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블랙 아테나 (2) >
SS급 게이트 키퍼.
게이트 키퍼의 정점에 서있는 세 명의 이능력자들이다.
그들의 능력은 혼자서도 능히 A등급 알파 개체를 상대할 만큼 대단했고, 그 한 명, 한 명이 재앙이라 할 만한 전투 능력을 지녔다.
“SS급 게이트 키퍼?”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 말은 이 눈앞에 있는 고혹적인 여인이 유소화에 버금가는 존재라는 의미였다.
이 넓은 중원에서 한 사람조차 보기 힘들다는 SS급 게이트 키퍼가 이 자리에 두 명이나 모인 진귀한 광경이었다.
‘흠.’
한데 유소화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탐탁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싫어하는 수준의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이에 임소혜가 두 손을 들어 올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여전하시네요. 제 얼굴만 봐도 참기 힘드신가 봐요?”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듯이 비아냥거리는 말에 유소화가 손을 들어 올리려 했다.
여차하면 중력장을 일으킬 기세였다.
이에 다급히 비막헌이 나서서 화제를 돌렸다.
“아까 전에 사용방법이라고 했는데, 무슨 말씀인지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임소혜가 빙그레 웃더니, 천여운의 옆으로 다가와 테이블 위에 손가락을 얹고서 살살 긁어대며 사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뉴스에서 보신 것보다 훨씬 미남이시네요. 이렇게 잘생기고 능력 좋으신 분이니까. 소화 언니가 그 연봉마저 포기하고서 그만둔 거겠죠?”
임소혜의 관심사는 천여운이었다.
처음에 블랙 아테나의 진정한 메인 홀로 들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유소화를 발견하고서 다가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너무 궁금했다.
그녀가 알기로는 유소화는 SS급 게이트 키퍼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포기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로 매력이 있을까 하고 봤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매력적이시네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매만지며 끼를 부렸다.
마치 유혹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천여운은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질문한 것에나 답변해라.”
임소혜의 고운 미간이 찡그려졌다.
‘나를 앞에 두고서도 이렇게 무관심하게 굴다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녀는 내심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에 자신이 있었다.
잘록한 허리에 풍만한 가슴까지 남자들이 좋아하는 모든 조건을 갖췄다고 여겼다.
실제로 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대쉬했다.
‘도도하시다 이거지?’
그런 무심한 태도가 오히려 그녀의 승부욕을 자극시켰다.
유소화가 가진 것을 자신이 가지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임소혜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방법을 알려드린다면 제게 무엇을 해주실 수 있나요?”
그녀가 가장 많이 써먹는 유혹 방법이었다.
이것만큼 유용한 방법도 없었다.
단 둘이 술을 마신다거나 차를 대접한다는 말만 나와도 십중팔구 넘어갔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천여운에게서 나온 말은,
“목숨은 보장하지.”
“네?”
임소혜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방금.....뭐라고 하셨죠?”
“귀에 문제라도 있나? 목숨을 보장해준다고 했을 텐데.”
“하!”
임소혜가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SS급 게이트 키퍼가 된 이후로 인간들 중에서 자신의 정체를 알고서도 이렇게 배짱 좋게 나온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이건 배짱이 아니라 무모함인 듯했다.
“풋.”
그런 그녀의 귓가로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유소화가 낸 웃음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임소혜의 등장으로 기분이 언짢았던 그녀지만, 당황해하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으득!
그녀가 붉은 립스틱이 칠해진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입을 열었다.
“제 목숨을 보장하신다? 남자의 이런 오만한 모습을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군요. 한데 그 탁월한 자신감에 스스로의 힘에서 비롯되었을까요? 아니면 저기 앉아 있는 소화 언니가 저를 막을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
-슥!
“아?”
그녀가 자신의 목에 닿을 듯 말 듯한 검지와 중지를 모은 검결지에 말을 멈췄다.
‘언제?’
바로 천여운의 옆옆 쪽에 앉아 있던 허봉이 어느새 자신의 뒤에서 검결지를 목에 갖다 대고 위협하고 있었다.
무림인은 아니었지만 목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예기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소저. 주군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소. 묻는 말에만 대답하시오.”
천여운의 앞에서만큼은 익살스럽고 가벼워 보이는 허봉이지만, 그에게 무례한 자들에게는 일말의 용서가 없었다.
임소혜가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믿는 구석이 있으셨군요. 확실히 돈이 좋긴 하네요. 이런 대단한 수하들도 두고 말이죠.”
“소저. 경고는 이제 마지막....”
허봉이 자신의 뒤로 다가오는 인기척들에 고개를 돌렸다.
다섯 명 정도 되는 연회 복장을 하고 있는 다섯 남녀가 화가 난 얼굴로 허봉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임소혜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는 제 자신을 가장 믿지만, 돈이 아니더라도 쓸 만한 팀원들도 많죠. 아시죠? 소화 언니. SGK 팀원들요.”
그들은 임소혜가 이끄는 팀원들이었다.
임소혜의 뒤에서 허봉이 위협하는 모습에 나선 것이었다.
그들이 테이블 쪽으로 다가오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대치 상황으로 이어질 듯했는데, 그때 웨이터들이 나타나 가로막았다.
“블랙 아테나의 홀에서는 누구도 싸우실 수 없습니다. 싸움을 원하신다면 밖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이곳의 규칙이었다.
웨이터 중 한 사람이 임소혜에게로 다가와 말했다.
“VIP 회원님의 거래 접견실이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에 임소혜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타이밍이 절묘하군요. 아쉽게 되었어요. 좀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그녀가 몸을 돌려서 웨이터의 에스코트를 받으려 했다.
그런데 허봉이 비켜서지 않았다.
“소저. 아직 대답하지 않았소.”
“.......”
임소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자존심을 최대한 억누르고 있었지만 SS급 게이트 키퍼라는 칭호로 떠받들어 졌던 그녀였기에 모욕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싸움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회원님들.”
웨이터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서 허봉과 그녀를 경고했다.
더 소란을 피우면 퇴장 조치된다.
‘하아. 여기만 아니었어도.’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임소혜는 다시 이성을 되찾았다.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천여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동전을 마티니에 넣고 마시는 게 접견실로 가는 규칙이에요. 그걸 하지 않는다면 들어갈 수 없어요.”
그것이 거래를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의외로 웨이터는 그녀가 방법을 알려주는데도 특별히 제지하지 않았다.
굳이 알아도 상관없는 정보인 듯했다.
“다음번 만남을 기약할게요. 부회장님.”
임소혜가 도도하게 고개를 돌렸다.
허봉은 지나갈 수 있도록 막아섰던 길을 비켜줬다.
그녀가 그냥 지나쳐서 가려다가 허봉에게 톡 쏘아주고 가버렸다.
“당신. 생긴 거랑 다르게 엄청 구려요. 소저? 천 년 동안 냉동고 속에 갇혀 있었나 보죠. 어디 사극에서 쓸 법한 말투나 써대고. 흥!”
화가 난 마음을 이런 식으로 풀고 가는 것이었다.
그녀가 웨이터를 따라간 후에 허봉이 천여운에게 꽤나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주군.....저년 보통내기가 아닙니다. 제가 천 년 동안이나 얼음 속에 갇혀 있던 것을 맞추는 걸 보면 예지가인 것 같습니다.”
“.......자리에 앉아라.”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지 못한 허봉이었다.
허봉을 자리에 앉힌 후에 천여운이 비막헌에게 동전을 받았다.
한 마디 정도 크기의 동전은 충분히 삼킬 수 있는 크기였다.
‘이걸 이것과 함께 마시라고?’
처음 입장했을 때 웨이터가 두고 간 마티니.
이런 용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마셔야 거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부회장님. 아무래도 뭔가 께름칙합니다. 차라리 거래하시려고 하는 내용을 말씀해주시면 제가 마시고 진행해보겠습니다.”
비막헌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동전과 마티니를 바라보았다.
천여운이 그런 마티니와 동전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서 머릿속으로 물었다.
‘나노. 성분 분석해봐. 독이 있나?’
[확인해보겠습니다.]
나노의 분석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동전과 알콜성 액체 모두 독성은 없습니다.]
‘독이 없다고?’
의외로 둘 다 독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동전을 담가서 마시라 한 거지?’
이에 나노가 해답을 주었다.
[이 두 개에 담겨 있는 성분들을 함께 섞어서 복용할 경우 위산에 닿는 순간 강한 독성을 유발합니다.]
‘그랬군.’
이제야 해답이 풀렸다.
동전, 마티니, 위산 이 세 가지가 합쳐져야 독성 물질이 생겨난다.
이 독이야 말로 블랙 아테나에서 사용하는 안전장치인 셈이었다.
밖에 동전이 유출되더라도 이 자체만으로 독을 확인할 수도 없기에 공안 쪽에 들킬 일도 없었으니 꽤나 참신한 방법이었다.
천여운이 피식하고 웃더니 이내 마티니에 동전을 넣었다.
그리고는 잔을 들었다.
“부회장님!”
비막헌이 놀라서 이를 만류하려 했지만, 천여운은 그것을 그대로 원샷했다.
어차피 자신은 이것을 마셔도 상관없었다.
만독불침의 몸인 데다가 나노 머신이 있어서 독을 분해해서 오히려 좋은 성분으로 바꿀 수 있었다.
“차라리 제게 맡기시는 편이....”
비막헌이 마시면 빼도 박도 못하고 독에 중독된다.
그 편이 더 일이 복잡해진다.
“됐다. 내가 한다.”
괜히 독이 들어있다고 말해서 부산스러운 상황을 만들기 싫었던 천여운은 이 사실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체내에 독성 물질의 분해가 끝났습니다.]
게다가 어차피 이미 독은 해독되었다.
이윽고 얼마 있지 않아 웨이터 한 명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쿠퍼 회원님의 거래 접견실이 준비되었습니다. 일행 분들께서는 접견이 끝날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허봉이 항의하려고 했다.
“주군 혼자 보낼 수는....”
“됐다. 기다리고 있어라.”
하지만 천여운의 말에 다시 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그들에게 기다리고 있으라고 지시한 천여운이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홀의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입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복도를 따라 들어가자 안에는 일곱 개의 문이 있었다.
검은색, 금색, 은색, 구리색, 붉은색, 파란색, 흰색 문양의 아테네 여신이 그려진 문들 중에 웨이터는 구리색 선으로 그려진 문을 열었다.
“복도를 따라 들어가시면 됩니다.”
복도는 한가운데로 일직선으로 이동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아까보다는 작은 12평 남짓 정도 되는 홀이 나타났다.
홀에는 테이블 하나와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슥!
안으로 들어서자 천여운이 피식하고 웃었다.
홀의 바닥 전체가 산공 장치가 가동되고 있어서 내공을 쓸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안전 장비들을 갖추고 있는 듯했다.
-쿵!
천장에서 벽처럼 보이는 것이 내려와 입구를 막았다.
꽤나 두꺼워 보였다.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그때 천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천여운이 유유자적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우웅!
그러자 천장에서 빛이 밑으로 쏘아지며 테이블 맞은 편에 홀로그램이 형성되었다.
검은색 가면에 턱시도를 입고 있는 사내가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는데, 그가 공손하게 한 팔을 옆으로 뻗고 다른 한 팔로 배를 잡고서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회원님.
그런 홀로그램으로 등장한 가면의 사내에게 천여운이 물었다.
“직접 대면하진 않나보군.”
-불쾌하셨다면 양해 부탁드립니다. 보안을 위한 것이라 말이죠.
“뭐, 상관없다.”
-감사합니다. 그럼 거래에 앞서 미리 공지 말씀드립니다. 첫 번째, 접견실에서 있었던 모든 거래 내용은 절대로 밖에서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두 번째, 접견 시간은 기본 10분 정도가 주어지며 추가 시간 10분마다 요금을 지불하셔야 합니다.
-위잉!
테이블의 양쪽이 반으로 갈라지며 안쪽에 유리 테이블이 나타났다.
유리 테이블 안에서 잔 하나와 수도꼭지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위로 올라왔다.
수도꼭지에서 붉은 액체가 흘러나와 잔을 채웠다.
-처음 오셨기 때문에 설명 드리면 10분이 되었을 때, 이 해독제를 복용하지 않으시면 체내에 있던 독성이 몸에 퍼지게 됩니다. 그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테이블 위로 타이머가 표기되었다.
독은 그들이 원하는 거래를 위한 장치였다.
-해독제를 마시는 순간부터 거래가 시작됩니다.
가면의 사내가 손을 내밀며 이를 권했다.
천여운이 순순히 잔에 담긴 해독제를 마시자, 그 순간부터 타이머가 가동되었다.
10분부터 초 단위로 숫자가 깎여나갔다.
-그럼 거래를 시작하겠습니다. 판매와 구매 중에 어떤 것으로 하시겠습니까?
이들은 파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는 일도 한다.
그래서 어떤 거래를 원하는지 묻는 것이다.
“구매다.”
-알겠습니다. 시작 전에 미리 말씀드립니다. 회원님의 등급에 따라서 거래가 제재되는 품목이 있으므로 이를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어떤 구매를 원하십니까?
“정보를 원한다.”
-정보는 얼마나 구체적인가 그리고 구하기 힘든 정보인가에 따라서 가격대가 달라지는 것을 유의하기 바랍니다. 어떤 정보를 찾으십니까?
가면 사내의 물음에 천여운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MS그룹.”
-..........
MS그룹이라는 말에 가면 사내가 곧바로 답변하지 못했다.
가면의 틈새로 보이는 눈빛이 묘하게 떨리는 것이 홀로그램임에도 보였다.
천여운이 다시 말했다.
“알고 있는 MS그룹에 대한 모든 정보를 원한다. 그들의 위치나 접선 방법 같은 것이라면 더더욱 좋고.”
이에 가면의 사내가 어딘가를 슬며시 쳐다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방금 물으신 정보는 회원님의 등급에서 거래할 수 없습니다.
거래를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럼 어느 등급에서 공개가 되는 거지?”
-말씀하신 정보는 VIP 회원님만 거래가 됩니다. 도움이 되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다른 거래가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시고, 그게 아니라면 접견을 종료하도록...
“VIP 방으로 가면 거래가 가능한가?”
천여운의 그 물음에 가면의 사내가 딱 잘라 대답했다.
-회원권이 없으시면 불가능합니다.
“꼭 정보를 받아야 겠다면.”
그 말에 가면의 사내가 친절함이 사라지고 다소 차가워진 목소리로 답변했다.
-블랙 아테나의 규칙에 의거하여 회원님을 말소하겠습니다.
죽이겠다는 소리였다.
천여운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말소를 하겠다는 거지?”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거래 시간이 종료됩니다. 경고 드리지요. 저희가 이 방의 문을 열어드리지 않는다면 회원님은 5분 내로 장기 기관이 전부 녹아서 시신으로 나가시게 될 겁니다. 그것을 원하신다면 계속 고집을 피우셔도 상관없습니다.
가면의 사내가 어딘가로 눈짓을 하자, 유리 테이블 위로 올라와 있던 수도꼭지가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6분 35초 남았습니다. 선택하십시오.
“나는 MS그룹에 관련된 정보를 꼭 들어야 겠는걸.”
-그럼 이것으로 거래를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승으로 가시는 길에 끝까지 배웅하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
“VIP 룸은 지하에 있겠지?
-네?
순간 가면의 사내가 자신도 모르게 반문해버렸다.
언뜻 방이 일곱 개가 붙어 있어서 같은 층에 모든 룸들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VIP룸은 지하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맞나보군.”
가장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바탕으로 어림짐작한 것이었는데 맞는 모양이었다.
천여운이 그에게 말했다.
"나도 경고하나 하지. 지금이라도 곱게 VIP실로 안내하면 사지는 멀쩡하게 남겨두마."
-하!
가면의 사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천여운을 노려보았다.
자신이 죽을 처지에 놓여 있는데 되려 협박을 하는 것이 황당하기만 했다.
-미친 놈.
가면의 사내가 더이상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듯이 어딘가를 바라보며 손짓을 했다.
그러자 이내 홀로그램이 꺼졌다.
-픽!
거래 접견실의 반대편 너머에 있는 또 다른 방.
그곳에는 여러 대의 CCTV 카메라가 연결된 모니터로 가득했다.
그 안에 여러 사람들이 있었고, 홀로그램이 연결되는 장치에 서있는 가면의 턱시도를 입은 사내가 있었다.
“꺼진 거 맞지?”
“네. 그렇습니다.”
“저 미친 놈은 대체 지하에 VIP룸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안 거지?”
VIP룸 자체가 엘리베이터로 되어 있어서 거래가 시작되는 순간에 천천히 내려간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눈치 채지 못한다.
"황당한 놈이더군요. 제 코앞이 석자인데 되려 협박을 하다니."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한 사내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물었다.
“저놈 어떻게 할까요? 시간이 지나서 자동 말소될 때까지 기다릴까요?”
그 물음에 턱시도를 입은 사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됐어. 어차피 말소가 확정되었는데, 죽을 때까지 기다릴 게 뭐있어. 다른 쿠퍼 등급 회원들의 거래를 서두르게 가스 방출해.”
“알겠습니다.”
모니터 앞의 사내가 가스 방출 버튼을 누르려했다.
독가스로 맡는 즉시 30초도 버티지 못하고 죽게 된다.
“어? 그런데 저 자 뭐하는 거죠?”
모니터로 보이는 천여운이 벽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벽은 이 방과 연결되어 있는 쪽으로 두께가 1미터가 넘는 특수합금으로 만들어진 튼튼한 방이었다.
폭탄을 터뜨려도 망가뜨릴 수 없었다.
“뭐야? 저 새끼 지금 뭘 하려는 거야?”
의아해하는 가면의 사내의 말에 모니터 앞에 있는 사내가 비웃으며 말했다.
“저 방에 산공 장치가 있어서 아무 힘도 못쓸 텐데, 헛짓거리를 하려는 모양인데 좀 지켜볼까요?”
“멍청한 놈이로군. 뉴스에 떠들썩하게 나오길래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가 싶었는데, 자신의 내공 상태조차 파악...”
-촤촤촤촥!
그 순간 뭔가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엇?”
모니터 속의 천여운이 벽을 향해 검결지를 쥐고서 네모 낳게 그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반대편인 이곳 상황실까지 들리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이게 대체...”
그때 천여운이 벽을 향해 발로 걷어찼다.
-쾅!
그와 동시에 그들이 있던 접견실 벽면의 한쪽이 튀어나오며 날아갔다.
당황한 그들이 일제히 가지고 있는 병장기를 빼들었다.
-챙! 챙! 챙!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특수합금 된 벽을 맨손으로 베어서 이렇게 만든 것부터 시작해,
“어, 어떻게 산공 장치가 가동되는 방에서 내공을...”
-슥!
가면의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여운이 손을 뻗자, 그들이 가지고 있던 병장기들이 손에서 빠져나와 이내 천여운의 앞으로 날아와 바닥에 꽂혔다.
-푸푸푸푹!
“앗!”
“내 도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천여운이 주먹을 움켜쥐는 시늉을 하자, 바닥에 꽂혀있던 도검들이 유리조각이라도 된 것처럼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차차차창!
'말도 안 되는 진기다!'
당황해하고 있는데, 천여운이 어느새 가면의 사내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의 목을 움켜쥐고서 말했다.
-꽉!
“켁켁!"
“분명 경고했다.”
-촥!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여운의 검결지가 그의 오른팔 어깨를 그었다.
"끄아아아아악!"
< 39화 블랙 아테나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