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아리샤의 갑주 (1) >
제남시 북동쪽의 한 높은 산봉우리.
그곳에 망토 후드를 입은 존재가 팔짱을 끼고 서서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MS 그룹에서 제 4객주라 불렸던 자였다.
그의 곁에는 유럽풍의 귀족 옷을 입은 금발의 사내가 뭔가 독특한 형태의 단말기를 살피고 있었다.
이를 계속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금발의 사내가 망토 후드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각하.”
“신호가 잡혔나? 카울 후작.”
“아닙니다.”
“그럼 무슨 일이지?”
“각하. 아뢰옵기 송구스럽습니다만. 굳이 이 행성에 투입된 귀족들이 전부 도착하길 기다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자가 제법 강하긴 하지만 여기 있는 귀족들 선에서도 충분히 처리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카울 후작이라 불린 금발의 사내가 뒤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들이 서있는 언덕의 아래쪽에 열두 명의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남녀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전부 상위 백작 급에 해당하는 일족들이었다.
“다른 귀족들은 나머지 3개의 아리샤의 무구를 수색하고 배신자 놈을 찾도록 하는 것이 어떠신지요?”
그들 이외에도 지구로 넘어온 작위 급 귀족들은 서른.
그 서른 명의 귀족들은 각기 뿔뿔이 흩어져서 아리샤의 무구들을 찾고 있었다.
그들이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는 아리샤의 무구는 MS 그룹의 섹터에서 영상으로 보았던 것뿐이었다.
그런 카울 후작의 의견에 망토 후드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리샤의 검은 보물 중에서 가장 으뜸. 혹여 소유자가 검의 능력을 사용할 줄 알게 된다면 위험할 수도 있다. 확실하게 해두는 편이 좋다.”
“......알겠습니다.”
그의 명을 거역할 수 없기에 카울 후작은 받아들였다.
카울 후작이 다시 독특한 형태의 단말기를 들고서 신호 파악에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단말기에서 경고음 같은 것이 났다.
-우웅! 우웅! 우웅!
경고음과 함께 단말기의 화면에 물결 표시의 원형이 생겨났다.
그것의 모양은 마치 통로와도 같았다.
“각하!”
카울 후작이 놀라서 심각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후작의 단말기 화면을 얼핏 본 망토 후드의 사내가 무거워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게이트가 열렸군. 마력 상태는?”
“고, 공작 작위 급입니다. 그 외에도 다수 작위 급의 마력들이 게이트로 진입해오고 있습니다.”
당황해하는 카울 후작의 말에 망토 후드 사이로 보이는 그의 눈동자가 날카로워졌다.
“저쪽도.....움직였군.”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각하께서 장기간 자리를 비우셨으니.”
“어쩔 수 없군.”
“그럼?”
“서두른다. 당장 아리샤의 검과 아리샤의 투구를 회수한다.”
“yes. your Grace!”
* * *
용천 그룹의 부회장실.
“그럼 이 도면에 있는 그림이 마왕의 것이라는 거냐?”
천여운의 물음에 샤케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제가 알기로는 그래요. 예전에 영상 기록으로 저희 행성에서 있었던 제3차 대전쟁 당시 마왕님이 저 아리샤의 갑주를 입고 전장터를 누비던 것을 본 적 있거든요.”
백작 위의 마족인 그녀는 마왕과 대면할 자격이 없었기에 영상 기록으로만 보았었다.
당시에 마왕은 도면 속의 갑주를 입고 전장을 호령했었다.
영상 기록에 불과했지만 마왕의 위엄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오싹해질 만큼 굉장했다.
“아리샤의 갑주를 입은 마왕님은 그야말로 절대자였어요. 그분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어요.”
“아리샤는 무슨 말이지?”
아까부터 갑주의 앞에 붙는 아리샤라는 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갑주를 만든 자인지 단순한 호칭인지 말이다.
이에 샤케나가 말했다.
“아.....마왕님만이 착용할 수 있는 갑주는 아리샤께서 내려주신 보물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 아리샤가 뭐지?”
“아! 아리샤는 저희 일족이 모시고 있는 위대한 존재에요. 지구상의 언어로 풀면....그래. 신이라 부르면 되겠네요.”
“신?”
그들 마족들의 언어로 ‘아리(Arishya)’는 절대자 혹은 신을 뜻한다.
다른 행성의 존재라 할 수 있는 그들이 신적인 존재를 받든다는 말에 천여운은 별다른 의문을 갖지 않았다.
그것은 그 역시도 어렸을 때부터 한 사람의 천마신교 교인으로서 자연스럽게 성화를 모셔왔기 때문이다.
“그럼 이것도 알겠군.”
천여운이 도면에 있는 갑주의 그림을 손가락으로 터치했다.
갑주의 투구를 만지자, 그림이 애니메이션처럼 움직이더니, 분해되면서 륜(輪)의 형태로 바뀌었다.
“아?”
샤케나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놀랍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이거 였구나.”
“음?”
“저도 이건 몰랐어요. 마왕님이 전장 때 여러 가지 무기들을 다루시는 건 봤는데, 갑주가 변한 건 줄은 처음 알았어요.”
“처음 알았다고?”
“네.”
의외로 샤케나는 이것까지는 알고 있지 않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사실은 이 갑주가 마왕의 보물이라는 것뿐이었다.
이번에는 그녀가 궁금했는지 물었다.
“주인님. 이걸 저희 일족의 배신자가 가지고 있었다고 했죠?”
“그래.”
그 말에 그녀가 뭔가를 짐작하는지 흐음하고 턱을 쓰다듬었다.
“왜 그러는 거지?”
천여운의 물음에 그녀가 잠시 고민했다.
‘이걸 얘기해도 될려나.’
사실 그녀가 알고 있는 이 정보는 일족에서도 상당히 이슈가 되고 있는 일이었다.
모두가 겉으로는 쉬쉬하고 있었지만 가장 핫한 이슈.
“대답해라.”
‘하긴. 어차피 주인님은 인간이니까 굳이 알아도 상관없잖아.’
천여운의 두 번째 물음에 그녀가 괜찮다고 여겼는지 입을 열었다.
“실은 제가 이 행성에 오기 전부터 일족들 사이에서도 한 가지 소문이 있었어요.”
“소문?”
“네. 배신자 하갈을 탈출하도록 돕고 이곳으로 보낸 배후가 있다는 소문이에요.”
“탈출을 누가 도왔다고?”
“사실 배신자 하갈이 동족 포식을 했다곤 하나 그 같이 하급 귀족이 갑자기 게이트를 지키는 경계 근무자를 어찌할 정도로 강해질 수는 없거든요.”
다른 행성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게이트.
그곳은 마족에게도 꽤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에 후작 급의 귀족이 방백들을 이끌고 지키는 요지였다.
그런 요지가 고작 하급 귀족에 불과한 배신자의 손에 뚫렸다.
이것에 의문을 품는 자들이 많았다.
천여운이 두루마리를 담고 있는 통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가장 의심스러운 자가 이 문양을 상징하는 대공가라는 곳인가 보군.”
이 정도만 들어도 대충 무슨 말을 하는지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맞아요. 헤헤. 역시 주인님은 똑똑하셔요. 말씀하신대로 3대공 중 한분인 칼리아프 대공가가 가장 의심을 받고 있어요.”
“왜지?”
그 물음에 그녀가 머뭇거렸다.
인간인 천여운에게 말해도 상관없다고 여겼지만, 일족들 사이에서는 민감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칼리아프 대공이 차기 마왕의 좌를 노리고 있거든요.”
“차기 마왕?”
차기 마왕이라는 말에 천여운이 의아해했다.
그녀는 자신더러 마왕의 명을 받고서 배신자를 잡으러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일까?
“마왕이 은퇴라도 하나?”
“그렇다기보다는 조금 사정이 애매해요.”
“애매해?”
“마왕님께서 정말 오랫동안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거든요.”
“꽤 오래인가 보지?”
“제가 태어나기도 전이에요.”
샤케나의 나이가 팔백이십 살이다.
“음?”
“듣기로는 이천 년 정도 되었다고 했는데.”
“이 천년!?”
어지간해서는 감정 변화가 없는 천여운조차 놀라워했다.
마족들의 평균 수명이 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굉장히 긴 기간이었다.
‘정말 오래도 사는군.’
샤케나의 말에 의하면 근 이천 년 전에 있던 3차 대전쟁 이후로 마왕의 모습을 본 자는 아무도 없다고 한다.
“그럼 누구에게 명을 받은 거지?”
“마왕님을 보좌하는 네 공작 각하들이 있어요. 그분들 중에 한 분인 루드히 공작 각하께서 제게 명하셨죠.”
“그래? 그들만 마왕을 보나?”
“네. 그분들만 마왕을 알현했다고 하더군요. 그 외에 일족들은 마왕님을 뵌 적이 없어서 그분들을 문고리 사인방이라고 불러요.”
“문고리 사인방?”
마왕을 오직 그들만 볼 수 있다고 붙여진 호칭이었다.
사실 그리 좋은 의미에서 나온 호칭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리 오랫동안 한 일족의 수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라......의심하고 있겠군.”
“........”
천여운의 그 말에 그녀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긍정의 의미였다.
마왕의 권위는 일족에게 있어서 절대적이었지만, 현재 마족들은 마왕의 생사를 의심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대충 어떤 분위기인지 알겠군.”
“네?”
“원래라면 마왕 다음의 권위를 지닌 작위가 대공이라 했다. 그런데 그들이 아닌 측근 공작 네 명만이 마왕을 알현한다고 했으니 그 사이 분란이 있는 게 당연하지.”
“와.......주인님. 진짜 똑똑하시네요!”
그녀의 말에 천여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걸 짐작하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맞아요. 주인님 말대로 대공들의 불만이 팽배해진 상태였죠.”
자그마치 이천 년이라는 세월이다.
마족들에게도 절대로 짧지 않은 세월 동안의 부재였기에 차기 권좌를 노리는 대공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네 공작들이 마왕님의 어명이라고 공표를 했죠.”
“무엇을 말이냐?”
“아리샤의 선택을 받은 자만이 차기 마왕의 좌에 도전할 수 있다고 말이죠.”
아리샤의 선택.
그것은 그들 일족이 모시는 신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게 무슨 기준이지?”
천여운의 물음에 그녀가 도면의 갑옷을 가리켰다.
“아리샤의 갑주에요. 아리샤께서 내리셨다는 이 갑주를 찾은 자에게 마왕께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했죠.”
마왕의 부재로 권위가 떨어진 시점에서 호전적인 마족들과 불만이 넘치는 대공들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절대적인 존재인 아리샤뿐이었다.
그 공표가 떨어진 이후로 대공들의 관심사는 아리샤의 갑주를 찾는 것에 돌아갔다.
“하!”
그녀의 그 말에 천여운이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의아해하는 그녀에게 천여운이 말해주었다.
“이제 알겠군.”
“네?”
“그 아리샤의 갑주를 얻지 못한다면 결국 끝까지 누구도 도전 자격이 생기지 않지 않느냐?”
“그.....렇죠.”
“그 최측근이란 공작 놈들이 제법 머리를 굴렸군.”
“아!”
천여운의 그 말에 샤케나 역시도 무슨 의미인지 깨닫게 되었다.
아리샤의 갑주를 누구도 찾지 못한다면 계속해서 최측근 공작들이 일족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유지하게 된다.
“맞아 떨어지는군요.”
“뭐가 말이냐?”
“그 공표가 나오고도 몇 십 년이나 그 누구도 갑주를 찾지 못했어요. 그것 때문에 어쩌면 아리샤의 갑주가 저희 행성이 없을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았거든요.”
“그래서?”
“그런데 문제는 특별한 이유 없이는 게이트로 타행성을 넘어갈 수가 없거든요.”
특별한 명분이 없이는 게이트 사용은 금지가 되어 있다.
마왕의 인가가 떨어져야만 가능한 것이다.
“왜 칼리아프 대공이 마족의 배신자를 지원했다는 소문이 떠도는지 알 것 같아요.”
“명분이로군.”
“맞아요! 저희 일족에게 있어서 동족 포식자는 무조건 처단해야 하거든요.”
동족 포식은 마족들 모두가 용서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렇게 동족 포식을 한 마족의 배신자가 게이트를 넘어 타행성에 숨어들었다.
그렇다면 그 배신자를 잡기 위한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마족들을 타행성으로 보낼 수 있는 명분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어쩐지 한 명씩만 보내는 게 이상하다고 했어요.”
최측근 공작 측에서는 하급 마족을 잡는 일에 일족의 힘을 낭비할 수 없다며, 추적자의 인원에 제한을 두었다.
그 오랫동안 수많은 추적자들의 연락이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갑주를 찾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군요!”
-으득!
결국 이것은 칼리아프 대공 측과 마왕의 측근들 간의 보이지 않는 싸움인 것이다.
샤케나가 괜히 이를 갈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의 싸움으로 산하의 마족들만 계속 희생되고 있었다.
“어딜 가나 권력 싸움은 존재하는군.”
천여운이 혀를 찼다.
결국 그들 간의 권력 다툼이 애꿎은 지구로 번진 셈이었다.
‘샤케나의 말이 맞다면 결국 아리샤의 무구는 공작의 최측근들이 이곳에 보냈겠구나.’
그럴 확률이 가장 높았다.
천여운의 심상 속 기억에서 보았을 때도 갑자기 하늘에서 무구들이 떨어졌다고 했다.
아주 뜬금없이 말이다.
‘응?’
그런데 순간 천여운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뭔가 시간적으로 맞지 않았다.
저들이 아리샤 갑옷을 숨겼다면 분명 그 공표를 한 시점에 가까워야 했는데, 그보다 훨씬 오래 전에 지구로 그것들이 떨어졌다.
‘이상하다.’
천여운이 이것을 의아해하고 있던 찰나였다.
두루마리 도면을 담고 있던 원통 안쪽에 작은 불빛이 흘러나왔다.
“뭐지?”
이를 본 샤케나가 원통의 안쪽을 살폈다.
그러다 그녀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주인님......이거 추적기에요.”
“추적기?”
원통 안에 추적 기능이 담겨 있는지는 나노를 가지고 있는 천여운이라고 알 길이 없었다.
마족의 기술로 만들어진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왜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이제 반응하냐는 것이었다.
"일단 추적기를 제거할게요."
그녀가 원통에 손을 집어넣어 추적기를 제거하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스스스스슥!
부회장실로 갑자기 공간이 일렁이며 수많은 인영들이 나타났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샤케나가 당황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순식간에 넓은 부회장실이 오십여 명 정도 되는 이국적인 외모를 지닌 낯선 자들로 가득 찼다.
놀랍게도 그들은 전부 마족들이었다.
“이런.....”
샤케나가 그들 중에 한 존재를 바라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고, 공작!”
마족들의 한가운데 가장 화려한 갑주를 입고 있는 백발의 사내.
그는 작위를 가진 마족들 중에서 단 열 명밖에 없는 최상위 급의 존재.
바로 공작이었다.
< 63화 아리샤의 갑주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