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128화 (128/234)

< 42화 오신 그룹 (1) >

광주 오신 그룹에서 멀지 않은 한 사택

그곳의 테라스에서 심각한 얼굴로 전화를 받고 있는 이가 있었다.

큰 귀에 찢어진 눈매에 두꺼운 입술의 중년인은 바로 오신 그룹의 회장이자 무림협회장인 문일향이었다.

“네. 네....알겠습니다.”

말투만 보더라도 그가 어려운 상대와 통화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전화를 끊은 문일향이 테라스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시가를 들고서 한 모금 빨아들였다.

“후우.”

자욱한 연기가 테라스를 가득 메웠다.

그런 그에게 테라스에 앉아 있던 한 삼십대 초반에 두꺼운 입술의 사내가 물었다.

“아버님. 또 그들입니까?”

사내는 문일향의 첫째 아들인 문이경이었다.

협회장 대리이자 대제자인 문종서가 본단에서 천여운의 손에 죽으면서 대제자의 자리를 가지게 된 그였다.

“그렇구나.”

대답을 한 문일향이 다시 시가를 빨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문이경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너무 심하군요. 언젠가부터 본인이 상전인 것처럼 구는데, 해도해도 너무 한 게 아닙니까?”

그 말에 문일향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표정을 보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아버님. 저는 이제 그자에게서 손을 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그자에게 휘둘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룹의 대계를 생각하십시오.”

“후우.”

문일향이 시가의 연기를 내뱉었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그자와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었다.

아들에게는 부끄러운 이야기였지만 그자에게서 벗어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들아.....그자는 악마다.’

문일향은 그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오신 그룹은 지금의 위치에 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역시도 이 정도 무위를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그자와 그를 따르는 자들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란다.’

이 말을 얼마나 내뱉고 싶은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발설하게 된다면 그 역시도 배제될 것이다.

그렇기에 침묵을 지켰다.

“.......아버님은 그자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말씀을 해주시지 않는군요.”

이런 문일향을 계속 쳐다보던 문이경이 한숨을 내쉬고는 물었다.

“그럼 이 오밤중에 대체 무슨 일이랍니까?”

“지금 당장 TRA로 가야할 인원을 차출하라고 하더구나.”

그 말에 문이경이 굳어진 얼굴로 반문했다.

“네? 삼대 제한 구역 말입니까?”

정부조차 손을 놓은 폐쇄 격리 조치가 된 지역이 TRA였다.

대체 그 위험한 곳으로 갈 인원을 왜 차출한단 말인가.

*  *  *

구름이 가득하여 별조차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

불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차디 찬 도시가 있었다.

도시의 이름은 부양시(阜阳市)

안휘성의 도시 중 하나로 한 때는 인구 300만 명 이상이 거주하던 시였으나 지금은 생존자조차 없는 죽음의 도시이다.

건물의 대부분도 부서져서 멀쩡한 곳이 없었다.

방벽의 8할 이상이 전부 부서졌고 그 반경의 10km 떨어진 지점까지 제한 구역(Restricted Area) 푯말들이 빼곡히 땅에 박혀 있었다.

이곳에 출입이 금지된 이유 중 하나는 이것 때문이다.

-휘이이잉!

음산한 바람만이 부는 이곳은 도시 듬성듬성 녹색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이것은 방사능으로 오염된 현상이었다.

얼핏 보면 핵폭탄이라도 터뜨리거나 원전이 터진 현상이 아닌가 착각할 수도 있었지만, 인류는 현재 핵에너지를 사용하지 못한다.

이 현상은 이곳을 제한 구역으로 만든 그 ‘존재’가 만들어낸 현상이었다.

-슉!

이런 죽음의 도시 위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어두운 도시 위를 날아서 가던 검은 그림자가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춰 섰다.

그곳은 다른 곳보다도 유독 심한 폐허 지역이었다.

“이곳에 있었구나.”

그림자가 지름이 120미터가 넘는 거대한 구덩이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구덩이의 중간 중간에는 뭔가가 튀어나와 있었는데, 워낙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어서 건물이 무너져 내린 것으로 보기도 힘들었다.

“이놈을 다시 깨우게 되다니.”

그림자가 다소 긴장된 목소리로 중얼거리다 이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림자의 손에서 붉은 기운이 스멀거리며 흘러나와 거대한 구덩이를 향해 스며들었다.

구덩이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응?’

구덩이를 바라보고 있던 그림자 속의 눈빛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분명 이곳에서 그 존재가 있어야 했다.

‘설마 7년 새에 죽기라도 했단 말....아!’

그 순간 거대한 구덩이가 있는 땅에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대지가 흔들렸다.

굳어있던 지반이 부서지면서 독특한 형태로 튀어나와 있던 뾰족한 무언가들이 들썩거리며 점차 위로 치솟았다.

어지간한 고층 빌딩들을 가볍게 상회할 만큼 높았다

‘깨어났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그림자의 눈매가 거꾸로 초승달을 그렸다.

잠들어 있던 최악의 그것 중 하나가 눈을 떴다.

*  *  *

같은 시각 수도 서안시 국무원.

긴급 상무회의가 열렸다.

밤늦게 열렸기 때문에 참석한 국무원의 위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심지어 총리와 부총리조차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무위원 왕이청이 주도하여 회의가 진행되었다.

네 명의 부장(각 부서 장관), 아홉 명의 국무위원만으로 진행된 긴급 상무회의의 안건은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지금 TRA 지역에 있던 그 위험개체가 깨어났단 말이오?”

“7년이나 잠잠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오?”

국무위원들은 난리가 났다.

3대 제한 구역 안에 있던 존재가 움직였다는 소식을 절대로 흘려 넘길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특히 부양시에 있는 그 존재는 도시를 세 곳이나 폐허로 만들고 인구 500만 명이 넘는 피해를 입힌 최악의 위험 개체였다.

“아니. 그 위험 개체는 죽은 게 아니었소?”

모든 걸 부숴버릴 기세로 계속해서 이동하던 그 존재는 스스로 힘이 다했는지, 부양시 한복판에 쓰러져 오랜 세월 움직임을 멈췄었다.

그것이 7년이나 되기에 모두가 그 존재가 죽었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그 존재가 긴 수면에서 깨어난 것이라면 심각한 위기라 할 수 있었다.

모두가 혼란스러워 할 때, 국방부 부장 안우홍이 말했다.

“일단 총리와 부총리가 참석하지 않았지만 급한 대로 코드 레드를 발동하고 주변 도시에 대피령을 내려야 하지 않겠소?”

주변 도시들이 위험했다.

다른 게이트들과 달리 피해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당장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그 대규모의 학살 사태가 벌어질지도 몰랐다.

“본인은 부양시 주변으로 당장 군을 소집하도록 하겠소이다.”

한시가 다급한 상황이라 군의 총 책임자인 안우홍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하는데, 왕이청이 그를 불렀다.

“안 부장.”

“무슨 일이오? 왕 위원. 바쁘니 간결하게 말해주시오.”

“군만 불러서 될 문제가 아니오.”

“?”

의아해하는 안우홍에게 왕이청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에 국방부에서 한 그룹과 협정을 맺지 않았소?”

*  *  *

광주시 오신 그룹 빌딩.

1층 로비로 삼백여 명의 직원들이 몰려 있었다.

하나 같이 도검을 착용하고 있는 그들은 오신 그룹 내에서도 초절정 이상의 무공 실력을 지닌 뛰어난 고수들이었다.

화경의 경지에 이른 여덟 중진들까지 합친다면 오신 그룹의 최고 전력이라 할 만 했다.

그들은 회장인 문일향의 긴급 차출 명령을 받고서 이 밤중에 나왔다.

영문조차 모른 채 무장을 하고서 나오라는 말에 소집된 오신 그룹의 무인들은 로비에서 TV 뉴스를 보면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속보입니다. 국무원에서 코드 레드 경보를 내립니다. 지금 TRA 지역인 부양시 주변에 있는 10개 시의 방벽 내 거주 시민 분들께서는 신속히 방위군과 공안 경찰의 인도에 따라 지하고속 기차역으로 오셔서 인근 도시로 이동바랍니다.

“세상에.....”

“TRA 지역에 있던 게 움직인 거야?”

격리 폐쇄 조치가 된 세 지역.

게이트 전에 참여하는 무림인들 중에서 저곳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군을 투입하든 어떤 식으로든 미해결된 지역으로 현재 인류의 힘으로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고 판단한 곳이 TRA지역이었다.

“잠깐....설마 저길 가는 건 아니겠지?”

“TRA 지역으로 간다고? 히익!”

때마침 나온 뉴스 덕분에 불길함을 감지한 오신 그룹 무인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들이 아무리 현 무림에서 최고라 불리는 전력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기준이었다.

게이트의 위험은 누구에게나 동일했다.

‘회장님?’

오신 그룹의 무인들이 중진들의 중심에 팔짱을 끼고 서있는 회장 문일향을 바라보았다.

그의 반응으로 이번 소집이 TRA 지역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짐작해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맞는 듯 했다.

문일향의 표정 역시도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허어, 기어코 TRA 지역까지 건드린 건가.’

문일향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물론 그자가 나중에 개입한다고 했지만 저 속에 있던 괴물을 깨운 이상 분명 수많은 희생이 동반될 수밖에 없었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지도 몰랐다.

계획은 이미 들었다.

TRA를 빌미삼아 천마신교와 천마를 움직여 그들을 한 번에 처리하고서 무림 협회의 이미지를 만회시키려는 계획이었는데, 이를 위해서 희생이 필수불가결이었다.

정말 그 자는 인간의 목숨을 벌레처럼 여겼다.

‘하아, 웃기는군. 언제부터 내가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신경 썼다고.....’

문일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일신의 명예와 오신 그룹의 성공을 위해 영혼마저 팔았다.

그와 관련 없는 다른 자들의 목숨 따윈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그냥 시키는 일만 하자. 괜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문일향은 더 이상의 고민을 멈췄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많은 무림인들이 선망하고 있는 현대 무림의 대영웅이 실상은 마족의 손에 휘둘리는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른 이들이 알게 된다면 그 심경이 어떨까?

그러는 사이에 오신 그룹의 로비로 이국적인 외모를 하고 있는 열두 명의 미남미녀들이 나타났다.

‘왔구나.’

그들은 마족들이었다.

이번에 오신 그룹은 명목상 출정을 나가지만 실질적으로 움직일 자들은 저들이었다.

마족들이 TRA 지역에 있는 그 괴물을 처리할 것이다.

열두 명의 미남미녀들 중에서 선두에 있던 두 마족들이 문일향에게 다가왔다.

‘삼종.’

이들은 ‘그분’을 보좌하는 세 마족들 중에 두 명이었다.

다른 마족들은 두렵지 않았지만 이 삼종이라 불리는 마족들은 그분을 제외한다면 괴물이라 칭할 만큼 무서운 자들이었다.

“준비는 끝났겠지? 인간.”

삼종 중 한 명인 회갈색 머리카락에 푸른 정장을 입은 브롬이라는 마족의 말에 문일향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놈은 정말.....’

다른 삼종들과 마족들은 안 그랬는데 이 자만큼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도 본색을 감추지 않고 자신을 벌레 취급하는 자였다.

이 자와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는데 운이 없었다.

[......전부 마쳤습니다. 브롬님. 출발하시면 됩니다.]

차마 중진들 앞에서 낮출 수가 없기에 전음으로 대답했다.

이에 브롬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고작 인간 하나를 죽이려고 이런 짓까지 해야 하다니, 정말 짜증나는구만.”

그는 이런 상황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혼자서도 그 인간을 처리할 자신이 있는데, 뭣하러 이런 귀찮은 일을 만드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불평하지 마라. 브롬. 인간의 교훈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고 하지.”

옆에 있던 삼종 중 한 명인 알카도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무모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머리털과 눈썹, 심지어 모공에 털이 하나도 없는 자였다.

그래서 굉장히 무서운 인상을 가졌다.

알카도의 그런 말에 브롬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헹! 고작 인간 따위가 먹잇감이나 되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TRA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그놈을 죽여....응?”

브롬이 하던 말을 멈추고서 어딘가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은 오신 그룹으로 들어오는 입구 쪽이었다.

-저벅저벅!

뒷짐을 쥐고서 여유롭게 로비로 걸어 들어오고 있는 검은 정장을 입은 새하얀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사내가 보였다

“아니?”

브롬의 반응에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던 문일향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바로 천여운이었다.

‘아니 저자가 어떻게 이곳에?’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함정 때문에 지금쯤 TRA인 부양시로 향하고 있어야할 자가 뜬금없이 중원의 남단 지역인 이곳 광주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런데 문일향을 더욱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전혀 느끼지 못했어.’

저자가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는 동안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생사경의 경지에 오른 자신의 기감을 속일 수 있는 무림인은 존재하지 못한다고 여겼는데, 어처구니가 없었다.

'설마 나 이상이라는 말인가?'

그때 천여운이 그들을 향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고맙군. 안 그래도 전부 처리하려고 했는데, 한 곳에 모여 있어줘서 말이야.”

오만한 천여운의 말에 마족 브롬이 기가 찬 나머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크게 일갈을 내질렀다.

“하! 건방진 인간 놈이 뭐라고 지껄이는 것이냐? 안 그래도 귀찮은 짓이라고 여겼는데, 잘됐구나. 차라리 이 자리에서 네놈을...”

-스륵!

그 순간 브롬의 앞으로 천여운이 나타났다.

엄청난 스피드에 놀란 브롬이 당황해서 손톱을 날카로운 흉기처럼 세워서 뻗으려고 했는데,

“네놈들. 좀 하는 것 같으니까 처음부터 세게 한다.”

“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여운이 검결지를 휘저었다.

-촤촤촤촤촤촥!

그 순간 브롬을 비롯해 마족들이 서있던 공간에 칠흑 같은 검은 선이 생겨나 무수한 궤적을 그렸다.

‘!?’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검은 선의 궤적들이 스치는 순간 열두 명의 마족들 중 누구 할 것 없이 동시에 전신의 모든 부위들이 갈라졌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뒤에 있던 문일향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 42화 오신 그룹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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