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무림협회 (1) >
'멍청이들은 아니군.'
곽운의 고스트에서 기억을 읽어낸 천여운은 그리 생각했다.
아무리 정보를 차단하고 게이트 전이라는 명분으로 가렸다고 해도 무림 협회의 의심은 천마신교로 향하고 있었다.
'본교를 두려워한다는 반증이겠지.'
27년이 지나도 견제를 한다는 게 그 증거였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미심쩍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림협회의 대응방식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곽운의 기억대로라고 한다면 무림협회는 우연히 그가 제남시에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파견 보냈다.
'전력을 아끼지 않는 건가.'
무림협회에 있어서도 오대고수들은 최고 전력일 것이다.
곽운의 경우는 화산파의 장문인이기도 했다.
물론 그 정도의 고수라면 제남시에서 벌어진 의문을 쉽게 풀 수 있을 거라는 판단 하에서 그랬을 지도 모른다.
'흠.'
그의 기억만으로는 상황을 전부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천여운의 질문에 곽운은 아무 것도 답하지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으로는 그에 대한 답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것은 매우 단편적인 기억들이었다.
영화로 친다면 주요한 부분만 편집해서 보는 느낌이다.
'그래도 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꽤 쓸 만한 고스트들도 얻었고, 귀기의 약점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천여운의 주변에 있는 고스트들의 숫자는 곽운이 변한 고스트들을 포함해 열넷이었다.
매화십팔수 중에 다섯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호신강기로 귀기가 체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매화십팔수들 중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서, 불의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호신강기를 펼쳐서 대응한 자들이 있었다.
그런 그들은 죽었으나 귀기가 파고들지 않았다.
강기로 신체를 보호한다면 귀기의 침식은 막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아쉽군.'
이 약점이 다른 자들에게 알려진다면, 고스트가 늘어나는 사태를 막기 위한 해법으로 활용될 것이다.
'뭐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면 되니까.'
이것을 알게 되면서 주의했기 때문에 곽운이 호신강기를 펼치지 못하게 사전에 혈도를 점해서 막은 것이었다.
"들어와라."
천여운이 오른팔을 들어 올리자, 그의 주변을 서성거리던 고스트들이 줄어들면서 팔목의 보호대로 흡수되었다.
-스르르륵!
어떤 힘이든 필요한 순간에 적절히 사용하면 될 뿐이었다. 천여운이 물산 창고에서 나와 그 앞에 주차되어 있는 대형 RV차량으로 다가갔다.
RV 차량의 번호판을 보면 렌트 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슥! 쨍그랑!
천여운이 손을 뻗자 유리창을 깨뜨리며 안에 있던 견고한 케이스 가방이 나왔다.
가방은 특수합금으로 만든 케이스로 지문 인식 장치가 되어 있었다.
물론 그것은 천여운에게 의미가 없었다.
-삐리리리!
나노가 이를 가볍게 해킹하여 케이스 가방을 열어버렸다. 가방이 열리자 그 안에 눈부신 광채를 내뿜는 주먹만한 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코어였다.
[A등급 코어로 추정됩니다.]
'그렇군.'
풍겨지는 방대한 기운을 보면 확실히 A등급의 코어가 틀림 없었다.
천여운이 흡족해하며 케이스 가방을 닫았다.
이것은 곽운이 유방시의 게이트 전에서 획득한 코어였다.
'운이 좋군.'
공교롭게도 그는 이것을 얻은 후에 곧바로 협명장을 받고서 제남시로 왔다.
덕분에 이 코어를 흡수하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면서 천여운의 손에 넘어가게 된 것이었다.
죽어가던 곽운은 마지막에 이것을 강렬히 떠올렸었다.
'A등급 두 개에 S등급 하나라.....'
그 밑에 등급도 구하지 못해 안달이 나있는데, 천여운은 고작 며칠 새에 특상에 가까운 코어를 세 개나 손에 넣었다.
이 정도면 보다 더 전력을 상승시킬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부터 회수했으니, 다른 것들도 회수해볼까?"
천여운은 가방을 챙겨서 물산창고의 각 입구 쪽을 돌아다니며 죽은 복면인들과 매화십팔수의 시신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는 사이에 얼마 있지 않아 용천 그룹의 일부 중진들과 교인들이 도착했다.
"아......"
암종의 수장인 환명오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다행히 상황은 천여운 선에서 정리 되었다고 하지만 이들이 제남시로 들어온 것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사실 이 부분은 환명오의 탓이라 보기도 힘들었다.
지하 고속기차의 역은 방위국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이들이 들어오는 것을 실시간으로 알아차리는 것은 무리였다.
이 시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인 만큼 방위국에서 철저하게 지정된 사람을 채용해서 쓰기 때문에 사람을 심을 수도 없었다.
몇 차례 환명오가 인피면구를 활용하여 가짜를 심어보려고 했지만, 지문에 홍채인식까지 하는 통에 실패하고 말았다.
"제남시로 들어오는 자들을 파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보겠습니다."
그런 환명오에게 천여운이 뭔가를 던졌다.
"이걸 활용해라."
-탁!
"이건?"
그것은 반지였다.
평범한 반지 같았는데 무슨 의도에 준 것일까?
"곽운이라는 녀석이 들고 있던 거다."
"네? 곽운....화산검제 곽운!"
천여운의 그 말에 환명오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무림협회에 가입되어 있지 않더라도 현 무림이 돌아가는 것 정도는 파악하고 있는 환명오였다.
곽운은 오대고수의 일인이었다.
무림협회 최고 전력 중 한 명이 이곳으로 침입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환 이사님! 이 시신을 보십쇼!"
마침 물산 창고 주변의 시신을 소각하던 암종의 교인들이 한 구의 시신을 들것에 운반해 왔다.
그 시신은 천여운의 말대로 정말로 곽운이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시신의 상태가 괴의했지만 얼굴은 사진으로 숙지한 것과 동일했다.
'천하의 화산검제가 이 꼴이 되다니.'
천여운의 강함이야 당연히 알고 있지만 놀라웠다.
그에게는 오대고수도 그저 한 명의 무림인에 불과한 듯 했다.
'한데 오대고수를 보내다니? 무림협회 놈들이 우리의 태동을 알아차렸단 말인가.'
환명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제남시 무림협회 지부를 정리했을 때 어느 정도 이런 상황은 예측했었다.
그런데 설마 이 정도 전력을 보낼 줄은 몰랐다.
그들의 경계심이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천마께서 먼저 오시지 않았다면 코어 정제 기기도 빼앗겼고, 오히려 우리 쪽이 당했겠구나.'
천여운이기에 곽운을 쉽게 처리했다.
하지만 화산검제 곽운과 그가 이끄는 매화십팔수의 명성은 매우 자자했다.
그들과 순수한 용천 그룹의 전력으로 부딪쳤다면 도리어 당했을 테고, 무림협회는 자신들이 다시 일어나려한다는 정보가 들어가게 될 것이다.
환명오가 심각한 목소리로 입술을 뗐다.
"천마이시여. 아무래도 무림협회는....."
"눈치 챘겠지. 바보가 아닌 이상."
"......천마께서 어째서 합병을 서두르라 했는지 알겠습니다."
무림협회에서 이 정도로 경계하고 있다면 분명 다방면에서 공격해올 것이 자명했다.
합병이 길어질수록 저들에게 휘둘릴 확률이 높았다.
결국 천여운의 말대로 저들이 합병마저 눈치 채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천마이시여. 한데 이것은?”
환명오가 천여운이 준 반지를 물었다.
곽운의 개인 물품으로 보였는데, 이것을 넘긴 이유는 아직 알지 못했다.
"반지 안에 칩이 있다."
"네? 여기에 말입니까?"
반지는 매우 작고 얇았다.
마이크로 단위의 칩을 심었다는 말이었다.
"무림협회의 것이지. 폰은 가져왔겠지?"
천여운의 그 말에 환명오가 손목에 차고 있던 플랙시블 스마트폰을 넘겼다.
스마트폰을 움켜쥐자, 천여운의 손바닥에서 나노 선이 튀어 나와 연결되어 수많은 정보를 화면에 전송했다.
그것을 전부 마치자 천여운이 다시 환명오에게 스마트폰을 넘기며 말했다.
"그 안에 반지의 칩이 가진 주파수의 코드를 넣었다."
"주, 주파수의 코드를 말입니까?"
그 짧은 새에 그것을 했다는 말에 환명오가 경악을 금지 못 했다.
스마트폰을 쳐다만 보고 손끝 하나 터치를 하지도 않았는데, 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그걸 이용해서 추적 장치를 만들 수 있겠지?"
"가, 가능합니다."
주파수 코드만 안다면 추적 장치를 만드는 일은 손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일정 반경 내로 이 칩을 가지고 있는 자를 알아낼 수 있게 된다.
굳이 지하 고속 기차 역이 아니더라도 그 부지 바깥에 추적 장치를 가진 교인들을 세워놓기만 해도 저들의 출입을 눈치 챌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제남시로 들어오는 즉시 저들을 막을 수 있겠구나. 아!'
문득 환명오는 이것을 곽운만이 아니라 다른 자들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다른 자들도....'
"확인할 필요 없다. 손 내밀어라."
환명오가 얼떨결에 손을 내밀자, 천여운이 코트 주머니에서 한 움큼 움켜쥔 것을 내려놓았다.
그것은 단추부터 시작해 손톱만한 평범한 물건들이었다.
"이, 이걸 전부 찾으셨단 말입니까?"
환명오의 입이 벌어졌다.
특별한 장비도 없이 대체 무슨 수로 찾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놀라움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것도 챙겨라. 곽운이 가지고 있던 것이다."
"곽운이요?"
천여운이 넘긴 케이스 가방에 환명오가 의아해했다.
지문 인식 케이스였는데, 잠겨 있지 않아서 그것을 열어보았더니.
"헉!"
그 안에는 코어가 들어 있었다.
엄청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코어에 환명오가 할 말을 잃었다.
'대체 이분은..…'
전에도 그랬지만 천여운은 무위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여러 능력들을 많이 지니고 있는 듯 했다.
이제는 놀랍다 못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저들도 참으로 운이 없구나.'
코어 정제 기기를 탈환하고 천마신교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고 했는데, 도리어 큰 전력 중 하나를 잃은 것도 모자라 귀한 A등급 코어마저 빼앗긴 셈이었다.
아마 분통이 터질 것이다.
그 생각이 드니 사이다를 들이킨 듯이 속이 시원해졌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무림협회의 눈치를 본다고 몸을 납작 숙여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저들이 한방 먹게 되자 기분이 들떴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가 우려가 되었다.
'아.....이번에는 필연적으로 알게 되겠구나.'
생각해보면 저들은 지금 의구심만 가진 상태였다.
그런데 코어 정제 기기 탈환도 실패하고 오대고수인 곽운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의구심이 확신으로 바뀔 것이다.
"......천마이시여. 이번 일로 저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식으로 말이지?"
"어쩌면 저들은 곽운이 사라진 것을 명분삼아 저희를 압박 하거나, 어쩌면.....저희가 일어나기 전에 전면전을 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일말의 의구심만으로 오대고수를 파견한 무림협회였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합병이 급선무가 아니라 무림협회의 대대적인 침공에 대비할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우려하는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네?"
천여운의 호언장담에 환명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환명오. 최상의 방어책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지?"
아무래도 무림협회의 침공에 대한 대비책을 묻는 것 같았다.
적절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해하는 환명오에게 천여운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제공격이다."
'!?'
* * *
사흘 후.
무한시 (武汉市).
중원의 한복판인 호북성의 한 가운데에 있는 이 시에는 수 많은 도시들 중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 중 한 곳이라 불린다.
그 이유는 무림협회의 본단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작고 큰 무림 문파만 수백에 이르고, 거주 무림인만 하더라도 삼만 여 명이 넘는 현대 무(武)의 본고장.
그게 바로 무한시였다.
무한시의 동북쪽에는 무림협회 본단의 사옥과 수천 평의 부지가 있었다.
옛 무림맹을 본 따서 만든 기와집 형태의 본단 사옥 건물. 그 이외에도 광활한 부지에는 이십여 채의 건물과 수백 개의 연무장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합! 합!"
연무장을 가득 채운 무림인들의 기합 소리가 부지를 울렸다.
어떤 적이 쳐들어와도 패퇴시킬 수 있을 만큼의 강대한 전력을 갖춘 곳이 이곳 무림협회의 본단이었다.
그런 무림협회 본단의 입구로 큰 화물 트럭 한 대가 진입하려 했다.
-끼익!
바리게이트가 내려가며 입구를 가로막았다.
무림 협회의 정문 입구를 지키는 경비원들이 나와서 화물 트럭의 진입을 제지시켰다.
팀장으로 보이는 노란색 견장을 찬 경비원이 손짓으로 창문을 열라 했다.
-위잉!
창문이 열리며 트럭 운전수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런데 트럭 운전수는 상당히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경비원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방문 등록이 안 된 차량인데 무슨 용무이십니까?"
"그, 그게...."
경비원의 물음에 트럭 운전수가 고개를 돌려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화물 트럭이 워낙 전장이 높다보니, 바깥에서 보조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트럭 운전수가 난감해 하는 모습이 보였다.
"네? 그, 그렇게 얘기하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경비원 팀장이 허리춤에 있는 권총으로 손을 가져가며 그를 다그쳤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당장 용무와 신원을 밝히십시오."
트럭 운전수가 난감하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저, 저 그게 제가 일부로 그러는 게 아니라...."
-착!
결국 경비원 팀장이 권총을 빼들어 트릭 운전수를 겨냥했다.
"당장 용무를 밝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불순한 의도로 판단합니다."
"히익!"
-휙!
경비원 팀장이 손짓을 하자, 다른 경비원들 역시도 권총을 빼들고 트럭의 주위를 포위했다.
당장에라도 트럭을 수색할 기세였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당장 용무..."
그때였다.
트릭 운전수의 옆에 앉아 있는 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무? 무림협회 본단을 쓸어버리러 왔다."
< 33화 무림협회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