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백기 (1) >
뇌풍각(雷風脚) 백기.
마신 천여운의 육검(六劍)의 일인이다.
최상위 종파의 종주로서 천마신교의 두 번째 부흥기를 이끈 중심에 있던 그는 별호 대로 뇌기(雷氣)를 다루는 각법의 고수였다.
다섯 영물 중 하나인 용귀의 피를 마시고 뇌기를 가지게 된 그를 정도 무림에서는 뇌마(雷魔)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다.
[네 안에 있는 마기를 갈고 닦아라. 그것이 네 안의 뇌기를 통제하게 도울 것이다.]
천여운의 최측근들은 타락한 이무기의 피의 잔재를 마시고 오래 전 부터 마기(魔氣)를 가지게 되었다.
백기는 천여운의 명에 따라 마기를 익힘에 소홀함이 없었던 위인이다.
-고오오오!
설사 정신을 잃었다고는 하나 그 마기는 천여운에게서 비롯된 힘.
천마기의 제어를 절대로 이길 수 없었다.
-부들부들!
바닥에 무릎을 꿇은 백기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머리로는 분명 움직여야 한다고 여겼지만 그의 전신을 휘어 감는 마기가 움직이지 못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어, 어째서?’
채문탁은 돌발 상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가면 틈으로 보이는 그의 눈빛이 떨렸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대 천마신교의 충성스러운 교인이 고작 네놈의 명령을 들을 것 같나?”
-웅성웅성!
이를 지켜보는 VIP 고객들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았다.
5세대 개량형에 관해 기대감을 가지고 있던 그들의 입장에서는 통제불능의 ‘제품’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채문탁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정말......쉬운 작자가 아니로구나.’
당연히 그러했다.
그 정도 역량과 자신의 조직에 행사를 몇 번이나 퇴짜를 놓았기에 천여운이라면 그룹에서 자신의 기반을 더욱 견고히 하는데 큰 역할을 해줄 거라 여겨서 깊은 연을 맺으려고도 했던 그였다.
“흥!”
천여운이 무릎을 꿇고 있는 백기에게 다가갔다.
그의 뇌에 손상을 입혀 재생되게 함으로써 다시 허봉처럼 기억을 되돌리려는 것이었다.
“잠깐!”
그때 채문탁이 마이크를 끄고서 입을 열었다.
“이런 상황까지는 예측하지 못했지만......내가 그 자가 기억이 되살아나거나 혹은 세뇌가 풀릴 상황을 대비하지 않았을 것 같소?”
“뭐?”
-달칵!
채문탁이 들고 있던 단말기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백기의 두 눈동자의 동공이 풀리며 기계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칩셋 모드 가동.”
-두드득! 두드득!
백기의 몸 안으로 뭔가가 파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입고 있는 기계 슈트의 척추의 신경으로 제어 장치들이 파고든 것이었다.
그럼에도 백기는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우드드득!
‘!?’
백기가 몸속의 마기를 무시하고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뇌속에 심어진 전자칩부터 시작해 척추마다 꽂혀 있는 장치가 전신의 신경 제어를 지배당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오오!”
“다시 움직였어.”
관중들이 다시 흥미를 보였다.
이에 채문탁이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마이크를 켜고서 말했다.
-여러분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저희 MS 그룹에서는 확실한 예비 조치를 해두었습니다. 이번에 나온 NC-35X칩은 여러분들의 불안을 덜어드릴 겁니다.
채문탁이 천여운을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당황했지? 후후후. 내가 바로 채문탁이야.’
채문탁.
한 때 그의 이름은 유명한 유전 과학 저널지와 언론에서 매일 같이 주목을 할 만큼 천재 유전학자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그룹의 연구원들 중에서 유전학과 신경제어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한다.
‘물론 십원들 전부 그 정도는 하지만.’
그들의 앞에서는 자랑할 거리는 아니었다.
채문탁이 천여운에게 이죽거리며 말했다.
“그대들 같은 무인이라는 족속들은 과학과 기술의 힘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지. 그 경시하던 과학과 기술의 힘을 보여주지. 죽여라.”
마지막에 작게 속삭이듯 하는 죽이라는 명령.
관중들로 돔이 시끄러움에도 불구하고 백기는 이를 인식했는지,
“알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온몸에 전격을 내뿜었다.
-파치치치치칙!
마치 뇌신이라도 강림한 듯이 온몸에 눈부신 스파크를 내뿜는 백기.
그 모습에 관중들이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런 엄청난 스파크에도 불구하고 그가 입고 있는 기계 슈트는 이를 대비라도 한 듯이 멀쩡하게 구동되고 있었다.
기술 관련된 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과연 MS 그룹의 기술력은 장장 몇 십 년을 앞섰구나.’
‘저들과 어떻게든 연을 계속 이어야 해.’
단순히 경매만을 위해서 이곳에 온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MS 그룹과 연을 맺기 위해서였다.
-파치치치칙!
온몸이 전격으로 휩싸인 백기가 드디어 움직였다.
기계에 의해서 완전히 지배당한 그의 움직임은 예상과는 다르게 쾌속한 속도를 자랑했다.
-팟! 치치칙!
뇌전의 잔흔을 그리며 이동하는데, 너무나도 빨랐다.
속도로는 최고를 자부하는 신속의 코하쿠조차 놀랄 만한 움직임이었다.
-파칙!
일반 사람들 눈에는 사라졌던 백기가 천여운의 뒤에서 순간이동을 해서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뇌전의 발차기가 천여운의 머리로 날아왔다.
-스륵!
천여운의 신형이 일순간 흐릿해지며 방향이 전환되었다.
그 상태에서 천여운이 왼팔을 들어 백기의 발차기를 막았다.
-파악!
그 순간 백기의 기계 슈트 중앙부에 있는 S등급 코어의 빛이 강해졌다.
그와 동시에 발차기의 힘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타타타탁!
천여운의 신형이 옆으로 밀려났다.
천여운이 직접적으로 막았는데도 불구하고 발바닥이 단상을 부수고 옆으로 파고들 정도의 위력이었다.
‘멍청한 놈.’
그런 천여운을 채문탁이 비웃었다.
이미 수백 번의 임상 실험으로 뇌기와 S등급 코어가 합쳐진 백기의 힘이 증명되었다.
저것은 그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파파파파파팍!
순식간에 백기가 엄청난 각법의 초식을 펼쳤다.
순각종의 무공인 순현각(順玄脚)이었다.
-쿠르르르!
초식을 펼치는 순간 단상뿐만이 아니라 선상 주변이 흔들렸다.
배리어가 재가동되는데도 초식의 위력을 견디지 못해서 돔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위력이다.’
무인들이 경탄을 내두를 정도였다.
-쩌저적!
“꺄악!”
“이러다 돔이 부서지는 거 아냐?”
천장이 뚫려 있다고는 하나 사람들이 불안해했다.
이곳은 바다 한복판이었다.
순각종의 당대 종주인 백종서가 펼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각법이 수많은 각도에서 날아와 천여운의 주요 요혈들을 노려왔다.
위협적으로 느낄 법도 하겠지만 천여운은 오히려 피식 웃었다.
“그런 몸인데도 많이 늘었구나.”
그때도 백기는 강했지만 지금 그의 실력은 당시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오랜만에 예전 생각이 났다.
백기를 비롯한 육검들과는 꽤 많은 단련을 했었다.
“물론 결과는 늘 같았지.”
-파파파파파팍!
천여운이 번개처럼 날아오는 백기의 각법을 한 손으로 막아냈다.
백기는 전력을 다해서 초식을 펼치고 있었는데, 천여운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너무도 쉽게 막았다.
‘아까보다도 더 강한 위력인데?’
‘저걸 막아?’
신속의 코하쿠와 성검 잭 오렌이 속으로 경악했다.
자신들조차도 저런 위력의 초식을 막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대응해야 할 텐데, 천여운은 달랐다.
‘대체.....저 자는 어디까지 무위를 감추고 있단 말인가?’
실력 차가 너무도 확연했다.
아무리 S등급 코어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해도 무위 차가 너무도 컸다.
-팍!
백기의 발차기를 막던 천여운이 그의 발목을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그를 바닥에 패대기를 치듯 내리쳤다.
-콰아아앙!
내려치는 순간 단상 전체가 함몰되면서 돔의 벽면 사방이 갈라졌다.
사람들이 기겁을 하면서 계단 위에서 뛰어내려왔다.
“큭!”
단상이 부서지면서 서있던 곳이 무너져 채문탁 역시도 밑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이번에는 제대로 착지를 해서 정신을 잃거나 하진 않았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채문탁이 당황해서 함몰된 단상을 쳐다보았다.
설마 겨우 이 한 번으로 자신의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제 5세대 개량형이 당했을 리가 없다고 여겼다.
‘아!’
다행히도 예상대로였다.
바닥에 박혀 있는 백기의 몸은 털끝 만큼도 다친 흔적이 없었다.
그때 천여운이 갑자기 백기의 가슴와 머리에 두 손을 갖다댔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그가 쥐고 있는 단말기에서 경고음이 들려왔다.
-삐! 삐! 삐!
단말기의 화면을 본 채문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error! error! error!]
백기를 제어하는 단말기에 표시된 에러(고장) 표시에 그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대체 무슨?’
채문탁이 다급히 단말기를 터치하여 코드를 입력해 에러를 고치려 했다.
그런데 단말기의 화면을 쳐다보던 채문탁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야?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촤르르르!
그의 단말기가 제멋대로 화면이 전환되며 프로그램이 수정되고 있었다.
이것은,
‘해킹?’
백기를 제어하는 칩과 기계 슈트의 프로그램들이 제멋대로 바뀌는 현상은 해킹에 의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럴 순 없어. 내, 내 시스템을 이렇게 무력화한다는 것은!'
-타타타탁!
채문탁이 계속해서 이를 막으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당황한 그가 고개를 들어 천여운을 쳐다보았다.
그저 손바닥만 갖다 댔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메인칩의 명령 코드를 완전히 우회했습니다.]
천여운의 머릿속에 나노의 음성이 울리고 있었다.
해킹을 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천여운의 체내에 있는 나노머신 나노였다.
아무리 MS그룹의 기술력이 오버 테크놀로지라고 해도 천여운의 몸속에 있는 나노머신은 그보다 훨씬 먼 미래의 기술이었다.
‘안 돼! 막아야 해.’
-타타탁!
채문탁이 단말기 화면을 전환시켜서 4세대 개량형들을 제어했다.
단상과 돔 사이에 내려와서 가만히 서있던 스물 네 명의 인간 병기들이 기묘한 안광을 내뿜으며 눈을 떴다.
“당장 놈을 죽여!”
채문탁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들이 동시에 신형을 날렸다.
B등급 코어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4세대 인간 병기들의 움직임은 화경의 고수들에 버금갈 정도였다.
-파파파파팟!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치치치치칙!
번개처럼 뇌전이 허공에서 일어나더니, 이내 동시에 스물 네 명의 인간 병기들을 향해 내리쳤다.
-콰콰콰콰콰콰콰쾅!
그 덕분에 스물네 명이 동시에 날아올랐다가 바닥에 처박혔다.
강력한 뇌전을 맞은 그들의 기계 슈트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스파크가 일어나, 인간 병기들이 경련을 일으켰다.
“비, 빌어먹을!”
채문탁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런 사태는 예측하지 못했다.
5세대와 다르게 다른 기계 슈트들은 B등급 코어의 에너지 정도만 견딜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는 것은,
“어.....어떻게 이런 일이....”
채문탁의 동공에 백기가 함몰된 단상의 한가운데서 양쪽으로 손을 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그가 이 뇌전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말이다.
계속되는 뇌전에 결국 기계슈트의 과부하로 스물 네 명의 인간 병기들이 혼절을 한 것처럼 두 눈을 감았다.
-주르륵!
백기의 두 눈에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머릿속에 있는 칩이 타고 뇌에 강력한 충격을 받아서 흘러나온 피였다.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보였는데, 백기의 얼굴은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감정이 없는 기계와도 같았던 얼굴이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설마?’
채문탁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 불안함이 곧 실체가 되어 드러났다.
백기가 입을 열었다.
“누가! 누가 감히 대천마신교의 천마의 안위를 노린단 말이냐!”
사자후를 터뜨리는 듯한 쩌렁쩌렁한 외침.
균열이 일어나고 갈라지는 돔의 상태에 우왕좌왕하고 있던 사람들이 귀를 틀어막아야 할 정도였다.
천여운이 그런 백기를 쳐다보며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돌아왔군. 백기.”
그 말에 백기의 입술이 들썩거렸다.
경련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몸을 떨고 있는 백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아아!’
그렇게도 듣고 싶었던 그 목소리.
무뚝뚝한 성격의 소유자인 백기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감격으로 물들었다.
-팍!
백기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외쳤다.
“마신의 여섯 검 중의 하나인 신 백기가 주군을 배알하나이다!”
< 51화 백기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