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196화 (196/234)

< 64화 대공 (2) >

당장 게이트를 열라는 말에 베프만 공작의 표정이 좋지 않다.

그를 지구의 신적인 존재로 오인한 만큼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이곳에선 천여운을 막을 자는 누구도 없었다.

선택권은 두 개 뿐이었다.

요청을 거절하고 죽음을 택하든지 혹은 그의 요구대로 게이트를 열어서 자신들의 행성으로 데리고 가는가 였다.

‘데리고 가면 분란은 무조건 일어난다.’

천여운의 목적은 다분히 호전적이었다.

그 못지않게 오만한 칼리아프 대공이 절대로 고개를 숙일 리가 없었다.

칼리아프 대공은 단연 대공들 중에서도 최강이라 불리는 역량을 가진 절대자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마왕의 최측근들과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그분을 믿지만 만에 하나....’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최측근들만 어부지리 하는 상황을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산하 마족들은 전부 숙청될 것이다.

그때 그의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텔레파시 음성이 들려왔다.

[파파.]

그 음성의 주인은 아이린 후작이었다.

베프만 공작이 놀란 눈으로 천여운의 눈치를 보았다.

혹여 그가 자신들의 텔레파시를 들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다.

[파파!]

[위험한 짓 하지 말거라. 마신께서 들으신다.]

[.....무슨 말씀하시는 거에요. 대공이나 마왕께서도 할 수 없는 일을 저 자가 어떻게 한단 말이에요.]

[그만 하거라!]

베프만 공작이 당황해서 경고했다.

그런 그의 말을 무시하고서 그녀가 텔레파시를 보냈다.

[텔레파시를 하는 것은 눈치챌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내용까지는 알 수 없어요.]

[허어.]

[시험해보면 되죠. 위대하신 존재여. 제 텔레파시가 들리나요? 들린다면 저를 쳐다보시죠.]

그런 그녀의 말에도 천여운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베프만 공작의 머리채를 붙잡은 채 말했다.

“게이트를 열라는 말 안 들리나?”

‘아!’

이를 통해 베프만 공작은 그가 텔레파시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자신이 괜히 지레짐작했다는 생각에 괜히 민망해졌다.

그런 그에게 아이린 후작의 음성이 들려왔다.

[봤죠? 파파....차라리 잘됐어요.]

잘됐다는 말에 그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차피 저 자의 손에 아리샤의 무구들이 있잖아요.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저희 쪽에서 회수해야 해요.]

그녀의 말이 옳았다.

칼리아프 대공이 최측근들과의 전쟁에 승리하고 마왕이 되기 위해서는 아리샤의 갑주는 무조건 필요했다.

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컸다.

[감당할 수 없는 폭탄을 들이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감당할 수 있게 만들어야죠.]

[그게 무슨 말이느냐?]

[저 자의 게이트 좌표만 바꾸면 돼요.]

그 말에 베프만 공작의 두 눈이 개안이라도 한 것처럼 반짝였다.

생각해보니 게이트 좌표를 바꿔서 설정할 수 있었다.

다른 행성으로 가는 게이트 입구는 오직 한 곳으로 제한되어 있었지만 돌아갈 때만큼은 원하는 좌표로 돌아갈 수 있다.

[좋은 생각이구나. 그런데...]

[파파. 일단 의심할 수도 있으니, 마지못해 받아들인다고 하세요.]

아이린 후작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한 베프만 공작이 다급히 말했다.

"정녕 넘어가실 겁니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베프만 공작이 그녀의 말대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게이트를 열겠습니다."

-웅성웅성!

그런 그의 말에 아무 것도 모르는 마족들이 당혹스러워했다.

'정말 저래도 되는 거야?'

'대공께서 노하실 텐데.'

아무리 투항했다고 하지만 여태껏 타행성의 존재를 자신들의 행성으로 옮긴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군. 정말 가실 겁니까?”

갑작스러운 천여운의 결정에 허봉이 물었다.

“그래.”

한 번 결정을 내리면 어지간해서는 번복하지 않는 천여운이다.

그걸 알기에 허봉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아니. 가는 건 나 혼자다.”

“네? 혼자가시다뇨!”

허봉뿐만이 아니라 백기나 대장로 문란영 역시도 반대하는 눈치였다.

아무리 천여운이 강하다고 해도 주군을 적진에 홀로 보내는 수하들이 어디 있겠는가.

금모 구미호도 이에 동의하는지 말했다.

“천마! 거기가 어딘지 알고 혼자 가겠다는 거야? 그럼 나랑 같이 가자.”

“아니. 너희는 이곳을 지켜라.”

“주군!”

“천마시여!”

모두가 반대했으나 천여운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것에는 중대한 이유가 있었다.

다른 행성에 가는 것이기에 만에 하나의 확률로 돌아오지 못할 상황도 염두했기 때문이었다.

차마 이 말을 하게 되면 더욱 난리가 날까봐 천여운은 두 번째 이유를 들었다.

“MS 그룹에 대항할 여력은 남아있어야 한다.”

순수한 천마신교의 여력도 현재는 매우 강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MS 그룹은 뛰어난 과학 기술로 고수들마저 양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런 것을 감안한다면 금모 구미호를 비롯해 천여운의 직속 수하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그나마 안전했다.

“주군!”

허봉이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정말 그런 이유시라면 저는 아내, 아니 대장로나 백기에 비해서 약합니다. 저 하나를 데려간다고 해서 크게 전력에 지장은 없습니다.”

그 말에 천여운이 골치가 아픈지 이마를 매만졌다.

천여운도 그랬지만 허봉의 고집도 보통이 아니었다.

충심이 강한 그는 늘 천여운의 곁에서 보좌를 하려고 했다.

“천마시여. 그렇게 하시죠. 대 천마신교의 천마께서 수발을 들 사람 하나 없이 가는 것은 아닙니다.”

문란영 역시도 간청했다.

남편만 보내는 것이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천마를 혼자 보낼 수 없었다.

백기가 이를 거들었다.

“허봉의 말이 맞습니다. 녀석은 있으나마나 하니, 주군의 시종으로 데려가시죠.”

‘있으나마나?’

허봉이 어이가 없었는지 인상을 찡그리면서 백기를 쳐다보았다.

거드는 말인데 뭔가 거드는 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에 천여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주군! 어째서요?”

“더 이상 토를 달지 마라.”

그 말과 함께 천여운이 베프만 공작의 머리에서 손을 떼며 종용했다.

“게이트를 열어라.”

“주군!”

천여운이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허봉의 충성심에 늘 고마워하고 있는 그였다.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절대로 데려갈 수가 없었다.

‘네가 만약 나와 같이 그곳에 갇히기라도 한다면 남겨진 대장로는 어찌 하겠나.’

천여운은 아내나 다름없는 문규를 떠올릴 때마다 늘 마음에 걸렸다.

그들이 그런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걱정마라. 금방 돌아오겠다."

*  *  *

용천 그룹 본사의 비상 계단.

게이트를 열기 위해 베프만 공작과 아이린 후작은 옥상으로 향하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면서 베프만 공작이 텔레파시로 물었다.

[아이린. 한데 저 자를 어디로 옮긴다는 것이냐? 설마 마왕성으로 좌표를 옮기자는 것은 아닐 테고.]

아리샤의 무구를 가지고 있는 천여운을 아무데나 보낼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그의 물음에 아이린 후작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파파. 그곳이 있잖아요.]

[그곳?]

[바무트의 지하 수감소.]

[바무트? 아니. 그곳은 최악의 죄수들만을 가두는 곳이지 않느냐?]

바무트의 지하 수감소.

그곳은 일족에 있어서 최악의 죄수들 혹은 적대 관계인 자들을 가두는 수감소였다.

한 번 들어가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극악의 감옥이다.

마침 칼리아프 대공의 영역의 한복판에 이 지하 수감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곳으로 보내는 거죠.]

[그곳에 보내서?]

[그곳에 가둬두고 저 자와 죄수들과 싸우게 만드는 거에요.]

[호오.]

그녀의 계획에 베프만 공작이 흥미를 가졌다.

원래부터도 자신의 오른팔로서 군사의 역할을 한 그녀답게 지혜로웠다.

[바무트 지하 수감소 내에 있는 죄수들 중에는 공작 급에 달하는 괴물들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 죄수들에게 저 자를 처리하면 사면해주겠다고 제안한다면 모두가 저 자를 처리하기 위해 안달이 나겠죠.]

[네 계획을 알겠구나.]

[맞아요. 저 자가 대공 급에 필적하는 자라고 해도 그 많은 죄수들을 상대하고 나면 힘을 소진할 수밖에 없겠죠.]

[그때 대공 전하를 모시고 전력을 이끌고 가서 처리하면 되겠구나.]

완벽한 그녀의 계획에 베프만 공작은 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뒤에서 따라오는 천여운에게 조금이라도 수상한 모습을 보일 수 없기에 전혀 내색하지 않고 걸었다.

-쿵!

철문이 열리며 헬기마저 착륙할 수 있는 넓은 옥상이 드러났다.

옥상에 올라온 자들은 단 셋뿐이었다.

다른 마족들은 당연히 볼모로 붙잡은 천여운이었다.

그들을 압도하는 존재인 금모 구미호가 있는 한 그들이 탈출할 수 있는 확률은 제로나 다름없었다.

-탁!

아이린 후작이 케이스 가방 같은 것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게이트를 열기 위한 기기였다.

마족들은 단순히 호전적인 존재들처럼 보이지만 타 행성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게이트를 열만큼의 기술이 발달했다.

-타타탁!

게이트의 설정을 조작하는 그녀에게 천여운이 넌지시 말했다.

“혹시 해서 경고한다. 쓸데없는 헛짓거리는 하지 마라.”

날카로운 경고에 그녀가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답했다.

“같이 이동하는데, 위대하신 존재께 어찌 그런 불경한 짓을 할 수 있겠나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그 불경한 짓을 하려고 천여운이 서있는 위치의 좌표를 조정 중이었다.

일부로 의심받지 않기 위해 기기의 화면까지 보이고 있었다.

‘역시 일족의 언어를 알진 못하는군.’

베프만 공작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천여운이 자신들의 언어를 알았다면 분노했을 지도 모른다.

좌표설정이 끝난 그녀가 말했다.

“서있는 위치에서 움직이지 말아주십시오. 게이트로 이동되는 도중에 움직이거나 하면 간섭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가 당부했다.

‘그래야 바무트 지하 수감소에 제대로 떨어질 테니까요. 후후후.’

속으로 그를 비웃은 그녀가 게이트 이동 장치의 버튼 중 하나를 눌렀다.

그러자 게이트 이동 장치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우우우우웅! 파앗!

공간이 뒤틀리는 느낌과 함께 허공으로 거대한 게이트가 열렸다.

그 모습이 구멍이 뚫린 형태와 같았다.

“이동합니다.”

그 말과 함께 그녀가 다른 버튼에 손을 가져갔다.

확실하게 성공했다는 생각에 그녀의 입 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츠츠츠츠!

그들이 서있던 곳을 중심으로 입자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게이트로 입자가 빨려 들어가는 현상이었다.

‘멍청한 놈. 네놈이 아무리 강해봐야 월등히 진보된 기술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우리의 승리다.’

-츠츠츠츠! 슈우우우!

이윽고 전신의 입자가 흩어지며 그녀의 의식이 끊겼다.

*  *  *

지구에서 수억광 년은 떨어진 한 갈색 빛을 띠고 있는 행성.

지구보다 몇 배에 달하는 크기의 이 행성의 주변에는 위성으로 보이는 세 개의 행성이 돌고 있었다.

아마도 이 행성에서 볼 때 그것은 세 개의 달처럼 보일 것이다.

지구와 달리 구름 한 점 없는 이 행성에서 하늘을 쳐다보면 온 세상이 붉은 색으로 보였다.

그런 붉은 색 하늘을 가진 행성의 한 거대 도시.

그 도시에서도 한 복판에는 뾰족한 형태를 하고 있는 한 큰 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성은 도시를 지배하는 대공 칼리아프의 거처였다.

수백 명의 마족들이 지키고 있는 대공 칼리아프의 성의 바로 위 상공에서 공간이 뒤틀리며, 거대한 게이트가 열렸다.

-우우우우웅! 파앗!

“게이트다!”

“게이트가 열렸다!”

이를 발견한 성곽을 지키는 마족들이 소리쳤다.

얼마 있지 않아 성문이 열리며 안에서 많은 마족들이 성의 중정으로 화려한 복장을 하고 있는 이들이 걸어 나왔다.

그들의 선두에 금색 관을 쓰고 있는 붉은 망토를 걸치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다른 자들과 달리 근엄한 위엄을 갖춘 그는 대공 칼리아프였다.

“우리 쪽 게이트가 맞나?”

그 물음에 옆에서 보좌처럼 따르고 있던 갈색 머리카락에 녹색 갑옷을 입고 있는 사내가 단말기를 확인하며 답했다.

“저희 쪽 신호가 맞습니다.”

사내는 칼리아프 대공의 왼팔인 이고르 공작이었다.

칼리아프 대공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빠르군.”

그들을 게이트로 보낸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온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때 성의 중정 한 가운데로 입자가 모이며 인영의 형태를 갖추어갔다.

두 사람의 인영이었다.

-츠츠츠츠츠츠!

입자가 거의 완벽하게 형태를 이루자, 인영 중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외쳤다.

“신 공작 베프만이 주군이신 대공 전하를 배알하나이다.”

그는 바로 공작 베프만이었다.

베프만이 자신의 주군인 칼리아프 대공을 보고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그 안도가 가시기 전에 다급히 말했다.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지금 당장 전력을 이끌고 바무트 지하 수감소로 향하셔야 합니다.”

“바무트?”

“자세한 사정은 가면서 신이 설명하겠습니다. 지금 바무트에 아리샤의 무구를 가진 위험한 존재가 갇혀 있습니다. 아이린 후작의 기지로....전하?”

그를 채근하던 베프만 공작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다.

칼리아프 대공을 비롯한 모든 마족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옆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린......!!!’

고개를 옆으로 돌린 베프만 공작의 두 눈이 커졌다.

“이, 이게 대체?”

아이린 후작이 있어야 할 자리.

그 자리에 서있는 자는 다름 아닌 천여운이었다.

천여운이 경악해하는 그를 바라보면서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작 부리지 말랬지.”

*  *  *

같은 시각 사방이 온통 어둠으로 둘러싸인 공동.

음산하다 못해 불쾌함으로 가득한 공동의 한 가운데 한 백발의 여인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여, 여긴....”

그녀는 바로 아이린 후작이었다.

그녀가 영문을 알 수 없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헉!’

어둠으로만 가득한 공동의 곳곳에 수많은 붉은 눈동자들이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마치 먹잇감을 보듯이 말이다.

“......말도 안 돼.”

그녀는 본능적으로 이곳이 어딘지 알 수 있었다.

“내, 내가 어째서 이곳에?”

흉악한 죄수들로만 가득한 이 공동은 최악의 감옥이라 불리는 바무트 지하 수감소였다.

천여운이 갔어야 할 장소에 그녀가 도착한 것이다.

예기치 못한 결과에 당혹스러워하는 그녀의 귓가로 소름 끼치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여자다!”

“먹을 거다!”

“장난감이다!”

무엇을 들어도 사색이 될 수밖에 없는 말들.

그녀의 당혹감은 어느새 공포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 64화 대공 (2) > 끝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