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유혹의 밤 (2) >
백작 아나스.
그녀는 천 명의 백작 중에 700위권에 속했었다.
다른 일족들에 비해서 능력이 전투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 꽤나 까다로웠다.
그것은 남성체에게 만큼은 굉장한 영향력을 가졌다.
매혹(魅惑).
이것은 마약과도 같은 능력이었다.
그녀의 매혹에 걸린 자들은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정신 이상 사태에 빠진다.
오감이 무더진 상태에서 오직 그녀의 명령에 충실해진다.
“소교주. 정신 차리세요!”
문란영의 일갈에도 불구하고 회장 천유장은 여전히 멍한 눈빛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다른 교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하나 같이 눈동자에 은빛이 서려 있었는데, 몽유병 환자처럼 행동하는 느낌이었다.
“소용없어요. 언니. 저 년을 없애야 원래대로 돌아와요.”
샤케나는 아나스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그녀를 빨리 처리하는 게 답이었다.
“이 자들을 죽여도 좋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겠지.”
아나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의 매혹에 걸린 교인들이 일제히 사케나와 문란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팟!
교인들이 달려들자 문란영이 난감함을 금치 못했다.
화기로 그들에게 공격을 하면 치명상을 입을 게 뻔했기 때문에 그것을 거두고서 맨손 장법으로 대응했다.
-파파팍!
그녀의 가벼운 손짓에 교인들이 맞고서 나가떨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끝났으면 좋겠지만 그들은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는지, 맞는 즉시 용수철처럼 튕겨서 일어나 다시 달려들었다.
“종서!”
그들 중에는 백종서도 끼어 있었다.
멍한 눈으로 각법을 펼치는 백종서는 죽일 각오로 덤벼들었다.
‘정신 멀쩡할 때는 이렇게 덤비지 못하더니.’
상대에 대한 경계심이나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니 오히려 초식 연계가 자연스러워졌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매혹에 걸렸다 뿐이지 전투 능력들이 그대로인 게 더 성가셨다.
-팍!
기절이라도 시키기 위해 뒷목이나 머리에 타격을 입혀 봐도 좀비마냥 일어났다.
매혹은 단순히 상대를 조정하는데서 끝난 게 아니라 오감을 완전히 둔화시켜서 죽을 때까지 싸우게 만들어 놨다.
“칫!”
평소라면 아무 거리낌 없이 상대를 죽였겠지만 샤케나 역시도 천여운이 했던 말들을 기억했기 때문에 이들을 쉽사리 건드릴 수 없었다.
-스르륵!
몸을 페이징하여 공격해오는 천유장과 교인들을 피하며 어찌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마음 편하게 죽이고 싶었지만 이런 상황이 제일 짜증났다.
그런 그녀를 약 올리듯이 아나스가 외쳤다.
“노예들이랑 열심히 상대해보라고!”
비아냥대고 난 그녀는 그런 그들을 두고서 다시 도망치려 했다.
그때 사케나가 한 가지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
“언니 뛰어요!”
“응?”
샤케나의 외침에 문란영이 반사적으로 위로 뛰어올랐다.
그때 사케나가 바닥에 두 손을 짚었다.
그러자 반경 100미터 가량의 바닥이 보랏빛으로 물들더니, 이내 페이징 되며 서있던 교인들의 일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때다.’
간발의 차이로 그녀가 상체 가슴 정도가 떨어질 무렵에 페이징을 풀었다.
덕분에 떨어진 자들은 가슴 밑까지 바닥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잘했어!”
-팟!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서 문란영이 허공을 박차며 능공허도를 펼쳤다.
순식간에 도망치는 아나스의 위로 도달한 그녀가 손을 뻗자 허공에서 불꽃의 구들이 생겨났다.
“헛?”
이를 발견한 아나스가 놀라서 위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주변으로 은색빛을 머금은 마력의 구가 생겨났다.
두 사람이 동시에 그것을 서로에게로 날렸다.
-슈슈슈슈슈슉!
-파파파파팡!
불꽃의 구와 마력 구가 서로 부딪치며 허공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서로 호각지세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콰콰콰콰쾅!
아나스가 만들어낸 마력 구를 통과하여 폭발의 틈새로 불꽃의 구들이 떨어졌다.
그녀가 다급히 그것들을 피해냈다.
고양이처럼 이리저리 발을 튕기며 피해내는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인간 따위가 이런 힘을 지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그 천무성이라는 자가 카일을 죽였다고 했을 때도 믿지 못했다.
한데 정말로 인간 중에 이렇게 강한 자가 존재할 줄은 몰랐다.
-팟!
그때 그런 그녀에게로 문란영이 허공에서 뛰어내려와 머리에 일장을 날렸다.
아나스가 발차기로 그녀의 장법을 막으려 했지만,
-파팍!
문란영의 장법이 교묘하게 발차기를 뱀처럼 휘어 감으며, 또 다시 그녀의 복부에 일장을 먹였다.
-퍽!
“크윽!”
일장을 맞은 그녀의 신형이 다섯 보 가량 뒤로 밀려났다.
문란영의 눈에도 이채가 띠었다.
그녀를 죽일 각오로 십성 공력으로 일장을 날렸는데, 내상은커녕 이상한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는 것 이외에는 타격을 받지 않은 듯 했다.
‘내장 기관이 없는 건가?’
그렇지 않고는 저렇게 멀쩡할 리가 없었다.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참으로 신기한 몸이었다.
‘그렇다면....’
문란영의 시선이 아나스의 가슴 정중앙으로 향했다.
미처 깜빡하고 있었는데, 문득 천여운에게서 마족들을 죽이려면 핵을 없애야 한다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가슴을 노린다!’
-팟!
그녀의 신형이 번개처럼 아나스의 앞까지 파고들었다.
단숨에 가슴을 노리려 하는데, 아나스가 다급히 두 손을 교차하며 날카로운 손톱으로 조법의 초식을 펼쳤다.
-파파팍!
서로의 손이 교차하면서 부딪쳤다.
놀랍게도 아나스는 무공을 할 줄 알았다.
그것도 상당히 뛰어난 조법을 펼쳐서 장법을 막아냈다.
“무공?”
의아해하는 그녀에게 아나스가 표독스럽게 소리쳤다.
“인간 너만 이런 것을 할 줄 알았나?”
그와 동시에 그녀의 날카로운 손톱이 문란영의 얼굴을 할퀴려 했다.
문란영이 뒤로 몸을 젖히며 유연하게 그녀의 턱을 차올렸다.
-퍽!
턱을 가격 당한 아나스는 이를 힘으로 버티고서 회전하고 있는 문란영의 등허리를 손톱으로 찔렀다.
척추를 끊어버리려고 했는데, 문란영의 몸에서 뜨거운 불꽃이 치솟으면서 손톱이 새까맣게 타버렸다.
“칫!”
팔로 불이 옮겨 붙으려는 것을 아나스가 뒤로 거리를 벌리며 피해냈다.
짧은 찰나에 두 여성의 공방은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한 수 한 수가 치명타였다.
‘짜증나. 이년이 남성체였으면 쉽게 해결될 일을!’
아나스가 속으로 답답해했다.
매혹의 최대 단점은 여성체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동성 간에도 유혹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녀 자체도 여자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보니, 능력이 발휘되지 않았다.
‘칫. 시간 문제인가.’
아나스가 사케나가 있는 곳을 힐끔 쳐다보았다.
사케나는 대부분의 교인들을 땅속에 박아두고, 회장인 천유장을 비롯해 중진들인 화경의 고수 세 사람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었다.
그들도 땅에 가둬버리려고 했지만, 한 번 그 능력을 봤던 터라 용케 피해냈다.
하지만 이것도 그리 오래갈 것 같진 않았다.
그때 그녀의 가슴으로 문란영의 손이 쾌속하게 뻗어왔다.
“흥!”
-팟!
아나스가 이를 피하기 위해 뒤로 다시 몸을 날렸다.
그런데 멀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불투명한 손의 형태가 이글거리는 불꽃을 내면서 그녀의 가슴으로 뻗어왔다.
이것은 화기를 일으킨 무형장(無形掌)이었다.
-화르르륵!
“아악!”
이를 미처 피하지 못했는데 그 불투명한 손이 그녀의 가슴을 가격했다.
체내로 화기가 파고들면서 아나스가 핵에 타격을 입었는지 입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아나스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년? 핵을 알고 있어.’
그렇지 않고는 이런 공격을 시도할 리가 없었다.
이러다간 정말 당할 지도 몰랐다.
‘일족인 내가 고작 이십 몇 년 정도 밖에 살지 못한 인간 계집에게?’
안타깝게도 그녀는 훨씬 오랜 세월을 살았다.
동면 상태까지 친다면 아나스보다도 두 배 이상으로 말이다.
어찌 되었든 목숨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그녀의 선택은 간단했다.
-팟!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허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무조건 도망치는 길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도였다.
“어딜!”
문란영이 허공답보를 밟으며 그녀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륵!
‘!?’
누군가 그녀의 앞으로 나타나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문란영을 향해 발을 내려찍었다.
-팍!
문란영이 다급히 두 팔을 교차시키며 이를 막아냈지만 발차기에 실린 엄청난 괴력에 그대로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쾅!
그녀가 떨어진 바닥이 지름 10미터 정도 크기로 함몰되었다.
다행히 짧은 찰나에 호신강기를 펼쳤던 그녀는 내상을 입지 않았다.
‘누구지?’
방금 그것은 다른 자였다.
-스륵!
그때 그녀의 앞으로 예의 그자가 나타났다.
하늘색 머리카락에 고글을 쓰고 있는 자였는데, 콧대부터 시작해 이국적인 느낌을 풍겼다.
그자가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죽일 생각으로 일격을 날렸는데 버티다니, 정말 인간이 맞나?”
“네놈도 마족이구나.”
문란영은 본능적으로 이 자가 그녀와 같은 일족이라고 판단했다.
무림인이었다면 기감으로 느낄 수 있을 터인데, 눈앞의 고글남은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눈치가 빠르군.”
고글남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런 그를 발견한 아나스가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마르틴!”
고글남은 다름 아닌 ‘그 분’의 수하였다.
광주에 있어야 할 그가 이곳에 있는 것에 의아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스륵!
“핵은 괜찮나? 아나스.”
“앗! 헤일...당신도?”
말총머리를 하고 있는 회색 코트의 남자 역시도 마족이었다.
아나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그분께서 이런 사태를 예견하셨지.”
헤일이라는 마족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분께서 나를 믿지 못하셨다고?”
“불쾌해하지 마라. 네 능력은 불완전하다. 그렇기에 그분께서 확실히 천무성이라는 인간을 말살하기 위해서 우릴 보낸 거다.”
라고 위로처럼 말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결국 자신만으로 처리하지 못할 거라 판단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덕분에 목숨을 구원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알겠어.”
“그나저나 예상 외로군. 일족의 추적자가 인간들과 공조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심장 사냥꾼 정도 되는 백작위의 상위 능력자가 말이야.”
샤케나는 백작위에서도 3위권이나 되는 실력자였다.
그들은 그녀 정도 되는 마족이 도왔기 때문에 천무성이 자신들의 존재를 상대할 수 있었다고 여겼다.
“하!”
놀라하는 헤일이라는 마족과 마찬가지로 매혹에 빠진 천유장과 중진들을 상대하고 있던 사케나가 두 마족을 발견하고서 기가 차했다.
‘저것들도 배신자 놈에게 항복했어?’
그 동안 꽤 많은 추적자를 보냈다.
그런데 그들이 전부 죽었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사실 이것뿐이라면 그나마 괜찮았을 것이다.
‘뭐지? 이 마력은....’
샤케나는 두 마족에게서 풍겨지는 불길한 마력에 인상을 찡그렸다.
이런 마력의 형태를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네놈들! 동족 포식을 했구나!”
-팟!
그녀가 천무성과 중진들을 버려둔 채, 허공으로 날아올라 헤일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런 그녀의 일격을 헤일이 가볍게 손바닥으로 막아냈다.
샤케나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고작 800위권에 불과한 녀석이 내 주먹을 막아?’
헤일이라는 마족은 아나스보다도 서열이 낮은 존재였다.
그런데 그녀의 일격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심장 사냥꾼. 오랜만이로군.”
“너.....”
“예전에는 참 강해보였는데....지금은 딱히 그렇지도 않군.”
-불룩! 불룩!
헤일이라는 마족의 얼굴에 검은 핏줄이 징그럽게 올라왔다.
이것은 동족 포식을 해야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마족은 동족 포식을 하면서 힘이 급격하게 상승하는데,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육체의 변화가 일어난다.
그 현상을 이렇게 칭한다.
“강제 각성!”
< 41화 유혹의 밤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