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오신 그룹 (3) >
그림자로 드리워진 사내의 이름은 하갈.
일족의 배신자였다.
‘대체 어디서 나타났단 말인가?’
하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방대한 힘을 얻었을 때조차도 도망자의 신세였던 그는 늘 경계를 서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분명 광주시 방향에서 나타났다면 어떤 식으로든 보였어야 했다.
-씨익!
천여운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쓸 만하군.’
하갈의 육안에 띠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능력에 있었다.
지금 시각은 새벽 2시 무렵이었다.
한참 어둠으로 깔려있기에 사방이 빛 한 점 없는 그림자의 세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림자 속을 이동한 천여운은 그들이 있는 허공의 발밑까지 도착하여 곧장 순간이동 능력을 사용하여 거리를 좁혔다.
습득한 능력들을 매우 유용하게 사용한 것이다.
“끄으으!...이, 이놈!”
가슴이 꿰뚫려 핵이 붙잡힌 루터가 고통과 함께 분노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그의 핵은 천여운의 손에 잡혀 있었다.
“네놈이 마지막 삼종 중 하나겠지?”
-팍!
천여운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빼냈다.
“안 돼에에에엣!”
하갈이 이를 막기 위해 다급히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핵이 빠져나오자 루터는 정신을 잃고서 지상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슈우우욱! 쿵!
바닥에 떨어진 루터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서둘러 핵을 넣지 않는다면 정말 죽을 것이다.
“이 벌레 같은 놈이!”
하갈의 두 눈이 검게 물들며 전신에 검은 핏줄이 돋아났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하갈의 모습이었다.
‘뭐지?’
그의 드러난 부위는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그 상처들은 단순한 상처라기 보다는 규칙성이 보였다.
‘검상?’
얼핏 보아도 그것은 검상(劍傷)이었다.
그런데 검상뿐만이 아니라 도상(刀傷)부터 꽤 많았다.
‘뭐지?’
여러 종의 병장기에 당한 상처 같았다.
의아해하고 있는데, 하갈이 각성하여 핏줄이 곤두 선 흉측해진 모습으로 일갈을 내질렀다.
“핵을 내놓지 않는다면 네놈을 죽여 버릴 테다!”
천여운의 손에 담긴 핵을 노리고 있었다.
“이게 필요하냐?”
“조심해라. 인간! 그것이 조금이라도 손상이 간다면 네놈은 절대로 곱게 죽...”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천여운이 손바닥으로 그림자를 열어 핵을 집어넣었다.
-스르륵!
‘!?’
이를 본 하갈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니.....그 능력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마족 카일의 그림자 능력이었다.
천여운은 전혀 숨길 이유가 없기에 말했다.
“아아, 덕분에 유용하게 쓰고 있지.”
“뭐?”
하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천여운이 카일의 능력을 가져갔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이 마족의 능력을? 그럴 리가 없다.’
오랫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그는 수많은 실험을 해왔다.
동족 포식 이외에도 동족들의 능력을 가져갈 수 있는 방법부터 시작해 그것을 전이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말이다.
그러나 인간이 마족의 능력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야. 그보다 급한 건 저놈의 손에서 핵을 빼앗는 것이다.’
이러고 있을 틈이 없었다.
우선은 상대를 제압한 후에 알아봐도 늦지 않을 일이었다.
“인간 주제에 감히 나를 자극한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팟!
하갈이 천여운을 향해 날아왔다.
그가 손을 내밀자 손에서 불꽃 형태의 검이 생겨났다.
-화르르륵!
쇄도해오는 하갈이 독특한 자세를 취하더니 이내 행한 것은 검 초식이었다.
‘검초?’
그것도 매우 사악한 절초였다.
불꽃의 검이 수많은 궤적을 그리며 흉악한 짐승이 물어뜯듯이 아래 위를 동시에 노려왔다.
“네놈이 자랑하는 무공으로 사지를 잘라주마!”
불꽃의 검이 그리는 궤적들이 천여운을 휩쓸었다.
그런데 그 찰나의 순간 천여운의 신형이 사라져서 그의 뒤쪽에서 나타났다.
“이건?”
하갈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것은 삼종 중의 한 명인 알카도가 가진 순간이동 능력이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놀랄 틈도 없었다.
천여운이 그를 향해 검결지를 그었다.
그 순간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지며 소름이 돋아왔다.
-휙!
하갈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뒤로 젖히며 하강했다.
허공으로 검은 선이 생겨나 일직선으로 스치고 지나갔다.
‘무형검? 아니야. 달라.’
인간의 무공을 익힌 하갈은 여러 무공 체계를 잘 알고 있었다.
한데 이것은 통상의 무형검과는 달랐다.
저 검은 선에서 흉악하면서도 짙은 어둠이 느껴졌는데, 찰나의 순간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대로 목숨을 잃었을 지도 몰랐다.
“못 피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한 집단의 수장답구나.”
놀리는 것인지 칭찬인지 구분 못할 천여운의 말에 하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벌레처럼 여기는 인간에게 이런 소리를 듣는 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내 동포들의 능력을 흡수했다고 기고만장했구나. 인간. 네놈이 빼앗아간 그 알량한 순간이동 능력의 약점도 알고 있나?”
하갈이 위로 손을 뻗었다.
-우웅! 우웅! 우웅!
그러자 사방으로 수백여 개의 마력의 구체들이 생겨났다.
하갈이 검결지를 쥐자 마력의 구체들이 검의 형태로 변하더니, 이내 천여운의 주변 반경 백 미터 이내를 포위했다.
“이제 어떻게 피해볼 테냐?”
“호오.”
“놀랐느냐? 너희 무림인들이라 불리는 인간들은 검을 자유자재로 날려서 다루는 것을 이기어검이라고 했던가. 너희 인간들과 달리 나 정도 되는 고등 정신체를 가진 마족은 이 많은 것들을 동시에 다룰 수 있지.”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외친 하갈이 검결지를 휘둘렀다.
그러자 정말 그의 말처럼 마력의 검들이 살아있기라도 한 듯이 일제히 검초를 펼쳤다.
-슈슈슈슈슉!
수백 명의 고수들이 동시에 달려드는 것만 같았다.
‘재밌군.’
천여운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자신 이외에도 이런 발상을 하는 자는 하갈이라는 마족이 처음이었다.
“한데 상대가 나빴군.”
“뭐?”
천여운이 손을 위로 뻗었다.
그리고는 아래로 내리는 시늉을 하자,
-슈슈슈슈슈슈슈!
더 높은 상공에서 눈부신 푸른 빛줄기들이 내려치며 천여운에게로 쇄도하는 수많은 마력검들을 공중에서 요격시켰다.
-팡! 팡! 팡!
폭죽처럼 요격된 마력검들이 터졌다.
하갈이 높은 곳에서 내려치는 빛줄기들에 어이가 없어했다.
“이건....대체?”
그것은 천여운의 비기 중 하나인 천공섬광(天空閃光)이었다.
나노의 판넬 시스템에 의해 록 온 된 마력검들은 이리저리 피해다님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요격당하고 말았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인간이?’
그가 알기로 인간의 정신은 하찮았다.
아무리 깨달음을 얻어도 한계가 있어서 생각의 폭이 좁았다.
그런데 저 많은 이기어검강들을 다루는 것을 보니 할 말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놈 정말 인간이 맞는 건가?’
모든 마족들이 그러했듯 그 역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점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으득!
이를 악문 그가 하늘을 향해 쳐다보았다.
그러자 검게 물들었던 눈동자가 회색빛으로 변해갔다.
그러더니 이윽고 옅은 구름들이 지나다니던 밤하늘에 변화가 생겨났다.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렸다.
“구름이?”
-쿠릉! 쿠릉!
기상이변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그들이 있는 상공으로 먹구름들이 몰려들었다.
검은 먹구름들이 뭉쳐지면서 번쩍이는 뇌운이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더 높은 곳에서 네놈을 노려주마.”
-우르르 쾅쾅!
그의 말이 끝나기가 검은 먹구름 사이에서 새파란 뇌전들이 일어나며 천여운을 향해 거대한 번개가 내리쳤다.
일반적인 번개와는 비교도 안 되는 굵기였다.
-파치치치치칙!
“인간! 죽어랏!”
엄청난 굵기의 번개가 천공섬광마저 집어삼키고서 천여운에게 강타했다.
이것은 한 일대가 초토화될 만한 위력이었다.
하갈이 흡수한 백작위급 능력들 중에서는 가장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같잖은 인간 놈이 나를 자극한 대가다.’
S등급 알파 위험개체 마저도 한 방에 보낸 것이니 이것만은 절대로 막지 못하리라고 여겼다.
한데,
‘!?’
그의 두 눈으로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번개에 육신이 완전히 소멸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천여운이 멀쩡했다.
“어....어떻게?”
오령 중 하나인 용귀의 진원을 흡수한 천여운은 뇌기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가 알 리가 만무했다.
“기대 이하구나.”
그때 천여운이 손을 들어서 크게 원을 그리듯이 휘두르자, 그에게로 내리치고 있는 번개가 손의 움직임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파치치치치치칙!
거대한 해일처럼 이동해오는 거대한 번개는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서....설마?”
“이번엔 네놈이 맞아봐라.”
천여운이 하갈을 향해 손을 뻗자, 번개가 방향을 틀어 날아왔다.
하갈이 이를 피하려고 했지만 엄청난 굵기의 반경을 지니고 있는 번개를 피할 수는 없었다.
-파치치치치칙!
“이런 미친!”
-콰아아앙!
“끄가가가가각!”
번개에 맞은 하갈이 감전되어 비명을 지르며 밑으로 추락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천여운처럼 뇌기 자체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앙!
“끄억....쿨럭...쿨럭....”
100미터 가량 파여진 구덩이 속에서 대자로 뻗은 그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제대로 타격을 받았다.
각성체로 변하지 않았다면 소멸했을 지도 몰랐다.
하갈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파여 있는 벽에 손을 집으면서 그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쿨럭....버러지 같은 인간 중에서 이런 괴물이 또 있었다니.....”
-욱씬!
6년 전을 떠올리자 또 다시 전신에 나있는 상처들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 날 이후로 오신 그룹의 전면에 나서는 것을 피하고서 힘을 길러왔는데, 또 다시 이런 상황에 직면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뿐!
그때 그의 앞으로 천여운이 내려왔다.
“이제 네놈의 핵도 가져가도록 하지.”
자신의 핵마저도 노리는 그 말에 하갈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댔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핫!”
“스스로의 무력함에 미치기라도 했나?”
-뿌득!
한참을 웃어대던 하갈이 이를 갈면서 말했다.
“건방진 놈! 좋다. 이 모습으로 변하면 힘을 통제할 수가 없어서 참아왔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겠구나. 나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마. 인간!”
-투툭! 투툭!
불룩하게 튀어나왔던 하갈의 핏줄들이 가라앉았다.
그와 다르게 그의 전신이 부풀어 오르며 갑주마냥 비늘 같은 것들이 돋아났다.
심지어는 머리에서 뿔 같은 것도 오르고 있었다.
-고오오오오!
마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며 주변이 떨려왔다.
변해가는 와중에 하갈이 검게 물들어서 날카로워진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크크큭, 기뻐해라. 네놈이 처음으로 공작위 이상만이 할 수 있다는 진각성체를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리...”
-촥!
‘!?’
그 순간 하갈의 시야가 밑으로 회전을 하면서 떨어져갔다.
‘이, 이게....’
점차 바닥에 가까워져가는 시야를 보면서야 그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목이 베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컥컥...이, 이놈.....”
어처구니가 없어하는 그의 귓가로 천여운의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멍청한 놈. 변신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거냐.”
< 42화 오신 그룹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