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선상의 경매장 (3) >
“귀찮으니까. 한 번에 나와라.”
오만하다 못해 광오한 말이었다.
돔에 모여 있는 자들의 상당수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무인들과 이능력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전부 나오라고 했으니 자존심을 제대로 건드는 격이었다.
그러나,
-오오! 이럴 수가 아무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야 말로 고요 그 자체.
경매 진행자의 말처럼 돔은 여전히 조용하기만 했다.
마치 천여운의 이 광오한 태도에 굴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대로 여흥전이 끝날 분위기다.
경매 진행자가 뭔가 무전 이어폰으로 지시를 받았는지, 관전실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쥬콰드 아무챠이님과 함께 오신 동행 분들께서는 이대로 승복하십니까?
돔의 서북쪽 관중석에 3열에 앉아 있는 두 명의 태국인들과 몇몇 동양인들이 있다.
그들은 살신 아무챠이와 같은 동아시아 연합의 회원들이자, 태국에서 온 살법 칸타르의 동문들이었다.
동행한 그들의 분노를 자극하는 진행자의 멘트였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러 VIP 분들께서도 천무성 부회장님의 뛰어난 무위에 승복하시는 겁니까?”
이 말에 방금 전에 천여운의 압도적인 무위에 할 말을 잃고 있던 여러 강자들의 인상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이미 모두가 눈앞에서 확인했다.
최강자라 불리는 살신 아무챠이가 허무하다시피 죽었다.
그런데 누가 함부로 나서겠는가.
‘저 진행자......일부러 부추기는 건가?’
경매 진행자의 태도치고는 꽤나 방향성을 잃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으득!
누군가 관중석에서 박차고 일어섰다.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신장 190cm 정도 되는 젊은 태국인이었다.
“그만해라. 네 마스터가 당하는 걸 보지 못했느냐?”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어허!”
살법 칸타르의 동문들이 아무챠이의 제자를 만류했다.
그들은 압도적인 역량의 차이를 인지하고서 깨끗하게 단념했지만, 아무챠이의 제자인 콘쵸수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팟!
“콘쵸수!”
콘쵸수가 중앙의 단상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마침 천여운이 등을 지고 있었는데, 그는 이것을 기회라고 여겼다.
‘마스터의 원수!’
비록 스승이 당한 복수심으로 나섰지만 상대가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콘쵸수는 뒤에서 살법 칸타르의 비기를 펼쳤다.
‘살법 칸타르 비기! 투기 바다 가르기!’
이 각법은 모든 투기를 발에 모아 하나의 검처럼 찌르는 기술이다.
산마저도 관통시키는 굉장한 위력을 가졌다.
“죽어랏!”
-슉!
천여운의 등으로 콘쵸수의 발끝이 날카롭게 투기의 검을 만들며 찔러 들어갔다.
그러나,
“잘됐군. 같이 처리하려 했는데.”
‘!?’
여유롭게 몸을 뒤로 돌린 천여운이 옆으로 살짝 비켜섰다.
그리고는 그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팡!
“끄헉!”
가슴에 심후한 공력이 파고들며 콘쵸수의 몸이 날아왔던 방향으로 튕겨나갔다.
“받아내!”
“엇?”
살법 칸타르의 동문들 세 명이 날아오는 그를 받아내려고 했는데, 그를 잡아내는 순간 그들까지도 같이 튕겨나가고 말았다.
“피, 피햇!”
당황한 관중석에 있는 사람들이 날아오는 그들을 피했다.
-쾅! 쾅! 쾅! 쾅!
관중석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처박힌 살법 칸타르의 동문들은 하나 같이 깊은 내상을 입었는지 피를 토해냈다.
‘그 짧은 순간에 격물전경의 수를 쓰시다니. 역시 스승님이시다.’
단순한 공격이었다면 저들이 저리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동문들을 함께 노린 격물전경(格物傳涇)의 수였다.
살법 칸타르 무도인들이 일제히 나가떨어진 모습에 동아시아 연합의 침투된 요원들이 분노를 금치 못했다.
‘가장 큰 전력을 잃다니.’
그들의 이번 임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살신 아무챠이와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잃게 되면서 임무를 속행하기 힘들어졌다.
천여운은 오만하게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상대해주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천무성 이놈!’
하지만 그들로서는 명분을 떠나서 천여운을 상대할 강자가 없었다.
가만히 분을 삼켜야만 했다.
보라색 가면의 경매 진행자가 이어폰에 손을 갖다대고서 조용히 말했다.
“여흥전을 이제 중지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흥을 돋우는 게 아니라 분위기가 이상해 지고 있습니다.”
-아니. 더 부추겨라. 놈이 말하지 않았느냐? 한 번에 상대해주겠다고.
이 목소리의 주인은 대머리의 남자인 제이였다.
제이의 말에 가면 속의 눈동자가 난처함을 금치 못했다.
자신은 경매 진행자로서 중립적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싸움을 부추기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VIP들의 반발이 있을 수도...”
-상관없으니까. 명령에나 따라!
진행자가 이어폰을 끄고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명령권자는 MS 그룹을 이끄는 십원 중의 한 사람이기에 항명할 수 없었다.
진행자가 다시 마이크를 켜고서 말했다.
-천무성 부회장님께서 일대 다수로 여흥전을 하고 싶다는 대단한 제안을 하셨는데, 어떻습니까? 이런 기회는 없습니다.
-웅성웅성!
진행자의 말에 관중들의 반응이 소란스러워졌다.
이미 천여운의 역량을 모두가 확인했는데, 계속해서 여흥전을 이어가는 것이 VIP들 역시도 의아한 모양이었다.
‘여기서 나서봐야 무슨 꼴이 되겠는가.’
잭 오렌이나 코하쿠 등과 같은 초강자들은 이미 나설 생각을 정리했다.
나선다고 해도 천여운을 어찌하기 힘들다고 판단했을 뿐더러, 세계적으로 명성을 가진 자신들이 합공을 하게 되면 그 얼마나 수치인가.
물론 모두가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도가들과 달리 해외의 이능력자들이 합공을 할 수 있다는 말에 관심을 보이더니, 이내 한 무리가 단상 위로 올라왔다.
“We will participate.”
[우리가 참가하겠소.]
그들은 호주에서 온 이능력자들이었다.
뒤에 나란히 선 여덟 명 모두가 A급 키퍼에 준하는 이능력을 지녔고, 가운데 서있는 갈색 수염의 남자는 S급 이능력자였다.
무술에 대한 조예가 없는 그들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멍청한 놈. 혼자서 다수를 상대하겠다는 제안을 하다니.’
그들은 천여운을 비웃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여러 이능력자들이 합공을 한다면 당할 수밖에 없으리라.
자신감에 충만한 그가 천여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You suggested it. Even if you die, you will not regret it.”
[그대가 제안했으니까. 설사 죽는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딱!
호주 이능력자들의 리더로 보이는 자가 손가락을 튕기며 진행자에게 여흥전을 시작하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이에 돔에 있는 이능력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응원했다.
“무도가들에게 능력자들의 힘을 보여줘라!”
“휘익!”
-재미있는 구도가 되었습니다. 호주에서 참석하신 블랙 로닝 길드의 길드장인 맥스 고객님과 길드원들입니다.
보라색 가면의 진행자가 손을 들어올리자 단상에 배리어가 가동되었다.
-우웅!
막이 완전히 형성되기를 맥스와 이능력자들이 기다렸다.
그들은 같은 길드원으로서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왔고 심지어 자신들의 포메이션으로 S등급 알파 위험 개체도 두 시간 내로 처리한 전적도 가지고 있었다.
-픽!
그렇게 배리어가 완전히 형성되었다.
맥스가 거기에 맞춰서 손을 들어 올리자, 상대를 무력화하는 이능력을 가진 두 사람이 천여운에게 그 능력을 쓰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직!
‘!?’
모두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분명 배리어가 쳐진 순간에 저들이 뛰어가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그들 모두가 사라져버렸다.
그들이 서있던 자리의 바닥이 고기조각 같은 것들과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서, 설마?’
천여운이 손바닥을 아래로 내리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무공을 익힌 자들은 이를 보면서 경악했다.
‘진기로 저 자들을 전부 저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압도적인 진기.
그것으로 마치 거대한 망치라도 되는 것 마냥 눌러버린 것이다.
말 그대로 그들은 납작하게 눌려서 죽은 것이다.
여흥전이 목숨을 걸고 하는 대결이라고 명시했기에 천여운은 전혀 힘을 아끼지 않았다.
“괴.....괴물.....”
“저 자는 괴물이야.”
관중석에 있는 자들이 오한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전부 질려 있었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서 상대를 압살시켜 버리는 손속부터 시작해, 압도적인 역량은 그들로 하여금 공포와 두려움을 일으켰다.
그들이 생각했던 여흥전은 서로 피 튀기는 싸움을 해서 흥을 돋우는 것인데, 이건 말 그대로 학살이었다.
“미쳤군.”
심지어 경매의 진행자조차 넋을 잃고 말았다.
너무 압도적이었다.
천여운이 단상을 둘러싸고 있는 배리어를 검결지로 그었다.
-촥! 촥! 파치치칙!
두 번을 긋자 배리어가 갈라지며 입구처럼 문이 생겨버렸다.
“배, 배리어가?”
경매 진행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A등급 알파 위험개체의 공격마저도 버틴다는 배리어가 어처구니없이 베였다.
천여운이 그곳으로 나와서 경매 진행자가 있는 곳의 옆에 트로피처럼 걸려 있던 여금륜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불만 없겠지?”
천여운의 그 말에 경매 진행자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금륜을 쥐고서 단상을 유유히 내려가는 천여운의 모습을 모두가 말없이 지켜보았다.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자, 잠시 본 경매가 있기 전에 15분 간 휴식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도저히 지금 상태로 진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경매 진행자였다.
한편 돔의 관전실.
유리창 너머를 멍하게 쳐다보는 제이의 얼굴이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여기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울 정도였다.
“.......완전 괴물이 아닌가.”
옆에 서있는 아이, 채문탁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도 완전히 계획과 어긋나 버린 상황에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이제 어쩔 텐가?”
여흥전을 이용해 이이제이를 하려했던 것이 실패했다.
이렇게 된다면 총수의 명을 달성하기 위해서 MS 그룹이 가진 역량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전에.....’
채문탁이 제이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순서를 바꿔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천여운을 처리하고 나서 자신을 향한 총수의 의심을 거두기 위해 제이를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했다.
채문탁의 오드아이에 살기가 감돌았다.
‘먼저 처리해야 겠어.’
제이가 흠칫하며 놀라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역시도 평범한 자가 아니었다.
채문탁에게서 미묘하게 풍겨지는 살기를 감지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타탁!
제이가 살짝 거리를 벌리며 말했다.
“자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채문탁이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입을 열었다.
“총수가 알아버린 이상 누군가가 총대를 메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나더러 총대를 메라는 건가?”
이에 채문탁의 손가락이 붉게 물들었다.
그의 능력을 알고 있는 제이가 바닥을 향해 발을 밟았다.
“어딜!”
채문탁이 제이를 붙잡으려고 했다.
-쿠르르르!
“으억!”
하지만 순식간에 삭아버린 바닥이 뚫리면서 채문탁이 밑층으로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제이는 몸에 닿아있는 모든 것을 부식시킬 수 있는 이능력자였다.
그가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마터면 당할 뻔 했어. 언젠가 네놈이 뒤통수를 칠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거든.”
제이는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고 여겼다.
그가 관전실의 입구 쪽으로 달려갔는데, 뭔가 문밖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벌써 올라왔을 리가 없는데?’
-쾅!
“헉!”
그 순간 관전실의 문이 부서지며 누군가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끄으으."
'이, 이 녀석은?'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남자는 관전실 문을 지키고 있는 채문탁의 호위였다.
놀란 제이가 뒷걸음을 쳤는데,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나타났다.
그는 바로,
“처, 천무성 부회장?”
천여운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다시 돔의 관중석으로 돌아갔다고 여겼는데, 천여운이 관전실로 곧바로 들이닥친 것이었다.
놀란 나머지 반대로 도망치려 하는 그에게 천여운이 손을 뻗었다.
-부웅!
“흐헉!”
심후한 진기에 의해 그의 몸이 강제로 떠서 천여운에게 끌려와 목이 잡혀버리고 말았다.
“켁!”
“대머리. 네놈이 이곳의 책임자였나?”
'!?'
그 말에 제이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 경매장을 담당하는 그 녀석은 바로 밑에 층으로 떨어져 있었다.
< 50화 선상의 경매장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