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3) >
'천장?'
갑작스러운 천여운의 등장에 놀란 천우진이 지하 총살장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환기구 팬들 몇 개가 돌아가는 곳을 제외하고는 틈조차 없는 천장에서 대체 무슨 수로 내려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전음이 들려왔을 때부터 의아해했던 그였다.
비록 단전이 파해져서 기감을 느낄 수 없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등장이었다.
'뭐지? 이놈은...'
'어디서 나타난 거야?'
복면인들 역시도 당혹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바닥에 깔려죽은 리더는 초절정의 고수였는데, 너무도 어처구니없이 죽고 말았다.
'고수다!'
그들이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천여운을 둘러쌌다.
복면인 중 한 사람이 이죽거리는 목소리로 천여운에게 말했다.
"역시 그러면 그렇지. 네놈들의 교주를 구하러 왔나 보구나."
그런 그의 물음에 천여운이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아니."
"뭐?"
-슥!
천여운이 손을 들어 올리는 시늉을 하자, 그의 손바닥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던 주사기가 빨려 들어왔다.
"이게 뭐지?"
당연히 곱게 답변을 해줄 리가 만무했다.
복면인 중 한 사람이 두 주먹에서 권기(拳氣)를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그걸 말해줄 것 같..."
-슉! 푹!
-컥!"
하지만 천여운의 가벼운 탄지신공(彈指神功)으로 날아간 주사기 바늘이 그의 미간에 꽂혀버리고 말았다.
당황한 복면인이 미간에 박힌 주사기 바늘을 뽑으려고 했지만.
-꾸우욱!
"어...어어 엇?"
주사기의 피스톤이 저절로 눌려지며 안에 담겨 있던 액상이 체내로 들어갔다.
그 순간 복면인의 피부가 붉게 물들더니, 이내 핏줄이 불룩 불룩 튀어나와서는 머리부터 녹아내려버렸다.
-푸슈슈슉!
"이런 용도였군."
답변을 해주지 않는다면 직접 알아보면 될 일이었다.
'이런!'
또 다른 동료가 너무 쉽게 당해버리자, 복면인들은 일이 제대로 꼬였음을 느꼈다.
물론 여러 대응책이 존재했다.
'CCTV를 가동시켜야 해'
천마신교에서 교주 탈환대를 보낼 경우를 위한 플랜 B다.
한 복면인의 손짓에 다른 복면인들이 동시에 천여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파파팟!
그 사이에 복면인이 귓가의 이어폰 무전기를 터치하며 말했다.
"여기는 총살장. 이곳의 CCTV 카메라만 다시 가동시켜라."
상황 통제실을 비롯한 사법형무소 전체에 그들의 동료들이 깔려 있었다.
무전기로 지시 한 번만 보내면 자신들이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싫은데.
그런데 이어폰 무전기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처음 듣는 목소리에 복면인이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너.....누구야?"
-인간. 그건 네가 알 거 없고.
-파칙!
"큭!"
상대편 쪽에서 이어폰 무전기를 부수면서 생겨난 고주파에 복면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보다도 상황 통제실이 정체 모를 자에게 점령되었다는 게 문제였다.
복면인이 이어폰 무전기를 세 번 터치하여 전체 채널로 돌려서 이 사실을 다른 동료들에게 알리려 했다.
"지금 당..."
-꽉!
컥!"
그때 누군가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
그 누군가는 바로 천여운이었다.
'다른 녀석들은 대체 뭐하....아닛?'
복면인의 동공이 흔들렸다.
언제 당했는지 그 짧은 새에 복면인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대체 언제?'
당황해하는데 천여운이 물었다.
"이걸로 연락이라도 하려는 것이냐?"
천여운이 그의 귀에 차고 있는 이어폰 무전기를 벗기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모습에 복면인이 속으로 비웃었다.
'멍청이! 그건 사용자가 해지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터진다.'
그런데 무전기 이어폰은 터지지 않았다.
'엇?'
황당했다.
갑자기 고장이 날 리가 없는데 말이다.
"동료들을 부르면 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을 것 같나?"
그런 천여운의 물음에 복면인이 목을 움켜잡고 있는 고통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켁켁....이어폰을....빼앗는다고....네놈들이 쉽게 빠져나갈 수....켁켁...있을 것 같나? 곧 그분께서 확인차...."
-꽈악!
"케에엑!"
천여운이 더욱 세게 목을 움켜쥐면서 그는 말을 마칠 수가 없었다.
그때 천여운이 빼앗은 이어폰 무전기를 귓가에 꽂았다.
'도청을 하려는 건가?'
이어폰 무전기는 사법 형무소에 잠입해 있는 모든 복면인들의 주파수 채널로 연결할 수 있었다.
그런 의도인가 싶었는데, 천여운이 입을 열자 복면인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아. 아아아아. 이런 목소린가."
놀랍게도 천여운에게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억양, 어조까지도 완벽하게 같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나노의 능력으로 타인의 목소리를 쉽게 변조할 수 있는 천여운이다.
그렇게 변조한 목소리로 천여운이 이어폰 무전기를 세 번 터치하고서 말했다.
"여기는 총살장. 놈들이 나타났다. 전부 처리했는데, 두 녀석을 놓쳤다. 놈을 잡아야 한다."
'!?'
무슨 수작을 부리나 싶었는데 의도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저런 식으로 무전을 보내면 오히려 동료들이 더욱 그들을 찾기 위해 사방으로 수색할 것이다.
자승자박한 꼴이었다.
'어째서 무전을 그런 식으로.....'
의아해하고 있는데 천여운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러면 아무도 도망치지 못하겠지?"
복면인의 두 눈이 커졌다.
생각해보니, 저런 무전을 받게 되면 사법형무소 내에 있는 동료들이 도망쳤다는 자들을 찾을 때까지 쉽게 철수하지 못할 것이다.
'이, 이놈....'
한 놈도 남김없이 처리하는 것이 천여운이 목적이었다.
당했다는 생각에 분한 얼굴로 노려보는 복면인의 목을 천여운이 망설임 없이 꺾어버렸다.
-우드득!
"컥!"
바닥에 쓰러진 그를 천여운이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리고는 총살대에 묶여 있는 천우진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스르륵!
신기하게도 천우진의 몸을 감고 있던 밧줄이 저절로 풀렸다.
'대단한 진기다.'
천우진이 속으로 놀라워했다.
진기를 숨을 쉬듯이 자연스럽게 다루는 자는 처음 보았다.
처음에는 천마신교의 사람일 거라 여겼지만 저렇게 젊은 얼굴은 처음 본다.
'일단은 도움을 받았으니.'
감사를 표하는 것이 옳았다.
"귀공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천우진이 포권을 취하면서 인사했다.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그의 모습에 천여운이 혀를 찼다.
"쯧쯧, 본교를 이 꼴로 만든 것에 대한 벌을 주려고 했더니, 혼을 내기도 힘든 몰골이구나."
천여운의 그 말에 천우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초면에 마치 집안의 어른이 나무라는 듯한 말투였다.
'본교라고 하는 것을 보면 분명 본교와 관련된 자가 틀림없는데 어찌 이리 무례한 말을 한단 말인가.'
그는 천마신교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교주였다.
천마신교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대체 귀공께서는 누구시기에 본인에게 그렇게 말씀하는 것인지 알 수 있겠소이까?"
천우진이 정중함을 잃지 않고 말했다.
힘을 잃고서 27년 간 수감생활을 하면서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은 큰 인내심이었다.
"혹여 본교와 관련된 분이시라면 어느 종파..."
"대호법 일가와 같이 비밀을 공유했다고 하더니, 그리 영민하지 못하구나."
"대호법?"
'대호법과 비밀을 공유해?'
대호법과 교주가 공유하는 비밀은 천마령과 관련되어 있었다.
의아해하던 천우진의 두 눈이 커졌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
[네 때에는 예언대로 그분께서 나타나실 수도 있겠구나.]
태상교주가 했던 말이었다.
25대 교주부터 역대 교주들이 부임하면서 내려온 유지. 자신의 대에서 그 예언이 이루어질 거라는 말은 들어왔지만 27년 전의 억울한 누명과 블랙 스카이 컴퍼니가 와해되면서 기억 속에서 지워져가고 있었다.
"서, 설마....."
"빨리도 알아차리는 구나."
부정하지 않는 천여운의 말에 천우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찌.....어찌 이런 일이....."
그 전설로만 듣던 마신이 눈앞에 있었다.
천우진이 불편한 몸으로 다급히 바닥에 엎드리며 예를 취하려 했다.
"소손 천우진이 대 천마신교의 전설..."
-우웅!
하지만 심후한 진기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천우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물었다.
"어찌?"
"바쁘니까 예는 나중에 받도록 하겠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장에서 누군가 떨어졌다.
-탁!
가벼운 몸놀림으로 바닥에 착지한 자는 타이트한 검은 가죽으로 된 옷을 입고 있는 보랏빛 머리카락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천여운의 제 2비서인 샤케나였다.
"헤에. 주인님. 지시한대로 그곳에 있던 자들을 처리했어요."
"먹진 않았겠지?"
"말씀하신대로 심장만 멈추게 했어요. 그리고 별로 먹음직스러운 녀석들도 없었어요."
화경의 고수의 심장을 먹은 후부터 다른 고수들은 양에 차지도 않는 그녀였다.
샤케나는 상황실에 있던 자들을 심장만 멎게 해서 죽이고 온 차였다.
영문을 모르는 천우진은 그들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선조이시여. 이 여인은 대체?"
그런 그의 물음을 무시한 채, 천여운이 샤케나에게 지시를 내렸다.
"녀석을 옮겨라."
"네네."
샤케나가 천우진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노인이었지만 자신의 체구보다도 큰 천우진을 안아들었다.
"이, 이게 무슨?"
당황해하는 천우진에게 그녀가 말했다.
"숨 오래 참을 수 있지? 인간."
"그게 무슨?"
-우우웅!
그 순간 두 사람의 몸이 보랏빛으로 물들며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잠수하듯이 바닥으로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천여운이 거리를 벌리고서 총살대를 향해 수도를 내밀었다.
-우우웅!
그러자 그의 손에서 거대한 도강(刀罡)이 일어났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천여운이 총살대를 향해 독특한 기수식을 취하며 도초를 펼쳤다.
* * *
19시 15분 경.
사법형무소의 앞의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사형이 정상적으로 집행되었다면 분명 지금쯤 소장이 나와서 언론에 기자 발표회를 할 것인데, 너무 깜깜무소식이었다.
"아니. 이거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니요?"
"안에 무슨 일이라고 있는 거 아니오?"
기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의구심으로 가득했다.
"물러나주십시오."
"아직까지 형 집행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법형무소의 앞을 지키고 있는 헌병들이 기자들에게 다가 오지 말라고 경고했다.
"아니. 무슨 형을 한 시간이 넘도록 집행한단 말입니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걸 감추려고 그러는 게 아닙니까?"
한 명이 물꼬를 틀자, 기자들이 일제히 헌병들을 향해 질문 세례를 날렸다.
덕분에 현장의 분위기는 어수선함을 넘어서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우르르!
그때 한 무리의 양복을 입은 자들이 기자들을 가로질러 사법형무소의 앞으로 나타났다.
형무소의 앞을 지키고 있던 헌병들이 그 무리의 가운데에 있는 자를 발견하고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오태청!'
가운데에 있는 중년인은 무림부 부장인 오태청이었다.
그의 곁에는 무림부 임직원들과 무당파의 장문인 장평각을 비롯한 제약회사 D.A.N.G의 부회장 당문수와 무림협회의 간부 다섯 사람이 함께 하고 있었다.
오태청이 입구를 막고 있는 헌병들에게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야 겠네."
"안 됩니다. 아직 형 집행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강경하게 막아서는 헌병에게 오태청이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사형 집행을 이리 오래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그, 그건...."
헌병들 역시도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알 리가 만무했다.
그들은 형 집행이 끝날 때까지 누구도 출입하지 못하도록 이곳을 지키라는 사법부 부장의 명을 받았을 뿐이었다.
난감해하는 그들에게 오태청이 더욱 밀어붙였다.
"자네들은 지금 사형 집행을 하고 있는 자가 누군지 아나?"
"......알고 있습니다."
"그 자는 우리 무림부와 무림 협회 최고의 고수들이 경중을 기한 최악의 범죄자일세. 사악한 마교인들이 얼마나 그 자를 탈옥시키고 싶어하는 줄 모르는 겐가?"
그의 말을 지원하듯이 옆에 있는 장평각이 큰 목소리로 동의했다.
"원시천존. 원시천존. 그렇소이다. 그래서 본 무림협회에서 내부 경비를 돕겠다고 의사를 밝히지 않았습니까?"
마치 기자들이 들으라는 듯이 이야기를 했다.
덕분에 사법부가 마치 무림부의 호의를 거절하고서, 국방부 소속의 헌병들만을 경비로 세운 것처럼 되어버렸다.
'이것 참.....'
헌병들을 통제하는 소대장인 고사웅 대위가 이 사태를 어찌 해야 할지 난감해했다.
이 기회를 전혀 놓치 않겠다는 듯이 오태청의 보좌관이 기자 무리에 있는 자들 중 한 사람을 힐끔 쳐다보며 눈짓을 했다.
그러자 그 기자가 큰 소리로 선동하듯이 외쳤다.
"사법형무소는 대체 뭘 숨기는 것이오! 빨리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공개하시오!"
-웅성웅성!
선동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기자들이 연달아 그와 비슷한 요구를 외쳐댔다.
오태청이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헌병들의 소대장인 고사웅 대위에게 이죽거리며 말했다.
"언론에서 지켜보는데 끝까지 막을 참인가? 계속 이렇게 나온다면 요즘 불순한 단체와 협약을 맺었다는 국방부를 의심할 수밖에 없겠는걸."
'큭.'
고사웅 대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더 이상 막을 방법이 없는 듯 했다.
".....기자들 분들은 아직 안됩니다."
"당연한 게 아닌가."
-슥!
고사웅 대위가 손을 들어올리자 입구를 바리게이트로 막고 있던 헌병들이 그것을 들어올리며 길을 열었다.
'흐흐흐.'
오태청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이미 무림협회의 간부들에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있을 지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서 무림협회의 무림인들의 증언을 통해 뒤집어 엎어 놓기만 해도 국방부를 몰아붙일 수 있게 된다.
"자. 가세."
오태청이 당당하게 무림협회의 간부들을 이끌고 사법형무소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누군가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 기다리시오."
'!?'
익숙한 목소리에 오태청이 인상을 쓰고서 고개를 돌렸다.
기자들의 서쪽 편에서 군복을 입은 장교들을 대동한 한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국방부 부장인 안우홍이었다.
"안 부장."
"안에 무슨 일이 생겼다면 당연히 사법형무소의 경비를 위임받은 우리 국방부 쪽에서도 조사를 해야 하는 일이 아니오."
그런 안우홍의 말에 오태청이 얼굴을 굳혔다.
이 타이밍에 그가 나타날 줄은 몰랐다.
'흥.'
하지만 어차피 국방부에서 함께 조사를 진행한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질 바가 없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무림협회 간부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왜 그러는 겐가?"
오태청의 물음에 무당파의 장문인 장평각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부장님. 저....저 자는 마교인입니다."
'뭐?"
장평각이 쳐다보고 있는 자는 안우홍 옆에 서있는 천여운이었다.
< 36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