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4) >
"뭐? 마교인?"
무림부 부장 오태청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잘못 알아들은 게 아니라면 마교인이라면 사법형무소에서 형을 집행하는 사형수 천우진의 부하들이 아닌가.
오태청보다도 황당한 것은 무당파의 장문인 장평각을 비롯한 무림협회의 간부들이었다.
'저 자가 어떻게?'
무림 협회는 모든 인력을 집중하여 제남시를 비롯한 마교인들의 동향을 살폈다.
그들이 수도인 서안시로 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무 움직임도 없다고 하지 않았나?'
분명 제남시로 파견한 자가 용천 그룹의 중진들 중 누구도 시를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곳에 무슨 수로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제약회사 D.A.N.G의 부회장 당문수가 전음을 보내왔다.
하지만 그렇게 물어본다고 장평각이라고 영문을 알 리가 만무했다.
[원시천존. 원시천존. 빈도도 모르겠소이다.]
[허어, 배포가 큰 건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 알 수 없구려.]
당문수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제 들어갈 사법형무소 안에는 시신들로 넘쳐날 것이다.
저 자는 지금 제 발로 사지에 걸어들어온 셈이었다.
"하!"
그때 오태청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지 않아도 국방부와 협약을 맺고서 짝짝꿍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용천 그룹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그였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슥!
당장에 다그치려고 나서는 그를 당문수가 붙잡고서 전음으로 만류했다.
[부장님. 고정하십시오.]
무공을 익히진 않았지만 전음을 알고 있는 오태청이다.
비밀리에 의도를 전하는 기술이라는 것을 알기에 오태청이 주변을 살피고서 입을 다물었다.
'칫.'
주변에 눈이 많기는 했다.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 내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오태청이 대체 왜 그러냐는 듯한 눈빛으로 당문수와 무림협회 간부들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잘 된 일인 걸지도 모릅니다.]
'잘 돼?'
[저 자는 현재 마교의 대표나 다름없습니다.]
무림협회의 간부들은 소림사의 방장인 노각 대사에게 천마라는 존재가 마교에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를 상세히 들은 그였다.
당문수의 전음에 오태청의 눈빛이 묘해졌다.
'대표라고?'
그저 마교인 중의 하나로만 여겼던 참이었다.
그런데 대표라면 말이 달라진다.
[저 자가 무림협회의 본단을 급습한 자입니다. 사법형무소에 벌어진 사건을 빌미로 저자를 그 자리에서 구속시킨 후에 언론에 보도한다면 원래의 계획보다 원활히 진행될 겁니다.]
당문수의 전음에 오태청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이 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걸로 확실하게 국방부를 압박할 수 있겠구나.'
이성을 되찾은 오태청이 여유로운 목소리로 국방부 부장인 안우홍에게 말했다.
"국방부 역시도 사법부에 경호 위임을 받았다니, 당연한 말씀이겠구려. 한데 옆에 정장을 입으신 젊은 청년 분과 같이 대동하려는 거요?"
오태청이 짐짓 모르는 척 말을 했다.
실상 바로 앞에서 화를 내려던 것을 만류하는 모습마저 보였는데, 참으로 능청스러운 자가 아닐 수 없었다.
이를 안우홍이 능숙하게 받아쳤다.
"허허, 이분은 국방부와 협약을 맺은 용천 그룹의 부회장이시오. 귀 부서의 무림협회처럼 무공을 쓰는 단체의 수장이기에 혹여 문제가 생기면 자문을 구하려고 동행한 것이오."
"아아, 그러시오? 여기 더욱 뛰어난 자문들이 있는데, 뭣 하러 그런 수고로움을 자초하시는지 모르겠구려."
오태청이 빈정대듯이 말했다.
'뛰어난 자문?'
안우홍이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는 천여운의 괴물 같은 무위를 직접 눈으로 목도했었다.
그때 이후로 전폭적으로 신뢰를 하고 있었다.
"글쎄올시다. 이쪽 자문이 더 믿음직스러워서 말이오. 허허허."
이에 오태청이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치적으로 부딪치는 부분이 많았기에 두 사람의 신경전은 늘 이런 식이었다.
'곧 그 여유로움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자꾸나.'
저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입장이 바뀌게 되리라고 확신했다.
"들어가십시다."
오태청이 획하고 먼저 사법형무소의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비서진들과 무림협회의 간부들이 따랐다.
장평각은 가는 내내 천여운에게서 시선을 쉽게 뗄 수가 없었다.
'위험한 자로다.'
그는 천여운의 무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노각 대사에게 천마신교의 천마는 교주를 능가하는 무위를 지닌 괴물이라고 들었지만 쉽게 믿지 못했었다.
하지만 막상 홀로그램이 아닌 직접 대면하게 되자 명불허전이었다.
도저히 그 무위를 가늠할 수 없었다.
'......하나 이곳은 외신 기자들부터 모든 언론이 집중되어 있다. 아무리 사악한 마교의 종자라고 할지라도 쉬이 반항하진 못할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는 못할 거라 여겼다.
그리 된다면 마교의 부활은 절대적으로 날아가는 일이 될 테니 말이다.
양지로 드러난 무림은 여론과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렇게 무림부 쪽에서 먼저 사법형무소 건물 입구의 회전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치칙! 치칙!
밖에서는 틴팅이 되어 있어서 잘 보이지 않던 내부는 전기 배선에 문제라도 생긴 것인지 복도의 전등이 꺼졌다 켜졌다 하고 있었다.
'제대로 했나보구나.'
무림협회 간부들이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기감을 열어봐도 주변에 어떠한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위이이잉!
마침 회전문으로 국방부 측도 들어왔다.
무림협회 간부들이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뭔가 문제가 생겼나 보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소이다."
호들갑을 떠는 그들의 대화에 무림부 부장인 오태청이 한몫 거들었다.
"어서 빨리 사형집행장으로 가보세나."
"부장님. 집행장은 지하 1층에 있습니다."
비서진들이 앞장서서 그를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안내했다.
앞장서서 계단으로 내려가는 오태청과 무림협회 간부들의 표정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금만 지나면 과연 국방부 부장 안우홍과 천마 천여운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가 너무도 궁금했다.
그렇게 지하로 내려가자마자 역한 피 냄새가 흘러나왔다. 비상구의 문을 열자 곧바로 시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욱!"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은 비서진들이 그 광경에 토를 올려 대고 눈살을 찌푸렸다.
전후 사정을 알고 있어도 끔찍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안에 누군가 침입한 것 같습니다."
오태청의 연기에 장단을 맞추듯이 무림협회 간부들이 나서서 말했다.
장평각이 가장 먼저 시신들로 향했다.
이제 첫 스타트를 끊어줄 순간이 온 것이다.
-슥!
가장 앞에 엎어져 있는 시신은 날카로운 상흔들로 가득했다.
그것을 살펴보기 위해 상처 부위의 눌러 붙은 핏자국을 수건으로 닦아내는데,
'어?'
장평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당연히 시신에는 마교의 무공 흔적이 있어야 했다.
'이게 대체....'
그런데 이 흔적은 마교의 무공과는 달랐다.
약속된 신호와 달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신을 붙들고 있는 모습에 당문수가 물었다.
'어찌 된 것이오?"
빨리 마교의 무공의 흔적이 있다고 말하라는 재촉이나 다름 없었다.
그때 장평각이 고개를 돌려서 전음을 보냈다.
[.....문제가 생겼소.]
전음까지 보내자 이상하다고 판단한 당문수가 시신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시신들을 살폈는데,
'뭐, 뭐지?'
당문수 역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화경의 고수인 그들은 인체에 관해서는 의사못지 않은 해박함을 지녔다.
웬만한 상흔만 보고서도 상대의 무공을 추측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시신에 남겨져 있는 것은 마교의 무공이 아니었다.
'이건.....도법인데.'
그냥 평범한 도법이 아니었다.
당문수가 근방에 있는 다른 시신들도 살펴보았다.
시신을 두 구, 세 구 째 살펴보는데, 그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의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이 상흔은 특별한 도법에 의해서 났다.
그 도법은 바로,
"극도신무로군."
'누가 그걸!'
누군가 당당하게 밝혀버리는 바람에 장평각과 당문수가 화들짝 놀라서 그 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바로 천여운이었다.
'이런 젠장!'
당문수가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천여운이 한 말은 정답이었다.
시신에 나있는 도흔은 블레이드 식스, 즉 극도육무문의 절기인 극도신무에 의해 생겨난 상처였다.
'이를 어쩌지?'
시신들은 하나 같이 극도신무의 흔적들 뿐이었다.
마교의 무공이라고 우기기에는 너무도 그 흔적이 두드러졌다.
그때 무림부장 오태청이 놀란 듯이 소리쳤다.
"아니! 마교의 무공이 흔적으로 남아있다는 말인가?"
'!?'
뜬금없는 그의 외침에 장평각과 당문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돌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무공을 익히지 않은 오태청은 극도신무가 어디의 무공인지 알 겨를이 없었다.
당연히 그것 또한 마교의 무공이겠거니와 생각한 것이었다.
"부, 부장..."
장평각이 다급히 이것을 정정하려 했다.
그런데 오태청이 그보다 빨리 천여운을 노려보면서 다그쳤다.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어째서 집행관들의 시신에 마교의 무공의 흔적이 있다는 것이오?"
오태청의 얼굴은 득의양양했다.
그는 안우홍과 천여운이 당혹스러워하길 바랐다.
그러나 반응은 기대와는 완전히 달랐다.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게 본교가 벌인 짓이라고 했겠군."
천여운이 실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이 자가 지금 무슨 소리를..."
사태를 모르는 오태청이 성을 내려고 하는데, 장평각이 끼어들었다.
"부장님. 이건 마교의 무공이 아니..."
-촥!
"헉!"
그 순간 장평각의 목으로 날카로운 예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오른쪽 목 피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조금만 옆으로 향했다면 목이 그대로 관통 당했을 지도 모른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당황한 장평각이 천여운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에 천여운이 싸늘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까부터 계속 마교라고 지껄이는데, 언제부터 천마신교가 네놈들 따위에게 마교라 불렸는지 모르겠군."
마교는 정파인들이 천마신교를 비하하는 말이었다.
정식명칭이 있었지만 그들은 절대로 그 명칭을 그대로 부르지 않았다.
"이보시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나치지 않소!"
제약회사 D.A.N.G의 부회장인 당문수가 시신 앞에서 일어나 항의했다.
오태청의 실수를 무마하기 위해 화제를 돌리기 위함이었다.
이에 천여운이 이죽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럼 네놈들을 부를 때 무림협잡회라고 해도 되겠군."
재치 있는 답변에 당문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여기서 더 따지고 들어봐야 자신들이 천마신교를 비하한 것을 인정하는 꼴 밖에 되지 않았다.
목에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며 장평각이 마지못해 사과했다.
"귀교를 비하할 목적이 아니었소. 사과드리리다."
"그딴 사과보다 사실이나 제대로 밝혀라."
천여운의 그 말에 장평각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여기서 시신들에 있는 흔적이 모두 블레이드 식스의 무공인 극도신무라고 밝혀버린다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되면 블레이드 식스가 의심을 받지 않는가.'
그렇다고 천여운이나 국방부 부장이 보는 앞에서 거짓을 말 할 수는 없었다.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부장님. 이건 마, 아니 천마신교의 무공이 아닙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오태청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눈빛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그를 추궁하는 듯 했다.
'대체 어찌 답하려고 그런 것이오?'
당문수 역시도 장평각의 말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괜히 말을 잘못하게 된다면 오히려 블레이드 식스가 이 참사를 일으킨 범인이 되어버리고 만다.
'큭! 국방부 부장과 이자만 없었어도.'
급하게라도 시신들의 상흔을 바꿔보려 했을 것이다.
당연히 계획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을 거라고 판단하고서 이들과 동행해서 들어온 것이 오히려 외통수가 되어버렸다.
장평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다른 무공인 듯 한데, 공식적으로 협회의 전문가들을 더 대동해서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잘했소이다.'
당문수도 이에 동의하는지 속으로 그를 칭찬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명색이 무인이라는 것들이 아주 정치인들이 다 되셨군."
"뭐요?"
그 순간 천여운의 검결지가 장평각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촥!
그의 하얀 도복 소매가 붉게 젖어들며, 잘려나간 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끄아아아악!"
장평각이 자신의 어깨를 붙들고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에 무림협회 간부들이 일제히 자신들의 병장기를 뽑았다.
-챙! 챙!
"이게 무슨 짓이오!"
당문수가 천여운을 향해 소리쳤다.
설마 이 자리에서 이런 짓을 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런 그들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극도신무의 궤로는 그 문파의 정통 후예가 아니면 익히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가 아는 사실일 텐데, 조사를 해봐야 결과를 알 것 같다? 네놈들이 익힌 무공은 그저 호신술에 불과한 것이냐?"
극도신무는 육신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야만 제대로 익힐 수 있다.
도법의 식이 무공을 익힌 무림인들조차도 그 관절이나 근육이 버틸 수 없는 무공이기에 따라할 수 있는 그런 류가 아니었다.
그런 천여운의 날카로운 지적에 당문수가 다급히 해명을 하듯이 말했다.
"그, 그걸 우리라고 모르겠소. 그저 블레이드 식스에서 이런 짓을 벌일 리가 없기에 혹여 그들을 모함하는 자가 없도록 공정함을 기하려는 것이오."
"공정함?"
"그렇소.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되도 안 되는 개소리를 잘도 늘어뜨리는군."
"뭐, 뭐요?"
당혹스러워하는 그에게 천여운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교의 무공으로 죽어 있어야 할 자들이 극도신무로 죽어 있는 것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하는게 아니고?"
'!!!'
정곡을 찌르는 말에 당문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정을 최대한 죽여야 했지만 이를 숨기기가 힘들었다.
-고오오오!
그것은 천여운에게서 뿜어져나오는 살기 때문이었다.
사방을 뒤덮는 그의 살기로 인해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당문수가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대, 대체 어쩌자고 이렇게 살기를 드러내는 것이오?"
"이러려고."
그 순간 천여운의 수도가 독특한 궤로를 그리며, 무림부 부 장인 오태청을 여러 갈래로 스지고 지나갔다.
-촤촤촤촤촥!
'헉!'
너무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오태청이 두눈을 부릅뜨고서 당황해하고 있는데, 그의 몸이 순식간에 분해되어 고깃조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투투투투툭!
'이게 대체?'
당문수의 두 눈이 터질 듯이 커졌다.
천여운이 방금 펼친 그 도초는 놀랍게도 극도신무의 초식이었다.
< 36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