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북해빙궁 (2) >
그것은 마치 안개 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유성우와도 같았다.
“이, 이게 말이 되는 일이야?”
“저게 전부 검강?”
허공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광경에 북해빙종의 종파원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얼핏 보아도 수천 자루에 이르는 엄청난 얼음 검들에 일렁이는 푸른빛들은 분명 검강이었다.
게다가 저렇게 방출되는 형태는 탄검강이 틀림없었다.
“이.....이기어탄검강이라니?”
북해빙종의 소종주인 단초자의 입이 벌어졌다.
현경의 경지에 오른 자도 이기어검 하나를 다루는데, 많은 심력과 진기를 소모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건 상식을 완전히 넘어선 일이었다.
“어찌.....어찌 이런 일이....”
‘아버님?’
무의식적으로 종주 단초진을 바라보았던 단초자가 그의 반응에 의아해했다.
당연히 이 엄청난 광경을 보면서 놀랄만 했지만 뭔가 모르게 단초진의 반응은 달랐다.
“천공섬광......”
단초진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네 자의 단어.
그것을 듣는 순간 단초자 역시 두 눈이 커졌다.
“처, 천공섬광!”
천마신교에서 대대로 대장로를 역임하고 있는 북해빙종의 종주 일가라면절대로 모를 수가 없었다.
천공섬광(天空閃光)
그것은 오직 마신만이 펼칠 수 있다는 그 절대비기였다.
구전으로만 들었을 때는 허무맹랑한 과장된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절세고수라고 한들 어찌 한 사람의 인간이 수천 자루의 검을 다룬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진짜였어.”
전설은 전혀 과장되지 않았다.
오히려 직접 보게 되니, 축소되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콰콰콰콰콰콰쾅!
탄검강들이 쉴 새 없이 용암이 있는 곳을 내리쳤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탄검강들이 내리치는 것은 정확히 말해서 용암 그 자체가 아니었다.
용암의 바로 인근 부근을 계속 폭격하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쾅!
[70% 완료. 용암의 진입 경로가 함몰되는 부분으로 유입됩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나노의 분석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천공섬광이라고 해도 저 뜨거운 용암 그 자체를 타격만으로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밀려들어오는 경로를 배수로처럼 파고들게 만들어 용암이 올라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저길 봐! 용암이 밑으로 빠지고 있어!”
최악의 사태에 막막해하고 있던 종파원들의 얼굴에 희망이 감돌았다.
그러나 호수 전체를 매우고 있는 용암이 단순히 함몰된 곳으로 유입되는 것만으로 진정될 리가 없었다.
-쿠우우우!
농도가 짙다보니 흘러들어가는 용암의 위로 뒷물결처럼 다른 용암이 밀려들어오려고 했다.
“저걸로도 막지 못하는 건가.”
“요, 용암의 양이 너무 많아.”
저 용암을 전부 감당하려면 지하 수십 킬로미터를 파야 감당할 수 있을 듯 했다.
그때 천여운이 자신에게 검을 겨냥한 단초자와 단소영에게 말했다.
“비켜라.”
방금 전만 하더라도 경계심이 가득했던 단초자가 흥분된 목소리로 자신도 모르게 힘차게 대답하면서 비켜섰다.
“네, 넵!”
단소영 역시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물러서자 천여운이 천공섬광에 의해 함몰되고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콰콰콰콰콰콰쾅!
여전히 탄검강이 떨어지면서 용암이 넘실거리며 들어오는 곳을 함몰시키고 있었다.
여기서 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모두가 알 수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쾅!
천여운이 바닥을 향해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쿠쿠쿠쿠쿠!
진각을 밟는 곳을 기점으로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들썩거리더니, 이내 함몰된 곳의 안쪽으로 바닥이 위로 솟구쳤다.
“우오옷!”
“지, 지면이 올라왔어!”
마치 방벽이라도 되는 것처럼 땅이 10미터 가량 높이로 솟아올랐다.
오행의 기운 중 하나인 토기(土氣)로 지기를 일으킨 것이었다.
“대충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쾅!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한 번 천여운이 바닥을 향해 진각을 밟자, 이번에는 그를 기점으로 수백 미터 가량의 바닥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적!
“바, 바닥이 얼고 있어!”
“이럴 수가!”
북해빙종의 종파원들이 놀란 눈으로 바닥을 쳐다 보았다.
그들 역시도 빙공과 한기를 다루는 심법을 익혔지만, 반경 수백 미터 가량을 한 번에 얼려버리는 신위는 처음 본다.
-치이이익!
용암의 열기가 식으면서 사방이 뿌연 김으로 넘쳐났다.
방금 전만 하더라도 열기로 뜨겁게 달궈졌던 공기가 서늘해지자, 북해빙종의 종파원들은 한결 살 것 같았다.
단소영이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아버지인 단초자에게 말했다.
“아버지......저 사람.....정말 인간이 맞나요?”
완전히 용암을 막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일대 자체는 용암으로부터 확실하게 보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간의 힘으로 이런 재해를 막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단초진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그녀를 다그쳤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네?”
“저 분은 신이시다!”
그녀가 순간 황당하다는 얼굴로 조부인 단초진을 바라보았다.
대체 왜 그러나 싶어 보았는데, 단초진이 감격을 넘어서 전율하고 있다는 듯이 상기된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니 왜 저러시는 거지?’
영문을 모르는 그녀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왜 그러는가 싶어 아버지인 단초자에게 물어보려고 했는데,
“아버.....!?”
단초자 역시도 넋을 놓고서 천여운을 바라보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전설이.....전설이 사실이었어.”
그 목소리는 감격으로 가득했다.
“전설?”
의아해하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린 단초자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소영아. 정말로 그분이 돌아오셨다.”
“네? 그분이라뇨?”
“마신께서 돌아오셨다!”
* * *
천마신교에 단 셋뿐인 대장로.
그 중에 대장로 문란영이 동면에 들어가면서 실질적으로 대를 내려온 대장로 종파는 단 둘뿐이었다.
무쌍검종과 북해빙종.
그들에게는 천 년 전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던 전설이 있다.
예지가 성무천이 이르길 먼 훗날 천 년이 지났을 때, 마신 천여운이 현세로 다시 돌아올 거라는 전설이었다.
“모두 무엇 하는 게야! 마신, 아니 천마께서 강림하셨도다. 예를 갖추어라!”
-웅성웅성!
종주인 단초진의 외침에 종파원들이 일제히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 역시도 천마신교의 교인으로 지내온 이들이었다.
천마라는 칭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털썩!
“대천마신교의 미천한 교인이 위대하신 마신이시자 천마를 배알하나이다!”
단초진이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외쳤다.
그런 그의 광신도와 같은 열렬한 태도에 단소영이 혀를 내둘렀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천마신교는 망했다면서 더 이상 그곳에 미련이 없는 사람처럼 굴던 자가 이렇게 바뀌었다.
‘후우.’
예전부터 느꼈지만 조부인 단초진은 정말 순진하다 못해 단순한 사람이었다.
어찌 되었든 종주와 소종주가 전부 엎드렸는데, 그녀 역시도 엎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 사람이 마신이라고?’
천마신교의 사기에 수도 없이 거론된 이름.
24대 교주 천여운.
천마조사 이래 두 번째 천마의 칭호를 가졌고, 개파 이래 유래 없는 전성기를 구가했다고 불리는 자였다.
‘나랑 나이 차도 얼마 나 보이지 않아.’
겉모습만 본다면 천여운은 아무리 봐도 이십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런 압도적인 신위는 충격 그 자체였다.
‘정말일까? 아무리 내공이 심후해도 인간이 어찌 천 년이 넘는 세월을 살지?’
그녀의 나이는 스물아홉.
천마신교가 해체하던 그때 나이가 고작 두 살이었다.
조부나 부친과 달리 천마신교의 사기를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기에 머릿속이 의구심으로 차올랐다.
그때 천여운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너희 두 사람에게서 오한빙천공의 기운이 뚜렷하게 느껴지는군.”
그들은 단초진과 단초자였다.
기감으로 특유의 진기를 구분할 수 있는 천여운이기에 단번에 두 사람이 북해빙종의 종주만이 익힐 수 있다는 오한빙천공을 익혔음을 알아차렸다.
“너로군.”
천여운이 단초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만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단초진은 오히려 감격한 목소리로 고개를 들어 올리며 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천마이시여.”
“당장은 막았어도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
“아.....”
이 광활한 호수 전체가 용암으로 가득했다.
천여운의 압도적인 능력으로 이 일대만 막혔다고 해도 곧 범람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천여운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시간이 없으니 이곳으로 종파원들을 전부 모이게 해라.”
“네?”
“못 알아 듣겠나? 전부 모이게 하라고 했다.”
뜬금없이 종파원들을 전부 모이게 하라는 천여운의 말에 단초진이 영문을 알 수 없어했다. 이에 단초자가 주위의 종파원들을 가리키며 대신 말했다.
“천마이시여. 이곳에 있는 자들이 저희 종파원 전부입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이?”
주변에 엎드리고 있는 북해빙종의 종파원들.
얼핏 보아도 대략 삼백여 명 정도 되는 인원들이었다.
과거 그들을 천마신교 산하로 거두었을 때 중원으로 따라왔던 이들이 백 명 정도임을 감안했을 때, 꽤 많이 늘었다.
하지만 천여운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다른 의미였다.
“저곳에서 오고 있는 자들은 뭐지?”
“네? 누가 오다뇨?”
천여운이 가리킨 곳은 북동쪽 방향이었다.
그들의 기감에는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지만 이윽고 천여운이 한 말을 알 수 있었다.
“아!”
어떤 이들이 빠르게 경공을 펼치며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외국인?’
천여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시야로 보이는 저들은 북해빙종의 사람들과 달리 마치 동서양을 섞어놓은 듯 한 외양을 지니고 있었다.
그 방향에 있던 종파원들이 경계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종주님. 저들은 북해빙궁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저들이 북해빙궁 사람들이라고?’
예전에 보았을 때도 어느 정도 북방에 살아가는 자들답게 묘하게 이국적인 느낌을 풍기고 있었지만, 지금 외양만 본다면 거의 외국인에 가까웠다.
“보아라. 이 애비의 말이 맞지 않느냐? 저들이 우릴 버릴 리가 있겠느냐.”
종주인 단초진이 옆에 엎드려 있는 단초자에게 환해진 얼굴로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절대로 북해빙궁에서 자신들을 배신하지 않았을 거라 여겼다.
이에 단초자가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하아....아버님."
끝까지 저들을 믿는 것이 답답해질 지경이었다.
< 60화 북해빙궁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