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알파 고스트 (2) >
흐릿한 연기와 같은 병장기를 움켜쥐고 있는 60여 개체의 고스트들의 위용에 무림인들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만약 고스트들 하나하나가 살아 있을 때에 버금가는 무공을 펼칠 수 있다면, 그들은 지금 최악의 위기에 직면해있다고 할 수 있었다.
‘대,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유일한 장점이 저들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 우위였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소용없게 된 상황이었다.
-서서서서서서석!
고민할 겨를을 주지 않으려는지 알파 고스트가 움직였다.
놈이 앞으로 살짝만 움직이자, 생기를 잃어가는 바닥의 범위가 더욱 넓어져갔다.
거의 공장 건물의 5분의 1 가까이를 차지했다.
“도, 도망쳐야 해.”
“저것들을 상대할 수 없어.”
겁을 잔뜩 집어먹은 무림인들이 도주를 하자고 말했다.
이에 그들이 몸을 돌려 생존자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려 했는데,
-스르륵! 스르륵! 스르륵!
공장의 반대편부터 천장까지 일반 고스트들이 출몰했다.
그 숫자가 너무 많았다.
얼핏 봐도 이 공장 지대 근처에 있는 놈들이 전부 이곳으로 몰린 것 같았다.
“이런 젠장!”
퇴로가 완전히 막혀버린 것이었다.
무림인들이 당황스러워하는데, 알파 고스트에게서 웃음소리와 비슷한 스산한 무언가가 들려왔다.
-흐으흐으흐으.
흐릿한 유령 같은 놈이 헤벌쭉 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소름끼칠 지경이었다.
“설마 고스트들을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알파 개체가 일반 위험 개체의 리더인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지성이 두드러져 보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병력을 통제하고 다룰 줄 알았다.
“꺄아아아악!”
“트, 틀렸어. 우린 모두 죽을 거야.”
생존자들이 용광로 공장 건물을 포위한 고스트들에 공포를 넘어선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 속에서 제정신을 차리는 것은 어려울 일이었다.
무림인들조차도 그럴 진데 말이다.
‘안되겠다. 활로는 오직 한 곳뿐이야.’
‘알파 고스트와 무림인 고스트를 동시에 상대하는 건 무리다.’
무림인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생존자들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계속 공장 벽을 통과해서 나타나고 있지만 적어도 저들은 검기나 도기에 타격을 받는다.
적을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활로를 뚫는 것이라면 유일하게 가능성이 있었다.
-서서서서서서석!
바닥의 생기를 잃는 범위가 넓어져 갔고 고스트들이 이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듯이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왔다.
-흐으흐으흐으!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고 있는 알파 고스트의 의지이리라.
무림인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단을 내린 그들이 움직이려는 순간,
-슥!
그때 천여운이 입을 열었다.
“허봉.”
“넵! 주군!”
“명령을 바꾸도록 하지. 네 아내와 저들을 피신시켜라. 이곳은 내가 정리한다.”
“충!”
힘차게 대답하면서도 허봉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또한 천여운과 함께 이곳에서 싸우고 싶었으나, 상태가 좋지 않은 문란영이나 생존자들을 그대로 방치해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여보님의 부탁이니까.’
교인들도 아니었기에 생존자들이 죽는 것은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그녀의 부탁은 중요했다.
허봉이 두 팔을 들어올렸다.
그 순간,
-화르르르륵!
허공에 수십 개의 불꽃의 구가 생겨났다.
뜨거운 열기에 포위망을 좁혀오던 고스트들이 당황하기라도 한 듯 앞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뭐, 뭐야? 저놈도 괴물이었나?’
개방 방주 홍팔선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여운은 그렇다 치더라도 허봉까지 저리 강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도저히 무림인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무지막지한 화기(火氣)에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화기를 완전히 체화했군.’
천여운은 그의 발전에 내심 흡족해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때도 물론 허봉의 실력을 보았지만, 천 년 전과 비교한다면 장족의 발전 아니, 환골탈태(換骨奪胎) 수준이었다.
허봉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주군처럼 정밀하게 다루진 못해도 이건 되거든.”
허봉이 고스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불꽃의 구들이 일제히 고스트들을 향해 쇄도했다.
-화르르륵! 슈슈슈슈슈슉!
포탄처럼 쏘아지는 불꽃의 구에 고스트들이 우왕좌왕 피하려고 했지만, 워낙 숫자가 많은 것이 오히려 좋은 과녁판이 되어버렸다.
-파파파파파팍!
불꽃의 구에 맞은 고스트들이 고열에 찢겨나 가버렸다.
허봉은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공장 벽면을 향해 불꽃의 구들을 집중적으로 포격시켰다.
-슈슈슈슈슈슉!
-콰콰콰콰쾅!
그로 인해 고스트들로 막혀 있던 공장 북쪽 입구가 열리게 되었다.
이를 놓치지 않고서 문란영이 생존자들에게 외쳤다.
“내가 앞장 설 테니 모두 따라와요!”
-팟!
그녀가 앞으로 나서며 불꽃의 구를 하나씩 쏘아 죽지 않은 고스트들을 소멸시켰다.
아까 전에 대부분의 기운을 소진했지만 일반 고스트 몇 개체 정도는 쉽게 상대할 능력이 되었다.
“어, 어서 따라갑시다!”
“살았다!”
“와아아아아아!”
죽을 상을 하고 있던 생존자들이 함성을 지르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허봉이 그 뒤를 따라가며 불꽃으로 가까이 접근하는 고스트들을 제거했다.
“됐어! 활로가 열렸소이다!”
“우리도 어서 따라갑시다!”
무림인들이 화색이 돌아서 반대편으로 신형을 날렸다.
홍팔선 역시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다른 무림인의 부축을 받고서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팡!
“헛?”
경공을 펼치던 무림인들이 뭔가에 막혀서 튕겨나가고 말았다.
뭔가 싶어서 다시 가보려고 했으나, 역시나 단단한 벽이 있는 것 마냥 막혀버렸다.
“이게 뭐야?”
“지나갈 수가 없어.”
당황해하는 차에 홍팔선이 떨리는 눈으로 중얼거렸다.
“이, 이언.....힌기?”
‘이, 이건......진기?’
부상이 심하다고 하나 기감이 죽은 것은 아니었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심후한 진기 그 자체였다.
“진기라고요?”
무림인들의 시선이 앞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천여운에게로 향했다.
그의 대단한 내공보다도 자신들을 가로막고서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더욱 황당한 그들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요!”
“빨리 진기를 풀지 못하겠소?”
-스서서서석!
점점 그들이 있는 바닥의 코앞까지 하얗게 생기를 잃어갔다.
이러다간 당할 지도 모를 판국이었다.
천여운이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무림인들에게 냉정하게 말했다.
“언제부터 같은 편이었다고 그런 요구를 하나?”
“뭐, 뭣?”
그 말에 무림인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공공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위험 개체가 있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들과 척을 지려고 할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제발 이러지 마시오!”
“이렇게 부탁하겠소이다. 같은 무림의 동도로서 길을 열어주시오.”
“이건 아니지 않소!”
무림인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애원을 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천여운은 전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잘 싸워보라고.”
오히려 이죽거리며 그들을 응원해주었다.
“빌어먹을 놈이!”
“깨버리고 말겠어!”
결국 무림인들이 도기와 검기를 일으켜 진기의 벽을 강제로 부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스르르륵!
어느새 죽은 무림인들이 변한 고스트들이 그들을 향해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헉!”
“마, 막앗!”
무림인들이 다급히 놈들에게 맞섰다.
아까 전에 보았던 것처럼 무림인 고스트들은 생전에 사용했던 무공을 펼치며 무림인들을 공격해왔다.
-파파파팍!
마치 무림인들끼리 대결하는 양상이 되어버렸다.
다만 고스트들은 근접해서 싸우게 되면 극도로 위험하기에 무림인들이 보법을 펼치며 최대한 거리를 벌리려고 안간 힘을 썼다.
“큭!”
유일하게 부상으로 전투를 벌일 수 없는 홍팔선만이 진기의 벽 앞에 남아, 천여운을 증오스럽다는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네놈은 정녕 인간도 아니구나. 정히 원한을 풀고 싶다면 인류의 적인 저 위험개체들을 먼저 처리해도 되건만.]
입술이 뜯겨나가 말이 어눌해진 그가 전음을 보내왔다.
전음은 그럭저럭 발음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적이라....”
[우리와 고스트들을 싸우게 하고서 어부지리를 취하려는 것이 아니느냐! 하지만 아무리 네놈이 강하다고 해도 혼자서 저...]
-콱!
“켁!”
언제 진기의 방벽을 푼 것인지 천여운이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홍팔선이 켁켁거리며 고통스러워했다.
“뭔가 착각하고 있군.”
“켁켁....뭐?”
“내가 고작 어부지리 따위를 취하려고 네놈들을 공장 밖으로 내보내지 않은 것 같으냐?”
그 말과 함께 천여운이 왼손을 위로 뻗었다.
-화르르르륵!
그러자 용광로 공장에 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화염의 검이 생성되었다.
공장 안이 화염검의 열기로 뜨거워졌다.
“이, 이건?”
“불꽃의 검?”
고스트들과 엎치락뒤치락 싸우고 있던 무림인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까 전 허봉이 보였던 불꽃의 구와는 차원이 달랐다.
홍팔선이 얼마나 경악했는지 고통도 잊고서 떨리는 눈으로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이, 이놈은 대체?’
현 무림의 정점이라 불리는 오대고수.
아니 최강자라 불리는 무림 협회장도 이런 것이 가능할까?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네놈들을 한 번에 다 처리하면 될 일을 뭐 하러 그렇게 번거로운 짓거리를 한단 거지?”
‘!?’
천여운의 그 말에 홍팔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애초에 그들을 전부 죽여 버릴 목적이었던 천여운이었다.
허봉에게 문란영과 생존자들을 내보냈던 것도 꺼릴 것 없이 힘을 개방시키기 위함이었다.
-흐어흐어흐어!
그때 알파 고스트가 이상한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무림인들을 상대하던 고스트들을 비롯해 일반 고스트들이 일제히 천여운을 향해 쇄도해왔다.
“마물 주제에 눈치는 빠르구나.”
알파 고스트는 천여운을 저지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천여운이 놈을 바라보며 입 꼬리를 올렸다.
“늦었어.”
그리고는 목을 움켜잡고 있던 홍팔선을 들어 들어올렸다.
“어어어? 이...이그...머하러고?”
‘어어어? 지, 지금 뭐하려고?’
홍팔선이 두 눈이 커져서 온몸을 미친 듯이 바동거렸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천여운이 이내 떼거지로 쇄도해오는 고스트들을 향해 홍팔선을 던져버렸다.
“아.....안에에에에에!”
‘아, 안돼에에에에에!’
당황한 그가 절규하듯이 외쳤지만,
-파악!
“컥!”
고스트들과 정면으로 부딪친 그의 몸은 순식간에 생기를 잃고서 하얗게 서리 내린 것처럼 변색되어 죽고 말았다.
"지부장니이이임!!!"
홍팔선의 어이없는 죽음에 무림인들이 격분해서 천여운을 노려보았다.
설마 고스트들에게 던져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 잔인무도한 악인 같으니!"
"어떻게 그런 짓을!"
천여운은 그들의 원망을 전혀 개의치않고서 들어올린 왼손을 움켜쥐었다.
“네놈들 목숨이나 걱정해라.”
“뭣?”
-화르르륵!
그 순간 허공을 가득 메우고 있던 화염의 검들에서 일제히 불꽃의 광선이 사방으로 뻗어나왔다.
-촤촤촤촤촤촤촤촤촥!
“이, 이런 미친!”
“피햇!”
기겁한 무림인들이 피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화염의 광선이 공장 내부를 완전히 휩쓸어버렸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천공섬광(天空閃光) 화(火).
그 위력은 일반 탄검강을 내뿜을 때의 천공섬광을 훨씬 상회했다.
무차별적인 화염의 광선은 고스트들 뿐만 아니라 무림인들, 그리고 용광로 공장 전체를 파괴시켜버렸다.
인근 400미터 가량 떨어진 공장 부지.
-쾅! 쾅! 쾅!
여기저기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게 뭔 일이여?”
“저길 봐!”
-촤아아아아!
멀리서 하늘을 가로지르며 뻗어 나오고 있는 화염의 광선들에 도망치던 생존자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 방향은 그들이 있던 용광로 공장이었기 때문이었다.
허봉만이 그것을 보고서 웃고 있었다.
“히히. 역시 주군 최고십니다.”
< 29화 알파 고스트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