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뜻밖의 이득 (2) >
오령(五靈).
그것은 성스러운 다섯 영물이다.
대붕, 불기린, 풍백호, 용귀, 이무기로 이 다섯 영물들은 예로부터 중원을 지켜오는 수호령이라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무서운 힘으로 인해 대재앙이라 불렸다.
흰 비늘로 전신이 뒤덮인 사내를 천여운이 유심히 바라보았다.
‘못 버텼군.’
이것은 부작용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
영물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진원이나 피는 복용한다고 누구나가 흡수할 수 있는 그런 영약이 아니었다.
화경의 고수라 할지라도 잘못 복용하면 오히려 영력에 사로잡혀 이렇게 된다.
‘순수 이무기의 피를 마시면 이렇게 되는군.’
천여운도 이무기의 영력을 흡수했었다.
다만 이무기라 부르기도 애매한 것이 용이 되어 승천하려던 것의 뿔을 베어 마성이 사로잡힌 상태로 만들어 그 영력을 흡수했다.
그것이 지금 천여운의 몸속에 자리하고 있는 천마기였다.
‘순수한 이무기가 어떤 영력을 지녔는지 궁금한 차였는데.’
운이 좋았다.
천여운이 그림자 속에 집어넣은 것은 그 이무기의 피였다.
흰 비늘로 뒤덮인 이 남자는 1리터 정도 담겨 있던 이무기의 피에 3분의1가량을 마시고 이렇게 된 듯 했다.
‘깨워볼까.’
천여운이 온몸에 서리가 맺혀서 냉기를 풍기고 있는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오랫동안 이 냉동고 같은 금고 안에 있어서 냉기로 정신을 잃고 있는 사내에게 진기를 불어넣었다.
따뜻한 기운이 사내의 몸속에 스며들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냉기를 천천히 녹아들게 했는데,
-번쩍!
사내의 두 눈이 떠졌다.
검은 안광을 번뜩이며 깨어난 그의 입에서 인간의 육성과는 다른 독특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쉬르르르!”
그것은 마치 뱀과도 같았다.
초점이 천천히 천여운에게로 향했다.
-덜컹!
전신의 구속구가 아니었다면 당장에라도 천여운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기세였다.
“쯧쯧, 제대로 먹혀들었군.”
이무기의 영력을 지배한 게 아니라 오히려 먹혀들어갔다.
이래서는 흉폭한 짐승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덜컹! 덜컹!
갈수록 그 힘이 강해져갔다.
냉동고 속에서 나오는 한기가 그쳐진데다가 천여운이 진기를 불어넣으면서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듯 했다.
“흠.”
-꽉!
천여운이 사내의 머리통을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진기를 불어넣었다.
머릿속을 헤집고 있는 이무기의 영력을 누르기 위해서였다.
-고오오오!
사내가 고통스러운 듯이 머리를 뒤틀며, 천여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진기가 그의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이윽고,
“끄으으윽!”
사내의 입에서 사람의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괴로워하는 목소리로 사내가 천여운을 쳐다보며 의아한 눈빛을 했다.
“누, 누구?”
“입 다물고 내 진기에 맞춰서 영력을 억눌러라.”
“영력을 억누르라니.....끄으으....아아!”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상태였는지 사내는 천여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굉장히 정신이 없어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정줄을 놓은 사람처럼 소리쳤다.
“안 돼! 이, 이럴 시간이 없어. 당장 세컨드 마스터를 막아야 해. 변호영 그놈이 야심을 드러냈다. 놈은 마스터의 자리를 노리고 내 뒤통수를...끄으윽.”
횡설수설했지만 그의 말만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사내는 다름 아닌 블랙 아테나의 마스터인 도현수였다.
천여운은 죽은 변호영의 기억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었다.
“그놈을 당장 잡아야해! 놈이 내 피와 암혼진경을 노리고 있어!”
-덜컹덜컹!
그를 붙잡고 있는 구속구가 일그러졌다.
목소리가 점점 뚜렷해지면서 힘도 강해져갔다.
“어이. 그만 말하고....살고 싶다면 집중해서 영력을 억눌러라.”
영력은 외부에서 천여운 혼자 억누른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정작 본인이 그것을 억눌러서 스스로에게 체화시켜야 하는데, 도현수의 상태는 영력의 부작용이 뇌에까지 미쳤는지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다.
눈을 희번득 거리더니 이내 천여운을 살기 어린 눈빛으로 노려보며 노성을 질렀다.
“변호영 이노오오오옴!”
-쾅!
특수합금으로 된 구속구가 뜯겨져나갔다.
도현수이 엄청난 기세로 죽일 듯이 천여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이무기의 영력이 담겨 있어서 그런지 폭발적인 역량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귀찮게 만드는군.”
-탁!
“웁!”
천여운이 그의 얼굴을 움켜쥐고서 그대로 금고 안의 벽면에 밀어붙였다.
-콰앙!
엄청난 공력에 도현수의 몸이 금고 안으로 나가떨어지다 못해서 그 안쪽이 우그러져서 처박히고 말았다.
어지간한 무림인들도 한 번에 절명하거나 기절할 정도의 위력이었으나,
-우드득! 우드드드득!
안에서 뼈가 맞춰지는 소리와 함께 도현수가 걸어 나왔다.
꺾이고 부러진 뼈들이 빠르게 재생했다.
“꼴에 이무기의 피를 마셨다고 빨리도 회복하는구나.”
천여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껏 영력을 억누른 것이 더욱 치솟았는지 도현수의 눈동자가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완전히 회복한 도현수가 천여운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파파파팍!
이성을 잃었다고는 하나 본능적으로 무공을 기억했는지 권을 펼쳤다.
그것도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띨 만큼 고절한 초식이었다.
처음 보는 초식인데 굉장히 뛰어났다.
-파파파팍!
이에 흥미가 생긴 천여운이 도현수가 펼치는 권을 상대해보기로 했다.
‘이 정도로도 충분하지.’
천여운이 한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 오른팔을 들어 올려 검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리고서 손가락으로 도현수의 권초를 막았다.
-파파파파팍!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박살낼 것만 같은 패도적인 권초의 식들이 너무도 쉽게 천여운의 손가락에 하나하나 막혔다.
도현수의 권초에 실린 일식마다 담긴 힘은 초합금마저 부숴버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가 제정신이었다면 경악을 했을 지도 몰랐다.
‘초식을 만든 자가 종사라 불릴 만한 자로군.’
연달아 이어지는 초식을 막아내며 천여운이 그리 평가했다.
이 정도 권법이라면 가히 그가 알고 있는 권법을 통틀어 세손가락 안에 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훌륭했다.
게다가 이 권법의 가장 특이점은,
-크와아아!
복잡하게 이어지는 권식들이 환각을 일으켰다.
권식들이 어느 순간부터 마치 눈앞에서 수많은 흉악한 악귀들이 나타나 공격해오는 환각을 보여줬다.
그것은 굉장히 리얼했다.
적에게 혼란을 가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래봐야 눈속임이지만.”
다만 천여운을 혼란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렇게 고도로 권식을 궤로를 이용하여 환각을 일으키는 것은 일종의 술법에 가까웠다.
대자연의 기운을 넘어서 우주를 엿본 천여운에게는 실체가 너무 뚜렷하게 보였다.
“좀 더 완성시켰다면 재미있을 뻔했구나.”
-팍!
천여운이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지공이 도현수의 오른쪽 무릎을 꿰뚫었다.
초식을 펼치던 도현수의 신형이 무너졌다.
천여운이 검지와 중지를 말아 쥐고서 도현수의 이마로 손을 뻗었다.
“더 이상 초식이 없는 듯 하니, 이 정도에서 끝내자.”
그리고 손가락을 튕기려는 순간,
-콰콰콰콰콰!
그 순간 바닥이 갈라지며 흙모래가 위로 솟구쳐 올랐다.
‘이건?’
흙모래가 살아있는 것처럼 손 모양으로 형태처럼 바뀌었다.
이것은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었다.
‘영력.’
흙모래가 움직이는 것에서 천여운은 영력을 느꼈다.
이무기의 영력.
그것의 정체는 토기(土氣). 즉 땅의 기운을 다루는 것이었다.
이무기는 토룡이라고 불리는 존재였기 때문에 땅의 기운을 다룰 수 있다.
‘그 와중에 영력을 확실하게 다루게 되었나.’
이것은 불기린의 피를 먹고서 영력을 흡수하게 된 대장로 문란영과 허봉이 화기(火氣)를 다루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도현수가 주먹을 움켜쥐는 시늉을 하자, 손바닥의 형태를 하고 있는 흙모래가 굳혀진 손이 천여운을 움켜쥐어 압사시키려 했다.
하지만,
-쩌저저저저적!
천여운에게 닿기도 전에 흙모래가 얼어붙어버렸다.
“쉬르르르르!”
도현수가 더 많은 토기를 일으켜서 흙모래를 끌어오려 했지만, 이미 근방의 흙모래들은 전부 한기로 얼어붙었다.
이것은 이무기의 영력에 사로잡혀 있는 도현수마저 당혹스럽게 만들 정도였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의 앞으로 천여운이 도달했다.
“머리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 방법만큼이나 효과적인 것도 없더구나.”
천여운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현수가 도망치려했다.
본능적으로 절대로 상대될 수 없다고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꽉!
어느새 천여운이 도망가려 하는 그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쉬르르르!”
도현수가 뱀 같은 소리를 내며 발버둥을 치면서 벗어나려 하는데, 천여운의 손에서 엄청난 뇌기(雷氣)가 스파크를 일으켰다.
-파치치치치칙!
“크카카카카카카카!”
감전된 도현수가 경련을 일으키며 괴성을 내질렀다.
뇌가 타기라도 했는지 두 눈을 비롯해 콧구멍, 귓구멍까지 검은 연기와 함께 붉고 누런 액체가 흘러나왔다.
-털썩!
그렇게 괴로워하던 도현수는 뇌기가 그쳐서야 편히 쓰러질 수 있었다.
뇌기로 새까맣게 타버린 얼굴부터 대머리가 된 그의 모습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무기의 영력은 그가 쉽게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스르르르!
빠른 속도로 타버린 그의 상처부위들이 회복되어 갔다.
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아 타버린 회색 머리카락까지도 원상복구 되었다.
얼마 있지 않아 도현수는 깨어났다.
그것도 멀쩡히.
“헉!”
그는 깨어났을 때 자신에게 벌어진 모든 일을 기억할 수 있었다.
파괴된 뇌의 손상부위가 회복되면서 그것을 전부 떠올릴 수 있었는데, 천여운의 말도 안 되는 강함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당한 건가?’
이무기의 피를 마시고서 공력의 폭증한 자신을 아이 다루듯이 쓰러뜨렸다.
600여 년 전 사파의 전설적인 무인인 권환대제(拳幻大帝)의 권법인 암혼진경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적이 있던가.
“대, 대체 누구십니까? 당신은....”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대 천마신교의 천마다.”
* * *
블랙 아테나의 메인홀.
그곳에는 한바탕 전쟁이라도 치러진 것 같았다.
사방에는 타고 그을린 흔적부터 시작해 바닥에 패인 흔적들로 가득했고, 수많은 웨이터 복장을 한 자들이 쓰러져 있었다.
“에고. 이게 마지막인가.”
-팍!
허봉이 한 턱시도를 입은 중년인의 복부에서 검을 빼냈다.
그런 허봉을 부속실장 비막헌이 존경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가 펼치는 환영검법은 너무도 완벽했다.
심지어 환영검법을 펼칠 때마다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은 그의 별호인 염제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역시 스승님 대단하십니다!”
그런 비막헌의 말에 허봉이 어깨를 으쓱해했다.
“에헴.”
한없이 칭찬에 약한 그였다.
“흠흠, 너도 내게 검법을 몇 수 사사 받았더니,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오오! 정말이십니까?”
실제로 비막헌의 실력은 전보다 상당히 늘었다.
하지만 서로를 띄워주는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던 유소화가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가 그런 그들에게 말했다.
“대충 이곳은 정리된 것 같은데, 저희도 안으로 들어가 보죠.”
갑자기 경보가 울린 이후로 메인홀로 수많은 고수들이 밀고 들어왔다.
이들을 전부 처리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분명 안으로 갔던 일에 차질이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히히, 유 소저. 그럴 필요 없어 보이오.”
“네?”
허봉이 접견실로 들어가는 입구 쪽으로 눈짓을 했는데, 그곳에서 천여운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두 명의 누군가가 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SS급 게이트 키퍼인 임소혜와 회색 머리카락의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블랙 아테나의 마스터 도현수였다.
“주군! 가신 일은 잘 되신 겁니까?”
“그래.”
“한데 두 사람은?”
의아해하는 그에게 천여운이 소개하듯이 말했다.
“이번에 본교에 새로이 입교한 블랙 아테나의 수장인 도현수다.”
도현수가 허리를 90도로 숙이면서 그들에게 인사했다.
“마스터께 갚을 수 없는 큰 은혜를 입고서 천마신교에 입교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엥?'
그런 그의 말에 비막헌이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거래가 제대로 틀어졌다고 여겼는데, 천여운의 말대로라면 아예 블랙 아테나를 통으로 먹은 셈이 아닌가.
뒷세계에서 가장 큰 두 조직 중 하나가 천마신교의 산하로 들어온 것이었다.
‘......저 년은 왜 저러고 있지?’
얼굴을 밑으로 숙이고서 죄인처럼 누구와도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임소혜의 모습에 유소화가 의아해했다.
불과 아까 전만 하더라도 오만하면서 자신감이 넘쳤는데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때 천여운이 유소화에게 말했다.
“신입 비서다. 제 1비서인 네가 책임지고 잘 교육시켜라. 인사해라.”
그 말에 임소혜의 얼굴이 새빨개져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자존심이 제대로 상한 모양이었다.
SS급 게이트 키퍼인 자신이 한낱 비서가 되게 생겼다. 게다가 서로 앙숙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는 유소화의 밑으로 말이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천여운의 차가운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임소혜가 다급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그 모습에 무표정했던 유소화의 양 입 꼬리가 귀에 걸렸다.
< 40화 뜻밖의 이득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