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북해빙궁 (3) >
-타타타탓!
이곳을 향해 경공을 펼치고 오는 자들은 종파원의 말대로 북해빙궁의 3장로였다.
그리고 주위의 다른 여섯 명은 그의 호위 궁인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 표정이 꽤나 복잡했다.
‘이게 뭐지?’
북해빙궁의 3장로 하종오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알혼섬 전체는 거의 불바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용암의 위협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만 현재 기온도 다르고 바닥이 얼어붙어 있었다.
“장로님. 이상합니다.”
“이거 예상한 상황과 너무 다릅니다.”
그들이 기대했던 상황은 용암에 절망하고 있을 북해빙종의 사람들이었다.
한데 용암이 범람해야 할 인근 호수 쪽이 방벽 같은 것에 막혀 있는 것부터 수백 미터 가까이 얼어붙은 바닥에 당혹스러웠다.
“혹시 저 잡종들의 수장이 저런 걸까요?”
“그럴 리가. 스키장의 제설기 수십 대가 있지 않는 한 무슨 수로 이 넓은 곳을 얼린단 거냐?”
궁인들의 대화에 하종오가 담담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상관없다. 제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한들, 이곳에서 무슨 수로 나가겠느냐. 궁주의 명대로 오늘 저들과 끝장을 볼 것이다.”
어떻게 얼렸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용암이 밀려들어오면 모든 것이 무력해지고 다 녹아내릴 것이다.
-탓!
그러는 사이에 그들이 몰려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건 또 뭐야?’
3장로 하종오가 인상을 찡그렸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는데, 북해빙종의 종파원들이 누군가를 향해 엎드려 있었다.
오직 단 한 사람만이 서있었다.
그 서있는 자의 앞에 엎드려 있는 단초진을 발견한 하종오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단 종주. 지금 무얼 하는 것이오?”
그런 그의 물음에 단초진이 고개를 들어올려 천여운에게 양해를 구했다.
“천마이시여.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는 하종오와 북해빙궁의 궁인들에게 말했다.
“하 장로. 어서 머리를 조아리게.”
이에 황당해진 3장로 하종오가 언성을 높였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오! 본 장로가 어찌해서 이 자에게 무릎을 꿇는단 말이오?”
“어허! 대천마신교의 천마께 무슨 무례한 언동인가!”
아무리 북해빙궁을 끔찍이 여기는 단초진이지만, 천마에 대한 무례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는지 하종오에게 다그쳤다.
천마라는 말에 하종오가 고개를 돌려 천여운을 쳐다보았다.
“천마? 지금 혹시 천마신교의 천마를 말하는 것이오?”
“그렇소. 어서 예를 갖...”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종오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어댔다.
“하하하하하하핫.”
그의 그런 태도에 단초진이 인상을 굳히며 물었다.
“왜 웃는 것이오?”
“아니. 웃기지 않게 생겼소? 황당하기 짝이 없구려. 대체 뭘 하나 싶었는데, 고작 망해버린 사이비 종교 단체의 상징물이랍시고 절을 하고 있던 거요? 웃겨서 하하하핫.”
그런 그를 동조하듯 여섯 궁인들도 피식거리며 웃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나타난 것을 기뻐했던 단초진이었지만, 그의 과격할 정도로 모욕적인 언사에 분노를 참지 못했다.
“감히 이 자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부웅!
“으헉!”
웃고 있던 하종오의 몸이 떠오르더니, 이내 앞으로 날아갔다.
당황한 나머지 공력을 끌어올려서 무형의 진기에 대항해보려고 했지만, 그의 몸은 실오라기라도 된 듯이 날아가 누군가의 손에 붙잡혔다.
-콱!
“컥!”
그는 바로 천여운이었다.
천여운이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뚫린 입이라고 아무렇게나 지껄이는군. 사이비 종교 단체의 상징물?”
“컥컥!”
하종오가 어떻게든 천여운의 손을 풀어보려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아무리 운기를 해도 단전에 있는 내공이 움직이기는커녕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이놈 대체 뭐야?’
명색이 세외 무림의 최강이라 불리는 북해빙궁의 3장로였다.
화경의 경지에 달해서 무공으로는 궁주나 1 장로가 아니면 누구도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과신하는 그에게는 충격적이었다.
"목숨이 두 개인가 보지?"
-꽈아악!
"케에엑!"
손에 힘이 들어가자 숨이 막힌 하종오가 고통스러워했다.
"감히!"
"당장 장로님을 놓아라!"
-착!
위기에 빠진 하종오를 보호하기 위해 여섯 궁인들이 동시에 검을 뽑으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앞을 단초자가 빠르게 가로막았다.
“그 검....조금이라도 뽑으면 절대 성치 못할 것이다!”
위협적인 경고에 궁인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자가 분노해서 소리쳤다.
“이 잡종들이 정녕 미쳤구나! 궁주께서 그나마 네놈들의 핏속에 북해의 것이 한줌이라도 남아 있어 자비를 베풀려고 했는데 기어코 벌주를...”
-오싹!
그 순간 엄청난 한기가 몰아쳤다.
소리를 지르던 궁인이 놀란 나머지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한기를 내뿜는 존재를 쳐다보았다.
그는 북해빙종의 종주인 단초진이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잡종? 그리고 자비를 베풀어?”
잡종이라는 말은 북해빙궁 사람들이 외부파를 비하할 때 쓰는 말이었다.
단초진은 지금 노기를 참기 힘들었다.
'이 고얀 것들이!'
당장이라도 눈앞에 보이는 궁인을 쳐죽이고 싶은 심경이었다.
하지만 같은 뿌리를 가진 형제들을 함부로 죽일 수 없기에 겨우겨우 참고 있는 것이었다.
-움찔!
그래도 위압적인 기세를 내뿜는 것에 한결 기가 죽은 궁인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래도 되는 것이오? 우...우리는 그대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러 온 것이오.”
“기회?”
단초자가 어이가 없어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작자들이 한다는 말이 기회를 주는 것이란다.
"저 새끼들이!"
"지금 기회라고 지껄였어?"
엎드려 있던 북해빙종의 종파원들 역시도 분노해는지 살기 어린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주변 분위기가 흉흉해지는 것을 느꼈는지 궁인이 다급히 말했다.
“큭! 정녕 용암에 휩쓸려 타 죽고 싶은 것이오?”
“당신들만 빠져나갔다고 아주 기세등등하군요!”
엎드린 채로 듣고 있던 단소영 역시 화를 참지 못하고 일어났다.
그녀 역시도 손이 어느새 검집으로 가있었다.
위기감을 느낀 궁인이 다급히 소리쳤다.
“북해빙궁에 해저 지하 터널이 있소!”
“터널?”
“그렇소. 궁주께서는 그대들이 본 궁에서 제시했던 제안을 받아들이면 자비로운 아량으로 길을 열어주신다고 하셨소.”
“당신 정말!”
-챙!
화를 참지 못한 단소영이 검을 뽑아 궁인을 찌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을 단초자가 막았다.
“아버지!”
“검을 거둬라.”
“무슨 소리에요! 지금 이놈들이 하는 말을 그냥 넘기시려는 거에요? 저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저희 일가 삼대가 내공을 전폐하고 충성을 맹세하는 것인데. 그걸 들어주라는 거에요?”
그랬다.
단초자와 단소영이 끝까지 반대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북해빙궁의 현 궁주의 요구 조건에는 궁주만이 익히는 오한빙천공을 익힌 자들은 내공을 전폐하라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자신들을 제외한 북해빙종의 전력만 쏙 빼먹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으득!
단초자가 이를 갈았다.
그 역시도 단소영처럼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온통 용암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종파원들을 살릴 방법은 마땅치가 않았다.
‘설사 천마라고 하셔도 이 상황에서 우리 모두를 살릴 수는 없다.’
그렇기에 그녀를 만류한 것이었다.
한 단체의 우두머리라면 그 밑의 사람들도 생각해야 했다.
종주인 단초진 역시도 저들이 탈출할 수 있는 활로를 가지고 있다는 말에 입술을 질끈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런 이들의 태도에 천여운의 손에 목이 잡혀 있는 3장로 하종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크큭, 드, 들었나? 살고 싶다면 당장 이 손 놓고 사죄...”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탁!
“어업?”
천여운이 그의 턱을 움켜잡았다.
“주, 주금 뭐 하로....”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천여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콰드드득!
“끄게게가가가가각!”
턱이 그대로 뜯겨져 나가면서 찢어질 듯한 괴이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꺅!"
잔인한 광경에 단소영이 고개를 돌렸다.
입이 찢어져서 하관이 그대로 뽑혀진 하종오는 컥컥거리는 신음을 몇 번 내더니, 이내 몸을 파르르 떨면서 고개를 떨궜다.
‘!!!’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모두가 경악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런 그들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잠자코 들어봤더니, 결국 개소리였군.”
-팟!
천여운이 더럽다는 듯이 손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그리고는 하종오의 호위 궁인들에게 그의 시신을 거칠게 집어 던졌다.
-팍!
궁인들은 너무나도 잔인하게 죽은 하종오의 시신을 쳐다보면서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분노해서 소리쳤다.
“이 미친 새끼가 정말 다 같이 죽자는...”
-스륵!
그때 천여운의 신형이 그의 앞으로 나타났다.
당황한 궁인이 검을 뽑으려고 했는데, 천여운의 손이 그의 이마로 향해 있었다.
손가락을 오므리고 있는 것이 눈에 잡혔다.
‘딱밤?’
천여운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파앙!
그 순간 궁인의 머리통이 그대로 터져버리고 말았다.
‘!?’
궁인들은 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손가락을 튕겨서 이마를 맞춘 순간에 머리가 완전히 날아가 버린 것이다.
-스윽!
궁인들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얼굴에 묻은 것을 닦고서 쳐다보았다.
그것은 뇌로 보이는 살 조각이었다.
“히익!”
-털썩!
궁인이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머지 궁인들이라고 반응이 다를 것이 없었다.
너무도 압도적이다 못해서 괴물 같은 천여운의 무위에 뒷걸음을 쳤다.
-슥!
천여운이 손을 들어 올리자 그들의 몸이 심후한 진기에 의해 허공으로 떠올랐다.
몸이 구속당한 그들은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공포와 두려움에 젖은 눈으로 천여운을 쳐다보았다.
“니들도 개소리를 지껄일 테냐?”
그런 천여운의 물음에 그들이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눈앞에서 끔찍한 광경이 두 번이나 연달아 일어났는데, 죽은 두 사람처럼 되고 싶겠는가.
그때 단소영이 천여운에게 말했다.
“자, 잠깐만요. 천마......천마이시여. 저들을 전부 죽이면 저희 모두 섬에서 빠져나갈 수 없어요.”
괜히 이들을 자극해서 끝까지 빠져나올 수 없는 통로를 알려주지 않을까봐 우려한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말에 천여운이 피식 웃었다.
“별 걸 걱정하는군.”
“네?”
의아해하는데, 천여운이 오른 소매를 걷고서 손을 내밀었다.
-스르르르!
그러자 그의 손목에 있던 흑철 보호대에서 음산한 푸른빛이 일렁이더니, 이내 그 안에서 흐릿한 입자의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유, 유령!”
단소영이 어찌나 놀랐는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고스트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유령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때 천여운이 고스트를 향해 말했다.
“전부 섬 밖으로.”
-우우우웅!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단소영의 시야가 갑자기 회전을 했다.
그녀는 갑자기 느낀 어지러움에 비틀거렸다가 이내 감았던 눈을 떴다.
‘대체 뭘 한 거....엇?’
순간 그녀의 두 눈동자가 떨렸다.
단소영은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놀란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종주인 단초진이나 소종주 단초자 역시도 주변을 쳐다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 그들이 있던 위치가 바뀌었다.
“저, 저건?”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 용암으로 뒤덮인 알혼섬으로 짐작되는 것이 보였다.
환각이라도 본 것인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웅성웅성!
주변에 엎드려 있던 북해빙종의 종파원들 역시도 갑자기 벌어진 일에 놀라서 모두가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말도.....안 돼.”
단소영은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천여운을 쳐다보았다.
눈 깜빡할 사이에 이백여 명이 넘는 북해빙종의 종파원들 모두가 순식간에 바이칼 호수 바깥으로 이동된 것이었다.
이제야 그것을 인지한 북해빙종의 종파원들이 머뭇거리더니 이내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서, 섬을 빠져나왔다!”
목숨을 부지하게 된 그들이 감격을 금치 못했다.
단초진이 흥분한 얼굴로 천여운을 쳐다보았다.
‘이, 이분은 신이시다! 진정 본교의 신이 강림하신 것이다!’
“오오오! 마신이시여!”
엄청난 능력에 경외심을 느낀 단초진이 두 손을 높이 들고서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외쳤다.
모두가 그런 단초진의 외침을 따라서 외쳤다.
“마신이시여!!!”
한순간에 진짜 신으로 받들어지는 천여운이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북해빙종의 종파원들과 달리 진기에 억류되어 있는 북해빙궁의 궁인들을 이 상황이 미칠 지경이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목숨을 보존할 수 있는 패가 사라진 것이다.
그들에게 천여운은 신이 아니라 괴물이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들에게 천여운이 천천히 다가오면서 말했다.
“한 번만 묻는다. 북해빙궁주.....어디있나?”
< 60화 북해빙궁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