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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173화 (173/234)

< 56화 악우(1) >

“어떻게....알고 있는 거냐?”

황헐이 놀란 눈으로 천여운에게 물었다.

단순히 몇 마디 만으로 추측했다고 하기에는 곧바로 알아 맞춘 것이 신기했다.

‘또 인가?’

천여운은 또 다시 MS 그룹이 연관된 것에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모든 무림의 단체들부터 시작해 정치, 게이트 키퍼, 공안, 뒷세계까지 손을 대지 않는 곳이 없었다.

과거 무림을 배후에서 좌지우지 했던 극도육무문까지 그들과 악연을 맺고 있다는 것은 꽤나 놀라운 일이었다.

“어쩌다 그들과 엮인 거지?”

천여운의 물음에 황헐이 치가 떨린다는 표정으로 과거를 떠올렸다.

지금으로부터 약 350여 년 전.

격변하는 세계의 흐름 덕분에 무림에서 이단아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던 극도육무문이 서서히 기반을 다져가던 시절이었다.

‘350여 년 전?’

그의 이야기에 천여운이 의아해했다.

MS 그룹이 그렇게 오래 전부터 존재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사령 중에 남은 우리 셋은 노화라는 벽에 가로막혀서 그것을 타개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어느 시점부터 보이지 않는 오령.

영물들을 찾아내기 위해 수많은 인력과 시간을 소모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의 정보망에 해남도 오지산에서 이무기가 발견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그것이 현세에 마지막 영물이었다. 우린 이무기를 잡기 위해 직접 움직였다.”

이무기는 영물들의 수장 격인 존재였다.

지룡이라 불리는 이무기는 다른 영물들 이상의 강함을 가졌기에 그들 세 사람이 직접 나선 것이었다.

“반나절을 꼬박 이무기와 우린 싸웠다.”

세 명의 사령들은 그때에도 근 천 년을 살아온 절대고수들이었다.

그런 그들은 합공으로 이무기와 싸웠고, 단 세 명이서 그것을 잡는데 성공했다.

이무기의 피를 취하면 그들의 노화된 몸에 젊음을 되찾을 수 있기에 매우 기뻐하던 그 찰나에 예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때 놈들이 나타났다.”

하필이면 그들이 공력을 상당히 소진했을 무렵이었다.

한 은색 가면을 쓴 사내와 적미의 노인, 그리고 불길할 정도로 엄청난 살기를 내뿜는 노인 세 명이 나타났다.

‘적미?’

천여운은 적미라는 말에 얼핏 누군가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그 뒤에 불길할 정도의 살기를 내뿜는 자에게 더 흥미가 갔다.

‘그 자인가?’

초유신이라고 불리는 천살성의 존재.

왠지 그 자 같았다.

황헐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우린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들을 경계했었다.”

황헐을 비롯한 두 명은 그들이 접근해올 때까지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이미 그 시점에서 그들이 보통 존재가 아님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때 그들 중에 은발의 가면을 쓴 자가 제안했다.

[오랫동안 그대들을 지켜봤소. 우리와 손을 잡는다면 그대들 극도육무문이 무림의 이단이 아닌 양지로 설 수 있도록 도와드리리다.]

이런 제안에 그들이 선뜻 넘어갈 리가 없었다.

다른 때도 아니고 이무기와의 싸움으로 지쳐있을 무렵을 노렸다.

절대로 좋은 의도일 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손을 잡고 싶다면 적어도 정체를 밝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황헐의 질문에 은색 가면의 사내가 선뜻 자신들의 조직을 밝혔다.

[그렇군. 예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구려. 우리들은 무성회 소속이오.]

“잠깐!”

천여운이 황헐의 이야기를 끊었다.

왜 그러는가 싶어서 의아해하는 황헐이 천여운의 반응에 입을 다물었다.

관조하듯이 듣고 있던 천여운의 표정은 꽤나 어두워져 있었다.

‘우연인가?’

천여운은 황헐의 입에서 나온 무성회라는 말에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설마 그 무성회가 MS 그룹인 거냐?”

“......그렇네만.”

천여운의 인상이 굳어졌다.

MS가 무엇의 약자일지에 대해서 고민한 적은 있지만, 인터넷이나 어떠한 자료에도 그 기록이 없었다.

그런데 ‘무성’이라는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럴 리가 없다.’

무성은 천여운의 현재 가명이다.

그리고 그 가명은 미래에서 자신의 시대로 넘어와 나노 머신을 주입했던 후손의 이름이기도 했다.

‘우연......인가.’

단순히 자신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인지 오인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갔다.

물론 우연히 그 이름이 겹칠 수도 있었다.

무성이라는 이름을 쓰는 중원인이 한 둘도 아니었고, 단체명이나 조직명으로 쓰기에 부적절한 조합도 아니었다.

동면하고 있던 수하들이나 천마신교의 옛 사기에는 천무성이 성무천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예지가로 활동했었다고 했다.

‘우연이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천무성이 이런 조직을 만들 리는 없었다.

전혀 연관점도 없었고 말이다.

황헐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천여운에게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마신.”

“......아니다. 계속 이야기해라.”

이에 뭔가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지만 황헐이 계속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지쳐있었고 만전의 상태가 아니었기에 일단 그들이 요구조건을 들어보려 했다.”

그런데 그들의 조건은 황당하게도 이무기의 진원과 사체였다.

말 그대로 그들의 수확물을 전부 노린 것이다.

노화의 진행을 막기 위해 겨우 이무기의 소재를 파악한 황헐과 다른 사령들이 이를 포기할 리가 만무했다.

“결국 그들과 싸워야만 했다.”

“제법 하나보군. 그 자리에 있던 세 놈 모두.”

“아니.”

“음?”

“그 자리에서 나선 자는 단 한 명이었다.”

황헐은 아직도 그 기억을 잊을 수 없었는지 치를 떨며 말했다.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특유의 불길한 살기를 감추지 않는 노인이 나서면서 말했다.

[극도육무문. 허허허, 드디어 이렇게 네놈들과 만나게 되는구나. 꿩 대신 닭이라 안타깝지만 그래도 이 노부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길 바란다.]

전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은 노인.

그 자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을 향해 손을 썼다.

황헐은 눈동자를 파르르 떨면서 말했다.

“본좌의 평생 그분을 비롯해 당시의 마신 그대나 수많은 고수들을 만났지만 그런 괴물은 처음 보았다.”

지쳤다고 하지만 사령의 세 명이 합공을 했다.

물론 그 당시에 황헐이 자연경의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압도적인 결과가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불과 몇 초식도 되지 않아 그들은 패했다.

“이령인 마후연이 동귀어진의 수법으로 잠시라도 놈을 막지 못했다면 본좌 역시도 그 자리를 빠져나오지 못했을 거다.”

마후연의 이름을 말하는 황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분노와 슬픔이 동시에 묻어났다.

이령의 희생을 활로 삼아 황헐은 미친 듯이 그곳을 벗어나 도망쳤다.

“마신 그대와의 싸움 이후로 평생 다시 도망칠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겨우 도망친 황헐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기에 극도육무문의 본진으로 오자마자 자신을 비롯한 모든 사령이 죽었다는 소문을 내게 했다.

“처음 얼마간은 놈들이 본좌의 생사를 알기 위해 수많은 간자를 보내왔다.”

황헐은 쥐 죽은 듯이 모습을 숨겨야만 했다.

적어도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만이라도 자중하고 힘을 길러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 그의 바람과 달리 그들은 오랫동안 중원을 암약하며 정치, 사회, 경제, 무림 어느 곳에서든 영향력을 발휘했다.

“본문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노선을 바꿔야 했지.”

이단으로 남게 되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한 극도육무문은 변모를 꾀했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당시 놈들은 자신들과 조금이라도 척을 지게 되면 무림의 공적 마냥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그때를 기점으로 극도육무문은 정파의 무림의 일원이 되었다.

천여운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거였나.’

그들이 어째서 정파 무림이라 할 수 있는 무림 협회의 한축이 되었는지, 그제야 의문이 풀리게 되었다.

그렇게 극도육무문은 정도 무림의 일원이라는 가면을 쓰고서 암중에 힘을 기르고 있던 차였다.

“15년 전에 놈들이 갑자기 그룹을 해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MS 그룹에 뭔가 큰 사건이 터진 것 같았는데, 그것이 원인이 된 듯 했다.

블레이드 식스가 된 극도육무문은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본문은 피의! 피의! 복수를 하기 위해 자취를 감춘 놈들의 행방을 추적했다.”

강조하는 그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주인인 극도신을 죽인 천여운에 대한 분노보다도 더욱 강렬했다.

천여운이 물었다.

“대답하기 싫다면 대답하지 않아도 좋다만.....미후연이라는 자 때문이냐?”

그런 천여운의 물음에 황헐은 슬픔에 잠긴 눈빛을 보였다.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보아서 확실했다.

여자의 이름인 것을 보아 그와 깊은 관계였는 듯 했다.

‘복수였군.’

연인이 되었든 동료가 되었든,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자를 잃은 황헐의 슬픔은 오직 피의 복수로만 채울 수 있었다.

그때 문득 천여운은 황헐이 한 말 중에 중요한 부분을 짚었다.

“잠깐....그러면 네놈들은 15년이나 MS 그룹을 추적한 것이냐?”

만약 그런 것이라면 극도육무문은 저들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쥐고 있을 지도 몰랐다.

그런 천여운의 물음에 황헐이 화가 나서 말했다.

“마신 그대가 중요한 순간에 그걸 망쳤지.”

“뭐?”

느닷없이 자신의 탓으로 몰아가는 말에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렸다.

“뭘 망쳤다는 거냐?”

“본문은 오랜 추적 끝에 그들이 게이트 방벽 내가 아닌 바깥에 그 근거지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호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그마치 15년을 추적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사법형무소 사건이 터지면서 본문은 현재 정부에서도 그렇고 무림에서도 공적과도 같이 되어버렸다.”

천여운이 만든 가짜 금성룡 회장 덕분에 수많은 감시를 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천여운이 국방부와 독점 협약을 맺게 되면서, 용천 그룹을 제외한 어떠한 무림 조직도 게이트 바깥으로 나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본교에 덤빈 거냐?”

“크흠.”

천여운의 물음에 황헐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사실 블레이드 식스의 입장에서는 모든 혐의를 벗고 독점 협약을 파하기 위해서는 용천 그룹과의 전쟁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저 단순히 천 년의 원수를 갚기 위한 것만이 아닌 셈이다.

“겸사겸사 맞았던 것뿐이니라. 마신.”

“웃기는 놈이로군.”

천여운의 황헐을 보면서 혀를 찼다.

자신을 지독한 원수로만 여겼다면 아무리 역량이 미치지 않는다고 해도 끝까지 죽일 듯이 덤볐을 것이다.

결국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이다.

“그래도.....후련하구나.”

황헐이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속에 담고 있던 모든 이야기를 내뱉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현 극도육무문의 기둥이었다.

그런 자신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밝히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후우.”

마음을 다잡은 황헐이 다시 결의에 차서 눈을 부릅뜨고서 말했다.

“마신 그대에게 부탁이 있다. 만약 그대도 MS 그룹과 척을 지은 관계라면....”

“관계라면?”

-으득!

황헐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반드시 놈들을 이 세상에서 지워주게나!”

그 말과 함께 황헐이 목을 내밀었다.

속에 담겨있던 모든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뱉어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망설임은 없었다.

아까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망설였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에게 복수를 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억울해서였다.

그런 황헐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뭐, 좋다. 그 부탁은......오랜 악우로서 들어주도록 하지.”

‘!!!’

천여운의 입에서 나온 악우라는 말에 황헐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오랜 세월 동안의 고통을 안고 살아왔던 그였기에 그 외로움과 고통, 그리고 공허함이 메꿔지는 기분이었다.

“고맙네.”

황헐이 편하게 두 눈을 감았다.

귓가로 천여운이 검을 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연. 그대의 복수는 그분마저 죽인 괴물 놈에게 맡겼네. 오랜만에 만나도 나를 너무 나무라지 말게.’

-촤아아악! 탁!

그때 황헐의 등목에서 차가운 검날이 멈춰 섰다.

단번에 목을 벨 거라 여겼는데, 갑자기 멈추자 황헐이 두 눈을 감은 상태로 말했다.

“무슨 짓인가?”

의아해하는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역시 네놈은 그냥 죽이기는 아깝군.”

“뭐?”

-슥! 차차차차착!

천여운의 손에 들려있던 천마검이 다시 분해되면서 손목의 보호대로 변했다.

그리고는 천여운이 한손을 뻗자 황헐의 고개가 들어 올려졌다.

황헐이 노기가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본좌를 동정하는 것이냐?”

그에게 동정을 바라서 속에 담겨 있던 이야기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눈을 뜨고서 노려보는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아니. 동정은 아니다. 그저 네놈을 이용하려는 것뿐이지.”

“이용?”

미간을 찡그리는 그에게 천여운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했나.”

< 56화 악우(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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