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MS 그룹 (3) >
“빌어먹을!”
원래부터 적대 관계였기 때문에 천여운이 그를 구해줄 의무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한 번 구원을 받고나니, 혼자만 도망간 것 같다는 생각에 섭섭해진 에이치(H)였다.
한편 연구소에 설치된 수많은 감시 카메라들이 움직였다.
-위잉!
총 420개의 카메라들이 움직이면서 천여운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했다.
에이치가 육성으로 공간이동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을 쉽사리 믿지 않는 모양이었다.
연구소의 모든 곳은 감시 카메라들이 있다.
이 감시 카메라들은 일반 섹터와 달리 열선 감시부터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었는데, 그것에 전혀 포착되지 않고 있었다.
-위잉!
카메라들은 구석구석을 수색했지만 천여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카메라가 없는 한 장소가 있기는 했다.
그곳은 메인 시스템으로 부스가 올라오도록 해야만 하는 코어 제어 장치가 있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억지로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바로 그때였다.
-파칙! 파칙!
밑에서 스파크가 터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연구소 전체를 시끄럽게 하던 모터가 돌아가던 소리가 점차 수그러들었다.
“서, 설마?”
에이치(H)가 밑을 쳐다 보았다.
스파크 소리가 들리던 바닥이 고요해졌다.
그러더니 얼마 있지 않아,
-쾅!
바닥에서 굉음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위로 올라왔다.
그는 바로 천여운이었다.
“헉!”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천여운이 도망갔다고 여겼던 에이치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그가 알기로 이(E)의 이능력인 공간이동은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장소에만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어떻게 밑으로 간 거지?’
물론 이것이 가능한 것은 천여운이 마족에게 흡수한 순간이동 능력 때문이었다.
순간이동 능력은 이동 거리가 짧다.
15미터에 불과했지만 이것은 공간 지각과 별개로 어떠한 장소를 불문하고 이동이 가능했다.
-너.....
스피커 속의 에이(A)가 처음으로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흘렸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활성화되던 코어의 에너지가 완전히 사라졌다.
천여운이 비아냥거리듯이 말했다.
“고맙군. 뭐 그리 필요한 건 아니지만 덕분에 넉넉하게 챙겼다.”
당연히 제어 장치에 있는 코어들을 챙긴 것은 바로 천여운이었다.
밑으로 내려간 그는 제어 장치에 있는 S등급 코어 3개와 A등급 코어 13개, B등급 코어 27개를 전부 챙겼다.
“많이도 쟁여놨더군.”
이런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기에 그림자 속에 잘 모셔놓았다.
-치칙! 치칙!
연구소를 밝히는 LED 등들이 깜빡거렸다.
내부 자체의 모든 에너지가 코어 제어 장치를 중심으로 돌아갔는데, 그것을 제거 해버리는 바람에 남은 예비전력으로 전환된 것이다.
“됐어!”
에이치가 파이팅 포즈를 취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천여운의 빠른 판단 덕분에 연구소의 폭발부터 클론들이 활성화되는 것을 동시에 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네놈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볼까?”
-스륵!
천여운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어느새 천장의 감시 카메라들 중 하나의 앞으로 나타났다.
카메라를 손으로 움켜쥐자, 게이트리윰 선이 손바닥에서 튀어나와 연결되었다.
‘나노 추적해.’
[알겠습니다.]
원격으로 카메라와 연구소를 조정하는 위치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노가 감시 카메라를 해킹하려는 순간,
-파칙! 팡!
카메라가 그대로 터져버리고 말았다.
놈이 손을 썼다고 판단한 천여운은 곧바로 5미터 앞에 떨어진 감시 카메라로 이동했다.
그 순간 감시 카메라가 터져버렸다.
-팡!
‘이놈 봐라.’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사전에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스피커에서 에이(A)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예상이 맞았군.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천무성 너는 기계와 접촉하는 것만으로 프로 해커를 능가하는 수준의 해킹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태껏 우리를 추적할 수 있었구나.
그 말에 천여운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생각보다 냉정하군.’
여태껏 천여운이 상대해왔던 적들은 예기치 못하게 급습을 당하거나, 옆구리를 노려지면 당황해서 빈틈을 보이곤 했다.
그런데 이놈은 상당히 냉정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오히려 자신의 계획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천여운을 분석했다.
‘......확실하게 죽여야겠는데.’
천여운은 에이(A)가 성가신 존재라고 판단했다.
그가 이렇게 판단하는 기준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것보다 천마신교의 안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였다.
그런 천여운에게 스피커의 에이가 확실하게 선전포고를 했다.
-역시 너는 반드시 죽여야 하는 존재이다.
“공교롭군. 같은 생각을 하다니.”
-되도록 이곳이 네 무덤이 되었으면 좋겠군.
-파파파파파파팡!
에이(A)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연구소 내에 있는 모든 카메라와 스피커들이 동시에 터졌다. 컴퓨터에 이은 모든 원격 장치들이 전부 부서진 셈이었다.
이로써 천여운이 그를 추적할 길이 사라졌다.
-탁!
"칫."
천장에서 내려온 천여운이 아쉬웠는지 눈빛에 짜증이 묻어났다.
우두머리를 눈앞에서 놓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로 MS 그룹에 상당한 타격치를 준 것은 확실했다.
십원이 관리하는 섹터 연구소 열 개는 MS 그룹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던 차였다.
-쿵!
뭔가 떨어지는 소리.
이에 천여운이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푸른 액체의 잔흔이 남아 있는 나신의 사내가 밑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는 사요기의 클론이었다.
“죽은 게.....아니었나?”
에너지를 도중에 차단시켰는데, 놈이 눈을 뜨자 붉은 안광과 함께 강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만이 아니었다.
-팍! 팍!
캡슐에 선이 고정되어 있던 클론들이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린 그들이 발버둥을 치자 선들이 해체되면서 밑으로 떨어졌다.
‘젠장! 에너지가 충분히 찼구나.’
이 모습에 에이치(H)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도중에 제대로 에너지 충전이 되지 못했다고 여겼는데, 클론들을 가동시키기에 충분한 양이 전달된 모양이었다.
밑으로 떨어진 클론들은 하나 같이 천여운과 에이치(H)를 노려보고 있었다.
“처, 천 공. 어찌하실 겁니까?”
얼떨결에 한편처럼 엮어버린 에이치가 그의 등 뒤로 슬그머니 뒷발걸음을 치며 물었다.
천여운이 유일한 동아줄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탁!
그때 클론들이 움직였다.
그런데 고작 캡슐 실험관 안에서 태어나서 어떠한 전투 능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거라는 천여운의 예상과 달리,
-우우웅!
그들의 손에서 하나 같이 푸른빛의 강기(强氣)가 일렁였다.
느껴지는 기운만 보더라도 적어도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와 거의 흡사했다.
“강기?......네놈들 무슨 짓을 한 거지?”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지 않습...”
천여운이 싸늘한 눈빛으로 뒤를 쳐다보자 당황한 에이치가 다급히 말했다.
“저, 저희들이 이번에 개발한 칩 속에는 수많은 무림인들의 전투 정보와 무공에 관련된 정보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쉽게 학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러닝(learning)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것은 뇌 속에 칩을 삽입하여 정보를 전달하는 기술이었다.
이를 통해 수많은 무공과 무술에 관한 정보를 삽입하여 언제든지 인간이 자연스럽게 이것을 활용할 수 있게 개발했다.
“아, 아직까지 상용화할 만큼 개발이 진척된 건 아닙니다. 칩이 학습 기능을 대신해준다고 해도 육체적으로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강제적으로 뛰어난 고수들의 DNA로 육체를 만들었다 이 말이냐?”
단번에 이해한 천여운의 말에 에이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일반인의 육체를 만들어서 실험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검증된 육체가 필요했고 그것이 지금의 클론들이었다.
“쯧쯧.”
천여운은 이들의 기술력에 혀를 찼다.
이들이 가려고 하는 기술의 종착지는 어찌 보면 천여운이라 볼 수 있었다.
뇌로 정보를 전이 받고 무공을 분석한다.
게다가 그 무공에 걸맞게 육체를 나노머신들이 변이시킨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의 기술력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번거로운 방법이지만 클론 기술을 활용한 것이다.
-팟!
그때 강기를 일으킨 클론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조직적인 움직임이라기보다는 각자가 천여운과 에이치를 노렸다.
“히익!”
클론들이 펼치는 초식들에 천여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들의 초식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사요기의 클론들은 그가 펼쳤던 백무도의 권법과 도법, 검법 등을 그대로 재현해내고 있었다.
‘깨달음이 필요한 기술은 아니다. 하지만 초식과 그 위력을 최대치까지 발휘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기술력으로 재현해낸다는 건가.’
-파파파파파팟!
“으아아악! 천 공!”
떼거지로 경공을 펼치며 달려드는 클론들에 에이치가 몸을 팍 숙이며 소리쳤다.
이러다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게 한계로군.”
-슥!
천여운이 손바닥을 위로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그 순간,
-쿠쿠쿠쿠쿠쿠쿵!
천여운을 향해 포위하듯이 달려들던 클론들이 일제히 바닥에 강제로 무릎이 꿇렸다.
근 삼백 명에 달하는 클론들 누구하나 예외가 아니었다.
코어의 에너지를 수급 받았다고 한들, 뇌 속에 무공이 담긴 칩을 박았다고 한들 그래봐야 천여운에게는 애송이나 다름없었다.
“.....세상에.”
질끈 감았던 눈을 뜬 에이치가 경악했다.
괴물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클론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손짓 하나로 제압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깨달음이 없이 주구장창 찍어 내봐야 경(境)에 이를 수 없다.”
가지고 있는 기를 최고조까지 다룰 수 있는 초절정의 경지가 한계였다.
더욱 복잡하게 기를 다루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깨달음을 필요로 하는데, 이런 클론들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확실히 위험한 기술이군.’
유전자 개량으로 만들어진 인간 병기들 이상으로 클론들은 강하다.
현 무림이든 과거의 무림이든 절정,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들도 수두룩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렇게 양산화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위험했다.
초인이나 다름없는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들로 이루어진 수백, 아니 수천, 수만 명의 군대를 공장의 기계처럼 찍어낸다면 그야말로 정복 전쟁 또한 가능할 것이다.
‘이래서 코어를 잔뜩 모은 것인가.’
MS그룹이 코어에 집착할 만 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에이치가 천여운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부 죽여야 합니다. 어차피 저들은 한 번 주입된 명령 밖에 듣지 않습니다.”
굳이 살릴 이유가 없었다.
이에 천여운이 오른쪽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
“버리기에는 아깝지. 이 정도 전력은.”
“네?”
-차차차차착!
천여운의 팔목에 있던 흑철이 분해되며 검의 형태인 천마검이 되었다.
천마검을 움켜진 천여운이 이를 들고서 검을 바닥에 박았다.
-팍!
그러자 검신에서 푸른빛의 귀기(鬼氣)가 일어나며 바닥에 스며들었다.
바닥이 하얗게 서리가 내린 것처럼 생기를 잃어가면서 장판처럼 번져나가, 이윽고 무릎을 꿇고 있는 클론들에게 닿았다.
“끄그그그.”
“커커컥!”
클론들의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몸이 하얗게 변색되어갔다.
이윽고 그 클론들의 몸에서 스멀거리며 유령과도 같은 고스트가 생성되었다.
“이럴 수가!”
이 광경을 지켜보는 에이치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눈앞에서 수많은 유령들이 천여운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사요기와 똑같군.”
오십 명의 사요기의 클론들은 육체를 가진 고스트가 되었다.
귀기와 혈살기가 합쳐져서 보랏빛의 음산하면서 오싹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뭐....그럭저럭 쓸 만하군.”
천여운이 나름 흡족해했다.
이백오십 명의 초절정 무위의 고스트와 혈살기를 다루는 천살성 클론들 오십 명을 전력으로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쿵!
그런 천여운의 앞에 에이치가 번개처럼 엎드려서 애원하듯 간청했다.
“제, 제발 저를 받아주십쇼!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원하시는 정보를 전부 갖다 바치겠으니, 부디 천 공을 모시게 해주십시오!”
추가로 MS그룹의 십원 중의 한 명인 과학자도 얻게 되었다.
< 54화 MS 그룹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