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체인지 (1) >
‘말도 안 돼!’
코드 네임 씨(C)는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제 3객주 엘레나는 지구의 중력 백 배 이상이나 되는 곳에서 살아온 초인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지구에 있는 사물, 즉 존재하는 것에 대한 모든 경도나 강도는 스티로폼을 만지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 괴물을 저렇게 만들어?’
양팔과 다리를 전부 자른 것도 모자라 반죽을 만들어놓았다.
그녀에게 정말 충격적인 것은,
‘아무리 그래도 여잔데.....’
-저벅저벅!
걸어오는 천여운의 표정은 무감정하기 그지없었다.
한 마디로 여자고 뭐고 간에 가차 없는 인간이라는 소리였다.
코드 네임 씨(C)는 이 상황이 두려워졌다.
“꽤 흥미로운 체질이더군.”
천여운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엘레나를 슬쩍 쳐다보고 말했다.
연달아 타격을 줌으로써 그녀를 완전히 무기력하게 만든 천여운은 고스트로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고스트가 되지 않았다.
완전히 다른 형태의 육신으로 생기가 전혀 빨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무력화 시킬 수밖에 없었다.
코드 네임 씨(C)의 눈빛이 침울해졌다.
‘최악이야.’
숨겨진 힘이라 할 수 있는 3객주를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절 어찌 하실 생각이시죠?”
“네 대답과 행동에 따라서 결정되겠지.”
천여운의 그 말에 그녀가 분하다는 듯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허봉이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이죽거렸다.
“상황이 바뀌었네. 히히.”
조금 전만 해도 득의양양해서 항복을 권유했던 그녀였다.
허봉을 흘겨보듯이 노려본 그녀가 말했다.
“안타깝지만 제가 가르쳐드릴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설사 말할 수 있다고 해도 무엇 때문에 안 되는지는 잘 아시지 않나요?”
MS 그룹의 모든 연구원들의 몸속에는 나노 폭탄이나 금제 기기가 들어 있었다.
혹시나 연구원들이 잡혀서 정보를 노출시킬 상황을 대비한 것이다.
“글쎄.”
천여운이 미심쩍은 반응을 보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십원에서 영입한 에이치(H) 오현구에게 코드네임 비(B)와 씨(C)에 대해서 들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십원이라고 해서 매번 같은 자가 맡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그 시기 때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는 연구원들이 십원으로 추대 받습니다. 매번 바뀌는 시스템이라 보면 됩니다. 하지만 코드네임 비와 씨는 다릅니다.]
[뭐가 다르다는 거지?]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총수를 모셨다고 들었습니다. 십원들 중에서 누구도 그들의 나이를 제대로 짐작하는 자가 없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래?]
이것을 기억하고 있는 천여운이었다.
“총수의 곁을 지키는 두 심복 중 하나라지?”
“........”
씨(C)가 그 말에 답변하지 않았다.
이미 총수인 에이(A)에게 에이치가 살아남아서 변절했을지도 모른다고 들었다.
이를 감안하면 천여운에게 상당한 정보가 흘러갔을 터이니,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저 남들보다 더 오래 같이 일했을 뿐이에요.”
그런 천여운의 말에 씨(C)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어느 정도 평정심을 되찾은 그녀였다.
“그런 심복에게도 남들과 똑같이 금제를 가했다라.”
“아무리 그렇게 저를 심문해봐야 아무 소용없어요. 정히 그렇게 제 말이 거짓인지 알고 싶으시면 확인해보시면 되잖아요.”
그녀가 천여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마치 배팅을 한 도박사처럼 배짱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십원들 중에서 총수의 심복이었기 때문에 다른 십원들과 달리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네놈이 무슨 수로 체내의 금제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내겠어.’
이것은 그녀의 허패였다.
금제는 애초에 되어 있지 않았다.
MS 그룹의 초창기 멤버들 중의 한 사람인 그녀였다. 당연히 천여운의 예상대로 금제 따윈 되어 있지 않았다.
천여운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당당하게 쳐다보고 있는 저 눈빛에는 마치 뭔가 노림수가 있어 보였다.
“자발작인 것을 기대하긴 힘들겠군.”
“네?”
“이 기지를 이곳에 지은 이유가 무엇이지? 원래 이곳에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았나?”
이해할 수 없는 혼잣말을 한 천여운이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에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무 대답도 못한다고 했을 텐데요.”
“총수와 코드 네임 비(B)의 근거지는 어디에 있지?”
“.......지금 제 말을 무시하시는 건가요?”
연달아 이어지는 천여운의 질문에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을 하는 것 자체를 말이다.
“이 기지의 비밀이 무엇이지?”
“.......”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천여운이 세 개의 질문을 더 했다.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판단했기에 그녀를 고스트로 만들어 그 기억을 읽기 위함이었다.
“저는 분명 대답할 수 없다고 했어요. 정말 시간낭비를 하시는 군요.”
“아니. 충분하다.”
천여운이 팔목의 보호대 형태의 천마검에 귀기를 일으켰다.
손에서 음산하면서도 차가운 푸른빛이 일렁였다.-우우웅!
천여운이 그녀를 고스트로 만들기 위해 손을 뻗으려 했다.
그런데 그녀의 반응이 묘했다.
‘응?’
코드네임 씨(C)의 목에 검을 겨냥하고 있던 허봉의 눈에 그녀의 눈동자에서 기묘한 빛이 일렁이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의 입 꼬리가 실룩거리고 있었다.
명백히 뭔가 노리고 있다는 의미였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허봉이 노기가 서려서 그녀가 허튼 수작을 하지 못하게 검날을 목에 갖다 댔다.
-슥!
그 순간 그녀의 눈빛에 당혹감이 서렸다.
‘이런!’
바로 그때였다.
허봉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갑자기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털썩!
“허봉!”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뒤에 있던 백기가 그를 다급히 받아들었다.
그런데 쓰러진 것은 허봉만이 아니었다.
고스트로 만들려고 했던 코드네임 씨(C) 역시도 바닥에 쓰러졌다.
-쿵!
‘무슨 짓을 한 거지?’
두 사람이 동시에 쓰러진 것에 의아함을 느낀 천여운이 귀기를 거둬들였다.
혹시나 그녀가 수작을 부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에 아주 잠깐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었다. 허봉의 검날이 그녀의 목에 닿는 순간 말이다.
-슥!
천여운이 손을 내밀자 쓰러졌던 그녀의 몸이 세워졌다.
아무래도 신체 접촉을 통해서 이능력을 펼치는 유형의 인간인 듯 해서였다.
‘중요한 정보가 없군.’
안타깝게도 에이치 오현구 역시도 씨(C)의 이능력을 알지 못했다.
MS 그룹에서 에이, 비, 씨 세 사람에 관한 정보만큼은 거의 기밀에 가까울 만큼 알려진 게 없다고 했으니 이해는 갔다.
“으음.”
그때 정신을 잃었던 씨(C)가 눈을 떴다.
두통이라도 느끼는지 오만상을 쓰고 있는 그녀가 천여운을 보더니 말했다.
“주군?”
“.......뭐?”
순간 천여운은 그가 무슨 말을 하나 싶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그녀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에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헉! 이게 뭐야? 주, 주군! 제 목소리가 왜 이렇게 여자처럼 들린답니까?”
“대체.....”
이건 아무리 봐도 허봉의 말투였다.
어째서 MS 그룹의 간부인 씨(C)가 그의 말투로 말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황했던 것도 잠시였고 천여운이 입술을 뗐다.
“네년. 이게 무슨 짓이지?”
“엑? 주군. 저한테 년이라뇨? 아니. 그런데 이 진기부터 풀어주시면....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내린 씨(C).
진기로 몸을 들어 올리면서 내려간 수건 때문에 적나라한 나신이 보였다.
봉긋하게 솟은 가슴을 내려다 보더니, 갑자기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뭔가 이상한 말을 지껄였다.
“흐허허헝.”
‘!?’
백기가 미간을 찡그렸다.
방금 그것은 허봉이 굉장히 기분이 들떠있거나, 혹은 극도로 흥분되었을 때 나오는 콧소리와 매우 흡사했다.
바로 그때였다.
-푹!
“큭!”
날카로운 무언가가 기계 슈트가 비어있는 틈 중 하나인 겨드랑이를 찔러왔다.
찔리는 순간 이를 감지한 백기가 다급히 허봉을 잡고 있던 양팔을 떼고서 뒤로 물러났다.
-타타타탁!
“너!”
백기가 허봉을 노려보았다.
그를 찌르려고 든 것은 넘어지던 것을 받쳤던 허봉이었다.
“봉봉? 이게 무슨 짓이에요?”
대장로 문란영이 백기를 공격한 허봉의 행동에 이해할 수 없어 물었다.
그런데 허봉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천여운이 진기로 붙잡고 있는 코드네임 씨(C)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갑자기 끼어들다니. 하아.”
씨(C)를 향한 짜증과 적의를 드러냈다.
그런데 반면 진기에 묶여 있는 코드네임 씨(C)는 자신을 노려보는 허봉의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주, 주군! 제 눈이 잘못된 게 아니겠죠? 어째서 제가 또 저기 있는 건지? 잠깐......”
허봉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밑으로 내렸다.
그리고는 얼굴이 또 다시 달아오를 만큼 빨개져서는 말했다.
“주군......혹시 이거 그 계집의 몸 아닙니까?”
코드네임 씨(C)의 그 말에 천여운의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허봉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말만으로 지금 벌어진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했다.
천여운이 허봉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년. 몸을 바꿨구나.”
이에 허봉이 손을 들어 올려 입을 가리며 여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생각보다 빨리 알아차리시는 군요.”
그의 아내인 문란영이 많이 충격 받았는지 어이없어했다.
“이게 대체 무슨....”
남편의 몸에 다른 년이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 여태껏 겪었던 일들 중에 가장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허봉, 아니 그의 몸속으로 들어간 코드네임 씨(C)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의 멍청한 수하가 방해하지 않았다면, 당신의 몸을 제 것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참 아쉽군요.”
그녀의 이능력은 체인지(Change).
자신의 혼 혹은 정신을 다른 자와 바꿀 수 있는 능력이다.
코드네임 씨(C)가 오랜 기간 동안 MS 그룹의 총수의 심복으로서 지내올 수 있었던 최대의 비밀이었다.
‘저 괴물 같은 인간의 몸을 빼앗을 수 있었는데.’
그녀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천여운의 몸만 빼앗으면 모든 상황이 종료라고 할 수 있었다.
“내, 내가 여자가 되다니? 내가 여자가 되다니!”
자신의 봉긋한 가슴을 쳐다보면서 흥분했던 것도 잠시.
허봉이 현실로 돌아왔는지 충격을 받아서 호들갑을 떨어댔다.
-화르르르륵!
문란영의 몸에서 엄청난 불꽃이 치솟았다.
그녀가 얼마나 노했는지 무섭게 일그러진 얼굴로 허봉과 몸을 바꾼 코드네임 씨(C)를 노려보면서 소리쳤다.
“당장! 내 남편의 몸에서 나와!”
엄청난 기세에 샤워실 벽마저 녹아내리려 했다.
이에 코드네임 씨(C)가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워워, 그러지 않는 것을 추천할게요. 제가 죽는다고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니까요.”
“뭐?”
문란영이 당황해하는데, 코드네임 씨(C)가 천여운을 쳐다보며 말했다.
“말 그대로에요. 절 죽인다면 당신 수하의 몸이 죽는 겁니다. 그럼 당신 수하는 평생 그 몸에 갇혀서 살게 되겠지요.”
그 말에 씨(C)가 된 허봉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안 돼!”
그렇게 되면 평생 익힌 무공이 공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그럼 부인과는 어떻게 애를...”
“야!!!”
순간 당황한 문란영이 내공을 실어서 사자후와 같은 일갈을 내지르자, 씨(C)와 몸이 바뀐 허봉이 심후한 공력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쯧쯧."
한편의 코미디를 보기라도 한 듯 허봉의 몸에 들어간 코드네임 씨(C)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천여운에게 말했다.
“수하의 몸을 되돌리고 싶으시겠죠?”
그녀는 자신이 유리한 고지를 잡았다고 확신했는지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후후, 이제부터 제대로 된 협상을...”
-쾅!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눈에 순간 별이 핑 하고 돌았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머리의 충격 때문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시야가 깜깜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 대체?’
뭔가 막혀 있는 듯 했다.
그런데 몸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뭔가 아등바등 거리며 움직일 수 있는 느낌이었다.
-콰앙!
그때 무언가 강대한 힘이 그녀를 위에서부터 뽑아냈다.
그제야 그녀는 방금 전에 천장으로 자신의 머리가 꽂혔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대체 뭘..."
-쾅!
"끄악!"
또 다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머리가 천장을 뚫고 들어갔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다시 머리가 천장을 빠져나온 씨(C)가 황당해하며 말했다.
“지, 지금 뭐 하는 거에요? 당신 수하가 다쳐도 상관없나요?”
그런 그녀의 말에 천여운이 무표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한 가지 실수를 했다.”
“네?”
이해할 수 없어하는 그녀를 당혹케하는 말을 했다.
“허봉의 몸은 매우 튼튼하지.”
‘!?’
< 58화 체인지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