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천살성 (1) >
사유기의 귓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저 검은 대체 뭐지?’
그의 눈동자는 마치 천지의 개벽이라도 본 것처럼 흔들렸다.
검이 닿는 궤적의 모든 것이 갈라졌다.
심지어 공간마저도 말이다.
“하!”
지금의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검의 경지였다.
‘할배의 말이 사실이구나.’
그의 양조부는 함께 사는 90여년 동안 늘 반복되던 이야기가 있었다.
사망곡 밖으로 나가지 못해서 안달이 난 그에게 했던 말들.
그 시작이 처음 나가려고 했던 그 날이었다.
[일인자? 퍽이나 그런 소릴 하는구나. 그리 쉬웠을 것 같다면 이 할애비도 옛적에 무림을 제패했을 게다.]
[할배가 마음먹으면 가능하잖소?]
[다 부질없다. 그리고 네 녀석 정도 미숙한 실력으로 누굴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나?]
[헹. 그 말 이제 안 믿소. 저때 찾아왔던 악 숙부가 할배나 본인이 아니라면 누구도 내 상대가 되지 못할 거라 했거든. 두 사람은 은퇴 했으니 이제 내가 최강 아니오?]
[쯧쯧, 망할 악가 놈이 술손님으로 받아줬더니, 애한테 헛바람을 불러 일으켰구만.]
[것 봐. 내 말이 맞잖소.]
[허튼 소리 하지 말 거라. 네 녀석은 무림의 무서운 점을 모른다. 기인이사들이 넘쳐나는 곳이 바로 그곳이야. 괜한 짓거리 하다 훅 간다.]
[괜히 겁주려고 그러는 거 다 알고 있소. 헹.]
[이놈아. 거짓말이 아니다. 벽은 어디나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너뿐만이 아니라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에이. 해도해도 너무 하구만. 할배 같은 괴물이 무슨 벽이 있단 말이오.]
양조부는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날이 선 눈빛을 하고 있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할배.....정말 있는 거요?]
굳은 얼굴로 말이 없던 양조부가 인정하기 싫다는 듯이 답했었다.
[있었다. 그것도 둘이나.]
그 말에 적잖지 않게 놀랐었다.
패배가 절대로 상상이 가지 않던 노인네가 그런 소리를 했으니 말이다.
[농이 지나치오.]
[예끼 이놈아. 농 아니다.]
[그럼 대체 그 둘이 누구요? 그 위대하신 존성대명이나 들어봅시다.]
[이미 죽은 놈들의 이름을 알아서 어쩌려고?]
[엥?]
죽었단다.
할배가 꺾지 못했던 두 사람이 말이다.
[다 부질없다. 이 할애비는 설욕전을 하고 싶어도 세월이 그들을 앗아갔지. 결국 인생사 공수래공수거다. 네 녀석도 괜히 허튼 망상에 빠지지 말고 그 속에 들어있는 살(殺)을 죽이는데 일념해라.]
거의 몇 십 년을 물었어도 이름을 듣진 못했다.
이것도 수십 번을 들으니 그저 자신을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핑계거리로 생각했다.
하지만 저 자의 검법을 보고나니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할배 말이 맞소. 무림에는 정말 강자들이 많은 것 같소. 저 붉은 머리의 사내도 그렇고.’
참 신기한 일이었다.
저런 압도적인 역량을 지닌 괴물을 눈앞에 두게 되었는데, 두렵다기보다는 오히려 전의가 솟구쳤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지만 부딪쳐보고 싶었다.
‘악 숙부도 말했다. 한계를 부딪쳐야만 더욱 높은 경지로 향할 수 있다고.’
양조부나 악 숙부와의 대련은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얻을 것이 없었다.
이 시점에서 저런 괴물과 겨룬다면 발전의 기회가 될지 몰랐다.
사요기가 콰이쇼우들이 시체가 있는 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팟!
“엇? 야!”
이쯤 되면 정신을 차렸겠지 하고 생각했던 허봉은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녀석의 눈빛에 서린 전의가 마음에 걸렸다.
‘설마 주군과 겨뤄보겠다는 거냐? 하!’
허봉은 아무래도 자신의 선에서 처리해야 겠다는 마음에 서둘러 그를 쫓았다.
한편 천여운은 대부분의 작은 콰이쇼우들을 처리하고 마지막 남은 30미터에 이르는 콰이쇼우의 목을 베려 했다.
‘응?’
그때 문득 천여운의 머릿속에 특이한 발상이 떠올랐다.
위험하기에 즉각 처리하기는 했는데, 마지막 한 개체만 남으니 그런 호기심이 생겨났다.
‘혹시 이것도 고스트로 만들 수 있을까?’
확인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마족의 경우도 고스트로 만들 수 없었기에 이 괴수도 안 될 수도 있었다.
천여운은 자신의 호기심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촥!
두꺼운 갑주와 같은 피부를 가른 후에 천여운이 그곳으로 천마검을 박아넣었다.
그리고 귀기(鬼氣)를 일으켰다.
-우우웅!
공명음과 함께 천마검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검을 찔러 넣은 부위를 기점으로 콰이쇼우의 육신이 빠른 속도로 생기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녀석의 몸이 점차 하얗게 변색되어갔다.
‘된다!’
생기를 흡수한다는 것은 고스트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확실히 몸이 커서 그런지 시간이 꽤 걸렸다.
대략 50초 가량이 지나서야 30미터나 되는 커다란 콰이쇼우의 몸 전체가 완전히 변색되자 그 전조가 보여왔다.
음산한 기운이 흘러나오며 불투명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려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천여운이 천마검으로 고스트를 흡수했다.
-슈우우우우우!
그 크기가 얼마나 컸는지 빨려 들어가는데, 일반 고스트들보다도 훨씬 오래 걸렸다.
다행히도 고스트가 되려는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흡수시켰다.
‘이런 것도 고스트로 만들 수 있군.’
생각하지도 못한 득이라 할 수 있었다.
아쉬운 것은 처음부터 미리 알았더라면 다른 콰이쇼우들도 고스트로 만들 수 있었을 거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 커다란 콰이쇼우 하나의 생기를 빨아들이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한 개체라도 건진 것이 다행일 수도 있었다.
‘이 작은 괴물조차도 현경의 고수나 되어야 겨우 상대할 법하니, 그럭저럭 만족하자.’
이제 남은 것은 알파 콰이쇼우의 몸 안에 있는 코어를 회수하는 일이었다.
S등급이었던 고스트 알파 개체의 능력을 흡수했던 것을 보면 어쩌면 콰이쇼우 역시도 능력이 들어있는 코어를 가지고 있을 지도 몰랐다.
목이 없는 알파 콰이쇼우를 향해 다가가려고 할 때였다.
-쾅! 쾅!
‘음?’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곳을 쳐다보자 화염의 구들이 무차별적으로 무언가를 향해 날아오는 광경이 보였다.
그런 화염의 구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날아오는 자가 보였다.
철갑을 매고 있는 사요기였다.
‘뭐지?’
기감을 느끼는 능력이 탁월한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화염의 구를 피했다.
‘제법이군.’
계속해서 화염의 구를 날리며, 그를 쫓아오던 허봉이 이를 멈췄다.
왜냐하면 이미 사요기가 천여운의 앞으로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주군!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제 선에서...”
-슥!
천여운이 손을 들고서 괜찮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그리고는 물었다.
“뭐지? 내게 용무라도 있나?”
천여운의 그 물음에 사요기가 포권을 취하며 호탕한 목소리로 답했다.
“사망곡에서 온 백무도의 두 번째 계승자 사요기라고 하오. 귀하께 정식으로 대결을 요청하는 바이오.”
“대결?”
천여운의 오른쪽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뜬금없이 나타나 자신에게 대결을 하자고 말하는 자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최강이자 절대비기 무상천마검이 펼쳐지는 광경을 눈앞에서 보았을 터인데 말이다.
“이 자식이 기어코!”
의아해하는 천여운의 시야로 분노를 금치 못하는 허봉이 보였다.
천여운이 나서지 말라는 지시만 내리지 않았어도 당장 사요기를 공격했을 것이다.
문득 천여운은 그가 했던 말 중에 한 가지가 걸렸다.
‘사망곡?’
이곳에 와서 두 번째 듣는다.
천여운이 눈매가 가늘어져서 물었다.
“네 녀석. 혹시 비골산에 있는 사망곡에서 온 것이더냐?”
“오! 사망곡을 아는 것이오? 이곳에 나와서 사망곡을 알고 있는 자는 처음 보오.”
처음으로 사망곡을 아는 자를 만난 사요기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비골산이나 사망곡은 옛 명칭이었다.
‘흠.’
천여운이 그를 살펴보았다.
풍겨지는 기운이 보통이 아니었다.
‘하지만.....그 정도는 아니다.’
마족 하갈을 압도할 만큼의 실력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 풍겨지는 기운만 본다면 말이다.
‘무구들?’
천여운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사요기가 매고 있는 뚜껑이 열린 철갑으로 향했다.
그 안에 36종에 이르는 병장기들이 들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죽은 하갈의 피부에는 수많은 병장기에 당한 흔적들로 가득했다.
‘부족하다.’
하지만 그 병장기의 숫자는 36종을 훨씬 넘어섰다.
얼굴과 목에만 50여 종의 전혀 다른 병장기에 의한 상흔이 남아있었다.
철갑 안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천여운이 물었다.
“이 병장기들 이외에도 더 있나?”
천여운의 그 물음에 사요기가 놀라워했다.
“그걸 어떻게?”
“스승이 있나보군.”
그 반응만으로 천여운은 그에게 스승이 있음을 짐작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의 스승은 더욱 많은 병장기를 다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는 뭐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자신에 관한 것들을 접근하는 천여운에게 사요기는 묘한 경계심이 생겨났다.
“당신 대체 누구요?”
사요기가 기운을 끌어올리며 물었다.
언제라도 출수할 수 있게 말이다.
천여운은 그런 것을 전혀 개의치 않고서 도리어 물었다.
“네 스승의 이름이 뭐지?”
“모르오.”
자신의 스승의 이름을 모른다는 말에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사요기는 평생동안 자신의 양조부의 이름을 알 수 없었다.
그저 정말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것과 백무도의 창시자이자 개파 조사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숨기는 것이냐?”
“정말이오. 내 무공은 양조부께 배운 것이오.”
“양조부?”
흔들림이 없는 눈빛을 보면 거짓은 아닌 듯 했다.
천여운이 다시 입을 떼어 무언가를 물어보려고 하자,
-슥!
사요기가 왼손으로는 수도, 그리고 오른손으로 검결지를 만들었다.
그러자 철갑 안에 있던 병장기들이 전부 튀어나왔다.
천여운이 다소 낮아진 톤으로 물었다.
“무슨 짓이지?”
“귀하에게 대결을 신청하지 않았소. 계속해서 대화만 할 참이오. 무인의 대화는 이런 것이 아니오!”
사요기가 천여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36종의 병장기들이 일제히 식을 만들어내며 궤적을 그렸다.
-슈슈슈슉!
‘이 녀석 나와 겨룰 때 전력을 다하지 않았나?’
그 광경에 허봉이 놀라워했다.
놀랍게도 36종의 병장기들은 제각각이 다른 식을 펼치고 있었다.
그것도 전부 고절하면서도 절세 초식들이었다.
-촤촤촤촤촤촤촥!
‘제각각이 전부 고절하다.’
천여운 역시도 꽤 놀란 눈빛이었다.
마족 하갈이 이기어검술이라며 수백여 개의 마력검을 다룰 때 보다도 신선했다.
아무리 뛰어난 무인도 일곱 자루에서 열두 자루 이상의 무구를 이기어술로 다루는 것이 힘들었다.
‘백무도 제 사경. 삼십육병출초! 석해무운.’
백무도의 제 사경은 서른여섯 자루의 병장기로 펼치는 세 초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1초식인 바로 이 석해무운(析海無雲)이다.
흥미가 생긴 천여운이 쥐고 있던 천마검을 들었다.
-슥!
“초식 대결도 오랜만이로군.”
이런 고절한 초식을 보았으니 상대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석해무운의 초식이 이름 그대로 바다를 가를 기세로 쇄도해왔다.
천여운이 가만히 서있는 상태로 왼팔은 뒷짐을 지고서 천마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천마검공으로 해볼까.’
천마검공.
천마조사가 창안한 천마신교 최고의 검법이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천여운은 특별한 기수식 없이도 가볍게 천마검공의 초식들을 펼칠 수 있었다.
-촤촤촤촤촤촥!
스물네 개의 절묘한 검식들이 조화를 이루었다.
'나를 우습게 여기는 건가? 뒷짐을 지고서 검초를 펼치다니?'
뭔가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사요기가 펼치는 초식이 더욱 맹렬해졌다.
드디어 두 사람의 절초가 부딪쳤다.
-채채채채채챙!
천마검과 서른여섯 자루의 병장기들이 부딪치면서 허공에 불꽃이 튀겼다.
검초를 펼치는 내내 천여운의 두 눈은 서른여섯 자루가 제각각 펼치는 초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완전히 제각각은 아니군.’
병장기들을 하나하나 컨트롤할 수 있다면 튕겨나갔을 때 유동적인 움직임을 보였을 테지만, 튕겨나간 병기들은 멈춘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피나는 수련을 통해서 서른여섯 자루의 병장기를 이기어술로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리라.
‘이 초식을 만든 녀석은 그야말로 대종사로군.’
극도신의 극도신무나 투신의 역량의 일원화 이후로 이런 절묘한 초식은 처음이었다.
발상의 전환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막다니?’
초식을 분석하는 천여운과 달리 사요기는 이 상황이 내심 놀라웠다.
설마 이 초식을 대응하면서 저렇게 여유로울 줄은 몰랐다.
‘그렇다면 2초식 파천호군.’
사요기가 곧장 제 사경의 이 초식으로 넘어갔다.
물 흐르듯이 변화하는 초식은 수많은 군사들이 밀려오는 듯한 기세를 갖췄다.
일 초식보다도 훨씬 위력이 강했다.
-채채채채챙!
그러나 천여운은 이것 역시도 가볍게 막아냈다.
여전히 발자국 한 번 떼지 않은 채로 말이다.
진기로서 초식을 펼치는 사요기가 오히려 강한 역량에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공력이다.’
초식이 부딪칠 때마다 심장이 격하게 뛸 정도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사요기가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대 절초인 제 사경의 삼 초식으로 넘어갔다.
‘식적용해!’
서른여섯 자루의 병장기들이 화려한 원을 그리며 천여운을 둘러쌌다.
동시에 사방을 점해서 노리는 초식으로 보였지만 실상 이것의 한수는 마지막 일검에 있었다. 모든 초식을 막는다고 해도 교묘하게 양미간을 노리는 이 일검이야말로 진수였다.
-채채채채채챙!
천여운이 쉬지 않고 오른팔을 움직이며 검초를 막아냈다.
그렇게 서른다섯 개의 병기가 펼치는 식을 막아내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보였다.’
사요기가 검결지를 뻗었다.
그 순간 초식들이 궤적을 그리는 아주 작은 틈새로 검이 찔러 들어왔다.
이것은 상대가 절대로 볼 수 없는 각도였다.
하지만,
-팍!
‘아닛?’
천여운이 두 손가락으로 찔러 들어오는 검을 잡아냈다.
설마 이를 막을 줄은 몰랐던 사요기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꽤 쓸만한 초식이로군. 초식과 초식이 맞물리는 사각 지대를 노린다라.”
천여운의 손가락에 공력이 들어갔다.
그러자,
-챙그랑!
손가락 사이에 잡혀있던 검날이 부러져버렸다.
“내 검!”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보검이 부러지자 사요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치 아끼는 친우나 동료를 잃은 것처럼 분노했다.
“내 검을 부수다니!”
분노한 사요기의 몸에서 강렬한 살기가 발산되었다.
-고오오오오!
그런데 이 살기는 일반적인 것과는 궤를 달리했다.
마치 폭풍이 몰아치기라도 한 것처럼 살기가 사방으로 요동을 치는데, 섬뜩해질 지경이었다.
‘또 그 살기다.’
허봉이 인상을 찡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사요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마치 누군가를 향한 살의라기보다는 모든 것을 다 없애고자 하는 사악함에 가까웠다.
사요기의 두 눈동자가 붉은 안광을 띠자, 병장기들이 핏빛 강기로 물들었다.
‘이건?’
천여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사요기의 기운이 방금 전과는 차원이 다를 만큼 강해졌다.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말이다.
-팟!
사요기가 병장기들 중 도와 창을 낚아채고서 천여운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번개처럼 신형을 좁혀온 그가 핏빛 강기로 물든 두 병기로 미친 듯이 천여운을 향해 초식을 펼쳤다.
“크아아아아압!”
-촤촤촤촤촤촥!
그것은 마치 광기 그 자체였다.
방금 전만 하더라도 고절한 대결이었다면 지금은 천여운을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것처럼 보였다.
-채채채채챙!
하지만 이것이 천여운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천여운은 여전히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가볍게 광기 어린 초식을 막아냈다.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자 사요기는 답답했는지 인상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처음 보는구나. 천살성은.”
‘!?’
천여운의 그 말에 미친 망아지와 같던 사요기의 표정이 굳어졌다.
광기에 차있던 눈빛이 어느 정도 초점을 되찾았다.
‘이런. 내가 이성을 잃었었구나.’
사요기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양조부가 그에게 절대적으로 신신당부했던 두 가지가 있었다.
자신이 오랜 세월 동안 살아왔다는 사실을 밝히지 말라는 것과 사요기 본인인 천살성(天殺星)임을 절대로 들키지 말라는 것이었다.
천살성은 죽음을 주관하는 별의 정기를 띄고서 태어난다.
평생 동안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부수는 저주 받은 운명을 타고난 것이 바로 천살성이었다.
“재미있군.”
천살성에 관해서는 모든 기록에서 만인에게 해악을 끼치기에 반드시 죽여야 할 존재라고 평했다.
한데 천여운은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젠장,’
사요기는 이 순간 도주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0여년 동안의 수련을 통해서 내재된 살기를 완전히 통제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자신이 천살성임을 알아차린 자가 나타났으니 말이다.
바로 그때였다.
-스륵!
경신법으로 물러나는 그의 앞으로 천여운이 나타났다.
“헛?”
“천살성은 꽤 튼튼하다지.”
“뭣?"
-퍽!
그 순간 그의 가슴으로 천여운의 주먹이 꽂혔다.
주먹이 닿은 곳의 공간이 일렁였다.
-우드드드득!
“끄아아아악!”
엄청난 일격에 가슴이 함몰되면서 사요기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짧은 찰나에 가슴으로 혈살기를 모아서 반탄강기를 펼쳤지만, 오히려 그것을 깨고 들어와 가슴뼈를 아작 내버렸다.
“커흑....커흑....”
이 천살성의 생명력은 참으로 경이로웠다.
가슴이 함몰되었는데, 그것이 빠르게 회복되려 했다.
-드득! 드득!
함몰되었던 가슴이 조금씩 튀어나왔다.
하지만 고통이 빠르게 낫는 것은 아니었다.
"끄으으으."
괴로워하고 있는데, 어느새 천여운의 목소리가 그의 뒤에서 들려왔다.
“과연 회복이 빠르구나.”
“다, 당신!”
천여운이 그 상태에서 사요기의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팡!
“끄악!”
-우드득!
사요기의 칠공에서 피가 터져 나오며 그의 목이 부러졌는지 밑으로 꺾였다.
< 44화 천살성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