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역전 (2) >
천여운의 입에서 나온 마족이란 말에 도운 진인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케나가 알아본 것은 같은 마족이기에 그럴 수도 있었지만 인간이 자신의 정체를 아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어떻게 인간이 내 정체를?'
그때 사케나가 다가와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헷. 역시 주인님은 최고에요."
'주인님?'
의문스러워하던 도운 진인의 시선이 사케나에게로 향했다.
그들 일족이 누군가에게 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확실하게 패배했음을 의미했다.
"네년이구나."
도운 진인이 사케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 모습에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목을 세게 움켜쥐고 있는데 말을 하는데 불편하지 않나보군.'
도운 진인의 목은 보통 인간과는 달랐다.
단련을 한 무인 역시도 근육으로 목을 보호하지만,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단단한 근육이었다.
샤케나도 그렇고 마족들은 선천적 전투형 체질이라 할 만 했다.
"천하의 심장 사냥꾼 샤케나가 고작 인간 따위를 주인으로 모시다니? 웃기는..."
"시끄럽군."
-쾅!
천여운이 그를 바닥에 내리찍어버렸다.
바닥에 내려쳐진 것만으로는 크게 물리적 타격을 받지 않았는지, 도운 진인이 오히려 분노한 얼굴로 천여운을 노려보았다.
"감히 인간 따위가!"
-팍!
도운 진인이 양손으로 천여운의 손목을 잡았다.
"비틀어주마!"
도운 진인이 마족 특유의 엄청난 괴력으로 천여운의 손목을 꺾고서 움켜잡고 있는 손을 놓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놈?'
그가 모든 힘을 끌어내는데도 천여운의 손목이 꺾이지 않았다.
'내공 때문인가?'
도운 진인은 곧바로 그 문제를 파악했다.
천여운이 내공으로 손목을 보호하고 있다고 판단한 그는 방법을 바꾸었다.
"인간. 네놈만 무공을 할 줄 아는 게 아니다."
도운 진인이 마력을 손에 담아 천여운의 복부로 발경(發勁)을 먹였다.
-파앙! 쾅!
"으헉!"
그런데 도리어 발경이 역으로 튕겨나가면서 그의 몸이 바닥을 파고들었다.
도운 진인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뭐야?'
마족의 전투 센스는 인간을 훨씬 뛰어 넘는다.
그는 인간의 무공을 그들 못지않게 익혔다고 자부했다.
'발경이 어째서 내게?'
그 원리조차 이해하지 못할 만큼 천여운이 기(氣)를 다루는 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도운 진인은 천여운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밖에 없었다.
"전력 파악이 끝났나보군."
도운 진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전혀 개의치 않는지 천여운이 말을 이어갔다.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다는 사실 정도는 알겠지?"
"인간 따위가 어떻게 이런 힘을...."
"그걸 알았다면 이제 네놈이 어째서 무림협회의 간부들 중의 한 사람으로 있었는지 이야기해라."
천여운의 물음에 도운 진인이 입모양이 비틀렸다.
빈정 상한 얼굴로 천여운을 노려보던 그가 말했다.
"확실히 네놈은 인간을 넘어서는 강함을 지녔다.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네놈을 상대할 수 없을 듯 하구나."
"능력?"
-물컹!
그 순간 도운 진인의 단단했던 목 근육이 물렁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도운 진인의 몸이 액체를 담은 풍선처럼 흐느적거리며 천여운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이건 또 뭐야?'
천여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이상한 능력이었다.
그때 사케나가 소리쳤다.
"주인님. 녀석의 능력은 자신의 몸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거에요."
물렁해져서 빠져나온 도운 진인이 다시 인간의 형태로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도인 그 자체였던 얼굴이 어느새 샤케나처럼 이국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긴 갈색 머리카락에 오똑한 콧날을 가진 미남이었다.
"그게 네 녀석의 본 모습이로군."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려 했는데, 네놈이 그것을 풀게 했으니 그 대가를 지르게 해주..."
-스륵!
"헛?"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천여운이 그의 앞으로 도달했다.
워낙 빨라서 코앞에서 그 움직임을 놓치고만 도운 진인으로 변했던 마족이었다.
천여운이 그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흥!"
당황했던 마족이 몸의 경질을 바꾸었다.
전신이 회색 빛깔로 물든 그의 몸이 마치 단단한 돌처럼 변했다.
-퍽! 타타타탁!
마족의 신형이 뒤로 네 보 가량 밀려났지만 그는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는지, 득의양양해진 얼굴로 말했다.
"크큭, 보았나? 내가 마음먹으면 내공, 아니 강기를 쓴다고 해도 나의 이 육신을 뚫을 수 없다."
"그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여운이 번개같은 몸놀림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
-팍!
"소용없다!"
마족이 다급히 몸을 액체처럼 바꾸려 들었다.
그때 천여운의 손에서 북풍이 몰아치는 듯이 엄청난 한기가 일어났다.
-쩌저저저적!
"이, 이런!"
체내로 파고든 한기로 인해 그의 체내가 액체처럼 변하던 것이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이런 방법을 쓸 줄 예상하지 못한 마족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 상태에서 천여운이 다시 한 번 놈을 넘어뜨린 후에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단단하다고 했지?"
"뭣?"
천여운의 움켜진 주먹에 방대한 기운이 응집했다.
공간이 일렁일 만큼 역량이 일원화되는 것에 마족이 다급히 소리쳤다.
"자, 잠깐!"
"늦었어."
-퍼억!
마족의 복부에 천여운의 역량이 일원화된 주먹이 꽂혔다.
"끄헉!"
그와 동시에 엄청난 충격으로 바닥이 무너져 내리며 그들이 지하로 떨어졌다.
-쾅!
지하 1층까지 다시 내려온 셈이었다.
온몸을 파고드는 고통에 마족이 두 눈을 부릅뜨고서 어쩔줄 몰라 하는데, 천여운이 다시 한 번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족이 당황해서 복부로 손을 뻗어 막으려 했는데,
-쾅!
"끄웩!"
천여운의 주먹이 이번엔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한기로 도중에 멈춰졌지만 체내를 액체화하던 성질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그의 얼굴이 고무처럼 안으로 파고들었다.
"웁웁."
'뭐라고 하는 거냐."
천여운은 멈추지 않고 역량을 일원화한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내리쳤다.
-쾅!
지하 1층 바닥이 무너져 내리며 마족의 몸이 지하 2층으로 떨어졌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마족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끄으으으으으."
천여운이 다시 주먹을 움켜쥐고서 들어올렸다.
그것을 보고 있던 마족이 어찌나 놀랐는지 경기를 일으키며 소리쳤다.
"그, 그만!"
"아직 멀었다."
"항복! 항복할 테니 제발 멈춰!"
아무리 마족이라고 한들 공간마저 일그러뜨릴 만큼 강대한 위력을 지닌 역량이 일원화된 주먹을 연거푸 세 번이나 맞았으니 멀쩡할 리가 없었다.
혈액은 없었지만 놈의 몸에서 파란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이, 이놈은 인간이 아니야.'
마족은 질린다는 눈으로 천여운을 쳐다보았다.
그가 알고 있는 인간들은 참으로 약점이 많은 하찮은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이자는 도저히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을 만큼 괴물이었다.
"항복이라...."
마족에게 항복은 패배를 의미한다.
승자의 결정에 모든 것을 따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기에 싸울 의사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천여운이 여전히 기운을 거두지 않고서 말했다.
'내게 굴복하겠다는 거겠지?"
".......그렇다."
마족이 탐탁지 않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천여운이 피식하고 웃더니 주먹을 위로 들어올렸다.
"그다지 굴복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군."
-고오오오!
'말도.....안 돼!'
이번에는 방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기운이 응집했다.
마족의 두 눈이 터질 듯이 커졌다.
'!!!'
이 정도라면 육신이 고통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파괴될지도 몰랐다.
마족이 다급히 소리쳤다.
"일족의 율법에 따라 백작 데오가 패배를 인정하겠습니다! 모든 것은 승자의 처분에 따르겠습니다. 목숨을 거두시든 노예로 삼으시든 뜻대로 하소서."
"흥."
천여운이 콧방귀를 뀌었다.
인간 사회에 오래 녹아들어서 그런지 태세 전환이 빨랐다.
그런 데오를 미덥지 않는 눈빛으로 천여운이 내려다보았다.
죽일지 말지를 고민하는 중이었다.
데오가 불안한 눈빛으로 천여운의 결정을 기다렸다.
'음?'
그때 천여운이 위를 향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건물 바깥에서 기감으로 느껴지는 인기척들이 어수선하게 움직이며, 입구 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나노. 소리를 키워서 들려줘'
[알겠습니다.]
나노가 위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들을 확성시켰다.
밖에서 기자들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며 안으로 들어가야겠다고 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데오를 쓰러뜨리면서 건물에 충격이 가해진 탓이었다.
'귀찮게 되었군.'
최대한 힘을 줄였지만 마족을 제압하려다 보니, 진기로 완전히 소음을 차단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꾸구구국!
짜증스러운 눈빛으로 데오를 쳐다보고 있는데, 고무 인형처럼 콧대가 안쪽까지 파고들었던 그의 얼굴이 원상태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호오."
이를 보던 천여운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네놈. 노예로 받아주마."
"아!"
내심 그가 자신을 죽일까 싶어서 두려워하고 있던 데오의 얼굴이 환해졌다.
마족이라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을 리가 만무했다.
'살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기회가 있을 거라 여겼다.
그때 천여운이 데오를 향해 검결지를 가볍게 뻗었다.
'응?'
바로 그 순간 엄청난 고통이 그의 가슴 정중앙에 있는 심장부라 할 수 있는 핵(核)을 관통했다.
"끄헉!"
날카로운 칼로 지지는 듯한 고통에 데오가 온몸을 비틀었다.
이런 고통은 난생 처음 겪어 보았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네놈의 심장부에 심검을 박았다. 지금부터 내가 지시하는 일을 잘 처리한다면 그것을 제거해주도록 하지."
"시, 심검?"
심검(心劍).
그것은 마음의 검이다.
오직 자연경에 이른 고수만이 펼칠 수 있는 의지의 검이었다.
무공을 익힌 데오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이게 실제 하는 기술이라고?'
그저 무림인이라는 인간들이 상상으로 생각하는 경지로 여겼던 그였다.
데오는 진심으로 천여운이 무서워졌다.
창백한 얼굴로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네놈 정도라면 그 고통을 버틸 수 있겠지?"
'!?'
그 말에 데오가 어이없어 했다.
지금도 핵이 파괴될 것 같아서 두려워 죽겠는데, 이를 버티라고 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이, 이놈은 정말 악마야.'
마족에게 악마라는 평가를 받은 천여운이었다.
* * *
-웅성웅성!
"입구를 개방하시오!"
"방금 전에 건물 안에서 들린 그 커다란 소리는 무엇이오?"
"헌병들도 들었지 않소!"
바리게이트를 넘어갈 기세로 소란을 피우는 기자들의 행동에 헌병들이 난감함을 금치 못했다.
외신 기자들만 없었어도 강제로 해산시키고 싶을 정도였다.
특종에 눈이 먼 기자들만큼 겁이 없는 자들도 없었다.
'미치겠군.'
헌병들의 소대장인 고사웅 대위가 사법형무소 건물의 힐끔 쳐다보았다.
자신조차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했다.
국방부 부장이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당장 헌병들에게 수색을 명하고 싶은 심경이었다.
"우리 모두 들어가 봅시다!"
"안된다고 했습니다."
양측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던 차였다.
-쾅!
입구 쪽에서 들리는 커다란 굉음 소리에 헌병이나 기자들 할 것 없이 모두가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콰콰콰쾅!
안에서 뭔가 전쟁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굉음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갑자기 무언가가 입구가 아닌 건물 벽으로 부수고 튀어나왔다.
사람의 인영이었다.
기자들이 빛의 속도로 카메라를 들고서 이를 찍었다.
인영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가리며 어딘가를 향해 다급히 경공을 펼쳤다.
-팟!
어찌나 빠른지 어느새 종적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기자들이 사진을 찍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다.
한 기자가 사진기의 디지털 화면으로 찍은 화면을 재생시켜 그 자가 누군지 살폈다.
"엇? 이, 이 자는...."
놀랍게도 사진에 찍힌 자는 대기업 블레이드 식스의 회장인 금성룡이었다.
창백한 얼굴에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지만 틀림없었다.
'그, 금성룡 회장!"
-웅성웅성!
현 중화 정부 영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기업의 총수가 찍힌 사진으로 인해 기자들이 난리법석이 되었다.
< 37화 역전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