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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161화 (161/234)

< 52화 크라켄 (1) >

‘무슨 속셈이지?’

천여운은 분명 채문탁에게 숨겨진 한 수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선상의 출렁임이 강해졌다.

여러 대의 선박들을 묶어서 만든 덕분에 일반 배보다도 흔들림이 적은 것이 강점이었는데, 출렁거리는 게 강해졌다.

‘물 밑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건가.’

천여운의 판단력은 빨랐다.

바다 밑에서 무언가 벌어지려 한다면 애초에 이를 방비하면 된다.

-쩌저저저적!

오령의 기운을 다룰 수 있는 천여운은 극음의 한기를 발산할 수 있다.

영물들보다도 훨씬 많은 진기를 보유한 천여운의 한기는 불과 몇 초도 되지 않아 인근 바다의 수면 부분을 완전히 얼게 만들었다.

‘잡았군.’

천여운조차도 처음 시도해보았지만 성공했다.

두께가 2미터 가량 되는 얼음으로 인해 출렁이던 것이 멈췄다.

수면이 얼게 되면서 암전한 상태로 조용히 도망치던 채문탁의 쾌속선 역시 덩달아 붙잡히고 말았다.

“도망칠 수 없다고 했지?”

천여운이 들고 있는 채문탁의 아바타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바타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쿵! 쿵! 쿵!

잠잠해졌다고 생각한 선상이 뭔가 충격을 받은 것처럼 흔들렸다.

밑에서 무언가 들이 박고 있는 느낌이었다.

“주군!”

그때 천여운이 있는 곳으로 백기가 달려왔다.

배 전체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여긴 그였다.

백기가 얼어붙은 바다를 보면서 놀라했다.

“이거.....설마 주군이 전부 얼리신 겁니까?”

천여운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백기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는 내심 지금의 자신이라면 천여운에게 얼마나 도달한 것일까 궁금해 했었다.

‘.......여전히 괴물 같구나.’

예지가 성무천은 천여운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미래로 갔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신처럼 오랜 세월 동안 수련과 경험을 쌓은 것도 아닐 텐데, 정말 경이로울 정도의 성장 속도였다.

‘하늘이 내린 무재인가.’

그 역시도 뛰어난 무재를 지녔지만 천여운에 비할 수가 없었다.

-쑥!

그때 천여운의 품속에서 무언가 비집고 머리를 내밀었다.

아기 여우와도 같은 금모 구미호가 흥미롭다는 듯이 금안을 반짝였다.

“여우?”

백기가 의아한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를 무시한 채, 금모 구미호가 천여운에게 말했다.

-밑에 꽤 재미있는 게 있네. 천마.

“.....말하는 여우?”

백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여운을 따라 많은 경험을 했지만 여우가 말하는 것은 처음 본다.

-말하는데 뭐! 불만이냐앙?

금모 구미호가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이 백기를 째려보았다.

그러던 차에 선상이 들썩이며 큰 굉음이 터졌다.

-쾅! 쾅! 쾅!

그들이 동시에 그 진원지를 쳐다보았다.

“저건 대체?”

경매장 선상의 남쪽 편,

즉 VIP 고객들을 위한 쾌속선이 있는 곳으로 거대하고 긴 무언가가 세 개가 얼음과 선상 바닥을 뚫고서 튀어나왔다.

그것은 마치 문어나 오징어와 같이 둥근 흡반이 다닥다닥 달려있었다.

“꺄아아아악!”

“이, 이게 뭐야?”

쾌속선에 탄 사람들부터 배에 오르던 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놀라했다.

얼핏 보아도 15미터에서 20미터 가량 되는 거대하고 굵은 길이의 이 괴상한 다리는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냥 이것만 보았다면 정말 초대형 문어나 오징어로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스륵! 스륵!

“히익!”

거대한 다리의 흡반 사이로 눈알 같은 것이 보였다.

눈알들이 흉측스럽게 움직였다.

“위, 위험개체?”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사람들은 이 괴이한 것이 게이트가 관련되었음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눈을 굴리던 위험 개체가 배를 노렸다.

-쿠르르르!

거대한 다리 세 개가 꿈틀거리며 쾌속선을 채찍으로 내려치듯이 공격하려들었다.

“우와앗!”

“모, 모두 피햇!”

그때였다.

가장 먼저 배를 내리치려 하던 거대한 다리가 허공에서 타격음과 함께 멈춰 섰다.

-파파파파파팍!

선박의 위에서 누군가가 두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엄청난 속도로 거대한 다리를 향해 도격을 날리고 있었다.

“대왕 문어주제에 단단하기도 하군.”

경매장을 털어볼까 고민하다 결국 배로 승선하려 했던 신속의 코하쿠였다.

저 괴상한 다리를 처리하지 않으면 선상 위의 모두가 수장될 것이라는 생각에 나서게 된 것이었다.

-슥!

물론 그 말고도 나서는 자들이 많았다.

각국에서 명성을 날리는 무인들이 병장기를 빼들었다.

성검 잭 오렌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경매에 참가하러 왔더니, 귀찮은 일들만 벌어지는군. 그래.”

-팟!

무인들이 일제히 뛰어올라 요동을 치며 배를 위협하는 위험개체의 다리들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선상 위가 한바탕 대 게이트전을 방불케 하는 전쟁터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한편 300미터 가량 떨어진 암전된 배 위.

선박의 탐조등이 일제히 배의 선두 쪽의 수면을 밝혔다.

-파파파파팍!

선두 쪽으로 수많은 이들이 총을 쏘고 폭탄을 던지는 등, 갖은 수로 얼어붙은 수면을 깨부수려하고 있었다.

조타실에 있는 간부들과 승무원들 역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모터 쪽은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얼어붙은 쪽을 녹이려고 하는데, 십 분 정도는 소요될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쇄빙선도 아니고 이걸 어째.”

얼음을 깨부수고 벗어날 수 있는데 걸리는 최대 시간 십분.

조타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채문탁의 눈치를 보았다.

채문탁은 조타실 창으로 멀리서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는 경매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음과 선박을 부수고 더 많은 다리들이 튀어나왔다.

-파파파팍!

“더 커졌군.”

칠 년 전에 잡았을 때보다 더 컸다.

크라켄이라 명명된 저 알파 위험 개체의 다리는 문어나 오징어처럼 여덟, 열 개에서 국한되지 않는다.

그래서 상대하기 정말 까다로운 괴물이었다.

그룹에 ‘그’가 없었다면 저것을 생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쿵!

그때 누군가 조타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회색 가면을 벗은 험상궂은 인상의 사십대 중년인이었다.

“철륭님!”

그는 채문탁의 오른팔인 철륭이었다.

수면이 얼어붙은 덕분에 경공을 펼쳐서 배로 승선한 그였다.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배를 움직일 수 있나?”

다급한 철륭의 물음에 조타실의 승무원들 중의 한 사람이 답했다.

“모터 쪽만 해결되면 운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같아? 지금 그럴 틈이 있을 것 같나!”

철륭은 매우 초조한 목소리로 승무원들에게 윽박을 질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 정도 넓이의 바다가 얼어붙는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보았으니 조급해질 만도 했다.

“저 괴물 같은 놈이 언제 쫓아올지...”

“진정해라. 철륭.”

“선임연구원님?”

“시간은 충분하다. 저걸 봐라.”

채문탁이 가리킨 곳에는 흡반이 달린 거대한 다리들이 끊임없이 바닥을 뚫고서 튀어나오고 있는 선상 경매장이었다.

보이는 것만 해도 벌써 열 두 개가 넘어갔다.

-쾅! 쿠르르르!

각국의 무인들이 필사적으로 쾌속선은 지키고 있었지만, 경매장을 연결해놓은 여러 대의 선상은 거의 반파되어가고 있었다.

무력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이 절규하며 고통스러워했다.

“더.....커졌군요.”

철륭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처음 저것을 보았을 때의 두 배, 아니 세 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래도 A등급 알파 개체였는데, 심해에 갇혀 있는 동안 저렇게 커졌다면 어쩌면 S등급에 버금가게 강해졌을 지도 모른다.

“저 정도 괴물을 상대하는데 십 분으로 가능할 것 같나?”

“그렇지만....”

“그리고 놈은 절대로 우리에게로 곧장 오지 못한다.”

“네?”

“세간에선 그를 영웅이라고 부른다지.”

TRA 사태를 해결한 천여운은 많은 이들에게 영웅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 덕분에 용천 그룹에 대한 것이나 천마신교에 대한 세간의 평이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어갔다.

이런 명성을 이용하기 위해 그와 손을 잡으려고 했던 채문탁이었다.

“아! 천무성 그 자는 저들을 외면하지 못하겠군요.”

“무인이라는 작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명성에 집착하지. 특히 저 만큼 큰 단체를 이끄는 자라면 더더욱 말이야.”

채문탁이 씨익 웃었다.

손해가 제법 크겠지만 자신들은 오히려 그룹의 안위에 위협이 된다면 언제든지 고객들조차 가차 없이 버릴 수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벌써 그 사이에 오 분의 시간이 지났다.

조금만 더 있으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게 된다.

-드르르르! 우웅!

그때 배 전체가 들썩거리며 엔진의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승무원 중 한 사람이 소리쳤다.

“모터 쪽의 해동이 완료되었습니다!”

그 보고에 채문탁이 빙그레 웃으면서 철륭에게 말했다.

“보았지? 조급할 문제가 아니야. 우리는 이제 이곳을 빠져나가면...”

“서, 선임 연구원님!”

그런데 철륭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뒤를 가리켰다.

채문탁이 뭔가 싶어 고개를 돌렸는데,

‘!?’

조타실의 유리창 밖에 누군가 서있었다.

어두운 바깥에서 음영이 드리워진 얼굴로 서있는 그 자는 바로 천여운이었다.

‘이, 이놈이 어째서 이곳에?’

놀라워하고 있을 틈도 없었다.

천여운이 유리창에 손가락을 살짝 갖다 대는 순간,

-차차차차차창!

유리창이 박살나며 파편들이 조타실 안을 덮쳤다.

-파파파파팍!

“끄악!”

“으억!”

당황해하고 있던 조타실의 승무원들의 몸으로 유리파편들이 날카로운 암기처럼 관통했다.

“안됏!”

철륭이 파편들을 다급히 막으며 채문탁을 보호하려고 했지만,

“비켜라.”

천여운이 손을 휙하고 휘젓자,

“으헉!”

-콰콰쾅!

조타실의 벽면을 뚫고서 밖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몇 겹이나 되는 철합판이 종이 조각마냥 휘어지며 부서진 것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철륭!”

명색이 보디가드 역할을 하는 초절정의 고수였지만, 천여운에게는 젖도 안 뗀 애송이나 다름없었다.

“네놈 걱정이나 하시지.”

천여운이 손으로 끌어당기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심후한 진기에 의해 도망가려 하는 채문탁의 몸이 강제로 천여운에게로 끌려갔다.

-부웅!

“비, 빌어먹을!”

이대로라면 붙잡히고 만다는 생각에 채문탁이 이능력을 발휘했다.

그 오른손이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왼손은 하얀 서리가 일렁였다.

그의 능력은 열(熱) 전도와 냉(冷) 전도.

오른손으로 접촉한 생명체의 체온을 상승시켜 불태우거나, 혹은 왼손에 접촉한 생명체의 체온을 급락시켜 얼어붙게 할 수 있었다.

“멍청하군.”

기습적으로 해도 통할까 말까한 전략이었다.

천여운이 살짝 검결지를 움직이자,

-촤촥!

“엇?”

무형의 검기에 의해 그의 양팔이 동시에 잘려나갔다.

무림인들조차 팔이 잘려나가면 그 고통을 버티지 못해하는데, 육신만큼은 평범한 일반인에 불과한 그가 어찌 참을 수 있을까?

“끄아아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바닥을 데굴데굴 뒹구는 그의 피가 조타실 바닥을 적셨다.

가만히 놔두면 과다출혈로 죽겠지만,

-파파파팍!

천여운이 지공을 날리자, 그의 양쪽 어깨의 혈도로 진기가 스며들며 출혈이 멎어들었다.

물론 이것은 임시 조치에 불과했다.

계속 내버려두면 출혈에 의한 쇼크사로 죽을 수밖에 없다.

천여운이 조타실의 조정석 의자에 살짝 걸터앉고서 손을 들어 올리자, 채문탁의 몸이 둥둥 떠서 그의 앞으로 다가와졌다.

‘이, 이놈은 정녕 신이라도 된단 말인가?’

도저히 믿기 힘든 일들만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 대화를 나눌 준비가 충분히 된 것 같군. 채문탁이라고 했던가?”

그런 천여운의 말에 채문탁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조호기 이놈!’

그 외에 자신의 본명을 털어놓을 자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불었는지 불안해졌다.

그 와중에 채문탁의 두 눈에 깨진 창문 바깥의 광경이 보였다.

여전히 경매장은 꿈틀대는 크라켄의 다리로 아수라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채문탁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끄으으....어째서....어째서 저들을 돕지 않는 거지?”

그런 채문탁의 물음에 천여운이 비웃음을 흘리며 오히려 되물었다.

“내가 왜?”

“뭐?”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채문탁이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저, 저들을 구하지 않으면 네놈의 명성에 흠이....”

-꽉!

그런 채문탁의 머리채를 천여운이 움켜잡았다.

“끄윽!”

“뭔가 착각하고 있는 듯 한데, 네놈 눈에는 내가 무슨 정파의 나부래기들로 보이나?”

‘!?’

“알지도 못하는 놈들을 구하자고 네놈을 놓칠 성 싶으냐.”

그 말에 채문탁은 망치로 머리를 두드려 맞는 기분이었다.

그저 천여운의 여러 행보만을 생각하고서 그를 여느 무림의 협객들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이, 이놈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실리에 의해서 움직일 뿐이다.

< 52화 크라켄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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