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101화 (101/234)

< 34화 굴복 (1) >

무림협회 사옥 빌딩 30층 대회의실.

방음도 잘되고 전망도 좋아서 회의를 하기 참 좋은 곳이다.

한참 회의가 진행되던 도중이었다.

-흠칫!

권정운 총무 이사를 비롯하여 무림협회 고문직을 맡고 있는 숭앙검제 현원경이 동시에 어딘가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드르르르르!

회의장을 강타하는 거대한 굉음과 함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심하게 흔들렸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홀로그램으로 참여한 자들을 제외한 실 참석자들이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

"지진이 난 것... 헉!"

그들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창가 너머로 거대한 무언가가 건물을 내리치고 있었다.

'설마?'

숭양검제 현원경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감각을 자극하는 이 날카로운 예기가 확실하다면 저것은 분명 무형검이 틀림없었다.

'이게 무형검이라고?'

무형검이라는 것 자체도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완전히 상식을 파괴하는 광경이었다.

-지칙! 대체 무슨 일이 벌어....

-통신 상태가 이상하....치직!

홀로그램들이 일렁거리며 신호가 이내 꺼져버렸다.

-콰앙!

"우왓!"

천장이 쩌저적 갈라지며 거대한 무형검의 검신이 회의장을 침범해왔다.

형광등이 깨지고 스파크가 튀면서 난리도 아니었다.

'큭!'

권정운 이사가 다급히 검을 뽑아 인근 창문을 베었다.

"모두 뛰어 내리시죠!"

고층이기는 하나 이곳에 계속 있다가는 봉변이라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이게 무슨 난리인지."

협회장 대리 문종서가 당혹감 이상으로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더니, 이내 권정운 이사가 베어낸 창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다른 간부들도 흔들리는 건물에 겨우 중심을 잡고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콰콰콰콰콰쾅!

위에서부터 내려친 무형검은 어느새 사옥 빌딩의 일층 바닥을 찍었다.

정확하게 반토막을 내버린 것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반으로 잘린 건물은 균형이 정확하게 들어맞기라도 했는지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다.

다만,

"꺄아아아악!"

"우와앗!"

-우르르르!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혼비백산이 되어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건물이 갈라지면서 잔해 부스러기와 먼지 폭탄을 제대로 맞고 말았다.

그나마 탈출한 이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건물의 한가운데 지점에 있던 자들은 날벼락이 떨어진 것마냥 거대한 무형검에 휩쓸려 그대로 압사당해 죽고 말았다.

"협회....협회의 사옥이...."

"어떻게 이런 일이....."

이 광경을 바로 앞에서 바라보고 있던 무림협회 소속 무림인들은 망연자실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압도적인 무력에 기겁해서 사상 최악의 사태를 방관하고 말았다는 자책감은 이윽고 극도의 분노로 이어졌다.

"감히! 감히 이 더러운 마인 놈들이 정도 무림의 성지를....."

"당장 마교 놈들을 죽여야 하오!"

"마교의 잔당들에게 응징을!"

군중심리란 것은 참으로 신기했다.

한두 사람이 분노를 토해내자 무림인들이 열불을 토해냈다.

건물마저 베어버리는 압도적인 무력을 직접 눈앞에서 목격했지만, 여전히 월등이 숫적으로 우세하다는 것이 그들의 두려움을 낮춰주는 듯 했다.

-탁!

지상으로 내려온 천여운이 시원하다는 듯이 건물을 올려다 보았다.

반이 잘려나가 위태로워 보이는 무림협회 사옥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천마께서 너무 무리하신 게 아닌가.'

이 광경을 너무도 경외가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던 비막헌이지만, 내심 천여운이 무리해서 내공을 낭비한 게 아닌가 불안해졌다.

EV필드로 주위의 기운이 완전히 흩어져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저 정도로 거대한 무형검을 만들어 냈다면 내공 소모가 극심할 수밖에 없었다.

'두려울 정도의 무위를 지녔지만 경솔한 자로구나.'

이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군만이 아니었다.

무림협회 무력단체의 대장들은 천여운이 실수를 했다고 여겼다.

검강을 무리해서 키우는 것만으로도 공력 소모가 클 텐데, 하물며 그를 능가한다는 무형검을 저리 어처구니없이 키웠다.

'아무리 생사경의 고수라고 해도 내공에 한계가 있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찰나에 한 무리의 사내들이 천여운이 있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그들의 등장에 무림협회의 무림인들이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

그들은 무림협회의 간부들이었다.

가장 선두에서 노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다가오는 중년인은 숭앙검제 현원경이었다.

그의 손에는 명검 사리원이 들려 있었다.

명인이 10년 동안이나 만년한철을 두드려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명검이다.

"숭양검제! 숭양검제!"

무림협회의 정점에 서있는 오대고수의 일인.

오대고수라는 이름은 무림협회 소속의 무림인들에게 있어서 정신적 버팀목이었다.

게다가 뒤에 있는 간부들도 만만치 않았다.

'점창파의 정통 후예인 부선검객 호지선, 절강도문의 비류성, 종남파의 한천검객 연우강, 곤륜파의 곤륜옥수 배현제.'

비막헌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들 모두가 오래전부터 화경의 경지에 이른 현대 무림의 거두들이었다.

현역에서 물러났다고 들었는데, 역시나 무림협회의 간부로 활동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막헌. 회장은 누구지?"

천여운의 물음에 비막헌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무래도 자리를 비운 모양입니다."

"부회장은?"

"없습니다. 저 자가 현재 무림협회의 가장 중심입니다."

비막헌이 가리킨 자는 무림협회의 총무이사인 권정운이었다.

회장, 부회장을 제외한 가장 높은 직위에 있는 자였다.

"쯧쯧, 빈집털이를 한 건가."

천여운이 혀를 찼다.

내심 극도육무문, 즉 블레이드 식스의 현 총수인 무림협회 부회장과 천마신교의 영역권을 차지했다는 현 무림 최강의 세력이라 불리는 오신 그룹의 총수이자 무림협회의 회장을 한번에 처리하고 싶었던 그였다.

그런데 두 사람이 자리를 비웠다고 하니 속 빈 강정이라 여겼다.

-으득!

'마교의 잔당들이 감히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이런 천여운의 반응에 화가 난 것은 협회장 대리인 문종서였다.

무림협회의 회장의 제자이자 오신 그룹의 차기 총수로 내정 된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남자였다.

모든 무림인들에게 대우를 받던 그가 없는 사람마냥 취급을 받았으니, 자존심에 금이 가는 것도 당연했다.

"현 고문님."

문종서가 앞장서고 있는 현원경을 불렀다.

"회장 대리?"

"본 협회를 능욕한 저자들을 그냥 내버려둘 참입니까? 마인들을 상대하면서 사정을 봐줄 필요가 있습니까? 합공을 하시죠."

프라이드가 강한 남자라고는 하나 문종서는 바보가 아니었다.

혼자서는 절대로 상대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흠."

현원경이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물론 이것은 보이기 위함이었다.

사실 그 역시도 단독으로 천여운을 상대하는 것을 버겁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오대고수라는 위치가 발목을 붙잡았었다.

'잘됐다.'

문종서가 때마침 명분을 주었으니 잘 됐다 싶었다.

"회장 대리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구려. 협회에 인명 피해가 없게 하기 위해서라도 빠르게 진압해보도록 합시다."

"우리도 돕겠소이다."

"어리석은 마교인들에게 정의를 보여줍시다."

-챙! 챙!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간부들도 각자의 병장기를 뽑으며 말했다.

그들 역시도 현원경과 생각이 다를 바 없었다.

서로 뜻을 하나가 되었음을 확인한 문종서가 무림인들을 향해 외쳤다.

"본 협회장 대리를 비롯한 간부들이 저 간악한 마교 무리의 우두머리를 처리할 터이니, 협회의 동도 여러분들은 졸개들을 처리하시오!"

협회의 최고수들이 천여운을 상대하고, 나머지 잔당들을 삼천여 명이나 되는 고수들이 합공을 가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여겼다.

EV 필드로 인해 대인 공격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여전히 자신들이 유리했다.

'저 빌어먹을 놈을 짓밟아 버리겠어.'

문종서가 눈을 부릅뜨고서 천여운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간부들에게 합공의 신호를 보내려고 하는 찰나였다.

-스륵!

'어?'

눈앞에 흐릿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는 바로 허봉이었다.

"감히 누굴 노려보는 거냐? 확 눈깔을 뽑아버릴 테다."

'빠르다!'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순 없었다.

문종서가 다급히 쥐고 있던 검으로 허봉의 목을 찔렀다.

그것을 허봉이 가볍게 쳐내버렸다.

-챙! 파르르르!

'무, 무슨 이런 공력이...'

검을 잡고 있는 손이 찢겨나가고 말았다.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 한 것을 겨우겨우 막아냈지만 그의 두 눈으로 쾌속하게 무언가가 날아왔다.

-슉!

그것은 허봉의 두 손가락이었다.

정말로 문종서의 두 눈을 파버리려고 하는 그였다.

'안 됏!'

피하기에는 너무 빨랐다.

그때 날카로운 검날이 허봉의 팔을 베려들었다.

-촥!

두 눈알을 취하고자 팔을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허봉이 보법을 펼치며 이를 피해냈다.

그를 검으로 제지시킨 것은 숭앙검제 현원경이었다.

유일하게 허봉의 움직임을 읽어낸 그였다.

'허어, 난감하구나.'

현원경의 얼굴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허봉의 쾌속한 움직임만 보고도 자신과 동급의 고수임을 깨달았다.

괴물 같은 천여운 한 사람만 합공으로 어찌 처리하면 된다고 여겼는데, 이 정도 수준의 고수가 더 있을 줄은 몰랐다.

'마교에 이런 전력이 남아있었단 말인가?'

당혹스럽기는 다른 간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허봉의 움직임을 전혀 간파하지 못했다.

"일단 이놈부터 처리합시다!"

한순간에 당할 뻔했다는 것에 분노한 문종서가 간부들에게 외치며 뒤로 보법을 펼치는 허봉을 향해 기습적으로 검초를 펼쳤다.

"알겠소이다!"

절강도문의 비류성이 그를 돕기 위해 허봉의 측면을 향해 도초를 펼쳤다.

그때 누군가 그의 앞으로 나타났다.

"나도 끼워주라. 인간."

보랏빛 머리카락을 찰랑이는 그녀는 사케나였다.

사케나가 지면을 박차고 뛰어오를더니, 비류성을 발로 내려찍으려 했다.

'멍청한 계집이군.'

비류성이 그녀를 비웃으며 도초의 방향을 틀었다.

도강이 실린 보도로 단숨에 그녀의 다리를 베어낼 작정이었다.

그런데,

-파앙!

"아닛?"

다리가 베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도강이 실린 도가 부서져 버렸다.

-창그랑!

그 상태로 사케나는 멈추지 않고서 비류성의 어깨를 내려찍었다.

-퍼억!

"끄아아악!"

비류성의 어깨가 진흙 점토라도 된 것처럼 찍힌 부위가 상체 안쪽으로 파고들더니, 이내 그의 몸이 바닥과 인사를 나누고 말았다.

-콰앙! 쩌저저저저적!

그가 처박힌 곳을 중심으로 바닥에 3미터 가량의 균열이 일어났다.

말도 안 되는 괴력이었다.

어깨에서부터 폐가 있는 위치까지 살점이 짓눌려진 비류성이 꿈틀거리다 이내 그 움직임이 멎었다.

"헷. 죽였다."

사케나가 싱긋거리며 웃더니, 비류성의 가슴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움직임이 느려져가는 심장을 꺼내서는 사과를 먹듯이 한입 베어 삼켰다.

-콰직!

"맛있다."

"이, 이런 미친 년이 있단 말인가!"

종남파의 한천검객 연우강이 그녀의 잔혹함에 노성을 쳤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쉽게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다른 간부들 역시도 꽤나 충격을 먹었는지 눈살을 찌푸리고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끄아아아악! 내 눈! 내 눈을...."

허봉이 자신을 기습한 문종서의 두 눈알을 파내버렸다.

무림협회 최강자의 제자이자 완숙한 화경의 경지에 오른 그였지만 허봉을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실력에서의 간극이 너무 컸다.

"네 녀석 눈알 파버린다고 했지. 히히."

허봉이 핏물로 가득한 눈알을 들고서 신이 나서 비아냥거렸다.

"감히!"

자신이 보는 앞에서 결국은 문종서의 눈을 앗아간 허봉에게 분노한 현원경이 허봉에게 복수하기 위해 검초를 펼치려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도 누군가에게 막혀버리고 말았다.

"계집?"

그녀는 문란영이었다.

"남편에게 볼 일이 있다면 내게 말하거라."

'남편?'

두 사람이 부부라는 것이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검초를 파고들어 어느새 오른 손목을 잡고 있는 이 장법이 더 당혹스러웠다.

"놓아라!"

현원경이 손목을 놓게 하려고 검결지로 그녀의 미간을 찔렀다.

보통이라면 손목을 놓고서 피하거나 아니면 검결지를 막겠지만 문란영은 도리어 더욱 쾌속한 움직임으로 현원경의 가슴에 장법을 날렸다.

-화르르륵!

뜨거운 열기와 함께 현원경의 가슴이 있는 공간이 비틀렸다.

그 순간 현원경의 몸이 포탄처럼 뒤로 튕겨나갔다.

-파파파파팍!

"끄억!"

-털썩!

거의 20미터 가량이 밀려나간 현원경이 피를 토해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현원경은 얼마나 충격을 먹었는지, 핏줄이 곤두 선 두 눈으로 문란영을 노려보았다.

'대, 대체 저 여자는 누구란 말인가?'

현경의 경지에 오른 자신이 너무도 무력하게 일수에 당해버렸다.

일장이 가슴을 쳤을 때, 반탄강기를 펼쳤는데도 오장육부로 파고든 장력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사태란 말인가.'

'본 협회의 간부들을 어찌 저렇게 가볍게....'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간부들의 등장에 전의가 올랐던 무림인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우두머리인 천여운도 아니고 수하들의 손에 저리 무력하게 제압되는 모습에 넋을 놓고 말았다.

“지금 뭣들 하는 건가! 각 대는 손 놓고서 지켜볼 참이냐!"

권정운 이사가 다급히 무림인들에게 외쳤다.

하나씩 상대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개개인의 무력이 밀린다면 합공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저들을 제압해야 했다.

그런 그의 다그침에 정신을 차린 금황검룡 감책이 심각함을 느끼고서 전위대를 향해 외쳤다.

"저, 전위대는 당장..."

바로 그때였다.

가만히 서있던 천여운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저벅저벅!

단순히 걸어 나왔을 뿐이었는데, 천여운에게서 풍기는 어두운 위압감에 그 많은 무림인들이 순간 움찔거리며 멈춰 섰다.

그런 그들에게 천여운이 입을 열었다.

"너희들에게 단 한 번의 기회를 주지."

"기회?"

의아해 하는 무림협회의 무림인들에게 천여운이 최악의 선택지를 주었다.

"꿇어라."

'!!!'

무림인들의 얼굴이 일제히 굳어졌다.

그것은 굴복하라는 말이었다.

광오한 그의 말에 성미가 불같은 금황검룡 감책이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소리쳤다.

"꿇어? 네놈이 정녕 미치지 않고서야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더러운..."

-촥!

그 순간 감책의 몸이 반으로 쪼개졌다.

쪼개지며 나누어서 양옆으로 쓰러지는 그의 앞으로 어느새 천여운이 수도를 내리 그은 자세로 서있었다.

"히익!"

"어, 언제?"

-우르르르!

사옥 건물의 앞에 서있던 그가 어느새 자신들의 한복판에 나타난 모습에 화들짝 놀란 무림인들이 그의 반경에서 빠르게 물러났다.

천여운이 그들에게 말했다.

"꿇어라. 그렇다면 위대한 천마신교의 교인으로 받아주겠다."

오만함이 깃든 목소리.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오만이라 생각할 수가 없었다.

천여운에게서 풍겨지는 위압감은 너무도 무거워 심장을 죄여오는 것만 같았다.

'이, 이게 무슨 추태란 말이냐!'

권정운 이사는 이 광경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단 한 사람의 기세에 밀려서 삼천 명이 넘는 무림인들이 손 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서 두려워한다는 게 말이 된단 말인가.

-으득!

그가 답답한 속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 뭣들 하는 거냐! 한 사람! 고작 한 사람이다! EV 필드 때문에 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자의 허장성세에 넘어갈 참이냐!"

그런 그의 외침에 와 닿기라도 했을까.

마찬가지로 두려움에 물러서 있던 백전대의 수장인 소요검 항륭이 부끄럽다는 얼굴로 무림인들에게 외쳤다.

"이사님의 말씀이 맞다! 저자는 고작 한 명에 불과하다.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는..."

그때 천여운이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EV 필드라고 했나. 전에 한 번 겪어보니, 참 성가시더군."

"겪어봤다고?"

천여운의 그 말에 항륭이 인상을 찡그리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저 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천여운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같은 수법이 나한테 또 통할 거라 생각하나?"

"뭐?"

천여운이 허공을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알 수 없는 그의 행동에 무림인들이 무슨 짓인가 싶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그들이 두 눈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주변 상공의 공간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대, 대체 이게 무슨?"

"하늘이?"

그 모습이 마치 하늘 전체가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것과도 같았다.

그것은 점차 심해져서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천여운은 마치 하늘에 있는 무언가를 잡아 뜯는 것처럼 핏줄이 올라선 팔로 강하게 잡아당겼다.

"네, 네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심상치 않은 변화에 항륭이 소리쳤다.

바로 그때였다.

-파직! 파지지직!

무림협회 부지의 바닥의 여기저기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쩌저저적!

바닥에 균열이 일어나더니, 이내 부지 끝 동서남북으로 동시에 폭발이 일어났다.

-콰콰콰쾅!

폭발이 일어난 장소를 본 권정운 이사의 동공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곳들은 EV 필드를 가동하는 중심 장치들이 설치된 곳이었다.

'말도 안 돼!'

폭발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놀랍게도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흩어졌던 대자연의 기운이 사방을 가득 메워갔다.

그 변화를 감지한 무림인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어떻게 이런 일이...."

믿을 수 없어하는 그들에게 천여운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힘을 막는다면 더 강한 힘을 주면 될 일이지."

< 34화 굴복 (1) > 끝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