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차크라 (3) >
"뭣들 하는 거지?"
"그, 글쎄요?"
국방부 부장 안우홍의 물음에 중장 막우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대결이 마무리 된 것 같았는데, 갑자기 스우라 라우가 화를 내었고 뭔가 두 사람 간에 대화가 이어졌다.
안우홍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다가 중얼거렸다.
"한 쪽이 납득이 안 간 모양이로군."
아무래도 개입해야겠다고 여겼다.
장교들을 대동해서 도로를 건너가려던 순간이었다.
스우라 라우가 천여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가 주먹을 내뻗는 순간,
-콰아아아앙!
백열의 빛이 거대한 주먹의 형태가 되어 앞으로 뻗어나갔다.
주먹에 스친 땅바닥이 거칠게 뜯겨나가며 파괴되었다.
-파앙!
"으헉!"
그 여파는 도로 건너편에 있던 안우홍을 비롯한 군인들에게 마저 미칠 정도였다.
갑작스러운 파동에 그들의 몸이 뒤로 튕겨나갔다.
"부장님! 모, 모두 물러나라."
거리가 상당했는데도 벌어지는 여파에 안우홍을 보좌하는 편서림 중교가 뒤로 자빠진 그를 부축하고서 군인들에게 명령했다.
한편 주먹을 내지른 스우라 라우가 경계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먼지가 피어오르는 곳을 바라보았다.
'타격감이 있었는데.'
제대로 충격을 주지 못한 것 같았다.
그때 먼지가 강한 돌풍과 함께 일제히 수그러들었다.
파괴된 곳의 한 가운데에 천여운이 있었다.
"제법 하는군."
천여운이 정장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그는 진심으로 스우라 라우의 일격에 감탄을 내뱉었다.
'투신에게 버금갈 정도군.'
방금 전의 그 일격은 투신의 일권인 역량의 일원화에 미칠 정도였다.
투신(鬪神).
천여운이 원래 있던 시대에 같은 오대고수 중 한 사람이다. 오대고수들 중에 최강자라불리던 자로 당시의 천여운에게 맞설 수 있는 몇 안 되는 절대고수였다.
물론 지금 천여운의 능력은 그때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일곱 번째 차크라를 완성하고 나서 아미르 일족의 대전사가 아니라면 나의 권을 받을 수 있는 자가 있을까 했는데.'
멀쩡한 천여운의 모습에 스우라 라우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스우라 라우가 독특한 기수식을 취했다.
그가 두 팔을 원을 그리듯이 움직이자, 마치 천수관음처럼 수많은 손이 잔상이 아닌 실제처럼 늘어났다.
'차크라 시바형(Shiva形)'
수십 개로 늘어난 손은 백열의 차크라가 변한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저 손들이 늘어나서 천여운을 향해 작렬할 기세였다.
스우라가 용맹한 목소리로 외쳤다.
"시바신의 위력을 보여주겠소."
"네 녀석 정도라면 막을 수도 있겠구나."
"뭐?"
천여운이 손을 위로 들어올렸다.
그 순간 차가운 한기가 사방에서 일어나며 허공에서 얼음검이 생겨났다.
-쩌저저적!
수백 자루에 이르는 얼음검들에 무심결에 위를 쳐다보았던 스우라의 두 눈이 커졌다.
그것은 이 전투를 지켜보는 국방부 부장 안우홍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저, 저게 대체....'
뭐라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무림인들의 대결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막아봐라."
천여운이 놀라하는 스우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수백 자루의 얼음검들에 푸른빛의 검강이 맺히며, 이내 검강의 비가 폭격이라도 떨어지듯이 스우라에게로 일점 쇄도했다.
-슈슈슈슈슈슈슉!
한 사람에게로 집중 포화되는 천공섬광의 위력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퇴로조차 주지 않는 위력에 스우라가 검강들에 찢겨나가 시신조차 남기지 못할 것만 같았다.
"하아아아압!"
그때 스우라가 강한 기합과 함께 두 팔을 교차했다.
그 순간 그의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며 또다시 무저갱처럼 기운들이 빨려 들어갔다.
-팡! 팡! 팡! 팡!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스우라에게로 쇄도하던 탄검강들이 미처 닿지 못하고서 한 지점에서 휘어지더니, 회오리를 치며 공간에 흡수되었다.
'강기를 빨아들였어.'
스우라에게 흡수된 것이 아니었다.
마치 공간이 왜곡되어 그곳에 빨려 들어간 느낌이었다. 자신조차도 이것을 막을 수 있을지 반신반의 했었는지 안도의 숨을 내쉰 스우라가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의 비슈누형(Vishnu形)은 어떠한 공격도 막을 수 있소."
비슈누(Vishnu).
힌두교의 삼주신 중 하나다.
그 어원은 '만물에 스며들다'라는 의미도 있었는데, 그에 걸맞는 힘이었다.
자신감에 찰 만도 했다.
"이번엔 내 차례요!"
스우라의 신형이 튕겨져 나오며 천여운을 향해 뻗어갔다.
그가 손으로 원을 그리자 비슈누형 차크라가 발현되며, 수많은 백열의 차크라가 거대한 손이 되어 천여운을 짓누르려 했다.
그 광경이 두려울 법도 했지만,
"재밌군."
천여운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고오오오오!
그러자 주변에 흩어져 있던 대자연의 기운들이 응집하며 보이지 않는 막을 만들어냈다.
단순히 진기의 막으로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쾅! 쾅! 쾅! 쾅!
백열의 차크라의 손들이 그것에 막혔다.
유리창을 깨버리듯이 손바닥들이 무차별적으로 내리쳤지만, 대자연의 막을 뚫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단단하다. 그렇다면 쿠마르형(Kumar形)!'
-팟!
거대한 백열의 차크라 손이 내려치는 것을 멈추지 않은 상태로 스우라가 천여운을 향해 신형을 뻗어와 그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쿠마르형은 차크라를 이용한 근접 전투 기술이었다.
-슥!
천여운 허공에서 무언가를 쥐는 시늉을 했다.
어느새 그의 손에 흐릿한 형태의 무형검 한 자루가 손에 잡혔다.
천여운이 무형검으로 그의 발차기를 막아냈다.
-파앙!
발차기에 담긴 백열의 차크라가 흰 스파크를 튀게 만들었다.
-콰콰콰콰쾅!
천여운이 발차기를 막아낸 반대편의 바닥에 부채 모양으로 땅이 패어나갔다.
차크라를 천여운이 흘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칫!"
스우라가 회전을 하며 천여운을 향해 연거푸 발차기를 날렸다.
각법을 펼치듯이 연달아 날아오는 발차기는 쾌속하기 그지 없었다.
천여운이 보법을 펼치며 이를 피해냈다.
-파파파파팍!
-콰콰콰콰콰쾅!
스우라의 발차기에 닿은 땅은 어김없이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다.
한 방 한 방이 필살의 기술이라 할 만 했다.
계속해서 천여운이 이를 피해내자 약이 오른 스우라가 소리쳤다.
"언제까지 도망갈 참이오! 제대로 하시오!"
스우라가 발차기를 날리던 자세를 공중에서 바꾸어, 천여운이 펼치는 보법처럼 기묘한 발걸음으로 따라잡으려 했다.
"피하지 말라고 했소!"
스우라가 천여운을 향해 처음 선보였던 일권을 내질렀다.
그의 주먹으로 백열의 빛이 두 원을 그려내며 파장을 만들어 냈다.
'오의 인드라형(Indra形)!'
차크라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형태 륜(輪)을 동시에 두 번을 일으켜 그 파괴력을 폭발적으로 상승시키는 오의였다.
산스크리트어로 인드라는 강력함을 말한다.
"좋아. 상대해주지?
천여운이 뒤로 물러서던 것을 멈추고서 바닥에 진각을 밟았다.
-쾅!
바닥에 균열이 일어났다.
그 상태에서 천여운이 강하게 주먹을 뒤로 젖혔다.
-파아아앙!
그 순간 천여운이 쥔 주먹의 공간이 일렁이며 흔들렸다.
'공간이 흔들려?'
스우라의 눈빛이 흔들렸다.
공간이 흔들릴 만큼 한 점으로 엄청난 기운이 응집하고 있었다.
이것은 투신의 비기인 역량의 일원화였다.
그렇게 응축된 일권을 천여운이 앞으로 내질렀다.
-쾅!
두 사람의 주먹이 동시에 부딪치며 엄청난 굉음 소리가 퍼져 나왔다.
주먹이 부딪친 지점에서 엄청난 반발력이 일어나더니, 이내 그것은 거대한 파괴력으로 이어졌다.
-콰콰콰콰콰콰쾅!
순식간에 폭풍이라도 몰아치듯이 사방에 강렬한 파장이 퍼져나갔다.
그 파장은 어찌나 강했는지, 도로 반대편에 있는 폐주유소와 허름한 식당이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정도였다.
-끼리리리리!
"우와아앗!"
"차, 차가!"
군용 차량들을 방패삼아 지켜보고 있던 군인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식당보다도 이십 미터 가량 떨어진 장소에서 지켜보고 있었
는데, 그 여파가 얼마나 강했는지 차량들이 밀려나고 있었다. 식당 앞쪽에 계속 차를 주차해뒀다면 뒤집혔을 지도 몰랐다.
'이게 정녕 인간들의 싸움인가?'
국방부 부장 안우홍이 차량 뒤에서 혀를 내둘렀다.
수많은 무림인들과 이능력자들을 봤지만 이건 인간 차원의 힘이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괴물이라 불릴 만 했다.
누가 이기더라도 안우홍은 인정할 수 있었다.
'허어, 역시 세상은 넓구나. 무림부 놈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할 수 있겠어.'
이 와중에 그것을 생각하는 것을 보면 그 역시도 평범한 자는 아니었다.
두 주먹이 부딪친 여파가 이윽고 멎었다.
두 사람이 서있던 장소에는 초토화가 되다시피 되어 50미터가 넘는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나 있었다.
-주르륵!
동쪽 편으로 밀려나 있던 스우라의 입가에 피가 흘러내렸다.
그가 자신의 오른손 주먹을 바라보았다.
-파르르르!
주먹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부러졌어.'
백열의 차크라로 보호하고 있던 자신의 주먹이 부러지다 못해 으스러진 듯 했다.
심지어 팔목과 어깨부근까지 통증이 느껴졌다.
'대가가 심하구나.'
자신이 이 정도라면 상대도 아마 같은 상황이리라.
그렇게 여기고 고개를 들은 스우라의 두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천여운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팡! 팡! 팡!
구덩이가 생겨나 밟을 지반이 없는 허공을 유유히 걸어오고 있었는데, 전혀 내상을 입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산조차 무너뜨리는 나의 주먹을 견뎠단 말인가.'
견딘 정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에게 부상마저 입혔으니 말이다.
'라우 일족 최고의 전사이자 티무르 차크라를 마스터한 내가 중원 무림인에게 밀린단 말인가?'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의 스승인 전대 대전사는 티무르 차크라를 최강이라 칭했다.
일곱 개의 차크라를 마스터한 자는 누구도 대적하지 못할 거라 했었는데, 그것이 깨지게 생겼다.
-으득!
스우라가 분노로 이를 갈았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이 정도면 실력의 차이는 알겠지?"
"실력?"
"더 다치고 싶지 않다면 패배를 인정해라."
그를 수하로 거두기로 확실하게 마음먹은 천여운은 더 이상 부상을 입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천여운의 의도는 오히려 스우라를 자극하고 말았다.
"지금......나를 모욕하는 것이오?"
"뭘 모욕했다는 거지?"
"우리의 대결은 고국의 부흥과 우리 라우 일족의 명예가 걸려 있는 성스러운 승부요. 그런 승부에 그대는 전력을 다하지 않고서 여유를 부렸다고 하는 것인가!"
-쾅!
스우라가 분노의 진각을 밟았다.
그는 만약 진다면 납득할 만한 패배를 원했다.
그런데 천여운이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자신의 수준에 맞춰서 상대를 했다고 한다면 전사로서 치욕이나 다름없었다.
스우라가 자신의 두 팔을 교차해서 모으며 소리쳤다.
"전력을 다하시오. 나는 아직 꺾이지 않았소."
그에게는 절대 방어인 차크라 비슈누형이 있었다.
공격에서 밀린다면 이 절대방어로 모든 공격을 막아낸 후에 허점을 찾아내는 방법도 있었다.
"전력이라....."
"나를 패배시키고 싶다면 납득시켜 보시오."
스우라가 전의를 고양시켰다.
이에 천여운이 다소 차가워진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전력을 다하면 네 녀석은 무조건 죽는다. 그래도 후회 하지 않나?"
오만하다 못해 광오한 그 말에 스우라가 웃어댔다.
"하하하하하핫!"
그러더니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흥! 그런 것은 비슈누형을 뚫고 나서나 말하시오."
비슈누형은 티무르 차크라의 깨달음이 집약된 기술이었다.
정복왕 티무르 대제에게 불패의 명성을 갖다 주었고 누구도 뚫지 못한 절대방어였다.
"하아아아압!"
스우라가 기합을 내지르자, 그의 주변이 회오리를 치며 기운이 또다시 흡수되기 시작했다. 무저갱마냥 끝없이 빨아들일 기세였다.
천여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죽어도 원망하지 마라."
"흥! 그런 얘기는 비슈누형을..."
그 순간 천여운의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치솟았다.
그것은 마지 심연과도 같은 어둠이었다.
그 어둠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천여운의 검결지의 끝으로 이어졌다.
'대체 무슨?'
가까이 있지도 않는데 뭔가를 긋는 행동에 스우라가 의아해 하던 찰나,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촥!
귓가를 울리는 뭔가를 베는 소리.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예기가 그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엇?'
그때 허공에 검은 선이 그려졌다.
스우라의 두 눈이 터질 듯이 커졌다.
그는 자신이 보고 있는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파슈슈슈슈슉!
고막이 찢겨나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검은 선이 생겨나는 곳의 공간이 갈라지면서 그의 주변을 철벽처럼 보호하고 있던 차크라 비슈누형이 비틀리더니 이내 베였다.
'베.....베었어?'
-오싹!
그것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검은 선이 어느새 그에게로 닿으려 하고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 스우라의 머릿속에 자신의 몸이 양단되는 것이 보였다.
"으아아아아아악!"
스우라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꽈당!
그때 그의 뒤통수에 뭔가가 부딪쳤다.
앞이 깜깜했던 스우라가 두 눈을 떠보니, 그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바닥에 뒤통수를 박으면서 느꼈던 고통이었다.
'대체.....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설마 몸이 양단되어서 넘어진 것인가 화들짝 놀라서 하반신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허리 밑은 잘려나가지 않았다.
스우라가 일어나서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천여운이 검결지를 그은 것과 별개로 왼손으로 뭔가를 누르 는 듯한 시늉을 하고 있었다.
'설마 나를 넘어뜨린 것인가?'
그랬다.
천여운은 그 짧은 찰나에 스우라를 넘어뜨렸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그는 공간이 베이는 것과 동시에 잘려나갔을 것이다.
스우라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걸......무슨 수로 대처한단 말인가.'
공간을 베어낸다는 것은 방금 그 일검이 베어내지 못하는 것은 없다는 의미였다.
날카로운 예기는 그의 의지마저 베었다.
이렇게 죽음을 가까이서 느껴본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방금.....그 검은 대체 무엇이오?"
분명 검이었다.
선명하게 검의 존재를 느꼈다.
"무상천마검."
"무상천마검?"
"이게 내 전력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역량을 지닌 검.
그것이 무상천마검(無上天魔劍)이었다.
오직 초대인 천마 조사와 이대 천마인 천여운 외에는 누구도 익힐 수 없는 절대 비기였다.
'이 자는.....이 자는 인간이 아니야. 무신의 재림이다!'
스우라는 전율과 경외심을 느꼈다.
-부들부들!
몸을 떨면서 넋을 놓고 있던 스우라가 무상천마검을 대뇌이더니 이내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납작 엎드리면서 외쳤다.
"라우 일족의 대전사 스우라 라우가 주공을 모십니다!"
그는 패배를 인정했다.
< 35화 차크라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