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96화 (96/234)

< 32화 코어 정제 기기 (1) >

‘소교주!’

뜻밖의 임명에 모든 중진들이 놀라워했다.

방금 전만 하더라도 워낙 살벌하기 그지없었기에, 설마 이 자리에서 당장에 소교주로 임명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중진들이 그럴 진데 천유장이라고 다르겠는가.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했다.

“왜 대답이 없지? 그 나이에 소교주가 되는 것이 탐탁지 않은 것이냐?”

천여운의 그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달았다고는 하나 천마신교의 전설인 천여운이 그를 소교주로 직접 임명을 거행했다.

‘이런 영광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천유장이 경건하게 엎드리며 외쳤다.

“선조님의 기대에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그 신념 오래가길 바라마.”

이렇게 오랫동안 공석이던 천마신교의 소교주 자리에 천유장이 임명되었다.

어찌 본다면 그는 굉장히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다른 두 파벌의 수장들과 달리 잔머리를 굴리지 않고서 천여운의 존재를 인정했기 때문에 어부지리를 취한 셈이었다.

“자 그럼 회의를 계속 해볼까?”

-탁!

천여운이 상석에 앉자, 일어나 있던 중진들도 자리에 앉았다.

천유장 역시도 다시 자리에 착석했지만 여운이 가시지 않는지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본교를 합치는 문제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중진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회의의 중심 의제는 흩어진 천마신교의 모든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었다.

환명오 이사가 미리 준비해둔 PPT자료를 빔프로젝트로 틀었다.

벽면을 비추고 있는 그래프를 레이저 포인트로 가리키며, 나누어진 기업들의 현황 등을 설명했다.

“이 그래프를 보시면 현재 본교가 분파되어 생겨난 기업들입니다.”

총 사십여 개의 기업체였다.

블랙 스카이 컴퍼니가 해체된 이후로 크게는 세 파벌로 나뉜 천마신교는 용천 그룹과 천신 그룹이라는 재계 서열에 드는 걸출한 회사를 만들어냈다.

거기에 천우경 일파에 있다가 합류한 상위 종파의 종주들 중에는 중소기업과 벤처 기업을 운영하는 자들도 더러 있었다.

“상장된 그룹 중에서 주가가 월등히 높은 회사들이 총 열세 기업입니다.”

“인수 합병은 어렵겠는데.”

중진들이 비슷한 말을 해대며 중얼거렸다.

합병의 형태는 여러 방법이 나뉜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큰 회사가 작은 회사의 주식 지분을 전부 사들여, 흡수하는 형태이지만 그러기에는 자금의 문제가 따랐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동종 계열사들에 대한 신설 합병입니다.”

여러 계열사를 가진 용천 그룹과 천신 그룹은 동종 계열의 자회사들이 많았다.

중소기업이나 벤처 기업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회사들을 신설 합병을 해서 자금적인 부분에서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었다.

“다만 이 방법은 인수 합병에 비해서 시간이 걸립니다.”

그것은 각 회사의 주주들에 대한 설득을 요하기 때문이었다.

회사가 합병되게 된다면 더욱 우량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주주들에게 납득시켜서 신설된 회사의 신규 주식을 승계하도록 유도해줘야 한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절차들이 따랐다.

“복잡하군.”

천여운이 내심 혀를 내둘렀다.

예전과 다르게 현대 사회는 회사를 합치는 것 자체에 절차가 너무 복잡했다.

세금 문제부터 시작해 많은 제약이 따랐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러한 기업 경영 문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본교의 중진들이 책임지고 맡아서 해야 할 일이었다.

“기간은 얼마면 충분하지?”

“아직까지 천신 그룹 측과의 협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절차대로 하면 1년은족히 걸립니다.”

그런 환명오의 말에 천여운이 단호하게 말했다.

“길다.”

“하나 몇 가지는 국세청과 정부 경제 위원회의 허가 보고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총 네 차례에 걸쳐서 심사 및 확인 절차에 들어가기 때문에 단시간에 끝낼 수가 없습니다.”

다른 중진들도 이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작은 소기업이 합병하는 것이었다면 적당히 뇌물을 쥐어주는 수준에서 끝나겠지만, 초우량 기업 두 곳과 여러 기업들이 합쳐진다.

당연히 시 지자체가 아니라 중화 정부 차원에서의 각종 기관들에서도 적당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환명오.”

“네. 천마이시여.”

“너는 내게 정상적인 절차대로라는 말을 하였다. 그렇다면 그 절차 이외의 방법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 아니더냐?”

천여운의 날카로운 지적에 환명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무엇이 문제지?”

“국무원을 비롯해 여러 경제 기구에는 무림부와 무림협회의 연줄이 닿아 있습니다. 만약 이번 합병 건이 진행되면 그들이 전면으로 방해할 것입니다.”

천마신교 계열의 모든 기업들이 합병하게 된다면 그 성장 가능성은 순식간에 재계 이십 위 권 내로 진입할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

아무리 문제가 없게 진행해도 무림 협회의 방해는 극명했다.

“한심할 지경이구나.”

천여운이 실망스럽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가 집권하던 천마신교는 황실마저 움직이고, 무림 전체가 오히려 그의 행보를 눈치를 봐야할 지경이었다.

“송구스럽습니다.”

“천유장. 환명오.”

“네. 선조님!”

“네. 천마이시여.”

천여운이 두 사람을 응시하며 말했다.

“3개월 주지. 천신 그룹에 있는 왕신과 상의하여 그 안에 본교의 모든 기업들을 합병해라.”

“네? 처, 천마이시여. 그렇게 바로 되는 것이...”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네 녀석들이 해야 할 일이다.”

단호한 천여운의 말에 환명오 뿐만이 아니라 천유장 역시 당혹스러워했다.

경영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게 얼마나 무리한 주문인지 알 것이다.

천유장이 천여운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아아아, 선조님께서 또 다시 시험에 드셨구나.’

그것은 자신을 시험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무리한 요구를 들으니, 오랜만에 교주인 천우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블랙 스카이 컴퍼니를 이끌었던 천우진은 그를 비롯한 중진들에게 절대로 쉬운 일을 내려준 적이 없었다.

항상 돌파를 해야 하는 상황을 부여했다.

그것이 거대 단체를 이끌어가는 수장들이 바라보는 시선일지도 몰랐다.

천유장이 비장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해보겠습니다.”

환명오를 비롯한 중진들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철야를 넘어선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죽음의 미션이 주어진 것이다.

천여운이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경고했다.

“네놈들이 고작 이 수준에 머물렀는지를 더 잘 알겠구나. 앞으로 해보지도 않고서 내게 불가능하다. 할 수 없다. 힘들다는 말을 한다면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겠다.”

‘!!!’

중진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다 못해서 창백해졌다.

“대답들 해라.”

허봉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듣고서야 다급히 대답했다.

“충!!!”

허봉과 문란영은 이들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처음 미래의 후예들을 보게 된다는 기대감이 어느새 실망감으로 가득해졌다.

‘정신 교육이 필요하겠어.’

한 번은 손을 봐야겠다고 다짐하는 허봉이었다.

물론 천여운이 모든 것을 밑에만 일임한 채 지켜만 보는 성격은 아니었다.

“무림협회는 내가 처리해주도록 하지.”

“아!”

그 말에 천유장을 비롯한 중진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만약 그들의 견제를 막을 수만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활로는 마련할 수 있었다.

다만 우려가 되는 것도 없지는 않았다.

‘무림협회를 상대한다는 것은 곧 현 무림 전체를 상대한다는 말이다.’

제남시 무림협회 지부는 게이트 전을 빌미로 처리했다.

그 같은 경우는 갑작스럽게 닥친 일에 그들이 대응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무림협회가 자신들을 향한 칼날을 느낀다면 총력을 다해서 천마신교가 일어나려 하는 것을 막으려 들 것이다.

말 그대로 전면전이 될 양상이 높았다.

‘준비해야 될지도 모르겠구나.’

‘놈들과의 전쟁이라!’

27년 만에 다시 천마신교 대 무림의 양상이 그려지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속으로는 우려된다고 여기면서 그 표정들에는 전의가 고양되어갔다.

그만큼 27년의 원한은 뼛속 깊이 새겨져 있었다.

‘흥.’

그런 그들을 보면서 천여운이 콧방귀를 뀌었다.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를 꾸짖으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어보였다.

“항유린.”

“네. 천마이시여.”

“너는 다른 임무를 주겠다.”

“말씀하시옵소서.”

“환명오로부터 암종의 정보 조직의 운영권을 위임받아 천신 그룹 쪽의 정보 조직과 합쳐라.”

그 말에 환명오가 오히려 당황스러워했다.

“천마이시여. 암종은...”

대대로 비환귀종에서 맡아왔던 정보 조직이었다.

그 운영권을 항유린에게 위임하라고 하니 적잖게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암종을 통째로 넘기라는 게 아니다.”

“그 말씀은?”

“현 교주를 찾는 일을 맡아오던 정보대를 항유린에게 넘기라는 것이다.”

“아.....”

그제야 환명오가 안심을 했다.

사실상 이번에 합병에 들어가게 되면 환명오는 다른 업무를 할 여력이 없었다.

이를 천여운은 완전히 항유린 하나로 집중시키려는 것이었다.

“열흘 후에 천신 그룹의 수습이 끝나면 대호법이 이곳으로 올 것이다. 그에게서 비밀감옥 추적에 대한 정보를 전부 인수받아라.”

‘아!’

대호법은 27년이라는 세월 동안 오직 교주의 행방을 추적하는 일을 해왔다.

그 추적 데이터는 두 파벌보다도 방대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천여운은 지금까지 두 파벌과 대호법이 추적하던 모든 데이터를 종합하라는 지시를 내린 셈이었다.

“알겠습니다!”

“기한은 두 달을 주도록 하지. 그 안에 현 교주를 찾아내라.”

“충!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팍!

그녀가 한 쪽 무릎을 꿇고서 포권을 취하며 의지를 다졌다.

교주를 다시 찾는 것은 그들의 숙원 중 하나였다.

합병부터 시작해 교주의 행방을 찾는 일까지 업무 분장을 마친 천여운이 비서인 유소화에게 지시해 무언가를 들고 오라 하였다.

그것은,

“코어!”

천여운이 지금까지 얻은 A등급 코어와 C등급 코어였다.

이것을 부회장 부속실의 금고에 보관토록 했었다.

거기에 더해서 천여운이 허리의 벨트 가방에 들어 있던 S등급 코어를 꺼냈다.

-고오오오!

“오오오.”

“이, 이건....”

꺼내기만 했을 뿐인데 방대한 기운에 중진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S등급 코어다.”

“어, 어찌 이것을?”

무림부에 등록되어 있지도 않았고, 무림협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보니, 게이트 방위전에 대놓고 참전할 수 없었던 용천 그룹의 중진들은 코어를 볼 기회가 거의 전무했다.

그러다 보니 세 개나 되는 코어들을 보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네 녀석들에게 다른 의미로 시급한 문제가 있지.”

“........”

그 말에 천유장을 비롯한 중진들이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천여운이 누차 그들에게 과거에 비해 무위가 한심할 정도로 퇴보했다고 꼬집었었다.

그것은 천가의 직계인 천유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공들이 한심하더군.”

화경의 고수인 항유린조차도 과거 화경의 고수들에 비하면 내공이 고작 8할 수준에 불과할 정도였으니 꽤나 약해진 셈이었다.

이 점은 대자연의 기운이 과거보다 미약해진 것도 원인이었지만, 각종 운기 보조 기기를 원활하게 수급하고 게이트 전의 참전으로 코어를 정제해서 활용하는 무림 협회의 무림인들에 비해서 환경적

으로 천마신교의 교인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코어를 정제해서 본교의 전력을 끌어올린다. 알겠나?”

“충!!!”

천여운의 말에 중진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현 시대에 있어서 코어는 내공을 향상시킬 수 있는 최고의 영단이었다.

그 기회가 제공된다면 무위를 끌어올리는 게 비단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코어라니!’

입술들을 실룩거리는 것이 많이 기쁜 모양이었다.

“듣기로는 코어를 정제하는 기술이 있다고 하던데, 그걸로 영단을 확보할 수 있겠지?”

물론 천여운이 나노를 통해 이것을 정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일일이 코어의 에너지를 흡수해서 타인에게 넘기는 짓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것에 관련하여 환명오가 말했다.

“안 그래도 보고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본교는 코어를 정제할 수 있는 기술을 확립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여러 제약이 따랐다.

무림인 등록을 하지 않은 천마신교의 교인들은 게이트 전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코어의 수급이 없다보니 당연히 기술 확립 자체가 어려웠다.

“정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제남시 무림 지부를 정리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코어 정제기기를 찾아냈습니다.”

환명오는 예전부터 이 기술을 확보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무림 협회와 대립할 수 없기에 매번 바람으로만 끝났는데,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서 정제기기를 확보한 것이었다.

“그건 잘했군.”

간만에 나온 칭찬에 환명오가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기기는 어디에 있지?”

“제남시 무림 협회 지부에서 관리하는 물산 창고에 있습니다.”

“왜 옮기지 않았지?”

의아해하는 물음에 환명오가 답했다.

“기기가 워낙 커서 그것을 분해해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함부로 분해할 수가 없어서 도면 확보 먼저 실시했습니다. 어제 그것이 완료되어서 오늘 오전부터 분해 작업이 실시되었습니다. 언제쯤 이송되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환명오가 스마트폰으로 이송 작업을 하고 있는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발신음이 계속해서 울리는 데도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는지 환명오가 인상을 찡그리고는 그곳을 경호하는 책임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어?”

그런데 경호 책임자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환명오가 스마트폰의 문제를 살펴보았다.

그는 삼십 분 단위로 경호 책임자에게 이상유무에 대한 것을 문자하도록 지시를 내렸었다.

아니나 다를까 40분 전에 왔던 문자를 마지막으로 보고가 없었다.

환명오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천여운에게 말했다.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  *  *

제남시의 남쪽 부근에 자리하고 있는 무림협회의 물산 창고 건물.

그곳에는 제남시 내에 있는 여러 기업들의 물류 창고들과 공장들이 밀집한 곳이었다.

더욱 은밀한 곳을 지정할 수 있지만, 오히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것처럼 과감하게 밀집 지역에 창고를 세운 무림협회였다.

섹터 7번 창고.

그곳에 코어를 정제할 수 있는 기기가 있었다.

기기라는 명칭을 붙였지만 실질적으로는 400톤에 이르는 기계였다.

근 30평을 차지할 만큼의 기계이다 보니, 분해를 해서 대형 트럭 몇 대를 이용하지 않으면 옮길 수도 없었다.

그런 정제 기기의 대부분이 분해되어 박스로 옮겨 담고 있었다.

-위이잉!

그 박스들을 화물 운반 기계가 트럭으로 쉴 새 없이 옮겼다.

이를 팔짱을 끼고서 지켜보고 있는 남색 패딩 점퍼를 입은 중년인이 있었다.

그의 허리춤에 차고 있는 푸른 검집을 보면 무림인임을 알 수 있었다.

-스륵!

그때 그의 앞으로 검은 복면을 쓴 자가 나타났다.

“시신들을 전부 처리했습니다.”

“경호 책임자가 문자를 보낸 시간을 기준으로 몇 분 정도 지났지?”

“15분 가량 지났습니다.”

“얼추 시간을 맞출 수 있겠군.”

거의 대부분을 분해해서 박스를 싣고 있는 중이었다.

앞으로 십분 정도면 끝날 듯 했다.

“용천 그룹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경공을 펼쳐도 40분은 걸릴 터이니, 이대로 화물 기차로 이송하면 될 것 같습니다.”

“서둘러라.”

중년인의 그 말에 복면인이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공께서 이렇게 손수 보호해주시니, 저희가 안심하고 임무에 착수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그들이 온다고 해도 두렵지는 않습니다.”

그의 말에 중년인은 낯이 간지럽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실없는 소리를.”

“진심입니다. 저는 협회에서 고수 분을 파견하셨다고 해서 누군가 싶었는데, 설마 공이 오실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무림인으로 영광입니다.”

추켜세우는 복면인의 말에 중년인이 입술을 실룩거렸다.

칭찬을 싫어하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오대고수 중 한 분인 곽 공과 공께서 직접 키우신 매화십팔수가 이곳을 지키고 있는데, 그깟 마교 잔당 놈들이 온다고 해봐야 어찌 하겠습니까?”

놀랍게도 중년인의 정체는 현 무림의 오대고수 중 일인인 화산검제 곽운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대고수가 이곳 제남시에 강림한 것이다.

복면인이 그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만 금칠하고 남은 일이나 마무리 하게나. 자네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본인이...”

-데굴데굴!

곽운이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뭔가 둥근 것이 그들의 앞으로 굴러 떨어졌다.

복면인이 뭔가 싶어서 고개를 내려 그것을 살폈는데,

“헉!”

그것은 사람의 목이었다.

그 자의 얼굴을 본 곽운의 두 눈이 커졌다.

“성겸!”

죽은 자는 그의 제자들 중 한 명인 매화십팔수의 일인인 오성겸이었다.

다른 네 명의 사형제들과 함께 물산 창고의 남쪽 입구를 지키고 있어야 할 그가 머리통만 날아왔으니 어이가 없었다.

‘아무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대체 누가?’

오대고수인 그의 기감을 피해서 누군가 잠입했다는 소리였다.

그때 어디선가 또 다른 무언가가 날아왔다.

-데굴데굴!

이번에는 두 개였는데,

“한충! 윤환!”

그것들 역시도 매화십팔수들의 머리통이었다.

이들은 물산 창고의 동쪽 입구를 지키고 있어야 할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죽은지도 모르는지, 멍한 표정으로 죽어 있었다.

“과, 곽 공!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요?”

복면인 역시도 이 사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곽운이 기감을 최대한 열어 주위의 기척을 감지하기 위해 집중했다.

그때 어디선가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졌다.

‘예기!’

그곳은 물산 창고의 서쪽 입구 방향이었다.

“감히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곽운이 검결지를 쥐고서 서쪽 방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챙!

곽운의 허리춤에 있던 검집에서 화산파의 보검인 홍옥매화검이 뽑혀져 나오며, 서쪽 입구가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네놈을 놓칠 것 같으...”

-푹!

“컥!”

그 순간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곽운이 날려 보냈던 홍옥매화검이 날아와 복면인의 가슴을 관통했다.

“과, 곽 공!”

복면인이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오직 오대고수인 그만을 믿고 있었는데,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노기로 가득했던 곽운의 눈빛이 당혹감으로 가득 찼다.

‘이, 이기어검을 펼친 내 검이 어째서?’

검이 어떻게 날아왔는지조차 보이지도 않았다.

그때 그의 귓가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그 자는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는지 기척을 죽이지 않았다.

곽운이 천천히 발걸음이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뚝! 뚝!

창고의 어두운 그림자로 누군가 걸어 들어왔는데, 그의 손에는 무언가 쥐어져 있었다.

“병찬!!!”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것은 매화검수 중 한 사람인 배병찬이었다.

놀란 얼굴을 한 채로 죽은 배병찬의 목을 그림자에 걸쳐 있는 자가 곽운을 향해 던졌다.

-데굴데굴!

“네, 네이노오오오옴!”

제자들의 죽음에 이성을 잃은 곽운이 다시 한 번 그 자를 향해 검결지를 뻗었다.

-슉!

복면인의 가슴에 꽂혀 있던 홍옥매화검이 뽑혀져 나와 그림자에 반쯤 가려진 그 자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그런데 검이 가던 도중에 멈춰 섰다.

-파르르르르!

“끄으으!”

검결지를 뻗고 있는 곽운의 오른손에 핏줄이 올라섰다.

진기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는데도 홍옥매화검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차차차창!

그 순간 허공에서 멈춰 서서 떨고 있던 홍옥매화검의 검신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푸웃!”

-타타탁!

곽운이 피를 뿜으며 뒤로 세 보 밀려났다.

진기 대결에서 처참하게 패하면서 내상을 입은 것이었다.

현 무림의 다섯 정점이라 불리는 오대고수인 그가 이런 수모를 겪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끄으으, 네놈.....네놈! 대체 누구냐!”

곽운이 그림자에 가려진 정체 모를 자를 노려보며 일갈을 질렀다.

-저벅저벅!

그때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정장을 입은 하얀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그는 바로 천여운이었다.

‘젊어?’

아무리 봐줘도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얼굴에 곽운이 어이가 없어했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실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고작 이 정도 수준으로 오대고수라는 칭호를 붙이다니, 한심하군.”

“뭐, 뭣?”

< 32화 코어 정제 기기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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