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187화 (187/234)

< 61화 궁주 (2) >

“아버니이이임!”

북해빙궁의 소궁주 단영수가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서 비틀대고 있는 궁주 단경각의 모습에 사색이 되었다.

그 역시도 찰나의 날카로운 예기를 감지했었다.

‘안 돼! 안 돼!’

단경각의 목에 선명하게 그어진 붉은 선.

저 손을 떼는 순간 아버지의 머리가 분리될 것만 같았다.

단영수가 분노를 금치 못해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아버님께서 모든 명예와 자존심을 덮어두고서 당신께 무릎을 꿇었는데!”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무감정한 목소리로 답했다.

“원하는 바를 들어줬다만.”

“뭐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북해빙궁의 장로들 중의 한 사람인 2장로 달찬이 상기된 얼굴로 벌떡 일어나려 했다.

-챙!

“누구 안전이라고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냐.”

“헛?”

하지만 북해빙종의 소종주인 단초자가 번개처럼 검을 뽑아서 그의 목을 겨냥하면서 완전히 일으킬 수 없었다.

검신 전체에서 흘러나오는 한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오한빙천공!’

2 장로 달찬이 속으로 놀라했다.

궁주와 소궁주 이외에 오한빙천공을 이렇게 익힌 자는 처음 본다.

2 장로가 그렇게 움직이지 못하자 천여운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녀석들의 뜻대로 해주지 않았나? 오직 궁주만이 익힐 수 있다고.”

“지, 지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들은 그대로다.”

단영수가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방금 그 말은 천여운이 궁주의 자리를 교체하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천여운의 무위를 두려워하는 그였지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는지 머릿속에 들어있던 것을 고스란히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아무리 본궁이 산하에 있었다고 하지만 당신이 뭔데 마음대로 궁주를 교체하니 뭐니...”

“건방지군.”

“네?”

천여운이 손을 살짝 움직였다.

-두드드득! 쿵!

“끄아아아악!”

그 순간 단영수의 양쪽 다리가 꺾이면서 강제로 무릎이 꿇려졌다.

무릎에 튀어나온 뼛조각들만 보아도 단영수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짐작이 갈 정도였다.

“소궁주!”

장로들이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려움 이상으로 깊은 충성심을 가진 모양이었다.

장로들 중에 가장 뛰어난 무위를 지닌 1장로 오양생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과하십니다! 아무리 본궁이 천마신교의 산하에 있었다고 하나, 그래도 본궁만의 법도는 여태껏 존중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어찌 이렇게 막무가내로 저희의 남아있는 일말의 긍지마저 짓밟으시려 한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런 식으로 군다면 저희도 죽음을 불사...”

-고오오오!

그 순간 엄청난 기운이 천여운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기세가 어찌나 강했는지 방금 전까지 분노를 토해내던 장로들 모두가 사색이 되어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 이게 정녕 인간의 진기인가.’

숨이 턱턱 막히다 못해서 심장을 옥죄여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자신들의 무공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모든 것이 하찮게 느껴질 만큼 압도적인 역량의 차였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입을 열지 못하는 그들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뭔가 착각이 심하군.”

“으으으.”

“네놈들이 가진 것을 누가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천여운의 그 질문에 장로들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억누르는 기운도 그랬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때 천여운이 손을 위로 들어올렸다.

-쩌저저저적!

그 순간 허공에 한기가 일어나며 수많은 얼음검들이 만들어졌다.

-웅성웅성!

강제로 무릎이 꿇려 있던 북해빙궁의 궁인들이 넋을 놓고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얼음검들을 쳐다보았다.

엄청난 광경에 장로들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그들은 허공에서 느껴지는 한기에서 아주 익숙한 기운을 감지했다.

그것은 바로,

‘오한빙천공!’

분명 이 기운은 오한빙천공이었다.

궁주인 단경각마저도 조족지혈로 느껴질 만큼 엄청났다.

놀라운 것은 천여운은 제대로 된 운기 과정도 없이 상상을 초월하는 오한빙천공의 기운을 끌어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 자가 오한빙천공을?’

장로들은 이 사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북해빙종의 소종주인 단초자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참으로 어리석은 짓을 하였소. 북해빙궁에는 사기조차 남겨놓지 않았단 말이오?”

“......그게 무슨?”

“그대들은 잘못 알고 있소. 언제부터 궁주만이 오한빙천공을 익힐 수 있다는 유언비어가 떠돈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반대요.”

“반대?”

“과거 선대조께서는 소실된 오한빙천공을 되찾는 자가 궁주의 자격을 가진다고 하였소. 그 오한빙천공이 과연 어떤 분에게서 비롯되었는지 정녕 모르시겠소?”

단초자가 경외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그 말에 장로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북해빙궁주마저 뛰어넘는 오한빙천공의 기운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설마?’

그들이 하나 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들 역시도 단초자가 했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북해빙궁이 어떻게 해서 천마신교의 산하로 들어갔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서, 설마....”

1장로 오양생이 떨리는 눈으로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태껏 천여운이 현 천마신교의 새로운 천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방금 전에 단초진이 던진 힌트로 인해 그의 진정한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전설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그 역시도 예지자 성무천 설화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옛날부터 내려오는 역사 속의 전설 정도로 치부했었다.

허공에 떠있는 수천 자루의 검들.

‘천공섬광!’

그것은 마신 천여운의 절대비기라 불리는 천공섬광이 틀림없었다.

이를 깨달은 오양생의 다음 행동은 누구보다 빨랐다.

-쿵!

“하, 하찮은 말학 오양생이 대 천마신교의 마신을 배알 하나이다!”

‘마신!’

오양생이 바닥에 넙죽 엎드려서 절을 하자, 놀란 장로들이 너도나도 할 것이 다급히 바닥에 엎드리고서 소리쳤다.

“마신을 배알 하나이다!”

마신 천여운.

아무리 천마신교의 산하를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나있던 북해빙궁이지만, 그것만큼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 있었다.

용귀로 인해 멸망할 뻔한 북해빙궁을 다시 세우고 사라진 오한빙천공을 다시 복원한 마신이야말로 북해빙궁의 제 2의 조사라고 말이다.

“끄으으으!”

두 다리가 부러진 소궁주 단영수가 장로들의 태도에 당혹스러워했다.

그들은 적어도 끝까지 자신들과 함께 일거라 여겼다.

그런데 천여운의 진정한 정체가 드러난 순간 모두가 그에게 굴복하고 납작 엎드렸다.

“느려터졌군.”

천여운이 엎드린 장로들을 보며 혀를 찼다.

그런 그들에게 못마땅한 눈빛으로 둘러보던 천여운이 말했다.

“듣자하니 러시아로 편입되려고 했다지?”

“그, 그것은....”

심기 불편한 목소리에 장로들이 두려움으로 눈치를 보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아니 괜한 변명을 내뱉었다가 어떤 문책을 당할지 모르기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뭐 그것은 그냥 넘어갈 수 있다.”

“아.....”

의외로 러시아로 편입하려 했던 것을 쉽게 넘어가자 장로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굉장히 화통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천여운은 여러 정황들을 봤을 때, 러시아 편입 건은 충분히 그럴만한 사유라고 판단했기에 이것을 넘어갔을 뿐이었다.

“한데 북해빙종을 용암 속에 몰아넣어 몰살시키려 한 것은 본교를 넘어서 나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나 다름없군.”

-슥!

천여운이 검결지를 쥐고서 가볍게 휘저었다.

-촤촤촤촤촥!

그 순간 엎드려 있던 여섯 명의 장로들이 동시에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쿵! 쿵!

바닥에 얼굴만 박았을 뿐인데, 장로들이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악!”

“끄으으! 파, 팔이!”

그들이 바닥에 얼굴을 박은 이유는 간단했다.

지탱하고 있던 팔 중 하나인 왼팔이 전부 잘려나갔기 때문이었다.

뭔가 책임을 물을 거라고는 여겼지만 예고도 없이 팔이 잘릴 줄 몰랐던 장로들은 하나 같이 잘린 부위를 붙잡고 나뒹굴었다.

천여운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그들에게 말했다.

“이 정도로 끝낸 것을 감사히 여겨라.”

잘린 그들은 고통스러웠지만 나름의 자비를 베푼 것이다.

이에 장로들이 이구동성으로 머리를 박으며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끄으으....마, 마신의 하혜와 같은 은덕에 감사드립니다.”

“이 정도로 끝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장로들에 대한 처결은 끝났다.

‘깔끔하다.’

이런 천여운의 조치에 북해빙종의 소종주인 단초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뒤끝조차 없을 만큼 만족스러운 처결이었다.

천여운이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네놈.”

천여운이 바라보는 자는 다리가 부러져서 두 손으로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는 소궁주 단영수였다.

장로들마저 굴복하는 모습에 한풀 제대로 꺾인 단영수가 다급히 천여운에게 소리쳤다.

“제, 제발 자비를 베푸십쇼.”

아버지가 목이 베였다는 분노보다 목숨이 우선인 모양이다.

애처롭게 간청하는 그를 내려다보던 천여운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과 네 애비는 잔머리를 많이 굴리더군.”

“그,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는 그저 본궁에...”

“듣기 싫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여운이 손가락을 살짝 위로 들어올렸다.

그러자,

-우드드득!

“끄그그그극!”

심후한 진기에 의해 단영수의 턱뼈가 으스러지며 강제로 입이 다물어졌다.

피가 나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턱뼈가 부서진 형태가 너무나도 적나라했기에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읍읍읍!”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목숨이 위태로운 것을 느낀 단영수가 눈물까지 흘리며 살려달라고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아.....’

그 모습에 단초진이 내심 안쓰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궁주나 소궁주 모두가 원망스러웠지만, 그래도 한 뿌리나 다름없는 그가 저렇게 빌자 마음이 약해진 것이다.

단초진이 다급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천여운에게 간청했다.

“저.....천마이시여. 단 소궁주가 죽을죄를 짓기는 했지만 자비를 베푸시어 부디 목숨만은 부지하게 해주시면 안 될는지.”

“아버님 어찌 그러십니까!”

소종주인 단초자가 그런 아버지의 간청에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들을 몰살시킬 수도 있을 뻔했던 북해빙궁의 궁주 일가에 연민을 가지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었다.

그런 단초진의 간청에 천여운이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순진한 거냐? 아니면 단순한 거냐?”

“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여운이 검결지를 그었다.

-촥! 뎅구르르르!

그러자 손바닥을 비비며 빌고 있던 단영수의 목이 바닥을 뒹굴었다.

일말의 가차도 없이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는 궁주 단초진에게 천여운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 배신하고 뒤통수를 쳤던 놈들이 개과천선을 할 거라 생각하나?”

“그, 그것은.....”

“가장 어리석은 수장이 뭔 줄 아나? 네놈처럼 정에 휩쓸려서 후환을 남기는 거다.”

어쭙잖은 인정이야 말로 가장 어리석다고 여기는 천여운이었다.

그 말과 함께 천여운이 소궁주 단초자를 쳐다보았다.

“그런 점에서 네놈은 그래도 싹수가 괜찮군.”

'아아!'

-팍!

천여운의 칭찬에 단초자가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전설이라 불리는 마신이 왠지 자신을 알아준 것만 같아 괜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으아아아아아!”

괴성과 함께 누군가 쾌속한 속도로 천여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앞에 있던 단초자가 다급히 몸을 돌리며, 괴성을 지르는 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차차차차창!

그 순간 그가 휘두르는 검에 차가운 결로가 생겨나며 도중에 멈춰졌다.

단초자가 놀란 눈으로 중얼거렸다.

“어, 어떻게?”

놀랍게도 그의 검을 한기로 막아낸 자는 바로 북해빙궁의 궁주인 단경각이었다.

목이 잘려서 죽은 줄 알았던 그가 창백한 얼굴로 그의 뒤편에 있는 천여운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 61화 궁주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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