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굴복 (2) >
처음 EV 필드를 겪었던 천여운은 이것이 성가신 일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래서 나노와의 분석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이 필드를 파훼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동안 고민에 빠졌다.
그렇게 분석한 답 중 하나가 바로 EV필드의 과부하였다. 애초에 EV필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대자연의 기운을 계속해서 유입시킨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도박은 성공했다.
예상대로 천여운은 EV필드가 가동되는 밖의 대자연의 기운을 유동시킬 수 있었다.
"더 강한 힘?"
항륭을 비롯한 각 대의 대장들은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이게 힘으로 가능할 일인가.
이들보다 가장 충격을 받은 자는 따로 있었다.
멀리서 문란영과 대치한 상태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숭앙검제 현원경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현경의 고수인 그의 기(氣)에 대한 이해도는 여느 무림인들 보다 발군이었다.
화경을 넘어서 현경에 이른 자들은 자신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완전함에 도달하게 된다.
그때부터는 만물에도 기가 있다는 것을 의식한다.
그 만물의 기가 대자연의 기운이었다.
'흩어지는 기운 이상으로 대자연의 기운이 이 일대로 들어왔다.'
공간이 일렁이는 것도 그 현상이었다.
응집과 분해가 동시에 이뤄지면서 공간 자체에 영향을 준 것이었다.
'대자연의 기를 자유자재로 다룬다니....'
그것은 듣도 보도 하지 못했다.
무림협회장에게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현경을 넘어서게 되어 생사경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만물의 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되오.]
그런데 영향을 주는 것을 넘어서 만물의 기를 다룬다는 것은,
"자연경!"
오직 자연경의 경지에 오른 절대자만이 가능하다.
현원경은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저 자가 그 전설의 경지에 이르렀단 말인가.'
오랜 무림의 역사상 그 수많은 무인들 중에서 단 다섯 명만 이 그 경지에 이르렀다고 전해져왔다.
소림을 무의 발상지로 만든 보리 달마 조사.
태극을 깨달아 조화의 최고봉에 이르렀다는 무당의 장삼봉 진인.
마(魔)의 시초인 천마신교의 개파 조사 천마.
오직 도의 끝을 보았다는 극도신.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경지에 이르렀다던 만마를 다스리는 마신 천여운.
'저자가 천 년이라는 세월을 넘어서 그 전설들만이 이르렀다던 경지에 도달한 것인가.'
현원경의 두 눈이 경외심으로 물들었다.
생사경의 경지조차 전설이라 불릴 판국에 그것을 넘어선 자를 보게 되었으니, 존경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섯 번째 자연경의 고수!'
물론 그것은 아니다.
그가 거론했던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이다.
이를 모르는 그로서는 천여운이 새로운 자연경의 고수라고 여기는 것은 당연했다.
[총무 이사!]
현원경이 경악을 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권정운 이사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는 이 말도 안 되는 사태에 충격이 심했던 모양이었다.
[본인의 짐작이 맞다면 저 자는 전설의 자연경의 고수이네. 본 협회의 무림인들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저 자를 이길 수 없네.]
[뭐, 뭐요? 자연경?]
권정운 이사가 두 눈이 커져서 현원경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그 역시도 EV 필드마저 부수는 사태에 천여운에게 놀라기는 했지만 자연경의 경지는 그저 전설에 불과하다고 여겼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자연경은 전설....이런....]
-오싹!
권정운 이사가 말을 하다 멈추고서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차가운 한기에 고개를 돌렸다.
'!!!'
그때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무림협회 본단 부지의 상공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얼음검들이 생겨났다.
-쩌저저적!
너무 많아서 숫자를 세기조차 힘들었다.
허공을 가득 메운 얼음검 자루들의 모습에 무림협회의 무림인들 역시도 하늘을 쳐다보고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웅성웅성!
"내.…내가 대체 무얼 보고 있는 거지?"
"이게 정녕 인간의 힘이오?"
"어찌 인간의 내공으로 이런 일을....."
인외(人外).
그 말이 이보다 어울릴 수 없었다.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있는 천여운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핵폭탄의 떨어뜨릴 수 있는 버튼을 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불가능해.'
각 대의 대장들은 놀라면서도 이를 부정했다.
얼음검이야 어찌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이것을 전부 다루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인간의 뇌가 컴퓨터가 아닌 이상 혼자서 이 많은 수의 얼음검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이 기회일 수 있다. 놈이 저 많은 얼음검들에 집중하고 있을 때가.'
항무대의 대장 신산도왕 백천의 눈빛에 살기가 감돌았다.
천여운과의 거리는 약 10미터 정도.
그리 멀지 않았다.
그의 비기인 도정파월(刀定波月)을 펼친다면 단숨에 그 목을 벨 수 있다.
[들리나.]
백천이 초절정 급의 고수들인 단장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동시에 여러 방위에서 그들이 공격한다. 이를 천여운이 눈치 채서 대응한다면, 그 틈에 자신이 뒤를 급습하여 비기를 펼친다.
'지금이다.'
백천이 수신호를 보내려고 했다.
그 순간,
-슉! 슉! 슉! 슉!
-쾅! 쾅! 쾅! 쾅!
허공에서 날아온 푸른 빛줄기가 항무대 단장들의 머리를 관통했다.
인지조차 하지 못한 상태로 머리를 꿰뚫린 항무대 대원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어, 어떻게?'
기수식을 취하고 있던 백천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비웃듯이 말했다.
"본보기가 되어줘서 고맙군."
"뭣?"
그때 허공에서 느껴지는 예기에 백천이 도강이 실린 보도로 막아냈다.
-창!
허공에서 떨어진 것은 탄검강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이....이게 대체..."
-콰콰콰콰쾅!
수십 개의 탄검강이 백천에게로 쇄도했고, 이를 고작 몇 차례 정도 막아내지 못한 그의 전신은 탄검강에 찢겨져나가고 말았다.
"끄아아악!"
그의 비명이 끝났을 무렵에 살 조각 몇 개의 산산조각이 난 도의 파편만이 백천이 이곳에 서있었다는 흔적을 남겼다.
하늘이 푸른빛으로 물들어 눈이 부셨다.
부지 허공을 가득 메운 얼음검들은 하나 같이 푸른빛 강기를 머금고 있었다.
놀라움, 경악.
그런 감정들은 어느새 절망과 공포로 바뀌어 있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하늘만을 넋 놓고서 쳐다보고 있는 무림인들에게 천여운이 위압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명했다.
"꿇어라."
귓가를 파고드는 그 목소리.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것 같던 무림인들의 꼿꼿하던 무릎이 굽혀져 갔다.
'안 돼. 안 돼!'
이 광경을 두 눈 부릅뜨고서 지켜보고 있던 권정운 이사의 얼굴은 무너져 내렸다.
-털썩! 털썩!
천여운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무림인들의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그리고 그것은 도미노가 퍼져나가듯이 사방으로 이어져 삼천 여명에 이르는 무림인들 모두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두려움으로 전의를 상실한 그들은 굴복했다.
단 한 사람에게 말이다.
"내가....내가 이런 광경을 보게 되다니....."
이를 바라보고 있던 비막헌이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눈시울마저 붉어졌다.
그것은 다른 교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27년이라는 세월동안 천마신교는 음지에서 고개를 숙이며 살아가야 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눈앞에서 무림협회의 본단이 처참히 짓밟히는 광경을 보게 되었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쳇. 저것들을 전부 죽였으면 오죽 좋아."
허봉은 그들을 죽이지 못한 것을 내심 못마땅하게 여겼다.
원래 그가 알고 있던 천여운의 방식대로라면 가차 없이 전부 제거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게이트가 열리는 세상이었다.
이들을 전부 몰살시켜 버린다면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재앙을 막아낼 인력이 현저히 줄어들고 만다.
그래도 이 승리는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본단이 무너졌다.
무림협회의 천하라 할 만한 현 무림에 파문을 제대로 던진 셈이었다.
-탁!
무림인들의 항복을 받아낸 천여운이 유유히 돌아왔다.
천마신교의 교인들이 함성을 지르며 소리쳤다.
"천마! 천마! 천마! 천마!"
"대 천마신교! 만세! 만세! 만만세!"
-으득!
권정운 이사를 비롯한 간부들이 수치스러움으로 이를 갈았다.
이미 상황은 되돌릴 수 없었다.
천여운의 수하들조차 어찌해볼 수 없는 판국에 무슨 수로 저들을 상대한단 말인가.
이 사실이 중원 전체로 퍼져나가면 무림협회의 명예가 바닥을 칠 것이다.
'간부들의 부재가 이렇게 컸을 줄이야.'
대부분의 간부들은 무림협회가 아닌 각자의 부임지에 있었다.
예전 무림맹 시절과 다르게 각 지역과 시를 방어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고는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들었다.
심지어 무림협회장과 부회장조차도 각자의 회사에서 벗어나는 일이 드물었다.
이것이 완전한 패착으로 이어졌다.
-주르륵!
어찌나 주먹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파고든 손가락에 피가 흘러내렸다.
권정운 이사는 분노를 속으로 삭였다.
'와신상담이라고 하였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섶에 눕고 쓸개를 씹는다는 이 말은 원수를 갚기 위해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딘다는 의미를 지녔다.
월나라의 구천이 오나라에 복수를 하기 위해 그 설욕을 떠오르기 위해 쓸개를 맛보는데서 유래된 말이었다.
'견디자.'
어차피 저들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고작 오십여 명의 수하들을 감시자로 내버려두고 가진 못할 것이다.
결국 한순간의 승리를 맛보는 것이었다.
'네놈들은 후회할 것이다. 무림협회의 중추를 건드린 것이 네놈들의 완전한 멸망을 앞당긴 것이다.'
권정운 이사의 시선이 오직 천여운에게로 향했다.
그만 죽는다면 다른 마교의 잔당들을 처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자연경의 고수를 상대하기 위한 분석이 전적으로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때 천여운이 오십여 명의 부속실 소속 교인들에게 명했다.
"그것들을 들고 와라."
"충!"
교인들이 화물 트럭으로 가서 무언가 커다란 박스를 옮겨왔다.
무림인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꺼내온 박스를 일 열로 오십 개를 나란히 깔아놓은 뒤, 마치 배급을 하는 것 마냥 교인들이 그 앞에 한 명씩 섰다.
천여운이 무림인들을 향해 말했다.
"본교에 충성을 맹세한 교인들이여. 한 명씩 차례대로 나와서 주사를 맞도록."
'!?'
무림인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어졌다.
대체 주사는 무슨 말인가.
커다란 박스 앞에 서있는 교인들이 뭔가를 꺼내드는데 그것은 정말로 주사기였다.
'서, 설마 독인가?'
'빌어먹을!'
무림인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 역시도 상당수가 무력에 굴복해서 항복을 했지만, 권정운 이사와 같은 마음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저들은 물러갈 수밖에 없다.
훗날을 기약하면 된다.
그런데 그것을 무참하게 짓밟는 결과가 이어졌다.
"......대체 그게 무엇이오?"
간부들 중에 한 사람인 곤륜파의 곤륜옥수 배현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에 천여운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노 폭탄이다."
"나, 나노 폭탄!"
-웅성웅성!
나노 폭탄이라는 말에 무림인들이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들의 몸속에 폭탄을 주입하라는 소리였다.
'이런 미친!'
권정운 이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교인들이 들고 있는 화물 트럭을 교차하면서 쳐다보았다.
'그런 것이었나.'
그가 한 가지 의아하게 여기고 있던 점이 있었다.
천여운 같은 괴물이 허봉이나 문란영, 샤케나 등을 제외하고 그다지 전력이 될 수 없는 오십여 명의 무인들을 데려온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트럭을 무리해서 여기까지 끌고 온 게.....저....저것 때문이었단 말인가.'
그런 권정운 이사의 짐작은 정확했다.
천여운이 EV 필드가 펼쳐졌을 때조차, 사케나의 페이징 능력을 사용해가며 트럭을 버리지 않고서 이동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배현제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본 협회에 기어코 항복마저 받아 내놓고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이오? 패자에 대한 예우가 전혀 없단 말이오?"
-스륵!
"헉!"
어느새 천여운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배현제가 당황해서 자신도 모르게 방어를 하려 들었지만,
-팍!
"끄악!"
천여운의 가벼운 발차기에 다리가 비틀려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런 그의 머리채를 붙잡고서 천여운이 말했다.
"웃기는 놈이로군."
"끄윽!"
'내가 무얼 봐서 네놈들을 신뢰하지?"
"그, 그건...."
"무릎 한 번 꿇었다고 모든 게 끝났다는 어쭙잖은 헛소리는 하지 않겠지?"
"고....공식적으로 서류를 작성한다거나...."
-뿌득!
끄아아아아!
머리채가 뜯겨져나갈 것만 같았다.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머리채를 붙잡고서 천여운이 무림협회의 무림인들이 바라볼 수 있는 곳까지 끌고 왔다.
그리고는 무림인들을 향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들이 본교에 했던 짓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천여운의 그 말에 무림인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림협회는 27년 전 필사적으로 천마신교를 와해시켰다.
심지어 교주는 이 오랜 세월 동안 비밀 이동 감옥에 갇혀 있었고, 수많은 천마신교의 교인들이 도망자의 신세로 지내야 했었다.
"확실하게 보여주지."
-탁!
천여운이 배현제의 어깨를 손으로 짓누르고서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배현제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지, 지금 대체 무얼 하려고...."
-꽉!
"끄아아아아악!"
천여운이 비명을 지르는 배현제의 머리채를 있는 힘껏 잡아 당겼다.
그 순간 그의 목이 뜯겨져 나가며 몸과 분리되고 말았다.
-푸슉!
뜯겨진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히익!'
'머, 머리를 뽑다니...'
눈앞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광경에 무림인들이 눈살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돌려버렸다.
천여운은 머리통만 남은 배현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네놈들은 본교에 패해서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싫다면 언제든지 말하라. 패자의 선택은 오직 굴복과 죽음뿐이다."
-팍!
그 말과 함께 무림인들의 앞으로 머리통을 집어 던졌다.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는 배현제의 머리를 보면서 무림인들은 누구도 분노를 할 수 없었다.
이미 좌중의 분위기는 천여운의 공포라는 위압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과는 곧바로 이어졌다.
무림인들은 나노 폭탄 주사를 맞기 위해 줄을 지어서 앞으로 나왔다.
기개를 보이기에는 현실은 너무도 처참했다.
'크윽.'
권정운 이사를 비롯한 부선검객 호지선, 한천검객 연우강 등이 비참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이내 힘없는 발걸음으로 주사를 맞는 열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명예를 선택하고 죽기에는 그들은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누가 네놈들더러 저 줄로 가라 했지?"
"그, 그게 무슨 말이오?"
"선택을 하라고 하지 않았소?"
권정운 이사를 비롯한 간부들이 당혹스러워했다.
나노 폭탄 주사를 맞으면 그래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대가는 치러야지."
"대, 대가라니?"
두려워하고 있는 그들에게 천여운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살아있는 네놈들보다 죽은 네놈들이 필요하거든."
* * *
-치칙!
사옥 빌딩이 반 토막이 나면서 전기 배선이 전부 끊기는 바람에 홀로그램 장치의 전원이 나갔었다.
그러나 배선을 어찌 연결하고서 비상발전기를 돌리자,
-위이이잉!
홀로그램 장치가 다시 가동되었다.
뭔가 웅성거리는 소리들과 함께 얼마 있지 않아 홀로그램들로 무림협회의 간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일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자는 폐관에 들어가서 제자인 문종서를 대리로 보냈던 무림협회장 뿐이었다.
그들이 다시 연결된 홀로그램에 영문을 물으려고 했는데, 테이블 위로 무언가 데굴거리는 것들이 잔뜩 떨어졌다.
-아닛?
-이, 이건!
그것은 무림협회 간부들의 잘린 머리였다.
하얗게 서리가 일어난 것처럼 변색되어 생기를 읽고 있는 머리통들.
그들은 하나 같이 고통스럽게 죽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이들이 어째서...
홀로그램 속 각 협회 지부장들과 간부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협회장이 앉아야 할 상석 의자로 누군가 앉았다.
그는 바로 천여운이었다.
"운이 좋군. 살아남은 자들이여."
천여운이 그들을 향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이에 분노한 홀로그램 속 간부들이 노기를 숨기지 못했다.
-그대는 누군가?
-누군데 감히 이런 짓을 저지른 겐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참혹한 짓이 천여운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천여운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대 천마신교의 천마. 네놈들의 적이다."
'!?'
그 말에 시끄러웠던 홀로그램 장치에 붙어 있던 스피커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일제히 조용해졌다.
< 34화 굴복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