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114화 (114/234)

< 37화 역전 (3) >

한 고풍스럽고 넓은 사무실.

100인치 노베젤 벽면 TV의 중계화면으로 특별 편성이라는 글자와 함께 뉴스가 중계되었다.

중계석에 앉아 있는 중년의 남자 앵커가 말했다.

-간밤에 국무원 사법형무소에 있었던 끔찍한 사건을 저희 광주TV에서 긴급 속보로 알려드렸을 텐데요. 이번 특급 편성을 통해 현 상황을 상세히 알려드리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우현봉 기자.

화면이 절반으로 분할되면서 출입금지라고 적혀 있는 노란색, 검은색이 섞인 테이프로 막힌 사법형무소 건물이 보였다.

그 앞에 한 젊은 기자가 답변했다.

-네. 현장의 우현봉입니다.

-우현봉 기자. 그곳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네. 사건의 현장을 보십시오.

수많은 헌병들과 국무원 경찰들이 그 앞을 지키고 있었고, 아직도 건물에서 발견된 시신들이 밖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어젯밤 20시 가량부터 수색된 건물 현장에서 다음날인 오늘 정오가 다되어가는 시간까지도 시신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간밤에 참혹한 사건을 되새겨주고 있습니다.

-국무원에서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아직도 그렇습니까?

-오전 10부터 시작된 기자회견 자리는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데요. 지금 회견장으로 연결해보겠습니다.

분할되어 있던 화면이 하나로 합쳐졌다.

그리고 국무원의 기자 회견장으로 장면이 전환되었다.

파란색 국무원 마크가 새겨진 단상 앞에서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고 있는 국무원 상무회 부총리의 모습이 보였다.

기자들이 앞 다퉈 질문하기가 바빴다.

-북경TV 뉴스의 안제현 기자입니다. 부총리님. 그렇다면 이번 혈사의 범인으로 그룹 블레이드 식스의 금성룡 회장인 겁니까?

기자의 질문에 부총리가 인상을 찡그리며 답했다.

-아직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부총리가 말을 아끼는 이유는 간단했다.

블레이드 식스는 대기업 중에서도 재계 서열 5위권에 속하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방위 국방 산업부터 시작해 손을 대지 않는 분야가 없었기에 쉽게 용의자라고 단정 지어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나 시신을 부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나 사진에 찍힌 것을 보면 분명 금성룡 회장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일 텐데, 그 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들의 대다수는 이미 용의자를 금성룡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 자체의 포커스가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크흠. 여러 언론사들과 뉴스 보도국에서는 아직 정확하게 발표가 나지 않은 상황에서 속단해서 보도를 하는 것은 삼가주시길 바랍니다.

부총리는 한결 같은 태도를 일관했다.

그런 TV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누군가가 채널을 변경했다.

-픽!

화면이 전환되면서 다른 뉴스 채널에서는 긴급 속보가 올라 와 있었다.

그것은 공영 방송 중 하나인 JHBC로 많은 시청권을 가지고 있는 채널이었는데, 단독 보도라고 해서 헤드라이트로 방영 중이었다.

-저희 JHBC에서 단독으로 입수한 영상을 보십시오.

앵커의 말이 끝나자 CCTV 영상으로 보이는 화면으로 전환 되었다.

화면에서 총살대에 묶여있는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주변으로 복면을 쓴 집행관의 복장을 하고 있는 사내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앵커의 목소리가 나례이션처럼 들렸다.

-총살대에 묶여 있는 노인은 27년 전 혈사를 일으킨 범인인 해체된 블랙 스카이 컴퍼니의 총수입니다. 다시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영상 속에서 노인이 묶인 채로 복면인들에게 다그치는 모습이 보였다.

-끝까지 연기를 할 셈이구나. 허어, 운기법이 통하지 않아서 어설프게 펼치는 본교의 무공을 알아보지 못할 것 같으냐?

-칫. 썩어도 준치라고 하더니, 그래도 명색이 옛 오대고수의 일인다운 눈썰미로구려.

-이놈들. 또 예전과 같은 수작을 벌이려는 게냐? 이번에도 가짜 흔적을 만들어서 본교를 모함할 셈이더냐!

-그걸 잘 아는 양반이 우리를 자극하다니, 참으로 대범한 건지 아니면 겁을 상실한 건지 알 수 없소이다.

-겁? 하! 네놈들이 두려울 것 같으냐?

-두려워하는 것이 좋을 것이요. 마교주. 왜냐하면 그대의 효용성은 오늘부로 끝났거든.

복면인이 안주머니에서 주사기를 꺼내들었다.

-후후후, 마교주. 명색이 마도의 수장인 그대가 마지막까지 정도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에는 경의를 표하리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영상이 끊겨버렸다.

다시 화면이 중계석으로 전환되면서 앵커가 말했다.

-저희가 긴급 입수한 이 영상은 사법형무소 지하에 있던 CCTV 카메라 영상입니다. 이것은 영상 전문가들에 의해서 조작이 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끝난 것으로....

-쾅!

앵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형 모니터에 유리컵이 날아왔다.

컵은 무슨 흉기라도 되듯이 모니터에 박혀버렸다.

-파칙파칙!

모니터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그림자 속에 가려진 한 사내가 바로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서 머리를 바짝 숙이고 있는 누군가에게 살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잘 처리했다고 하지 않았나?"

이에 사내가 두려운 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변했다.

"화, 확실하게 처리했습니다. 분명 부소장에게도 지시를 내렸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일족이신 도운 진인께도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이 꼴이 났군."

그림자 속의 사내가 손을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그 순간 무릎을 꿇고 있던 자의 왼쪽 팔꿈치가 반대로 꺾여 나갔다.

-우드득!

"끄으으으윽."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신음 이상의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차. 깜빡했군. 인간의 몸은 아무리 단련해도 한없이 나약하다는 걸 말이야."

전혀 위로의 말이 아니었다.

"끄으으으...."

무릎을 꿇고 있는 자는 아무 말도 없이 신음성만 흘렸다.

"마음 같아서는 죽이고 싶지만 이 정도에서 끝낸 것을 다행으로 여겨라."

"주....주인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번 일로 목숨을 잃을까봐 두려웠던 그였다.

"당장 수습해라."

"알겠습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얼굴이 드러났는데, 놀랍게도 그는 오신 그룹의 회장인 문일향이었다.

VR 회의를 했을 때 보였던 그 위세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의 눈빛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문일향이 사무실에서 나가자 책상에 걸터앉아 있던 사내가 누군가를 불렀다.

"카일."

-스르르륵!

그림자의 한편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얼굴이 흉터로 가득한 자로 스산한 분위기를 지닌 자였다.

"네. 주인님."

"데오를 찾아와라. 그리고 저놈을 죽여라."

사내가 가리킨 곳은 컵이 박혀서 스파크가 튀고 있는 TV 화면이었다.

TV 화면 속에는 천여운의 얼굴이 나오며 이번 사법형무소 사태를 일으킨 범인을 막은 영웅이라며 띄워주고 있었다.

"모든 것은 주인님의 뜻대로."

-스르르륵!

카일이라 불린 사내의 형체가 다시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  *  *

청두시 방벽 내의 깊은 산골.

인적이 드문 그곳에 숨겨진 한 산장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이층으로 된 건물이었지만 산장의 내부로 들어가면, 지하 10층까지 이루어진 대규모의 시설이 구축되어 있었다.

산장의 지하 8층은 병원처럼 여러 의료 장비를 갖추고 있는 공간이다.

그곳의 한 넓은 병실에 전신에 수많은 링거를 꽂고서 휠체어를 타고 있는 검푸른 머리카락에 피부 전체가 쭈글쭈글한 주름으로 가득한 자가 있었다.

'어찌!"

-쾅!

그 자의 옆에서 분노를 금치 못하는 이가 있었으니, 블레이드 식스의 회장인 금성룡이었다.

그는 벽면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고서 어처구니가 없어 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뉴스에서는 그가 사법형무소의 집행관들을 전부 살해하고 무림부 장관 및 무림협회 간부들을 죽인 범인으로 몰고 있었다.

"하필 이럴 때!"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가 청두시로 출장 온 것은 회사 내에서도 기밀사항이었다.

타이밍이 절묘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러다 그동안 본문에서 쌓아온 모든 이미지가 무너질 지도 모르겠구나.'

극도육무문이 양지로 올라오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는가.

그 노고가 이번 사건으로 인해 무너지게 생겼다.

그때 그의 옆에서 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멍한 눈빛으로 TV를 바라보고 있던 주름으로 가득한 노인이 갑자기 웃어댔다.

"껄껄걸"

쉰 목소리로 웃어대는 노인의 행동에 금성룡이 당혹스러워했다.

"어르신?"

극도육무문에 있어서 위기였는데, 노인이 이렇게까지 웃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웃어대던 노인의 웃음이 뚝 멈췄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엄청난 살기가 노인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고오오오오!

다 죽어가는 자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엄청난 살기에 주변에 있는 의료도구들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무형의 기운인 살기가 유형화될 만큼 노인의 힘은 놀라웠다.

"어르신. 그만! 그만 하십시오."

위압적인 살기를 이기기 힘들었는지 금성룡이 다급히 그를 만류했다.

방안을 한바탕 휩쓴 살기가 어느새 멎었다.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두 눈동자마저 검푸른 빛을 띠고 있는 노인이 광채어린 눈으로 TV화면 속에 나오는 천여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랜 세월을....오랜 세월을 버틴 보람이 있구나."

"네?"

의아해하는 금성룡을 바라보며 노인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분의 원수를 갚을 기회가 생겼도다!"

*  *  *

제남시의 용천 그룹의 대회의실.

그곳은 기쁨으로 눈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중진들은 누구하나 할 것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그들의 앞에 서있는 한 노인 때문이었다.

노인은 바로 와해된 블랙 스카이 컴퍼니의 회장 천우진이었다.

무공을 잃고 모진 고생으로 세월의 풍파를 맞아 예전의 당당한 기세는 사라졌지만, 그가 천마신교를 이끌어가는 교주였음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본좌를 잊지 않고 있어줘서 진심으로 고맙네."

무릎을 꿇고 있는 중진들에게 천우진이 감사를 표했다.

총살대에 설 때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였던 그였다.

이런 순간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빨리 교주님을 찾지 못한 저희를 벌해주십시오."

중진들이 바닥에 엎드려 죄를 청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천우진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미 모든 것을 포기했던 그는 다시 살아서 종주들의 곁으로 온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아버님! 저 역시 벌해주십시오. 제가 빨리 본교를 수습하지 못했기에 아버님을 고생시켰습니다."

그의 아들인 천유장 역시도 죄를 청했다.

천여운을 통해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우친 천유장은 더욱 빨리 본교를 통합하지 못하고, 교주이자 아버지인 천우진을 찾지 못한 것이 죄스러웠다.

솔직히 그에게 한소리 들을 것을 각오했다.

하지만 천우진은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아니다. 이 애비가 부족하여 너와 종주들을 고생시켰는데, 어찌 이를 탓할 수 있겠느냐."

천우진 역시도 27년 동안 한결같이 이 일을 생각했다.

그가 조금만 더 영악하고 강했더라면 이런 사태가 없었을 거라는 후회뿐이었다.

'아아....아버님.'

예전이라면 크게 호통 쳤을 모습이 선했는데, 약해진 천우진의 모습에 천유장은 내심 가슴이 저려왔다.

다시 그의 강했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잠시 먹먹해져 있던 천유장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돌아오셨으니, 다시 아버님께서 본교를 이끌어주십시오!"

천유장의 그 말에 중진들도 엎드려서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본교를 이끌어주십시오!"

이에 천우진이 고개를 저으며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아니다. 노장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하는 법. 이제 나의 시대는 갔다. 아니 시대라고 칭하기도 무색하구나. 나는 실패의 본 보기일뿐이다. 이젠 네가 본교를 이끌어야 한다."

"아버님!"

용천 그룹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 고속 기차에서 부속 실장인 비막헌을 통해 그 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들었던 천우진이었다.

어리석은 아우 천우경의 반란부터 시작해, 천마를 세뇌하여 이용하려 들었던 첫째 아들 천유성까지.

이 모든 것을 듣고 난 그는 이들을 책망하기보다는 자신의 부덕함을 느꼈다.

교주로서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자신이 그 자리를 맡는 것은 더 이상 부질없다고 여겼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누구도 아버님께서 다시 본교를 이끄는 것에 이견이 없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교주님!"

천유장의 그 말에 중진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했다.

"허어, 이미 내 마음은 정해졌다. 나는 이미 27년 전에 단전이 폐해져서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 그런 내가 어찌 본교를 이끈단 말이더냐?"

그 말과 함께 천우진이 상석에 앉아서 이들의 해후를 지켜 보고 있던 천여운을 향해 무릎을 꿇고서 말했다.

"선조께서 허락하신다면 소교주인 제 아들에게 교주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어차피 자신은 교주로서의 자격이 없었다.

무공조차 펼치지 못하는 뒷방 늙은이가 어찌 그 자리를 맡겠는가.

이를 천마인 천여운이 허락할 거라 여겼다.

그러나,

"허락할 수 없다."

단호하게 거절했다.

"어, 어찌?"

당황해하는 그에게 천여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탐탁지 않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본교를 이 꼴로 만든 죗값을 치르지도 않고 그저 쉴 생각뿐이구나."

"그, 그게 아니옵니다. 본교를 위기에 처하게 만든 소손에게는 자격도 없을 뿐더러, 더 이상 본교를 이끌어갈 힘이..."

그런 천우진의 말을 끊고서 천여운이 말했다.

"고작 그걸 핑계 삼고 싶다면 네 녀석의 무공을 회복시켜주지."

"네? 그, 그게 무슨?"

놀라하는 천우진에게 다시 한 번 천여운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무공을 회복시켜주겠다고 했다."

< 37화 역전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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