공작들이다.
원탁의 테이블에는 지도가 펼쳐져 있었는데, 지도 내에 붉은 점들이 표기되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전투가 격렬하나보군.”
지도 속 붉은 점들은 중정의 한가운데를 비워두고 관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리저리 움직였다.
세 공작들 중에 가는 눈매에 짧은 청발의 마족, 데루안 공작이 한 쪽 눈을 감고서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흑발의 마족에게 물었다.
“에드휘.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흑발의 마족의 이름은 에드휘 공작.
최측근들을 통제하는 우두머리라 불리는 자이다.
특이한 것은 이 에드휘 공작은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다른 공작들보다 좀 더 동양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승기는?”
“정확히는 보이지 않는다. 거리가 멀어.”
그런 에드휘 공작의 말에 적발의 두꺼운 입술을 가진 마족, 리곤 공작이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요인 측에 공백안을 심어뒀으면 좋았을 련만.”
“그랬다면 칼리아프 대공이나 두 공작들이 눈치 챘겠지. 이게 최선이다.”
데루안 공작의 그 말에 리곤 공작이 웃으면서 짚어주었다.
“이제 베프만 한 명뿐이다.”
“흐흐흐, 그래. 자네 말이 맞네.”
놀랍게도 그들은 현재 칼리아프 대공 가에서 벌어지는 일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
마치 지켜보듯이 말이다.
그 중심에는 이들의 수장인 에드휘 공작이 있었다.
감고 있는 그의 한 쪽 눈은 이곳 별관 회의실이 아닌 다른 장소를 보고 있었다.
“놀랍군.”
“왜 그러지?”
“칼리아프 대공이 밀리고 있다.”
에드휘 공작의 그 말에 두 공작들이 놀라워했다.
다른 자도 아닌 칼리아프 대공이다.
그의 전투력은 과거 제 3차 대전쟁 당시에 모두가 확인한 바가 있다.
“허어. 대공이 밀려?”
“대체 그 인간은 뭐지?”
두 공작들은 칼리아프 대공을 압도하는 그 인간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런 그들에게 에드휘 공작이 지시했다.
“슬슬 준비해라.”
그 말에 두 공작들의 얼굴이 전의로 잔뜩 고양되었다.
“전투가 끝나가고 있나?”
“그래.”
에드휘 공작의 대답에 두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생일대의 기회로군.”
“가세!”
갑주를 걸친 그들은 전장터로 향하는 장군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들이 별관 밖으로 나갔다.
별관 밖으로 나가자 수천 명에 이르는 마족들이 오열을 맞춰 서있었다.
무장한 그들의 병장기나 복장만 보아도 철저하게 전쟁을 준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그들의 사기는 대단했다.
이번 싸움이 향후 일족의 대세를 판가름한다.
* * *
-저 자인가?
진각성한 리곤 공작이 옆에 있는 데루안 공작에게 물었다.
데루안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군.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자는 바로 천여운이었다.
오자마자 위치를 파악한 것은 그가 최고의 난적이기 때문이었다.
‘고작 인간이 대공을 이겼다라....’
한 팔이 없는 칼리아프 대공의 모습이 그 증거였다.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눈빛을 교환했다.
이미 에드휘 공작에게서 사전 브리핑은 마친 상태였다.
[현재 상황은 칼리아프 대공과 그 인간이 대결을 마친 상태. 둘 모두 지친 상태라 할 수 있다. 지금만큼의 적기는 다시 오지 않는다.]
요지는 이랬다.
입안의 가시 같던 대공을 처리하고 아리샤의 무구도 회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시작해보실까.
-좋아!
데루안 공작과 리곤 공작이 동시에 손을 아래로 뻗었다.
그것은 허공에 떠있는 오십여 명의 후작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성의 상공으로 진입시. 무조건 각자가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원거리, 대인 기술들로 중정 내를 난사해라. 특히 칼리아프 대공과 그 인간을 노려라.]
에드휘 공작의 지시였다.
기습의 최대 이점을 노린 작전이었다.
-우웅! 우웅!
-슈슈슉! 화르르륵!
성의 상공이 수많은 색색 에너지 구들부터 마족들이 펼칠 수 있는 각종 대인 공격기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각성을 한 후작 급 마족들부터 진각성을 한 두 공작이 전력으로 힘을 발휘하자 성의 상공은 절망으로 가득 찼다.
“이, 이런.....”
칼리아프 대공 휘하의 마족들이 하늘을 가득 메운 수많은 화염, 번개, 에너지 구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공교로운 상황이었다.
하필 칼리아프 대공과 천여운이 겨루면서 성의 방어 시스템의 절반 가까이가 마비된 시점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저, 저걸 무슨 수로 막아?”
마족들이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했다.
“모두 산개해랏!”
“피해랏!”
후작 급 마족들이 다급히 소리쳤다.
하늘을 뒤덮은 저 엄청난 공격들은 지금 그들로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피하는 것만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답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아아아아아!
어디선가 엄청난 기운과 함께 강렬한 풍압이 일어났다.
벌써 저들의 공격이 도달한 것인가 싶어 당황해 했던 베프만 공작의 두 눈이 커졌다.
‘아!’
어둠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한 이형의 모습.
그것은 천여운이 대공 급의 마족들처럼 진각성을 한 모습이었다.
이를 발견한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저것인가?’
상공에 있는 마왕의 측근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천여운과 칼리아프 대공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는 그들이었다.
진각성한 천여운의 모습에 그들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정말로 진각성을 했네. 농담인가 했더니.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이미 에드휘 공작에게 천여운이 진각성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들은 그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놀라더라도 망설임은 없었다.
-소용없다.
-이미 늦었다. 모두 공격하라.
데루안 공작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각성한 후작급 마족들이 동시에 자신들의 최고 대인 원거리 기술을 펼쳤다.
성의 상공을 가득 메운 그들의 기술들이 중정을 난사했다.
-파파파파파파파파팍!
그야 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피햇!”
대공 휘하의 전 마족들이 기겁을 하며 사방으로 산개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진각성한 천여운이 허공을 향해 손을 들어올렸다.
두 공작이 이 모습을 보며 비웃었다.
-멍청한 놈.
-이미 늦었다고...!?
그 순간 그들이 공격을 난사하는 허공의 지점으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콰드드드득!
멀쩡했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회오리를 치며 강한 인력이 발생했다.
그것은 이 넓은 중정의 크기에 버금갔기에 마치 허공에 거대한 블랙홀이라도 생긴 것처럼 보였다.
-그저 겉보기 만이 아니라 이거지.
-그래 한 번 막아 보거라.
이 광경에 두 공작들이 더욱 마력을 끌어올렸다.
단번에 이 이상 변화를 깨부술 각오였다.
그런데 그들의 뜻과 달리,
-파파파파파파파팍!
회오리치는 블랙홀 같은 공간 속으로 그들이 펼친 최고의 대인 원거리 공격들이 청소기마냥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각성한 후작들의 공격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이럴 수가!
-공격들이 흡수되고 있어.
보면서도 믿기 힘들었다.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였다.
진각성한 공작 둘과 오십여 명의 각성한 후작들의 공격을 고작 한 사람의 일개 인간이 막아버린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나라고 알겠나?
두 공작들은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그러던 차에 일그러졌던 공간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슈우우우우!
그로 인해 중정에 있던 마족들 역시도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 역시도 천여운이 보인 힘에 경이로워하고 있었다.
"세상에...."
"저, 저걸 막았어."
"어째서 인간이 우리를?"
그 모습에 리곤 공작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설마 저들을 보호한 건가?
이에 데루안 공작이 부정했다.
-그럴 리가. 놈들은 방금 전까지 싸웠던 대립 관계다. 갑자기 뜬금없이 손을 잡을 리가....엇?
그때 그들의 눈동자에 천여운이 위로 뛰어오르기 위해 무릎을 구부리는 것이 보였다.
이상했다.
그저 무릎을 살짝 굽힌 것뿐인데, 마치 로켓이 발사되기 직전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콰아아앙!
진각성한 천여운이 굽혔던 무릎을 펴면서 위로 뛰어올랐다.
그 순간 엄청난 힘에 의해 중정 바닥이 100미터 가까이 함몰되며 부서졌다.
-온다!
-모두 놈을 산개해서 공격해!
-파팟!
마족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상공으로 날아오는 천여운을 향해 모든 공격을 집중하려 했다.
그런데 허공을 박차 오르던 천여운의 모습이 희미해졌다.
진각성한 두 공작들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다.
-팡!
그 순간 산개한 마족들의 사이로 뭔가가 엄청난 속도로 스치고 지나갔다.
그저 스치고 지나갔을 뿐인데, 공기의 파동이 일어나며 후작들의 몸이 거칠게 튕겨나갔다.
-파파파파팡!
“흐억!”
“컥!”
그들은 엄청난 타격이라도 입은 것처럼 입에서 검은 연기를 내뱉었다.
그런데 이것은 그나마 나은 축에 속했다.
-파스스스스!
일직선으로 스치고 지나간 것의 근처에 있던 여덟 명의 후작들이 순식간에 전신이 찢겨나가며 재처럼 흩어졌다.
-이런!
데루안 공작이 그들을 스쳐지나간 무언가를 쳐다보았다.
그들보다 높은 상공에 어느새 진각성한 천여운이 신이라도 된 것처럼 오만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오기가 생긴 데루안 공작이 일갈을 토해내며 날아올랐다.
-이노오오오옴!
그가 두 팔을 활짝 펴자 그의 전신이 용암처럼 변했다.
마족들 중에서 가장 뜨거운 남자.
그것이 바로 데루안 공작이었다.
-네놈을 잿가루로 만들어주마!
용암이 내뿜는 뜨거운 열기의 추진력을 받은 데루안 공작이 엄청난 속도로 천여운을 향해 쇄도했다.
그때 천여운이 날아오는 데루안 공작을 향해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슈우우우우우!
그가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파아아아아앙!
손바닥으로 날아오는 용암으로 변한 데루안 공작을 내리쳤다.
‘견딘다! 견뎌야 한다!’
데루안 공작이 이를 악물었다.
용암체로 변한 그의 이 몸통 박치기는 거대한 산맥마저 부숴 녹아내릴 위력을 가졌다.
절대로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쾅!
-끄엑!
부딪치는 순간 데루안 공작의 몸이 거대한 무언가에 휩쓸리며 이내 머리부터 시작해 전신이 그대로 압력에 의해 부서져버리고 말았다.
-파스스스!
그 광경에 리곤 공작을 비롯한 후작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 진각성한 데루안을 고작 한 방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강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같은 진각성인 만큼 약간의 차이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이건 격차가 너무도 컸다.
그때 데루안 공작을 죽인 천여운이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모두 산개햇!
그가 자신들을 노린다고 판단한 리곤 공작이 다급히 후작들을 향해 소리쳤다.
후작들 역시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누구 할 것 없이 엄청난 속도로 여러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화르르르륵!
그때 천여운의 주변으로 검은 불꽃의 검들이 나타났다.
백 자루 정도에 불과한 숫자였는데, 그 검이 나타난 순간 리곤 공작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공포를 느꼈다.
‘위험해. 위험해.’
뒤조차 보지 않고서 날아가는데, 그의 본능이 위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푹!
뭔가가 그의 복부를 꿰뚫고 지나갔다.
-컥!
리곤 공작이 자신의 복부를 뚫고 지나간 무언가를 쳐다보았다.
그것은 검은 불꽃의 검이었다.
그렇게 그의 몸을 꿰뚫은 검은 불꽃의 검이 허공에 빛의 선을 그리며 엄청난 속도로 방향을 틀고서 다시 날아왔다.
-비, 빌어먹을!
리곤 공작이 다른 방향으로 몸을 틀어 이를 피하려 했다.
바로 그 순간,
-푹!
그의 안면을 뭔가가 관통해서 지나갔다.
그것은 검은 불꽃의 검이었다.
그의 안면을 꿰뚫은 검은 불꽃의 검은 또 다시 방향을 틀어 이번엔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가슴을 뚫었던 검 역시도 그의 다른 부위를 꿰뚫었다.
마치 검은 불꽃의 검들은 먹이를 먹어치우는 피라냐 마냥 리곤 공작의 전신을 파괴해갔다.
‘!!!’
중정에서 상공을 쳐다보는 모든 마족들이 하나 같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전노장인 칼리아프 대공 역시도 넋을 놓고서 중얼거렸다.
“이거.....실화냐.”
-촥! 촥! 촥!
그의 눈동자로 검은 불꽃의 검들이 허공에 검은 궤적을 그리며 각성한 후작들을 파괴해가는 것이 보였다.
"끄악!"
"크헉!"
-파스스스!
도망가던 후작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이 궤적에 휩쓸려 재가 되어 사라졌다.
허공이 비명과 흩날리는 잿가루들로 뒤덮여갔다.
그라고 해도 저 정도 전력을 이렇게 순식간에 전멸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칼리아프 대공이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그게 전력이 아니었다고?’
< 65화 기습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