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변수 (2) >
불과 30여초 전.
천여운은 눈앞에서 이(E)가 사람들을 공간이동 시킨 것을 보았다.
그때 이질적인 기운을 파악했다.
그런데 이 이질적인 기운이 자신이 가진 어떠한 힘과 상당히 흡사하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공간이동?’
천여운은 마족에게서 순간이동이라는 15미터 가량 공간을 가로지르는 능력을 얻었다.
이로 인해 그 짧은 사이에 어렴풋이 적의 능력을 인지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E)는 채문탁과 자신에게 동시에 공간이동 능력을 발휘했다.
-우웅!
‘이때다!’
짧은 찰나의 순간,
천여운은 채문탁의 혈도를 가격하며 그를 밀친 후에 공간이 가로지르게 되는 지점을 강탈했다.
그리고 순간이동을 펼칠 때와 같은 원리로 그곳에 몸을 맡겼다.
시야의 바뀐 장소에 천여운이 씨익 웃었다.
‘알 것 같다.’
그 단 한 번의 장거리 공간 이동.
천여운은 이로 인해 순간이동 그 이상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가 순간이동의 원리를 아는 것과 우주에 대한 깨달음으로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남달랐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반면 이(E)는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정한 당사자는 없고 뜬금없이 천여운이 공간이동 되었으니 말이다.
‘빌어먹을!’
당황한 이(E)는 무리해서 능력을 발휘했다.
이곳은 절대로 사람들에게 공개 되어서는 안 될 MS그룹의 요지 중 한 곳이었다.
“돌아가랏!”
-우웅!
그런데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천여운이 서있던 곳의 공간이 일렁이다가 이내,
-팡!
다시 공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E)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 어째서?”
뇌의 과부하로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지만 무리해서 능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전혀 통하지 않자 동요를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대충 원리는 알겠군.”
“뭐?”
그 말에 이(E)는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능력을 파악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전혀 이해할 수도, 그리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E)!”
그런 그의 귀로 뒤에 있는 연구복을 입은 자들 중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저 부르는 것에 불과했지만 이(E)는 그 의도를 파악했다.
‘그래!’
저 자를 어찌할 수 없다면 자신들의 위치를 옮겨야 했다.
-뿌득뿌득!
한 번만 더 능력을 발휘한다면 뇌의 과부하를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 상황은 타개할 수 있다.
이(E)가 빠르게 자신을 비롯한 다른 네 명의 위치를 공간이동 시키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타타탁!
“억!”
이(E)가 미처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혈도가 제압되어 기절하고 말았다.
하물며 백기마저도 간발의 차로 그의 능력을 피해냈다.
그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천여운의 경신법 능력은 이 정도 짧은 거리라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다.
‘고스트로 만들면 쓸 만 하겠어.’
공간이동능력의 원리를 파악한 천여운이다.
하지만 타인을 이동시키는 것은 완전 별개의 문제였다.
만약 고스트가 공간이동능력을 쓸 수 있게 된다면 많은 전력을 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게 된다.
‘최고의 능력이군.’
충분히 탐낼 만한 가치가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콰콰콰콰콰! 콰득!
천여운이 있던 곳의 3미터 정도의 공간이 뒤틀리더니, 이내 바닥부터 천장까지 뜯겨져나가며 둥근 형태로 그 부분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흥!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날뛰는 것이야.”
갈색 머리카락으로 염색한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손을 뻗고 있었다.
이것은 그의 이능력인 압축(壓縮)이었다.
그 공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압축시켜 완전히 없애버리는 능력이었다.
최대 100미터까지 발휘할 수 있는 괴물 같은 능력이었지만, 그렇게 된다면 회의장에 있는 자신들마저 휩쓸리기에 이 정도만 발휘한 것이었다.
“잘했소. 케이(K).”
가는 눈매의 사내가 그를 칭찬했다.
이(E) 같은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가 같이 죽은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저런 괴물을 죽이는 것이 오히려 득이었다.
“잠깐! 저거 이(E)가 아니오?”
그때 사각턱의 연구복을 입은 사내가 회의장 입구 쪽을 가리켰다.
그곳의 바닥에 괴상한 자세로 엎어져 있는 자가 있었다.
곱슬머리를 보면 분명 이(E)였다.
“언제 저기에?”
-탁!
그때 누군가 케이(K)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케이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의 뒤에 천여운이 있었다.
“헉!”
“재미있는 짓거리를 하는군.”
당황한 그가 거리도 생각지 않고 손을 돌리며 능력을 발휘하려 했지만,
-탁! 콰득!
“끄아아아아아악!”
천여운이 그의 팔목을 잡고서 그대로 어깨 채 뜯어버리고 말았다.
“시끄럽다.”
그리고는 비명을 지르는 그의 안면을 움켜쥐고서 바닥에다 그대로 내팽개쳤다.
-쾅!
“당신!”
연구복을 입은 이들 중에 이능력자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 중에 미간에 점이 있는 꽤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단발의 여자가 뒤에서 천여운의 목을 향해 수도를 날렸다.
그러나,
“아니?”
수도를 휘두르던 그녀의 손이 도중에 멈췄다.
심후한 진기에 의해 멈춰진 것이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그녀는 방법을 바꾸었다.
‘그렇다면!’
-위잉!
그 순간 그녀의 손이 갈라지며 기관총의 총신이 튀어나왔다.
총신에서 연발로 총알이 발포되었다.
-타타타타타타탕!
총알을 발사하는 그녀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불과 한 보 정도의 거리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로 총알들이 허공에 멈춰 서서 빙글거리며 돌기만 했다.
-슥!
천여운이 손바닥을 내리는 시늉을 하자 총알들이 우수수 바닥에 떨어졌다.
“이, 이게 대체?”
놀라하는 그녀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네년도 아바타인가 그것인가 보군.”
‘!?’
그녀가 기묘한 표정이 되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코드명은 에프(F). 이 아바타 기술을 현재 확립 중인 인물로 기계와 생체 이식, 그리고 인간형 안드로이드 개발 분야의 천재였다.
“운이 좋군. 그래.”
“뭐?”
그녀의 반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여운의 수도가 목을 갈랐다.
-촥! 파칙파칙!
목에서 스파크가 튀어 오르며 기계부로 된 단면이 드러났다.
전신을 컨트롤하는 센터인 머리와 분리되자 그녀의 몸이 흐느적거리며 바닥으로 쓰러져버렸다.
천여운이 이죽거리면서 말했다.
“목이 잘리는 간접 경험도 해보고 말이야.”
에프의 입에서 버퍼링이 걸린 기계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이런...이런...이런....”
스피커 부분에 손상이 간 듯 했다.
그런 그녀의 아바타 머리통을 움켜쥔 천여운이 머릿속으로 나노에게 명했다.
‘위치 추적해.’
[알겠습니다.]
안드로이드를 먼 곳에서 조종했다면 충분히 그 진원지를 파악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 천여운의 기감으로 수많은 기척들이 이곳으로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도 케이라 불렸던 자가 발휘한 이능력 때문에 들린 굉음 소리 때문이리라.
-타타타탁!
문이 닫혀 있는 회의장 바깥 쪽에 발걸음 소리들이 들려왔다.
이를 들은 무사한 두 명 중에 한 사람인 가는 눈매의 사내가 천여운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그만둘 것을 권고하지.”
위태로운 상황임에도 강하게 나오는 모습에 천여운의 입에서 실소가 나왔다.
“상황 파악이 되지 않나보군.”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것은 천무성 그대다.”
“어떤 점이 말이지?”
그런 천여운의 물음에 가는 눈매의 사내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응접실에 그분께서 계시나?”
-삐!
그러자 원탁의 테이블에서 붉은 빛의 점이 나오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회의실 문 앞에 계십니다. 디(D) 선임연구원님.
테이블의 스피커로도 들렸지만 천여운의 귓가에는 바깥에서도 이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닫혀있는 문 반대편에 있는 자가 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 자의 목소리가 상당히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디(D)라고 불린 가는 눈매의 사내가 말했다.
“약간 문제가 생겼습니다. 알바트 후작 각하.”
‘후작?’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에 스피커에서 두꺼운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문제지? 인간.
‘인간?’
천여운의 눈매가 점점 날카로워졌다.
이런 식으로 인간이라고 지칭하는 말투를 쓰는 존재들을 잘 안다.
“빌려주신 신기를 빼앗은 자가 회의실로 난입했습니다. 이 자로 인해서 모든 일이 틀어졌습니다.”
-계약과는 다르군.
중저음의 목소리가 차갑게 식었다.
불편한 심기가 스피커로 느껴지자 디(D)가 두려움에 젖어든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
“저, 저희도 이 자가 신기를 탐낼 줄은 몰랐...”
바로 그때였다.
-파스스슥!
회의실 입구의 문이 재가 되어 흩어져 내렸다.
그와 함께 마치 유럽의 중세 시대의 귀족들이 입을 법한 기품이 가득한 푸른 옷을 입은 금발의 이국적인 외모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쿵!
뒷짐을 지고서 오만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이국인에게 디(D)와 옆에 있는 연구복을 입은 사내가 동시에 한 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예를 갖춰서 말했다.
“미천한 인간들이 후작 각하의 존안을 배알합니다.”
그들의 인사에 대꾸도 하지 않고 후작 각하라 불린 사내가 회의장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저 걷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 위압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런 그를 쳐다보며 천여운이 입을 열었다.
“네놈들 마족과 손을 잡았나?”
마족이라는 말에 디(D)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려 천여운을 쳐다보았다.
‘이놈이 어떻게?’
마족이라는 말을 붙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눈앞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자 심히 당혹스러웠다.
그때 후작이라 불린 자가 천여운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 벌레인가?”
오만하게도 천여운을 벌레라고 지칭했다.
이에 디(D)가 속으로 이 상황을 반겼다.
‘멍청한 놈. 이곳으로 오지만 않았어도 지옥을 겪진 않았을 텐데.’
눈앞의 저 존재는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는 존재였다.
그들마저도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기에 손을 잡고서 협약을 맺은 괴물 중의 괴물.
그런 존재의 심기를 건드린 셈이었다.
디(D)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그렇습...”
-촥!
“컥!”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뭔가를 베는 소리와 함께 단말마의 비명이 들렸다.
앞쪽에 들리는 소리에 디(D)와 옆에 있는 자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
그런데 그들의 눈앞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알바트 후작이 두 눈이 커져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의 머리를 시작으로 정중선에 검은 선이 생겨났다.
그러더니,
-쩌저저저적!
그의 몸이 반으로 갈라지며 둘로 나뉘어서 쓰러졌다.
잘린 단면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그 육신이 타들어가듯이 재로 변했다.
디(D)는 이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괴물들 중의 괴물이라 불리는 마족의 후작이 순식간에 죽은 것이다.
“이.....이게.....”
갈라져서 재가 되고 있는 알바트 후작이 서있었던 곳의 뒤쪽.
그곳에 천여운이 서있었다.
천여운이 경악해하고 있는 그들에게 말했다.
“왜? 이놈과 치고 박고 하는 걸 기대했나?”
< 53화 변수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