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극도육무문 (1) >
용천 그룹의 본사와 사옥들이 모여 있는 부지.
그곳에서 약 2.6km 가량 떨어진 산봉우리 위에 한 복면을 쓴 남자가 망원경으로 용천 그룹 부지 내부를 살펴보고 있었다.
복면의 남자는 어둠에 특화된 쫙 달라붙는 검은 타이즈로 된 옷에 등허리에는 검은 도집을 차고 있었다.
그런 남자의 귀에 꽂혀있는 무선 이어폰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상해시. 천무성이 헤이든 호텔에서 항구 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복면의 남자의 눈동자에 희열이 차올랐다.
남자가 쓰고 있던 복면을 벗었다.
복면 속에 감춰져 있던 그 얼굴의 주인은 다름 아닌 블레이드식스, 아니 현 극도육무문의 수장인 금성룡이었다.
‘드디어 때가 되었구나.’
금성룡은 오직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실질적 일인자라 할 수 있는 천여운이 자리를 완전히 비우기를 기다렸던 그였다.
‘네놈 덕분에 그 동안 우리가 쌓아왔던 모든 공이 무너져 내렸지.’
그들의 회사인 블레이드식스.
정도 무림에서 오신 그룹과 더불어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그들은 사법형무소 사건을 계기로 제대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회사의 매출이 반토막을 넘어섰고 주가가 바닥을 쳤다.
고스란히 천마신교의 전신이라 할 수 있었던 블랙 스카이 컴퍼니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었다.
‘흥! 본문이 그리 쉽게 당할 것 같나!’
-탁탁!
금성룡이 이어폰을 손가락으로 세 번 두드리고서 말했다.
“상위 육문주.”
“충!”
이어폰에서 차례대로 여섯 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블레이드 식스, 즉 현 극도육무문을 이끄는 여섯 간부들이었다.
전통대로 극도신무를 완벽하게 익힌 그들은 부회장 오천수와 총괄 이사인 성백천을 제외하면 무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최고의 역량을 지닌 고수들이다.
“준비 되었나?”
“드디어!”
“기다렸습니다.”
상위 육문주들이 흥분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은 며칠 째 전쟁을 치르고 싶다는 전의를 고양시킨 채로 이곳을 지켜왔다.
그런 굶주린 늑대들에게 금성룡이 명을 내렸다.
“출진한다.”
“충!”
힘찬 대답과 함께 뭔가를 끊는 소리가 들려왔다.
-팍!
그 순간 용천 그룹 부지를 중심으로 3km 지점에 있는 모든 전기가 끊어지면서 암전이 찾아와 사방이 깜깜한 암흑으로 뒤덮였다.
한편 용천 그룹의 부지.
회장이자 소교주인 천유장
폐관수련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교주 천우진을 축하하기 위해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와인을 반주로 곁들이고 있었다.
“이렇게 아버님과 오랜만에 식사를 하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납니다.”
매일 같이 혼자 식사를 하던 천유장의 얼굴이 미소로 가득했다.
추억이 되살아난 기분이었다.
그런 아들의 얼굴에 천우진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애비가 부족하여 너희들을 많이 챙기지 못했지.”
“아버님......”
사실 애써 말을 하고 있진 않지만 천우진은 내심 죽은 천유성을 안타깝게 여겼다.
아무리 못났다고 해도 제 품 안의 자식이었다.
그는 수련 하는 내내 자신이 적들의 함정에 빠지지만 않았어도 형제 간에 서로의 목숨을 해하는 교주 쟁탈전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절대 아버님 탓이 아닙니다. 어찌 저희들의 책임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천유장이 진심이 담긴 위로를 전했다.
심적으로 많이 성장한 아들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을 해주니 고맙...”
-치칙! 팍!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전기가 나갔다.
암전된 상황에 의아해진 천유장이 물었다.
“오늘......전기가 끊긴다는 이야기가 있었더냐?”
“그럴 리가요? 저희 부지의 전기는 24시간 동안 끊기지 않도록 제남시 중전(中電)과 계약이 되어 있습니다.”
용천 그룹 내에는 24시간 가동되는 공장 건물들이 있었다.
냉동 물품에 관한 사업이나 공장의 엔진이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천유장이 일어나 부엌 옆에 있던 내선 전화기를 들었다.
-.........
“아.”
생각해보니 내선 전화기는 전기가 끊겨서 되지 않았다.
손목에 있던 플랙시블 스마트폰을 편 천유장이 환명오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현재 전화를 거시는 곳은 발신이 불가능하기에 통화가 가능한 지역으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들려오는 안내 멘트에 천유장의 인상이 굳어졌다.
전기만 끊겼다면 중화 정부 지역 전기 공사에 문제가 생겼을 거라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전파마저 차단되었다.
“아버님!”
“들었다.”
-착!
교주 천우진이 식탁 옆에 걸쳐놓았던 자신의 검집을 들었다.
천유장이 창문의 커튼을 펼치고서 부지를 보았다.
부지 전체가 어둠으로 뒤덮여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팍!
그때 본사 건물의 일부에 불이 켜지는 것이 보였다.
예비 전력이 켜져서 가동하는 것이었다.
다른 공장의 경우는 전력 소비가 굉장히 컸기 때문에 불이 켜지지 않았다.
“일단 본사로 가자꾸나.”
“네.”
두 사람이 다급히 검을 챙겨서 본사 건물로 향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전기가 끊기면서 용천 그룹 부지 내에 있는 대다수의 교인들이 본사로 모이고 있었다.
본사의 로비에 도착하자 중진들과 마주쳤다.
그들이 교주 천우진과 소교주 천유장에게 달려왔다.
“교주님! 회장님!”
“환명오 이사.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있겠소?”
천유장의 물음에 환명오 이사가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내기 위해 지금 본사 내 암종의 요원들을 주변으로 파견했습니다. 그보다 일단 적습에 대비한 방어 체계를 가동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런 환명오 이사의 의견에 다른 중진들도 동의했다.
이에 천유장이 나서서 중진들과 종파의 종주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각 종파의 수장들은 각자가 맡은 방비 지역으로 교인들을 이끌고 이동하시오.”
“충!”
17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이들을 이끌어 온 천유장이었다.
능숙한 그의 지휘에 종주들이 교인들을 데리고 방어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이동했다.
-팟!
세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그들의 대호법 마라윤과 양대 호법들이었다.
“교주님, 소교주님.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마라윤과 좌호법 이종화, 우호법 섭형 등이 각자 삼각 대형으로 그들의 주위에 섰다.
그 모습에 천유장이 내심이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세 호법들이 이렇게 지키던 모습을 오랜만에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로비로 누군가 성큼성큼 힘찬 걸음으로 걸어왔다.
등뒤에 거대한 대검 두 자루를 철컹거리면서 다가오는 그는 최근 합병을 위해 용천 그룹으로 온 무쌍검종의 종주 왕신이었다.
-팍!
왕신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호쾌한 목소리로 외쳤다.
“교주님. 신도 함께 하겠습니다!”
“오오. 왕신.”
천마신교의 최대 전력 중 한 사람인 그의 합류는 굉장히 컸다.
현재 용천 그룹은 전 블랙 스카이 컴퍼니 시절의 천마신교와 비교하더라도 절대로 전력이 뒤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훨씬 강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단 한 사람으로 인해서 말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최강의 전력이 자리를 비웠을 때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스륵!
그때 그들의 앞으로 누군가 나타났다.
적염을 보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은 대장로 문란영이었다.
“대장로!”
소교주 천유장이 환해진 얼굴로 그녀를 불렀다.
그래도 그녀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문란영의 무위는 현 무림의 오대고수들을 훨씬 상회한다.
게다가,
-스르륵!
“인간! 여기들 다 모여 있었네?”
“샤케나!”
“아! 언니. 샤워하고 있는데 온수가 끊겼어요!”
보랏빛 머리카락이 젖어서 물기가 남아 있는 샤케나가 인상을 팍 구겼다.
당사자는 불쾌해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등장에 천유장을 비롯해 중진들은 든든하게 여겼다.
마족인 그녀의 전력은 현경의 고수 그 이상이었다.
환명오가 대장로 문란영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천마께 이 사실을 말씀드렸습니까?”
그가 알기로 스마트폰이 없이도 문란영은 뇌속에 있는 나노 머신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물론 지금 부지 내 전력도 충분했지만 알려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런 환명오의 물음에 문란영이 고개를 저었다.
“연락이 되지 않는다. 환명오 이사 그분께 따로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나?”
“아아....역시로군요.”
“왜 그러나?”
의아해하는 그녀에게 환명오가 어두워진 얼굴로 답했다.
“역시 전파를 끊은 것으로 부족해서 방해 전파 장치도 쓴 것 같습니다.”
문란영의 머릿속에 있는 나노머신의 뇌파 역시도 일종의 주파수로 연락을 취하는 방식이기에 방해 전파를 쓰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떡하나?”
“일단 암종의 요원들을 밖으로 보냈습니다. 그들에게 지사의 종주들과 모든 교인들에게 경고 발신을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런 환명오의 말에 문란영이 우려가 된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이 이 주변의 포위망을 뚫고서 나갈 수 있겠나?”
“네?”
그녀의 말에 모두가 놀라했다.
사실 이곳에 있는 자들 중에서 최고로 기감이 넓은 자는 문란영이었다.
생사경의 고수인 그녀는 기감을 통해 수많은 인원이 본사 부지 주변으로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는 것을 감지했다.
“적습이.....확실하군요.”
우려했던 것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천유장이 그녀에게 다가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장로. 혹시 적들이 어느 정도 되는지 기감으로 확인이 가능합니까?”
“소교주님.....확실하게 느껴지는 인원만 해도 대략 1,200명은 훌쩍 넘어섭니다. 당연히 전부 절정 이상의 고수들입니다.”
“이런.....”
그런 그녀의 말에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류 고수도 아니고 1,200명이나 되는 이들이 절정의 고수 이상은 엄청난 전력이었다.
현 무림에서 그 정도로 고수들을 보유하고 있는 단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무림협회 본단을 비롯해 오신 그룹이 항복을 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그 정도 전력을 과감하게 투입시킬만한 곳은,
“설마.....”
“블레이드식스!”
무림의 조직 중에서 그런 여력을 지닌 곳은 오직 블레이드식스뿐이다.
암종의 수장인 환명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런 실책을 하다니.’
그는 천여운의 명령으로 암종의 요원들을 보내 블레이드 식스의 본사와 지부들을 감시했다.
얼마 전부터 그들의 수장인 금성룡 회장이 청두시로 출장을 간 이후로 종적이 사라지면서 이를 찾으려 많은 요원을 파견했었다.
그런데 설마 이들이 이렇게 조용히 제남시까지 파고들고 있을지 몰랐다.
-팍!
환명오가 무릎을 꿇고서 죄를 청했다.
“제 실책입니다. 교주님, 회장님. 저들이 설마 이 정도 전력을 은밀히 이동시킨 것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환명오의 실책이라 보기 힘들었다.
블레이드 식스 내에 있는 다른 전력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동향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17년 동안이나 힘이 약화되고 분산된 천마신교와 달리 블레이드 식스는 최근까지도 그 성세가 계속 이어져왔다.
교주 천우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환명오 이사. 지금 그걸 논할 때가 아닐세.”
이미 적들이 이곳을 포위하고 있다면 어떻게든 막아내야만 했다.
이 정도라면 이미 천마신교와 극도육무문의 전면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위험하군.”
천우진이 심각한 얼굴로 턱을 쓰다듬었다.
사법형무소의 일로 블레이드 식스, 즉 극도육무문은 천마신교에 이를 갈고 있었을 것이다.
“하아, 천마께도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극도육무문과의 전면전이라면 천여운 역시도 이 사실을 알아야만 했다.
환명오 이사의 중얼거림에 샤케나가 말했다.
“주인님께 그 스마트폰이란 걸로 알리면 되지 않나?”
“불가능합니다. 본사의 부지 전체가 전파 방해라서.”
“그럼 이 지역을 벗어나서 하면 되잖아.”
“그래! 그거야.”
그 말에 문란영이 좋은 생각이 났는지, 손바닥을 마주치면서 샤케나를 바라보았다.
“에?”
* * *
용천 그룹의 부지 주변으로 복면을 쓰고서 도를 들고 있는 수많은 전력들이 도착했다.
야간투시경까지 끼고 있는 그들은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용천그룹 부지 내에 있는 천마신교의 교인들을 전부 사로잡거나, 반항하는 자들은 전부 척살하는 것이었다.
각 방위별로 상위육문주들이 고수들을 이끌고 포진하고 있었다.
금성룡 회장의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부지의 담장을 넘어서 진입할 수 있는 상태였다.
-치칙! 진입합니까?
-잠시 대기하라.
암전되어 어둠으로 가득한 용천 그룹의 입구 부근.
400명의 극도육무문의 정예 무인들과 금성룡 회장이 서있었다.
-끼리리릭!
그때 400명의 틈 사이로 누군가 휠체어를 타고서 나타났다.
전신에 수많은 링거를 꽂고 있는 검푸른 머리카락에 피부 전체가 주름으로 가득한 노인이었다.
자동 휠체어도 아니었는데, 그것은 심후한 진기에 의해서 저절로 움직였다.
-팍!
그의 등장에 금성룡 회장을 비롯한 사백 명이 고개를 숙여 예를 취했다.
[본좌가 직접 선두에서 지휘할 것이다.]
원래라면 곧바로 부지 내부로 진격하려 했지만 이 노인의 명으로 인해 잠시 대기하고 있던 그들이다.
금성룡 회장이 노인에게 다가가 말했다.
“일령. 준비가 끝났습니다. 명만 내리시면 됩니다.”
“오냐!”
수백 세는 되어 보일 것 같은 노인의 목소리에 힘이 넘쳐났다.
심지어 눈빛은 전의로 가득했다.
움직이지 못할 것 같던 노인이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를 금성룡 회장이 부축하려고 했지만, 손을 내밀고서 단호하게 거절했다.
“혼자 걸을 수 있다.”
-우드득!
노인이 허리를 펴고서 근육을 풀어주듯이 손목과 목을 돌리더니, 이내 자신의 몸에 꽂혀있는 링거의 주사 바늘을 전부 뽑았다.
-팍!
노인이 살기가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늘 네놈은 그리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잃게 될....”
‘!?’
-우웅!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그들의 앞에 공간이 일렁였다.
-챙!
찰나의 순간 이질적인 기운을 감지한 금성룡이 그곳을 향해 극쾌의 발도술을 펼쳤다.
극도신무의 제 오 초식인 극쾌살도(極快殺刀)였다.
그런데,
-팍!
일렁이는 공간 속에서 나타난 자가 금성룡의 도를 너무도 가볍게 잡아버렸다.
불시에 초식을 펼치긴 했지만 만전이었던 금성룡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내 도를 잡아?’
금성룡이 자신의 도를 잡아낸 존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본 금성룡의 두 눈이 커졌다.
"어, 어떻게 네놈이 이곳에?"
당황해하고 있는 그의 귓가로 노인이 분노하는 외침이 들렸다.
“마신!!!”
그들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자,
그는 바로 상해시에 있어야 할 천여운이었다.
< 55화 극도육무문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