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141화 (141/234)

< 45화 기인이사(奇人異士) (4) >

“처, 천마!”

“뭣?”

고주령을 비롯한 양혼청이 동시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천마라는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구세대 무림인들이었다.

마교에 있어서 전설이자 최강의 무력이 바로 천마라는 칭호가 아닌가.

‘이럴 수가......마교에 3대 천마가 탄생했단 말인가.’

고주령은 떨리는 눈으로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내린다는 천무지체로서 장로들이 손수 키운 백향이 너무도 허무할 만큼 당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괴물은 처음이다.

‘아!’

고주령은 문득 예전에 장로 회의 때 림주와 나눴던 대화가 기억났다.

[림주! 어째서 나서지 말라는 것이오? 그 게이트란 것으로 무림뿐만이 아니라 세상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소. 우리들이 비록 세상을 등진 은거자들이기는 하나 이런 일이라면 정말 나서야 하지 않소?]

[고 장로. 머지않아 진정한 재앙이 닥칠 것이오.]

[진정한 재앙?]

[그 재앙은 여느 위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하네.]

[설마 그 재앙을 위해 우리의 힘을 계속 비축해두라는 말씀이외까? 대체 그 재앙이 무엇이기에 그러는 것이오?]

[이제 곧 예언에서 말한 시기가 다 되어가는 구려.]

[예언?]

[곧 그 재앙이 나타날 것이오. 하늘마저도 두려워 할 마(魔)의 존재. 우리는 그를 대비해야 하오.]

[하늘의.....마.]

[지금의 위기는 속세의 힘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소. 걱정마시오. 고 장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은 약하지 않소.]

림주의 말대로 게이트는 우려와 달리 무림인을 비롯한 특수 능력자들이 양지로 나타나 힘이 되어주면서 서서히 안정화를 되찾았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하지 못했지만 인류는 이런 세상에 적응한 것이다.

‘하늘이 내린 마......천마. 그 말이었어. 림주가 했던 그 다가올 재앙은 바로 저 괴물을 말한 것이구나.’

그는 림주가 말한 그 예언이 바로 천마를 뜻한다고 확신했다.

고주령이 뜨고 있는 하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천살성을 잡으러 왔더니 더 최악이 등장한 격이었다.

[천살성을 죽여라. 그리고 천살성과 관련된 모든 것을 세상에서 지워라.]

이성 장로인 맥 장로가 은밀히 내린 명령이다.

이는 천살성과 연을 맺고 있던 악영 역시도 죽이라는 소리였다.

그들은 림 내에서도 강경파다.

조금의 후환거리도 절대로 남겨놓지 않는 것이 그들의 신념이었다.

‘이미 임무는 실패했다. 차라리 어떤 식으로든 도망쳐서 천마가 나타났음을 림에 알려야 해. 만약 천마가 천살성과 손을 잡았다면 더 큰 재앙이 닥친다.’

그들이 우려하는 최악보다 더욱 최악의 형태가 되어버린다.

고주령이 다급히 양혼청에게 전음을 보냈다.

[양 장로. 이곳은 저 자는 내가 막겠소. 그대는 살아남은 무인들을 데리고 어떻게든 돌아가서 림에 이 사실을 알리시오!]

[고 장로! 그게 무슨....]

[저 자가 림주가 말한 그 예언의 하늘이 두려워하는 마가 틀림없소.]

그 전음에 양혼청의 표정이 굳어졌다.

27년 전에 했던 이야기라 미처 잊고 있었는데, 그때의 회의를 떠올렸다.

[아!]

고주령의 말이 맞는 듯 했다.

저 자의 역량은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괴물이었다.

게다가 유령마저 다루는 사이한 능력마저 가진 것을 보면 예언에서 말한 그 재앙이 틀림없었다.

[잠깐! 그렇다면 고 장로 혼자서 막을 수 있는 자가 아니오.]

양혼청이 돕겠다고 하려 했는데,

[내 능력을 그대는 알잖소.]

고주령이 자신의 감고 있는 한 쪽 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에 양혼청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무를 지향하는 자로써 비겁하다며 스스로 봉한 능력을 쓴다는 것은 그저 저 자를 막는데 그치지 않고 쓰러뜨리고자 하는 결의가 보였다.

양혼청이 눈시울이 붉어져서 전음을 보냈다.

[내.....꼭 전하리다. 고 장로 기다리겠소. 그대의 입으로 림주가 말한 그 예언을 막았다는 이야기하기 바라오.]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고주령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리하...]

-스륵!

“헛?”

미처 대화를 마치지도 않았는데, 천여운이 고주령의 앞으로 나타났다.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는군. 하늘이 두려워하는 마?”

‘!?’

고주령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설마 전음으로 나눈 대화였다.

그런데 그것을 엿들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 자는 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이야기해주실까?”

-슉!

천여운이 그를 제압하기 위해 손을 번개처럼 뻗었다.

그 순간 고주령이 뒤로 몸을 날렸다.

-팟!

‘응?’

천여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고주령이 앞서 상대했던 자들보다 강한 자인 것은 알고 있지만, 방금 전의 그 일수는 그가 피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그런데 자신이 손을 쓰려는 순간 곧바로 피해냈다.

뒤로 몸을 날린 고주령이 소리쳤다.

“모두 철수하랏! 양 장로 어서!”

전음을 엿들은 것에 놀라서 순간 당황해하고 있던 양혼청이 정신을 차렸는지 안주머니에서 막대통 하나를 꺼내서 위로 들어올렸다.

버튼을 누르자 폭죽이 튀어 올랐다.

-피융! 파파파파팍!

그것은 철수를 하라는 신호였다.

“양 장로 부탁하오! 흐아아압!”

양혼청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천여운을 향해 탄검강을 날렸다.

아주 잠깐이라도 그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서였다.

-슉!

그와 동시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촥!

천여운이 수도로 날아오는 탄검강을 갈랐다.

갈라진 검강이 양쪽으로 갈라져서 애꿎은 나무들을 베어냈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누구도 도망갈 수 없다.”

천여운이 양혼청을 향해 검결지를 뻗으려고 하는데, 그 순간 그의 미간으로 고주령이 검이 찔러 들어왔다.

-슉!

정확한 타이밍에 방해를 했다.

천여운이 뻗었던 검결지를 들어올려 고주령의 검을 잘라내려 했다.

그때 고주령이 뻗고 있던 검의 궤로를 바꿔서 천여운의 허벅지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 녀석?’

천여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는 뚜렷하게 보았다.

자신이 검결지를 움직이기 바로 직전의 찰나에 고주령이 검을 틀었다.

미리 알았던 것처럼 말이다.

‘설마....’

미심쩍어진 천여운이 허벅지로 날아오는 검을 막지 않고서 단번에 고주령의 목이 있는 곳으로 검결지를 찌르려고 했다.

그렇게 결심하고 검결지를 날리려 하는데,

-파파파파팍!

고주령이 빠르게 경신법을 펼치며 뒤로 몸을 날렸다.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역시 미리 알았어.’

손을 쓰기도 전에 미리 알고 있었다.

고주령을 쳐다보았는데, 그가 감고 있던 한쪽 눈을 뜨고 있었다.

한쪽 눈의 동공에 흰 빛의 안광이 서렸다.

‘통하는구나. 저 괴물에게도.’

고주령이 입 꼬리가 올라갔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자신의 능력이 적절히 통한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이 능력이 생긴 것은 불과 칠 년 전이다.

외부에서 구해온 정제된 코어의 비약을 먹고 나서 사흘 밤낮을 열에 시달리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능력이 생겨났다.

‘3초 후의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

말만 들으면 별 일이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은 그와 같은 무림인들에게 있어서 최강의 능력이라 할 만 했다.

불과 1초 안에서 벌어지는 검으로 생사가 갈라지는 것이 절세고수들의 세계다.

그에게 이 능력은 마치 30분 후의 미래를 아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잘하면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하나가 일격필살이나 다름없는 공격을 하고 있지만 잘 피해서 그의 빈틈을 찾아낸다면, 자신의 손으로 예언을 종식시킬 수 있을 지도 몰랐다.

고주령의 눈빛이 어느새 자신감으로 물들었다.

그때 천여운이 그에게 말했다.

“네놈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행동을 미리 읽고 있군.”

고주령이 속으로 감탄했다.

고작 몇 번 손을 섞은 것만으로 자신의 능력을 추측해냈다.

완전히 알아내서 대처하기 전에 처리해야겠다고 여겼다.

“그래봐야 소용없...”

그 순간 고주령의 미래를 보는 한쪽 눈의 동공에서 안광이 발했다.

머릿속으로 3초 후에 벌어질 일들이 보였다.

이를 통해서 어떻게 대응할지를 알게 되는데,

[끄으으으으!]

그가 갑자기 심장을 움켜잡고서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대체 무슨 공격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건 대체?’

어떤 식으로 피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짧은 찰나에 고주령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안절부절 하지 못해서 일단은 허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팟!

그 순간 그의 심장에 날카로운 예기가 꽂혔다.

-욱씬!

“끄아악!”

엄청난 격통에 날아오르던 고주령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고주령이 자신의 심장을 움켜잡고 있는데, 미래를 보는 눈이 천여운이 다음에 할 말을 미리 가르쳐주었다.

“심검?”

“호오. 멍청이는 아니구나.”

그의 심장에 박힌 것은 바로 심검(心劍)이었다.

의지의 검인 심검은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기에 설사 미래를 안다고 해도 피할 수 없었다.

그가 찰나의 순간에 몇 백 미터를 주파할 수 있는 경공의 능력자가 아닌 이상 말이다.

고주령이 경악해서 말했다.

“끄으으.....자, 자연경?”

전설 속의 심검은 오직 자연경의 고수만 펼칠 수 있다.

모든 무인들이 꿈으로만 여기는 그 경지의 고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너무도 두려웠다.

‘이, 이걸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불과 1분 전만 하더라도 그를 죽일 수 있을 수도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허황된 착각에 불과했다.

눈앞의 이 괴물은 자신조차 일초지적의 상대가 될 수 없는 존재였다.

“끄으으으.”

그나마 그를 잠시라도 막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 판국이었다.

방금 전 폭죽으로 모든 장로들과 림의 무인들이 사방으로 산개해서 도망쳤을 것이다.

그때 그의 눈에 흰빛이 서리며 또 다시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이, 이게 대체....”

그리고 그 미래가 다시 현실로 이뤄졌다.

-팟!

천여운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굉장히 높은 곳까지 떠오르던 그가 손을 내밀자 허공에 수많은 얼음검들이 생겨났다.

수를 헤아리기 힘든 숫자의 얼음검들이 하늘을 가득 메운 것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말도 안 돼.’

심장의 격통만큼이나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얼음검들 하나하나에 강기가 서려 있었는데, 그것은 분명 이기어검강이었다.

이 같은 광경은 그만 본 것이 아니었다.

‘저, 저게 대체 뭐야?’

도망치기 위해 한참 경공을 펼치던 양혼청도 이를 발견했다.

위에서 느껴지는 방대한 기운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기겁을 하고 말았다.

‘설마....저 모든 것이 이기어검강이라고?’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공은 둘째 치더라도 어떠한 절대고수라도 저 많은 이기어검강을 다룰 수 없다.

물론 그것이 정상이지만 천여운은 다르다.

그의 최고의 조력자이자 파트너인 나노가 있으니까.

-삐삐삐삐삐삐삐삐!

증강현실이 개안된 천여운의 시야로 수많은 붉은 십자선의 록온의 표시가 생겨났다.

[타깃 록 온. 판넬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나노의 목소리와 함께 하늘을 가득 메운 얼음검들에서 탄검강이 뿜어져 나오며 각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조준된 과녁들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슈슈슈슈슈슈슉!

천공섬광.

천여운의 절대 비기가 도망치는 모든 무인들에게로 직격했다.

*  *  *

비어져 있는 초가의 터.

내공이 금제되어 점혈을 당해서 꼼짝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악영과 전진파의 후예인 노도사 왕 진인이었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하는 악영과 달리 왕 진인이 어서 빨리 이 사태가 해결되길 바라고 있었다.

‘그 유령을 다루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림에서 보낸 전력도 만만치 않다.’

그들은 구무림에서도 각자 최고라 불렸던 자들이었다.

장로들만 해도 지금 당장 무림에 나간다면 오대고수들 정도는 누를 수 있을만한 절세고수들이기에 절대로 지지 않으리라 자부했다.

‘악영....미안하구나.’

다만 미안한 것은 악영이다.

자신을 믿었는데, 뒤통수를 친 격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를 위해서 변호는 해줄 셈이었다.

이성 장로인 맥 장로가 그 역시도 처리하라고 했으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천살성 만큼은 아니다. 악영아.’

그가 그 혈겁의 존재들을 비호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뭔가 격하게 싸움이 벌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와 굉음만 들리니, 대체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숲속이 조용해졌다.

드디어 결판이 난 모양이다.

그런데 벌써 삼십 분 가까이 지났는데, 아무 소식조차 없었다.

‘왜 조용한 거지?’

-파스스스!

그때 앞을 보고 있는 수풀 쪽에서 앞을 헤치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왔구나!’

수풀 속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본 왕 진인과 동공이 지진이라도 날 것처럼 흔들렸다.

‘이, 이럴 수가....’

나타난 자들은 그가 기대한 장로들이 아니었다.

바로 천여운과 허봉이었다.

허봉의 한 손에는 수박통 같은 것들 세 개가 주렁주렁 들려 있었는데, 그것들은 전부 수급이었다.

‘자, 장로들이....’

그들은 이 전력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고 장로와 양 장로, 호 장로의 수급들이었다.

하나 같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눈을 부릅뜨고 죽음을 맞이한 그들이다.

특이한 것은 전부 얼굴들이 서리가 내린 것처럼 새하얗게 변색되어 있었다.

‘저분들이 전부 당하다니?’

악영이 혀를 내둘렀다.

사성 급 이상의 장로들이 전부 저 꼴이 된 것이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자!”

-팍! 데굴데굴!

허봉이 그런 장로들의 머리통을 왕 진인과 악영의 앞으로 떨어뜨렸다.

주변을 구르는 머리통에 왕 진인의 두 눈이 분노로 붉게 물들었다.

“풀어줘라.”

“넵. 주군.”

천여운의 명령에 허봉이 그들의 몸에 점해두었던 혈도를 풀었다.

“이이!”

이에 왕 진인이 오랜 세월을 알고 지내온 동료들의 죽음에 분노를 토해내려고 했는데, 그보다 앞서 천여운이 말했다.

“이놈들이 천살성과 함께 네 녀석을 죽이려고 했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투신의 후예여.”

‘!?’

화를 내려 했던 왕 진인이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설마 당사자 앞에서 그 사실을 밝힐 줄은 몰랐다.

왕 진인이 바닥을 구르는 고주령을 비롯한 장로 두 사람의 머리통을 쳐다보았다.

‘장로들이 그 사실을 전부 불었단 말인가?’

그들은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적들에게 정보를 불을 만한 위인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악영이 세상이 무너져 내린 얼굴로 그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왕 진인. 그게.....사실입니까?”

이를 지켜보는 천여운이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 45화 기인이사(奇人異士) (4) > 끝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