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TRA (1) >
하갈이 진각성을 이룬 것은 불과 1년 전이었다.
동족 포식만으로 강해지는 것은 한계가 있었기에 그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의 마력을 완전히 컨트롤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마력을 완전히 다룰 수 있게 되자 모든 면에서 한 차원 달라지는 진각성을 이루었다.
하지만 진각성을 하게 되면서 크나큰 단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워낙 마력이 폭발적으로 증강하면서 열과 에너지를 발산하게 되는데, 그것이 방위국의 레이더에 포착 된다는 점이었다.
그 후로 이를 숨기고 있다가 처음으로 강적을 만나서 하게 되는데 결과는,
-데굴데굴!
“컥컥!”
목이 잘려버렸다.
바닥을 정신없이 구르는데 황당할 지경이었다.
마력을 폭발시키는 진각성을 하는 도중에 기습을 하리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
‘이...이 비겁한 놈!’
하갈로서는 억울할 따름이었다.
어이가 없는 것은 진각성을 하는 도중에 마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면서 육신이 금강불괴(金剛不壞)라고 할 만큼 단단해지는데, 그것을 베어버렸다.
‘육신을 수복시켜야 해.’
다행히도 진각성을 하게 되면 평소보다도 자가 회복 능력이 빠르게 발동한다.
핵을 잃지 않는 이상은 어떤 부위의 손상이든지 빠르게 수복되는데,
‘아니? 수복이 되지 않아?’
하갈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목이 잘릴 정도로 심각한 상처임에도 불구하고 잘린 단면이 재생하지 않았다.
‘이건 마치 그때와 같지 않나?’
상처가 회복되지 않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아물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그럴 기미조차 없다.
흉폭하면서 파괴적인 어두운 기운이 수복을 막고 있었다.
‘대체 이건...’
-탁!
그런 하갈의 머리채가 천여운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수치도 이런 수치가 없었다.
-으득!
“아직 살아있었나? 신기하군.”
목이 잘렸는데도 눈알이 돌아가는 모습에 혹시나 했는데 아직 의식이 있었다.
생명력 하나는 질기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니면 그 진각성인가 하는 효능인가?”
무감정한 목소리였지만 하갈에게는 마치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
그가 이를 갈다가 입을 열었다.
“버러지 같은 놈! 무슨 짓을 한 거냐? 어째서 내 몸이...”
그런 하갈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끊고서 천여운이 물었다.
“아까 전에 이런 괴물이 또 있다는 건 무슨 말이지?”
그 물음에 하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혼잣말을 들었을 줄은 몰랐다.
“인간이라고 했던가?”
천여운이 직접 겨뤄본 바, 무림인들 중에서 하갈 정도 되는 마족과 겨룰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대고수 다섯이 동시에 덤벼도 하갈이 이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는데, 궁금할 만도 했다.
“그 몸에 나있는 상처들도 그 자가 남긴 것인가?”
-욱씬!
상처 이야기를 하자 또 다시 얼굴에 난 상처들이 아파왔다.
마족들은 상처가 남지 않는다.
그런데 그 자에게 난 상처는 이상하리만큼 수복이 되지 않았다.
‘빌어먹을!’
그 날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폭우가 쏟아지던 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그를 내려다보는 그 무심한 붉은 안광.
[어째서?]
아무 대답도 없이 그 괴물은 자신을 죽이려들었다.
그때 마족 카일이 나타나 그를 그림자 세상 속으로 끌고 들어가지만 않았어도 정말 죽었을 지도 몰랐다.
대신 카일 역시도 심각한 부상을 입어 얼굴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이제는 그럴 수도 없구나.’
그에게 남은 수하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갈이 분노한 눈빛으로 천여운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흥! 네놈이 알 바가....아!”
그때 문득 그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그 괴물 같은 인간 놈과 이 자가 부딪치게 되면 어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와 부딪치게 되면서 처음으로 무공이라는 것에 흥미를 가져서 익히게 된 하갈이었다.
‘괴물 대 괴물이라.....’
흥미로운 구도였다.
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지만 아마도 자신에게는 기회가 없으리라.
하지만 둘 중 하나는 필시 죽을 것이다.
“비골산이란 곳을 알고 있나?”
“비골산?”
천여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언젠가 분명 들어본 적이 있었다.
‘언제였지. 아!’
사천성에서 서장의 경계 쪽에 자리한 비골산(秘骨山).
가파르기로 유명한 비골산에는 천 길 낭떠러지인 장소가 한 곳 있다.
그곳은 계곡이 워낙 깊은데다가 상류에서부터 내려오는 급류가 워낙 거세서 한 번 휩쓸리면 살아날 수 없다고 하여 사망곡(死亡谷)이라 불렀다.
천여운이 이 지명을 기억하는 이유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사파의 내전은 패왕 항연의 승리로 끝날 것 같습니다. 교주님.]
[그래?]
천여운이 있던 원래의 중원 시절.
정확하게는 황도인 개봉을 정벌하고 북해로 가기 전이다.
사파 연맹은 한참 내전을 겪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났다는 사파의 천재적 신성으로 인해 당시의 오대고수의 일인이자 사파연맹의 맹주인 패왕 항연이 곤경에 처했다는 사실을 암종의 수장인 칠 장로 환의에게 들었었다.
[사파 연맹 쪽이 불리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는데, 내전을 일으킨 그 신성이 사망곡으로 떨어져서 죽었다고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패왕의 시대도 이제 끝인가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군요. 후후후.]
그때 비골산에 관해서 들었었다.
이 시대를 기준으로 치면 천 년도 전에 있었던 일인 셈이다.
하갈이 이어서 말했다.
“그 괴물 같은 놈이 궁금하다면 그곳으로 가봐라.”
그 외의 말은 하지 않았다.
흥미를 가졌다면 어떤 식으로든 찾아갈 테고, 그게 아니라면 속아 넘어갈 자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죽여라. 이제.”
마음 같아서는 핵을 폭주시켜서 자폭하고 싶었다.
하지만 머리가 베인 후로 몸의 감각도 끊기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하갈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하나만 더 물어보지. 네놈은 대체 여기서 뭘 하려고 한 거지?”
애초에 그가 무림협회를 뒤에서 조정해온 이유는 마족 데오를 통해 들었다.
열리는 게이트들의 동향을 살펴서 추적자들이 오는 것을 감시하고 힘을 기르기 위함이라고 했다.
마족 데오는 그가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 마왕이 되길 원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째서 그것이 지구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숨겨진 목적이 있으리라 여겼다.
“흥! 네놈 따위에게 그것을 말할 것 같으냐? 쓸데없는 시간 낭비하지 말고 죽여라!”
물론 곱게 답변할 리가 만무했다.
천여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어차피 상관없다. 네놈이 마지막이라고 들었으니 말이다.”
무슨 속셈이었든 간에 하갈의 수하 마족들은 모두 전멸했다.
그만 죽는다면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아쉽군.’
귀기가 통했다면 적어도 의문은 풀렸을 테지만 마족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천여운이 바닥에 뻗어있는 하갈의 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검결지를 휘저었다.
-촤촤촤촥!
날카로운 흑색 예기가 하갈의 가슴 정중앙을 원으로 갈랐다.
그 상태에서 천여운이 진기를 일으키자, 그의 심장부에 있던 핵이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하갈이 떨리는 눈으로 이를 지켜보았다.
‘허무하구나. 이렇게 끝이라니....’
하찮은 남작에 불과했던 그는 정점인 왕을 꿈꾸었다.
오직 ‘그것’만을 찾는다면 마왕의 자리도 그저 꿈이 아니라고 여겼지만, 이렇게 모든 것이 막이 내리게 되었다.
‘그것에 대한 단서를 겨우 찾았는데.’
아쉬워 해봐야 이미 늦은 일이었다.
저 핵이 부서지면 자신은 소멸할 테니 말이다.
그때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던 그의 두 눈이 커졌다.
‘!?’
핵을 부술 줄 알았던 천여운이 정장에 가려져 있던 팔목의 흑색 철갑 보호대에 그것을 갖다 대는 것이 아닌가.
-우우웅!
그러자 철갑 보호대에서 공명음이 들리며 이내 자신의 핵이 스며들었다.
하갈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네놈이 어떻게 그것을?”
“뭐?”
천여운이 뭔가 싶어 그를 바라보았는데,
-파스스스스!
핵이 흡수되면서 하갈의 몸통과 머리통이 빠르게 균열이 일어나더니,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이내 잿가루처럼 흩날려 버렸다.
‘뭐지?’
천여운이 의아한 눈빛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하갈이 무언가를 보면서 경악해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천마검?”
분명 팔목의 보호대로 화하고 있는 천마검이었다.
‘왜 천마검을 보면서 놀라는 거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스르르!
그러는 사이에 천여운의 머릿속으로 하갈이 지니고 있던 능력에 대한 정보가 밀려들어왔다.
* * *
중화정부의 수도 서안시.
서쪽 지하 기차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서(西) 공안국.
수도답게 이곳 서안시에는 네 개의 공안국과 국무원 내에 공안총괄본부가 있다.
그 중 하나인 서 공안국의 특수 전담부서 건물.
건물의 복도로 공안국 국장복을 입은 서글한 인상의 중년인이 누군가를 친히 안내하고 있었다.
그는 이곳 서 공안국의 국장인 안중윤이었다.
“사무총장님 이쪽입니다.”
그리고 그가 안내하고 있는 파란 제복의 수염을 기른 안경의 쓴 사십대 초반의 남자는 방위국의 사무총장인 위해상이다.
방위국 본부의 삼인자라고 할 수 있는 자였다.
“지금은 그 자가 날뛰고 있지 않나?”
“다행히 얌전합니다.”
그 말에 위해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특수 전담부 건물 내에 있는 수용소에 도착했다.
-착!
국장과 높은 고위급 방위국 손님의 등장에 수용소에 있던 특수 전담부 공안 경찰들이 일어나 일제히 거수경례를 했다.
“됐네. 다들 앉아서 일보고. 강 부장.”
“네. 국장님.”
“어디에 있지?”
국장 안중윤의 물음에 특수 전담부의 강 부장이 취조실로 안내했다.
제 5취조실.
이곳은 무림인들이나 이능력자들을 취조하는 방이었다.
“이 안에 있나?”
“네. 지금 식사 중입니다.”
“이 시간에?”
“배가 고프다고 계속 칭얼대서 급한대로 야식을 시켰습니다.”
강 부장의 말에 국장 안중윤이 혀를 차더니, 뒤에 있는 방위국 사무총장 위해상에게 말했다.
“일단 관찰실로 들어가시죠.”
취조실의 바로 옆에는 이를 관찰하는 방이 있다.
특수 유리로 반대편을 볼 수 있는 장소였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 위해상의 눈에 이채가 띠였다.
“이게 다 뭔가?”
관찰실 안의 넓은 테이블 위로 수많은 병장기들이 위에 올려 있었다.
얼핏 봐도 거의 30여 종은 되어보였다.
검, 도, 창, 곤부터 시작해 영화에서나 볼 법한 독특한 병장기들도 있었는데, 테이블 옆에는 그것을 담고 있던 걸로 짐작되는 큰 철함 같은 것이 있었다.
“허어.”
강 부장이 말했다.
“전부 저 자가 갖고 있던 겁니다.”
그가 가리킨 특수 유리창 너머로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덥수룩한 머리에 무복 같은 것을 입고 있는 사내가 맨손으로 허겁지겁 돼지 뒷다리를 뜯어먹는 것이 보였다.
걸신이라도 들린 사람처럼 먹고 있었다.
“저런 자가 서지부 게이트 키퍼들을 그 꼴로 만들었다고?”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희 서공안국 특수 전담부 소속의 이차준 특경을 반병신으로 만들어놨습니다.”
특경(特警).
공안 특수전담부가 자랑하는 일곱 명의 무공 고수들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인 이차준 특경은 화경의 고수였는데, 서안시 서 지하 고속 기차 역으로 긴급 출동을 나갔다가 지금 응급실로 호송이 되어 있었다.
강 부장은 아직도 그 광경을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 괴물 같은 자입니다. 고작 손가락을 몇 번 튕기는 것만으로 이차준 특경을 쓰러뜨렸습니다.”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
이에 방위국 사무총장 위해상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알기로 이차준 특경은 등록된 무림인들 중에서도 30위권 내에 속하는 뛰어난 고수라 알고 있었다.
그런 자를 고작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 응급실로 보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신분 등록은 되어 있는 자가 맞나?”
“안 되어 있더군요.”
“신분 등록조차 안 되어 있다고?”
“본인 말로는 어렸을 때부터 깊은 산골에서 양 조부와 함께 지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강 부장의 말에 위해상이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
“저 정도 되는 무공의 고수가 산골에 틀어박혀서 지냈다는 게 말이 되나? 대체 어디서 왔다고 하던가?”
“그게 그런 지명은 저도 처음 들어봐서....”
“대체 어디 길래 그러는가?”
“사망곡이라고 하는데.”
“사망곡?”
듣기만 해도 뭔가 오싹해지는 이름이다.
한데 그런 지명은 지도상에도 없었다.
“하! 황당하구만. 신분도 없고 지명에도 없는데서 왔다고 하면.....그럼 대체 뭣 하러 이곳까지 왔다고 하는가?”
위해명의 물음에 강 부장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허참....그게 저도 듣고 나서 실소가 나왔는데, 본인 말로는 무림의 일인자가 되기 위해서 하산했다고 하더군요.”
"뭐어? 무림의 일인자?"
< 43화 TRA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