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175화 (175/234)

< 57화 TQC 코드 (1) >

용천 그룹 본사의 중진 회의실.

그곳에 용천 그룹과 블레이드 식스의 모든 중역들이 모여 있다.

하지만 대화의 중심은 거의 양측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천마 천여운과 일령 황헐에 의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전신에 링거를 꽂고 있는 황헐이 회의 탁자에 켜진 3D 중원 지도에 레이저빔으로 어떤 위치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현재 추정되는 위치는 38곳. 본문은 저들을 추적한 끝에 총 483곳의 추정 장소를 탐색했고 남은 곳이 본좌가 가리키는 곳들이다.”

블레이드 식스는 국방부와 협약을 맺은 후로 틈이 나는 대로 게이트 방벽 외부를 수색했고, 장장 십 년에 걸쳐서 이만큼의 위치를 추릴 수 있었다.

얼핏 수색하는데 오래 걸린 것 같지만, 게이트가 열리는 시점 때만 수색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굉장한 성과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 38곳 중 한 곳에 MS 그룹의 근거지가 있다는 거로군.”

“클클, 놈들이 갑자기 근거지를 옮기지 않는 이상은 저곳들 중에 9할의 확률로 있다고 장담하지.”

황헐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큼 확실한 정보라는 의미였다.

사법형무소 사건으로 블레이드 식스의 발이 묶인 기간이 아직까지 그리 길지 않았기에 정보에 신뢰성은 높았다.

“38곳이라......”

이 추정 위치들만 조사한다면 MS 그룹의 근거지가 나올 것이다.

“어떤 식으로 도와주면 되는 거지?”

천여운의 물음에 황헐이 3D 중원 지도를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저들을 찾는 일을 도울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이것은 본문에서 계속 해왔던 일이다. 다만 한 가지는 도움 받고 싶다.”

“말해라.”

“게이트 방벽 바깥을 탐색할 수 있는 권리.”

정부 이외에 현재 그 권리를 가진 곳은 오직 용천 그룹뿐이다.

국방부와의 협약으로 용천 그룹은 게이트 경보령이 내리지 않더라도 자유로이 바깥을 탐색할 수 있었다.

황헐은 지금 그 권리를 원하는 것이다.

[저 선조님.]

그런 황헐의 말에 못마땅했는지 소교주이자 용천 그룹의 회장인 천유장이 전음을 보냈다.

[선조님의 명이기에 일단 저들과 동맹을 맺기는 했지만, 자그마치 천 년을 넘게 적대 관계였던 자들입니다. 그런 권리를 그냥 주기에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게이트 방벽 너머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권리는 모든 기업들과 무림 단체들이 탐을 내는 권리였다.

천유장은 블레이드 식스가 이런 권한을 가지는 것을 경계했다.

이에 천여운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좋다. 권리를 얻을 수 있도록 국방부 부장에게 연락해보겠다.”

[서, 선조님!]

의견을 묵살하고 권리를 주겠다는 말에 천유장이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천여운은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단, 수색을 위해 방벽 바깥에 나가는 경우는 우리 쪽 사람들을 대동하거나 감사로 넣는다. 동의하나?”

“크흠.”

황헐이 좋다가 말았다며 입맛을 다셨다.

저 권리를 아무런 리스크 없이 넘긴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블레이드 식스를 크게 키울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천여운이 그것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아쉬워도 그게 어딘가.

“좋네. 그것은 우리가 감수하지. 흠흠, 그리고 이 건도 좀......”

“뭘 말이냐?”

황헐이 눈치를 보면서 뉴스를 띄웠다.

그것은 사법형무소 사건 때 가짜 금성룡이 연루된 뉴스였다.

지금 블레이드 식스는 이 사법형무소 사건 때문에 제대로 운신하는 것조차 힘들었고, 모든 계약이 끊길 상황이었다.

“이게 어떻다는 거지?”

“......제가 아니라는 것은 선배님께서 잘 아시지 않습니까?”

금성룡이 조심스럽게 천여운에게 말했다.

결국 세간의 오인을 풀기 위해 가짜임을 밝혀달라는 소리였다.

이에 천여운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 않나?”

“네?”

동맹 관계가 되었으니 어느 정도 도움을 주리라 여겼던 금성룡이 당황스러워했다.

현재 그는 검찰에 기소가 된 것도 모자라 정부 차원에서 현상 수배가 내려진 상태였다.

“제 기소가 풀리지 않으면 저희 그룹의 운신의 폭이....”

“동맹 이전에 그것은 너희들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어찌....”

천여운이 눈짓으로 교주인 천우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본교의 현 교주가 자그마치 27년 동안이나 옥살이를 했다. 그것도 누명을 쓰고서 말이다.”

그 말에 금성룡이 입을 다물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사실 그 역시도 일부 책임이 있었다.

정부의 초빙으로 불려나갔던 무림 협회의 전문가 측의 한 사람으로 금성룡 본인이 출두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에 관한 책임을 묻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라.”

“...........”

날이 선 천여운의 말에 금성룡이나 황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역시!'

반면 천우진을 비롯한 용천 그룹의 중진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천여운의 결정에 반겼다.

내심 천여운이 동맹 때문에 중요한 부분들 역시 양보해주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럴 일은 전혀 없을 듯 했다.

*  *  *

용천 그룹(천마신교)과 블레이드 식스(극도육무문) 간의 동맹 협의가 모두 끝났다.

최종적으로 세부 사항들은 각 그룹의 회장들과 중역들이 결정하기로 했고 주요한 굴직한 것들만 천여운과 황헐의 결정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지금부터는 시간싸움이었다.

블레이드 식스는 총력을 기울여서 MS 그룹의 근거지를 찾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여기서 용천 그룹은 블레이드 식스의 모든 계열사들의 끊어진 공급 계약을 대신 해줌으로써 그들의 숨통을 트여주기로 했다.

사실 일시적인 해소에 불과했고, 장기적으로 본다면 블레이드 식스가 전적으로 용천 그룹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블레이드 식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를 벗어나기 위해 회사의 명예를 되찾으려고 안간 힘을 기울일 것이다.

블레이드 식스가 떠난 회의실.

부속실장인 비막헌이 천여운에게 스마트폰을 넘겼다.

-스승님.

“악영.”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의 주인은 투신의 후예이자 천여운의 제자인 악영이었다.

공간이동 이능력자인 이(E) 덕분에 러시아로 날아 가버린 그였다.

“이야기는 들었다.”

-정말 당혹스럽습니다.

악영은 천여운과 바로 연결되길 바랐다.

하지만 블레이드 식스와 전면전을 치르면서 그것이 지체되면서 한참을 기다린 그였다.

“지금 위치가 어디라고 했지?”

-지도상으로는 도시인 브라츠크 인근입니다.

브라츠크(Братск)는 러시아 이르쿠츠크 주 브라츠키 군에 있는 소도시였다.

도시 내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악영은 현재 여권도 없고, 러시아어를 할 줄 몰랐기에 방벽 내부로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스승님. 죄송하지만 이곳으로 제 여권과 함께 러시아어 통역이 가능한 사람을 보내주실 수 없겠습니까?

언제까지 방벽 바깥을 떠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방벽 바깥은 유독 물질들로 가득했기 때문에 아무리 심후한 내공을 지닌 악영이라고 해도 오랫동안 노출되는 것은 좋지 않았다.

“알겠다. 계속 스마트폰을 켜놓도록 해라. 곧 그쪽으로 가도록 하겠다.”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습니다.

“네 잘못도 아닌데 개의치 마라.”

-그리 말씀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천여운은 마침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러시아에 있는 바이칼호의 알혼섬으로 돌아간 북해빙종의 종주를 만나보려고 했던 차였다.

천여운이 중진들과 수하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나는 잠시 러시아에 다녀오도록 하겠다. 오래 걸리진 않을 터이니, 기다리고...”

“저.....주군.”

그때 백기가 천여운을 불렀다.

“왜 그러지?”

“저희 셋을 제외하고 잠시만 주위를 물러주시겠습니까?”

천여운이 의아해했다.

그가 말한 세 명은 허봉과 대장로 문란영, 그리고 백기 본인이었다.

천여운의 세 심복들이 뭔가 할 말이 있다고 판단한 교주 천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선조님. 백기 공께서 드릴 말씀이 있는 것 같으니, 일단 저희는 나가있겠습니다.”

천우진이 일어나자 소교주인 천유장과 중진들도 따라서 일어났다.

물론 부회장 직속으로 포함된 비서들인 유소화, 샤케나, 임소혜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나간 후에 백기가 입을 열었다.

“주군. 허봉과 대장로에게 저희 셋이 왜 동면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알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들은 천무성이 남겨놓은 신물의 위치를 나누어놓은 세 암호를 가지고 있었다.

예지가 성무천이라는 이름으로 천무성이 그가 다시 원래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안배를 해두었다고 전해들은 천여운이다.

“주군. 주군께서 하시는 일도 분명 중요하지만, 그 전에 신물을 먼저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사료됩니다.”

이에 동의하는지 대장로 문란영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백기 공의 말이 맞습니다. 저도 그렇고 백기 공도 동면 중에 MS 그룹의 습격을 받았었습니다. 암호로 되어 있다고는 하나 혹여 신물이 그들의 손에 들어갈 위험도 있을 테니, 미리 회수해야 합니다.”

“오!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주군.”

“......넌 아니었잖아.”

나무라는 백기의 말에 허봉이 입술을 실룩거렸다.

어쨌든 세 수하들의 의견은 동일했다.

그들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신물을 먼저 회수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렇군.”

뭔가 무거운 목소리.

사실 천여운 역시도 백기를 되찾고 나서부터 신물에 관해서 생각을 했었다.

그가 짐작하는 것이 맞다면 그 신물은 분명 타임팩이었다.

“후우.”

천여운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 시공간을 뛰어넘게 만들어주는 이 타임머신은 단 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다.

그의 수하들의 입장에서야 희생을 각오하고 동면까지 들었지만 천여운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희생이 달갑지 않았다.

‘그래. 일단 회수는 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을 분석해서 타임팩을 양산화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다만 타임팩은 워낙 미래의 기술이었기에 나노에게 락이 걸려 있어서 타임팩 자체를 분석하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위잉!

동면에서 깨어난 지 꽤 되었기 때문에 현대 문물에 어느 정도 능숙해진 문란영이 회의 탁자에 터치 스크린을 띄웠다.

“저부터 암호를 그리겠습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흰 스크린 화면에 그림을 그렸다.

크기가 다른 삼각형을 여러 형태로 그렸는데, 총 36개였다.

“어? 부인 나와 다르구려.”

이어서 허봉이 그린 그림은 직사각형부터 정사각형, 안을 칠한 네모 등 다양한 형태로 조합된 36개의 네모들을 그렸다.

다음은 백기였다.

백기는 동그라미를 그렸는데, 다른 두 사람처럼 크기와 색이 칠해진 36개를 순서에 맞게 나열했다.

‘TQC 코드.’

미래 2600년 경에 만들어진 암호이다.

TQC 코드는 Triangle(세모), Quadrangle(네모), Circle(동그라미)의 조합을 이뤄야만 해석이 가능하다.

셋 중 하나만 빠져도 완전히 해석 자체가 불가능한 암호였다.

후손인 천무성은 다른 자들이 유산을 찾아내더라도 절대로 비밀을 알 수 없도록 이런 조치를 취해 놓았다.

‘해석할 수 있지? 나노.’

[TQC 코드를 스캔하여 겹치겠습니다.]

천여운의 두 동공이 파르르 떨리며 터치 스크린의 세 암호들이 스캔되었다.

그렇게 스캔된 암호들이 증강현실에서 하나의 위치로 겹쳐졌다.

그러자 바코드처럼 복잡한 문양의 형태가 되었다.

[TQC 코드의 조합이 완료되었습니다. 암호를 해독합니다.]

암호 해독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얼마 있지 않아 증강현실에 중원의 지도가 구현화되었다.

지도에서 수많은 붉은색 선들이 그려지더니, 이내 그것이 하나의 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윙! 윙! 윙! 윙!

그 위치는 바로,

‘호북성?’

호북성에 있는 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용천 그룹이 있는 제남시에서 서남쪽으로 한참은 이동해야 하는 위치이다.

입체화된 지도를 보면 저곳은 방벽이 있는 곳이 아닌 산골짜기의 한곳으로 보였다.

“흠.”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저곳은 황헐이 MS 그룹의 근거지로 추정되는 위치로 짚었던 좌표에서 꽤나 가까웠다.

거의 거리가 1, 2km 정도 오차를 가지고 있었다.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서둘러야겠는데.’

저 위치에 가본 적이 있다면 단번에 공간 이동할 수 있겠지만 저렇게 지도로 표기해서야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가본 적이 있는 곳인가.’

혼자서 생각한 것이었지만 나노가 답변했다.

[좌표 31°23'38.6"N 110°16'23.8"E. 사용자께서 예전에 갔던 곳입니다.]

‘뭐?’

천여운이 가본 적이 있는 위치라고 한다.

의아해하는 그의 두 눈으로 증강현실에 나노의 저장 장치에 기록된 영상기록들이 출력되었다.

‘여긴.....’

그곳은 바로 폐검곡(廢劍谷)이었다.

먼 옛날 천마 조사와 극도신이 싸움을 벌였던 장소였다.

지진으로 지층이 밑으로 가라앉아 나뉘면서 계곡이 생겨나 그 흔적들이 낭떠러지 아래로 들어간 곳이기도 했다.

‘여기에 숨겨놓다니.’

의외의 장소에다 숨겨놓은 듯 했다.

어찌 되었든 장소가 이곳이라면 더욱 잘됐다.

한 번 갔던 장소로는 공간이동으로 단번에 이동할 수 있는 천여운이었다.

그것이 과거의 장소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주군. 아시겠습니까?"

허봉이 궁금한지 물어보았다.

이에 천여운이 그를 비롯한 두 수하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지금 바로 이동한다.”

*  *  *

뜨거운 김으로 가득한 샤워실.

-쏴!

한 나신의 여인이 샤워기의 따뜻한 물을 맞으면서 눈을 감고 있었다.

샤워실에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을 들으면서 감상을 하고 있는 여인은 흥얼거리면서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하루의 마지막을 이렇게 푸는 여인이었다.

반쯤 열려있는 샤워 부스 앞에는 블루투스 스피커와 큰 샤워타월, 그리고 은색으로 씨(C)라고 새겨진 가면이 있었다.

“음음음~”

흥얼거리면서 재즈 음악을 즐기는 그녀.

그것은 갑작스럽게 벌어진 뜬금없는 일로 인해 멈출 수밖에 없었다.

-콰드득!

‘!?’

샤워실 왼쪽 편 벽에서 균열이 일어나더니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벽에 얼굴과 상반신의 일부만이 튀어나온 낯선 자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그 낯선 자가 몸을 바등거렸다.

“억억!"

“꺄아아아악!”

-쨍그랑!

당황한 그녀가 어찌나 놀랐는지 샤워부스의 유리창을 깨고서 넘어지고 말았다.

마치 벽면에 사람을 가둬두고서 지은 것 마냥 나타난 사람이 오만상을 찌푸리고서 말했다.

“제. 젠장! 주군......벼, 벽에 꼈습니다.”

갑작스럽게 벽 속에 껴서 나타난 자는 바로 허봉이었다.

나신의 여인이 영문을 알 수 없어 했는데,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녀의 뒤로 붉은색 머리카락의 여인과 새하얀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검은 정장의 사내가 서있었다.

그들은 바로 천여운과 대장로 문란영이었다.

'이, 이자는?'

나신의 여인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천여운이 그런 그녀를 무감정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너.....나를 알고 있군.”

< 57화 TQC 코드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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