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181화 (181/234)

< 59화 기록 (2) >

천여운은 영상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나노에게 현 시대의 지식을 뇌로 전이 받았기 때문에 그는 어지간한 어려운 전문적인 기술에 관한 것도 줄곧 잘 이해한다.

그런데 지금 천무성이 하는 말은 전혀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노. 잠깐 멈춰봐.’

[영상을 중지합니다.]

천여운의 명령에 나노가 도중에 영상을 일시정지시켰다.

‘나노.....방금 녀석이 한 말을 이해할 수 있겠어?’

[그렇습니다.]

‘.......내가 이해한 바가 맞다면 자신의 뇌를 컴퓨터의 파일처럼 정보화시켜서, 슈퍼컴퓨터의 인공지능에 씌운다는 것 같은데.....맞아?’

[제대로 이해하고 계십니다.]

“하!”

나노의 그 대답에 천여운이 어이가 없어했다.

그렇다는 것은 후손인 천무성은 자신의 육신을 살리는 것을 버리고, 그 정신을 컴퓨터로 옮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떤 의미로는 스스로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스스로의 정신만을 복제하는 길이었다.

‘......후우, 일단 영상을 재생시켜봐.’

[알겠습니다.]

나노가 다시 영상을 재생시켰다.

그러자 영상 속의 천무성이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슈퍼컴퓨터 마신과 하나가 되어....이 개발을 위한..... 조직운영을 계속....이어나갈 수....있을 거다. 하아...하아.

‘조직운영?’

천여운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만약 이 말대로라고 한다면 무성회, 아니 MS그룹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천무성 본인일 확률이 너무 높았다.

아니 좀 더 확실하게 하자면 그의 뇌 정보를 복제한 인공지능이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말이 될 수도 있었다.

-이것으로 3092번 영상 기록을 종료.....크흑.....

말을 이어가던 천무성이 목이 메었는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창백하고 초췌한 얼굴이 어느새 붉게 상기되어서 울음을 터뜨렸다.

천무성이 호흡이 벅찬지 꺽꺽거리며 혼잣말을 했다.

-죽기....죽기 싫다. 너무 무섭다.

안타깝게도 천무성은 병에 걸려 죽는 이 현실을 너무나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공포와 좌절로 가득했다.

-눈을 감았을 때.....이대로 끝이라는 게.....무섭다. 너무 괴롭다. 하아....하아....사후라는 것이 정말 있을까? 아니면 그저 무일까?

그는 진심으로 죽음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천여운조차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찌 보면 지금의 자신이 있게 만들어준 후손이 죽음을 앞두고서 괴로워하는 지켜보는 셈이었다.

“하아.”

천여운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영상 속에 천무성은 연신 죽기 싫다는 말만을 계속 되뇌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데 영상 속에서 천무성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수.

-아?

연신 꺼이꺼이 울던 천무성이 당황해하더니, 이내 급히 영상을 종료시켰다.

-치칙!

다음 영상이 재생되지 않았다.

‘나노. 다른 영상들은 손상된 거야?’

[다음 영상은 없습니다. 이게 마지막 영상입니다.]

‘마지막?’

천여운이 보고 있던 이 영상이 마지막 영상이었던 것이다.

절묘하게 영상이 종료되어서 마지막에 천무성을 부르던 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뇌를 슈퍼컴퓨터 마신의 A.I로 업데이트가 무사히 종료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이것 참.”

천여운이 진공관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모르게 답답해졌다.

숨겨뒀다고 하는 타임팩은 보이지 않고 전혀 예상지 못한 정보들만 얻었다.

‘.......그럼 MS 그룹을 현재 운영하고 있는 것은 천무성의 뇌를 복제한 인공지능일까?’

영상대로라고 한다면 그럴 것이다.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뭔가 이상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천무성의 뇌를 복제했다고 해도, 그 인공지능은 천무성이어야 맞았다.

그런 그가 뒤에서 암약을 꾸미는 존재가 되었다?

‘대체 진짜 목적이 무엇이냐?’

십원 중 한 사람인 디(D)의 기억속에서 그들의 목표는 신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만약 MS 그룹의 수장이 천무성의 인공지능이라면 그 목표는 그가 삼고 있는 목표여야만 했다.

‘생각해보면 녀석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정말로 천무성을 복제한 인공지능이라면 그를 알아봐야 했다.

그런데 MS 그룹은 천여운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심지어 간부들조차도 그렇고, 목소리만 들었던 총수라는 자조차 자신의 가명이자 이 조직을 세운 천무성이라고 불렀다.

‘뭔가 있다.’

이런 것을 감안한다면 천무성이 의도한 대로 모든 것이 이뤄지지 않은 듯 했다.

‘녀석의 기록대로라면 1730년의 영상이다. 지금으로부터 339년 전이라는 소린데. 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분명 이 사이에 누락된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지 않고는 MS 그룹이 원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신을 만든다는 해괴한 짓거리를 할 리가 없었다.

“후우.”

더 이상의 고민은 무의미했다.

이렇게 된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하나였다.

MS 그룹의 총수를 직접 만나는 것만이 답이었다.

-슥!

천여운이 일단 그림자 속으로 TVM을 챙겼다.

그러던 차에 천여운의 머릿속으로 허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여기 이상한 기계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전부 갑자기 터지면서 망가졌습니다.

“뭐?”

-어? 이거 뭐지?

그 말에 이어서 문란영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봉봉 내가 직접 말할게요. 천마시여. 여기 모니터 화면에 영어로 omission of report.....sucide sequence라고 적혀 있습니다.

영어로 적혀 있어서 허봉이 전혀 읽지 못한 듯 했다.

문란영도 영어를 잘 할 줄 몰랐지만, 이 시대에서 비서로 활동하면서 알파벳과 간단한 영어 정도는 알고 있어서 이것을 읽을 수 있었다.

이를 들은 천여운의 인상이 굳어졌다.

“보고 누락? 자폭 진행?”

영어를 그대로 해석하면 그랬다.

-콰아아앙!

그 순간 엄청난 굉음소리와 함께 위에서 강한 열기가 느껴졌다.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전처럼 도중에 막을 수 있는 그런 시간조차 없었다.

“칫!”

-스륵!

천여운의 신형이 공간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어느 한 지점에 천여운이 나타났다.

사방이 부서지며 폭발이 일어나는 한 가운데에 백기와 허봉, 문란영 등이 동시에 반탄강기를 일으키며 이에 대응하고 있었다.

“주군!”

천여운을 발견한 그들이 외쳤다.

하지만 폭발의 뜨거운 열기로 그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슥! 우우웅!

천여운이 손을 휘젓자 그들이 있던 공간에 강한 풍압이 일어나며, 폭발을 견뎌내는 진공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세 사람은 폭발의 직격을 피할 수 있었다.

“아?”

“내 가까이로 붙어라!”

“네넵!”

-우우웅!

천여운이 오른손목의 보호대에 귀기를 일으키자, 그 안에서 고스트 하나가 튀어나왔다.

공간이동 능력을 발휘하는 고스트인 이(E)의 고스트였다.

‘용천그룹으로!’

천여운의 명령이 떨어지자, 고스트가 두 팔을 벌렸다.

그러자 천여운을 비롯한 세 사람의 모습이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강제로 만들었던 진공 상태가 풀리면서 그곳 역시도 폭발에 휘말렸다.

-콰아아앙!

같은 시각 용천 그룹 중진 회의실.

마침 아직까지 회의실에 있던 교주 천우진과 소교주 천유장, 중진들이 갑자기 나타난 네 사람의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치이이이!

백기와 허봉, 문란영의 몸에서는 열기와 함께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허봉이 약간 타들어간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후아. 또 대머리가 될 뻔 했네."

지금은 풍성한 모발을 지녔지만 한 때는 불운한 사고로 대머리였던 허봉이다.

세 사람의 그런 모습에 소교주 천유장이 얼떨떨해져서 물었다.

“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선조님.”

천여운이 심기가 불편한 표정으로 답했다.

“짜증나는 일.”

갑작스럽게 섹터가 폭발하는 바람에 코드 네임 씨(C)를 데려오지 못했다.

게다가 세 명이나 되는 아까운 사요기의 클론들도 잃었다.

그 순간에는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

만약 천여운이 조금만 늦었어도 세 사람은 폭발에 휘말렸을 것이다.

*  *  *

오직 기계로만 가득한 공간.

기계들의 중심부에는 수많은 모니터들이 있었고, 그 모니터 화면에는 흰 글씨의 0과 1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다.

모니터들 중의 하나에 무언가 글씨가 새겨졌다.

-disappearance of The first.

(시작을 잃었다.)

그런 모니터들 가운데 가장 큰 화면의 모니터로 영문의 글씨가 새겨졌다.

-no more time.....

(더 이상 시간이 없다.)

-Activate the process of making God.

(신을 만드는 프로세스를 가동한다.)

*  *  *

“천마이시여.”

회의실에 있는 천여운에게 부속실장 비막헌이 스마트폰을 들고 왔다.

“누구지?”

갔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여전히 심기가 불편한 천여운의 목소리.

이에 비막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자 분이십니다.”

“아!”

제자라 함은 바로 투신의 후예인 악영이었다.

먼저 타임팩을 가지러 다녀온다고 미처 깜빡하고 있었던 그였다.

결과적으로 타임팩은 얻지 못했지만 북해빙종의 후예도 찾을 겸 악영을 데리러 곧장 러시아로 가야 했다.

‘제자 분이라고?’

-웅성웅성!

비막헌의 말을 들은 회의실의 중진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마인 천여운이 제자를 거뒀다는 말이기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의 관심을 뒤로 한 채, 천여운이 전화를 받았다.

“악영.”

-스승님.

“바이칼 호수에 도착했나?”

천여운은 타임팩을 가지러 가기 전에 악영에게 바이칼 호수로 갈 수 있다면 그곳으로 이동하라는 지시를 했었다.

브라츠크 시의 남동쪽에 있는 바이칼 호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런데 악영의 반응이 이상했다.

-스승님 으음,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아무래도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전화기로 뭔가 치칙 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뭔가 타는 듯 한 소리에 가까웠다.

‘뭐지?’

같은 시각.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 서쪽 근방.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악영의 전신이 붉은 빛으로 음영이 일렁이고 있었다.

한 밤 중에도 불구하고 주변이 붉은 빛으로 환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글이글!

악영의 바라보는 곳이 온통 용암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푸른 호수가 있어야 할 곳에는 붉고 뜨거운 용암이 매섭게 넘쳐흐르고 있었다.

"허어, 이걸.....어찌 한담."

이 용암으로 가득한 호수의 한가운데에 천여운이 이야기 한 북해빙궁의 성지인 알혼섬이 있으리라.

그런데 너무나도 뜨거운 열기로 섬은 커녕 호수 근처로도 진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59화 기록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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