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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142화 (142/234)

< 46화 은자림(隱玆林) (1) >

의심으로 가득한 악영의 목소리.

이에 당황한 왕 진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이건 모함일세. 노도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악영이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나.”

평소라면 악영도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는 자신의 믿음을 저버리고 이런 일을 벌였다.

만약 초 노사에게 비밀 같은 게 없었고 이 자리에서 그대로 있었다면 덩달아 그를 배신한 꼴이 되었을 것이다.

‘아.....’

악영은 혼란스러웠다.

믿었던 이들이 하나 같이 자신을 배신하는 느낌이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홀로 은둔했다고 여긴 초 노사는 알 수 없는 조직과 연관되어 있었고, 천살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죽이려는 자들.

누구도 믿기 힘들었다.

“장로들이 고작 죽음이 두려워 저 자에게 모든 것을 불었겠나?”

흔들려하는 악영의 모습에 왕 진인이 달래려 했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여겼는지 악영이 천여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귀하의 말도.....완전히 믿을 수 없소.”

이에 천여운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청해성 곤륜산의 설선이라는 곳에 네녀석들이 숨어 지내는 곳이 있다지.”

“그, 그걸 어떻게?”

왕 진인과 악영이 동시에 놀라했다.

‘정말로 불었단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절대로 알 수 없는 정보였다.

물론 천여운은 그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고스트로 만들어 기억을 읽을 수 있다.

어찌되었든 이것이 결정타가 되어버렸다.

정말로 불었다고 확신한 왕 진인이 자충수를 두고 말았다.

“나, 나는 자네를 살려달라고 간청할 생각이었네. 근 백 년을 알고 지내왔는데 나를 믿지 못하겠나?”

악영의 눈빛이 실망감으로 물들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하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믿고 지내왔어도 자신을 죽이는 일에 동조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 한순간에 차갑게 식어버린다.

‘어찌 이럴 수가.....’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자신의 뜻을 보였다.

“아, 악영!”

원망을 할 수도 있었지만 악영은 그러하지 않았다.

그게 오랫동안 교분을 쌓아온 자에 대한 마지막 예우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모습에 분노한 왕 진인이 천여운에게 노기를 토해냈다.

“네이노오오옴! 우리를 이간질하여 무엇을....”

-꽉!

“웁!”

그런 그의 입을 천여운이 움켜잡았다.

내공이 금제 당해서 반항조차 할 수 없는 왕 진인이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이미 알고 싶은 것도 전부 알았고, 네놈을 살려둘 이유가 없구나.”

“웁웁웁!”

이미 장로 세 명의 기억을 통해 알만한 정보들을 다 알아낸 천여운이다.

특이한 것은 이들이 이상한 예언을 믿고 있다는 것이다.

하늘마저 두려워하는 마(魔)가 강림하여 대혈겁을 일으킨다는데, 그것을 천마라고 여기고 있었다.

살려둬 봐야 귀찮은 일만 생기리라.

“잠깐!”

그런 천여운을 악영이 불렀다.

“왜 그러는 거지?”

“왕 진인을 살려주시오. 오인으로 벌어진 일에 더 이상 무의미한 살인을 벌이지 마시오.”

악영은 차마 그가 죽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에 천여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들이 단순히 네 녀석만 죽이라는 명을 받은 것 같나?”

“그럼?”

“천살성과 관련되거나 이곳에 있는 자들은 전부 처리하라는 명을 받고 왔다는데, 내가 살려둘 이유가 있나?”

그 말에 악영이 왕 진인을 쳐다보았다.

입이 틀어 막혀 있는 것과 별개로 왕 진인은 차마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일말의 불화의 씨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 그였다.

악영이 고개를 떨궜다.

‘언제부터 변질되었단 말인가.’

불과 몇 오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이렇지 않았다.

그때는 속세를 등진 은거기인들이 모여서 무학을 연마하는 성격이 강했다.

이렇게 정의를 빙자하여 극단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단체가 아니었다.

‘그 자가 원인인가. 맥위강 장로.’

이성 장로 맥위강.

50여 년 전에 무림에서 명성을 날리다 은퇴하고 들어온 자다.

그는 다른 장로들에 비해서 젊은 축에 속했으나 뛰어난 무위로 빠르게 이성 장로의 직위까지 얻어냈다.

그런데 그는 다른 은거기인들과 달랐다.

사상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악영이 노기가 서린 목소리로 왕 진인에게 말했다.

“또 그 푸른 하늘을 만들기 위한 겁니까?”

“푸른 하늘?”

이를 듣고서 반응을 보인 것은 허봉이었다.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창천? 설마 주군! 이 녀석들 창천회의 잔당들입니까?”

이 말에 천여운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섞였다고 해야 할까.”

“네?”

“은자림에 창천회의 잔당이 섞여든 것 같더구나.”

“은자림!”

은자림(隱玆林).

은자림은 말 그대로 숨겨진 흐릿한 수풀이라는 의미이다.

읽는 그대로의 의미가 다가 아니라 림은 무림(武林), 즉 숨겨진 무림의 단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천여운의 시대에도 있었던 조직이다.

원래는 당시 시대를 넘나들며 무림을 좌지우지하려 했던 극도신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무림의 비밀 수호단체였다.

하지만 극도신의 죽음 이후 지금은 은거기인들의 은밀한 모임이 되어 지금까지 내려왔다

“아.....”

악영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당연히 자신들의 조직 이름도 알아냈을 거라 여겼지만 역시나였다.

‘그곳에 창천회가 섞였다라.’

은자림과 달리 창천회는 꽤나 극단주의자들의 흑막 조직이었다.

창천(蒼天).

푸른 하늘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이 조직은 오직 정파인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정도 무림을 위한 세상을 만들자는 극단주의자들로 이루어진 이들은 자신들의 이념을 위해 대규모의 학살조차 서슴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때 주군의 손에 회주라는 작자가 죽지 않았습니까?”

창천 회주 맥위종.

그는 정체를 숨긴 극단주의자였다.

요녕성에서 그를 손수 처리했던 천여운이다.

아마도 그렇다면 그의 혈손이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왔을 확률이 높았다.

‘맥위강이라 했던가.’

고주령의 기억을 읽으면서 알게 된 이성 장로 맥위강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가 아마도 그 직계 혈손이리라.

허봉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끔찍한 혼종이 탄생했군요.”

그렇지 않아도 당시에도 꽤나 음모와 수작질을 부려서 천여운을 귀찮게 만들었던 것이 이 창천회였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었다.

천살성을 키운 자를 찾아왔는데, MS 그룹부터 시작해 창천회의 흔적마저 발견했으니 말이다.

“창천. 불순한 사상이지.”

-꽈악!

“웁웁!”

왕 진인의 입을 움켜잡고 있는 천여운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그의 턱 째로 뜯겨나가고 말았다.

-콰직!

“흐어어어어.”

턱이 뜯겨져 나간 왕 진인은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꿈틀거리던 그는 쇼크사를 했는지 이내 숨을 거뒀다.

이를 지켜본 악영이 고개를 돌렸다.

무림인으로서 살인을 기피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랜 세월을 알고 지낸 지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왕 진인.......’

-꾹!

손바닥에 피가 흘러내릴 만큼 주먹을 꽉 쥔 악영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천여운을 향해 당당히 말했다.

“죽이시오.”

어차피 자신 역시도 죽이리라 짐작한 그였다.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충분히 살만큼 살았는데다가 특별히 생에 집착도 없었던 그였기에 담담한 눈빛이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천여운이 말했다.

“이런 면은 닮았구나.”

“......그게 무슨 소리요?”

“투신 악의.”

천여운의 그 말에 악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와 겨뤘을 때도 궁금했었는데, 그가 어째서 자신의 선대 중 한 사람인 그를 계속 언급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는 악가의 비기인 역량의 일원화마저 쓸 줄 알았다.

‘혹시 우리 악가와 관련되어 있는 자인가?’

의아해하고 있는데 천여운이 회상을 하듯이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는 진정한 무인이었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마치 꼭 투신 악의를 만나본 사람처럼 말하는 것이 이상했다.

그때 천여운이 권법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 모습에 악영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건....’

그것은 투호풍신권의 기수식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보폭이나 일부 팔을 뻗는 것이 조금씩 달랐다.

그때 천여운이 권초를 펼쳤다.

-파파파파팍!

천여운이 권을 펼칠 때마다 강렬한 풍압이 일어나며 사방에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몰아쳤다.

-휘이익!

손으로 원을 그리자 풍압이 회전을 하며 방진을 만들어냈다.

하나하나의 동작이 절세권법 그 자체였다.

이를 지켜보는 악영의 두 눈은 천지개벽이라도 본 것처럼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럴 수가.....”

악가의 무공인 투호풍신권을 완성시킨다면 저런 형태일까?

도무지 빈틈을 찾을 수 없는 권법이었다.

공수가 완벽 그 자체였다.

모든 초식을 펼친 천여운이 자세를 바로 하고서 호흡을 내뱉었다.

“후우.”

“대체.....대체 이 권법은?”

“무극공허권.”

“무극공허권?”

“투신 악의 공이 완성한 진정한 권이다.”

‘!!!’

악영은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무극공허권(武極空虛拳).

이것을 그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어떻게....이런 일이...'

투신 악의 공이 투호풍신권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절세권법.

하지만 그는 이 권법을 후손들에게 전수하지 못한 채 사라졌다.

선대들은 들어오는 풍문을 바탕으로 이것을 구현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어떤 식으로든 완성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것을 천여운이 펼치는 것을 보니,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극공허권을 어찌 귀하가?”

“인연이란 게 참 모를 일이군. 악의 공의 후손을 이렇게 만나게 되니 말이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그에게는 빚이 있지.”

악의가 아니었다면 천여운은 자연경을 이룰 수 없을 지도 몰랐다.

이를 평생 마음의 빚으로 가져왔던 그였다.

-팡!

“웃!”

천여운이 갑자기 뻗은 주먹에 세찬 바람이 악영을 관통했다.

무극공허권의 기본 일 식이었다.

“그 빚을 지금 갚겠다.”

“?”

“네게 무극공허권을 전수해주마.”

그 말을 듣는 순간 악영은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닭살이 돋을 만큼 전율이 일어났다.

악가의 전설적인 권법 무극공허권.

그것을 전수해준다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악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귀하는 누굽니까?”

그 물음에 천여운이 옅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대 천마신교의 천마다.”

“천마!”

천마라는 말에 악영이 크게 놀라하는데, 더욱 놀라운 사실이 천여운의 입에서 나왔다.

“투신 악의 공과 작은 교분이 있지.”

이는 생사의 전장에서 나눈 깊은 교분이기도 했다.

*  *  *

눈으로 뒤덮인 설산이 진풍경인 곳이 있다.

그곳은 청해성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곤륜산(崑崙山)이다.

산맥 전체가 눈으로 뒤덮여 은은한 안개로 뒤덮인 이곳은 신선림을 보는 듯하다.

전설에서는 황하강의 발원점이라고 불리는 성산이 바로 이 곤륜이다.

7,167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

이곳 곤륜산은 티벳과 히말라야를 제외한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다.

성산이라 불리는 만큼 곤륜산에는 수많은 전설들이 있다.

산해경에서 말하는 서왕모의 궁전이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삼천년 마다 한 번씩 열리는 천도복숭아가 열리는 곳이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곤륜산은 많은 이들에게 신성시되는 곳이었다.

-슈슈슈슉!

그런 하얀 눈으로 뒤덮인 곤륜산맥의 깊숙한 곳을 빠르게 달리고 있는 인영 셋이 보였다.

그들은 천여운과 허봉, 악영이었다.

설산이라 추울 만도 하지만 그들은 심후한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어서, 평소와 같은 복장을 하고도 추위조차 느끼지 못했다.

-스스스스!

다만 내공으로 열기를 내기에 몸에서 김이 흘러나왔다.

“악영. 대체 언제까지 산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냐?”

허봉의 물음에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는 악영이 짧게 답했다.

“곧 도착합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은자림의 성지라 불리는 설선(雪仙)이었다.

“가까운 곳에 기운이 느껴진다.”

천여운의 그 말에 악영이 내심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설선은 대규모의 진법으로 보호되고 있어서 외부에서 기감으로 감지할 수 없다.

그런데 천여운은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역시 스승님이십니다.”

악영이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었다.

불과 사흘 사이에 그들은 사제지간이 되어 있었다.

천여운이 천 년 전의 2대 천마이고 자신의 선대인 투신 악의와 교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극구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했다.

실제 나이는 악영이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얼마나 고집을 부리는지 천여운은 그에게 마음대로 부르라고 하였다.

“이곳입니다.”

이윽고 악영이 말한 설선의 입구에 도착했다.

허봉이 인상을 찡그리며 의아해했다.

“엥? 뭐가 있다는 거야?”

눈앞에는 까마득한 절벽만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곳에는 천화만변진(千化萬變陣)이라고 하는 천고의 진법이 쳐져 있어서 사람의 육안으로는 내부를 판별할 수 없었다.

악영이 어느 한 지점의 절벽에 서서 말했다.

“설선을 막고 있는 천화만변진은 시시각각 변화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생문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미로처럼 얽히고 맙니다. 제 뒤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한 악영이 앞으로 한 발 내딛었다.

그 순간 그의 발이 밑으로 빠져들었다.

“헛?”

악영이 다급히 발을 빼냈다.

이 모습에 허봉이 실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저만 따라오라고 하더니.”

이에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 악영이 당혹스럽다는 듯이 답했다.

“......아무래도 진법을 변화시킨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입구가 바뀔 리가 없었다.

천화만변진을 세운 자는 옛 고명한 선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절진의 대가들도 깰 수 없다고 알려졌기에 악영이 어찌해야 할지 난감해했다.

그때 천여운이 말했다.

“물러서라.”

“네?”

악영이 옆으로 물러나자 천여운이 앞으로 나섰다.

대체 뭘하려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천여운이 검결지로 허공을 그었다.

-오싹!

'검?'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날카로운 예기가 일어나며, 이내 절벽 낭떠러지가 펼쳐지는 허공에 검은 선이 생겨났다.

< 46화 은자림(隱玆林)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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