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S등급 위험개체 (2) >
-화르르르륵!
“이, 이게 뭐야?”
운전병이 군용 트럭을 둘러싸고 있는 화염검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운전해라.”
-슥!
천여운이 뻗은 손을 검결지로 움켜쥐고서 가볍게 휘저었다.
그 순간 군용 트럭을 둘러싸고 있던 수백여 자루의 화염검들이 무서운 기세로 앞에서 날아오는 고스트들을 향해 쇄도했다.
-파파파파파팍!
순수한 고열 그 자체인 화염검들은 파도가 몰아치는 것처럼 고스트들을 휩쓸었다.
화염검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놈들이 움직일 때 생겨나는 특유의 입자 족적조차 남지못했다.
마치 폭군을 보는 듯 했다.
“팽 선배님.....저, 저 자는 대체 누굽니까?”
오검문의 문주 오현이 입이 쩌억 벌어져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팽능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강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화기로 만든 이 많은 검을 이기어검으로 다룬다고? 이게 정녕 인간인가?’
수백 자루의 화염검이 의지를 가진 것처럼 날아다녔다.
이기어검이라는 말이었는데, 저 많은 검을 다룰 수 있는 자는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었다.
-화르르르륵!
화염검이 촘촘한 거미줄처럼 허공에 불길의 궤적을 남겼다.
이런 불꽃의 궤적은 군용 트럭의 반경으로 진입하는 수많은 고스트들을 전부 압살시켜버렸다.
S등급 위험개체라는 말도 천여운의 힘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내,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지?’
‘인간이 아니야.’
무림인들은 넋을 놓고 이것을 바라봐야 했다.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브리핑 때 들었던 그 위험하다던 고스트에 대한 두려움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였다.
‘캬! 역시 주군!’
유일하게 이를 뿌듯하게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은 허봉뿐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천여운의 신위는 변함없이 전율을 불러 일으켰다.
‘히히. 이게 바로 대 천마신교의 마신님이시다. 이놈들아.’
아혈만 점해져 있지 않았다면 입 밖으로 내뱉었을 허봉이었다.
압도적인 천여운의 무위 덕분에 위기를 넘긴 군용 트럭은 고스트가 없는 지역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나 허세를 떨던 무인들은 입이 무거워졌다.
괴물 같은 천여운 앞에서 입방정을 떨기에는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오검문의 문주 오현도 마찬가지였다.
‘팽 선배님이 왜 이 트럭을 탔는지 알겠구나.’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군용 트럭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트럭은 방벽 내곽 쪽을 완전히 벗어났다.
“다행이다. 고스트들이 보이지 않네.”
“하아, 이제 숨을 돌릴 수 있겠어.”
긴장이 풀렸는지 무림인들이 안도했다.
방벽이 가까웠던 지역은 밖으로 벗어나려는 고스트들로 넘쳐났었다.
하지만 안으로 접어들면서 인적이 드문 도로를 달리자 고스트들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아.....”
도로에 드문드문 보이는 참혹한 광경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곳곳에 전복되거나 부딪친 차량들이 보였다.
죽어 있는 시신들의 대부분이 서리가 내린 것처럼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다.
‘끔찍하구나.’
‘어찌 이런 일이....’
이 모든 것이 게이트가 방벽 내에 열린 결과였다.
아포칼립스, 즉 종말이 벌어진 세계라도 온 것처럼 대동시는 죽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멀쩡한 것이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치칙! 여기는 사령부. 이호성 중위입니다. 서쪽 제 1팀 들립니까?
그때 헬멧의 무전기로 브리핑을 진행했던 중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래 이 팀의 리더는 팽능겸이었는데, 모두가 자연스럽게 천여운의 눈치를 보았다.
팽능겸조차도 말이다.
-휙휙!
천여운이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젓자, 팽능겸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헬멧의 무전기 버튼을 누르고 답했다.
“들리오.”
-하아....다행이군요. 사령관님 서쪽 1팀은 무사히 진입했습니다.
중위의 말에 무림인들의 표정이 의아해졌다.
마치 다른 투입 팀에서는 사고가 터지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팽능겸이 물어보았다.
“혹시 다른 방향의 투입 팀에 문제라도 생겼소이까?”
-동쪽으로 진입한 두 팀이 전부 전멸했습니다.
그 말에 무림인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두 팀이 전멸했다는 것은 군용 트럭에 타고 있던 60명의 무림인들이 전부 죽었다는 소리였다.
“허어....”
동쪽 팀에서 제일 강한 자가 초절정의 고수였다.
다른 투입 팀에 비해서 비교적 전력이 떨어졌지만 전멸은 충격적이었다.
-다른 팀도 그리 무사하진 않습니다.
이들이 진입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투입 팀에서도 방벽 내로 진입하면서 고스트들의 습격을 받았다.
다소 침착한 중위의 말투를 들어보면 어느 정도 희생은 짐작했던 것 같았다.
이호성 중위가 물었다.
-서쪽 1팀은 희생자가 어느 정도입니까?
“아직까진 없소.
-네?
중위가 놀란 목소리로 반문했다.
-희생자가 없다고요?”
“다행히 우리 쪽에는 희생자도 부상자도 없소이다.”
-이것 참.....놀랍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중위가 진심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유일하게 사상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은 진입 팀이었으니 말이다.
“아니올시다. 전부...”
팽능겸이 그 공을 천여운에게 돌리려 했으나,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전음으로 들려오는 천여운의 경고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천마신교의 부활을 위해서 명성과 지지를 얻는 것은 필요하지만, 굳이 정부나 방위군에게 자신의 정보가 넘어가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전부?
“아니오. 운이 좋았을 뿐이네.”
-겸손하시군요. 아무튼 팀원들이 전부 무사하시다니 잘됐군요. 지금 보내드리는 좌표를 탐색해주시겠습니까?
-삐빅!
헬멧의 고글로 지도와 함께 좌표가 표기 되었다.
팽능겸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곳을 왜?”
-......이 좌표에 알파 개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탐색하시고 주변 상황을 보고 부탁드립니다.
“흐음.....알겠소이다.”
팽능겸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대답은 알겠다고 했다.
알파 개체가 있다면 그곳에 향하는 것이 맞다.
다만 방벽 내부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알파 개체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다.
‘생존자가 있는 건가?’
그 외에는 안의 상황을 알 방법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무작정 알파 개체를 찾아 헤맬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방위군의 지시를 따르는 편이 나아보였다.
“흠흠, 귀공 어찌하시겠소?”
무전기를 끄고서 팽능겸이 조심스럽게 천여운의 의견을 물었다.
여기서 제일 강자인 그를 존중했다.
하지만 천여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에도,
“여기까지로군. 나는 빠지겠다.”
“헛? 그게 무슨 말이오?”
“말 그대로다. 너희들은 좌표대로 가라.”
“알파 개체가 있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같이 가지 않겠다는 것이오?”
“그래.”
천여운이 가지 않겠다는 말에 팽능겸뿐만 아니라 다른 무림인들도 당혹스러워했다.
그와 같이 있다면 이런 사지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오검문의 문주 오현이 다급히 나서 그를 만류했다.
“귀공께서 같이 가지 않으면 여기 있는 무림인들은 어쩐단 말입니까?”
알게 모르게 의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그였다.
천여운은 전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허봉을 데리고 트럭에서 내리려고 했다.
그러자 한 무림인이 불만스러운 어조로 투덜댔다.
“주어진 임무를 등한시하고 혼자 탈선하겠다니 너무 무책임한 것이 아니오?”
불안함이 불만으로 표출된 것이었다.
그런 그 무림인의 목을 누군가 움켜쥐었다.
-꽉!
“컥!”
“이야. 감히 누구한테 징징대는 거냐? 응?”
그는 허봉이었다.
목을 붙잡힌 무림인은 장도방의 후예로 초절정 초입의 고수였으나, 허봉의 손아귀에 잡힌 순간 몸을 파고드는 뜨거운 기운에 괴로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컥컥...제발 이 손 좀!”
허봉이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말했다.
“내가 왜에? 주군을 모욕한 너 같은 놈은 당장 목을 부러뜨려...”
“허봉 놓아줘라.”
“네? 하지만 이놈이 주군을....”
“죽일 가치도 없다.”
그 말에 허봉은 순순히 손을 뗐다.
덕분에 무림인들은 더 이상 천여운이 이탈하는 것에 대해서 만류할 수가 없었다.
“무인이라는 것들이 보호받기를 원하다니....한심하기 짝이 없군.”
정말로 죽일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천여운은 혀를 차면서 허봉과 함께 북서쪽 방향으로 사라졌다.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보라보던 트럭 위에 있던 무림인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트럭에서 벗어난 천여운은 곧장 대호법 마라윤이 얘기해준 좌표로 향했다.
애초에 목적은 동면 중인 대장로인 문란영을 깨우는 것이었다.
좌표는 대동시의 북서쪽에 있는 나무 한 그루 없는 모래와 돌산으로만 이루어진 민둥산들이 집밀한 곳이었다.
빠른 경공으로 그들은 불과 30분 채 되지 않아 좌표 지점에 도착했다.
거친 돌산으로 된 험난한 협곡을 따라 들어가자 한 숨겨진 동굴이 나왔다.
“히히히.”
허봉은 가는 내내 아내인 문란영을 볼 생각에 헤벌쭉거렸다.
그러나 숨겨진 동굴 안에 들어와서는 그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동굴이 절반도 들어가지 않아서 무너져 내려 막혀 있었다.
“이럴 리가?”
이미 백기가 사라진 전례가 있기에 허봉이 불안함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천년빙옥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면 동굴 전체에 싸늘한 한기로 가득해야 했는데, 전혀 그런 것도 없었다.
“주, 주군! 설마 그 에메슨가 하는 놈들이 왔다 간 걸까요?”
허봉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만약 그런 것이라고 한다면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었다.
“흠.”
천여운이 무너져 막혀 있는 벽면을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이것은 외부의 충격에 의해서 무너져 내린 게 아닌 듯 했다.
‘나노. 네 의견은?’
[미세한 바람이 안쪽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무너진 게 아닙니다.]
‘그렇지?’
그의 생각과 동일했다.
“허봉 비켜봐라.”
“네넵.”
천여운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돌 파편들에 손을 뻗었다.
돌들이 심후한 진기에 의해서 들썩거리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커다란 파편들이 몇 개 빠져나오자 얼마 있지 않아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 완전히 무너졌던 게 아니었네요.”
“가보자.”
그들은 다시 뚫린 동굴 통로를 따라 들어갔다.
“엇? 주군 저길 보십쇼.”
허봉이 가리킨 통로의 바닥에 무언가 널브러진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해골로 추정되는 뼛조각들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횃불을 비춰보니, 해골들은 검게 그을려서 상당히 훼손된 상태였다.
-슥!
천여운이 손을 가볍게 휘젓자, 뼈에 묻어있던 그을음이 벗겨졌다.
해골들의 대다수가 타격을 입기라도 했는지, 갈비뼈를 비롯해 여러 뼈 부위가 부러지거나 으스러져 있었다.
‘이건?’
해골들을 유심히 살피던 천여운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허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주군 왜 그러시는 건지?”
그의 물음에 천여운이 말했다.
“마룡장법에 의한 상흔이다.”
마룡장법, 그것은 마룡장종의 독문무공이었다.
대장로 문란영의 절기이기도 했다.
* * *
대동시의 도시 남서쪽에 있는 한 제철소 공장 단지.
공장 부지 내에는 수많은 아비규환이 흔적들이 참혹하게 남아 있었다.
도망가다가 죽은 자들로 추정되는 시신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스르르르!
공장 단지 내에는 여전히 수많은 고스트들이 둥둥 떠다니며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 해냈다.
그런데 사방으로 존재하는 고스트들이 유독 보이지 않는 곳이 하나 있었다.
그곳은 제철소에서 용광로가 작동하는 공장이었다.
공장이 가동되는 동안에는 다른 곳보다도 훨씬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이 공장만큼은 고스트들도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그리 오래 갈 것 같지 않아보였다.
“빌어먹을!”
한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가는 눈매에 검은 얼룩으로 가득한 회색 정장을 입고 있는 사내가 연신 욕을 내뱉었다.
“그만 좀 욕해요. 당신 때문에 더 불안하잖아요.”
그런 그를 주변에 있던 한 오십대 중년의 여자가 나무랐다.
이에 정장의 사내가 화가 난 얼굴로 소리쳤다.
“당신? 하! 이 사태가 났다고 이젠 청소부 아줌마도 나무라네?”
사내의 신경질에 중년의 여자도 화가 나서 따져댔다.
“뭐? 청소부 아줌마? 그래! 말 다했다. 어차피 전기도 나가서 용광로 불도 꺼지면 다 죽게 생겼는데! 내가 아들내미 뻘 되는 너한테 한 마디도 못하냐! 니가 시청 기획실장이면 다야?”
가는 눈매의 이 사내는 대동시 시청의 기획실장을 맡고 있는 자였다.
그의 이름은 조형만.
안전부 부장인 조형무의 장남이었다.
“뭐? 이 아줌마가 진짜 미쳐가지고!”
-퍽!
“악!”
조형만은 기어코 참지 못하고 중년의 여자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아니 이 사람이!”
이를 참지 못한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나서려고 하자, 한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이들을 만류했다.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저희들끼리 싸우면 어쩌자는 겁니까?”
사람들이 황당하다는 듯이 뭐라했다.
“아니. 말리려면 저놈을 뭐라 해야지. 지금 같은 시청 직원이라고 편을 드는 거요?”
“무림부 차장이라고 하더니, 순 똑같은 놈들이구만.”
주변인들의 비난에 간장한 체구의 사내가 난감해했다.
그는 대동시 시청의 무림부 차장 한준표라는 자로 상사나 다름없는 기획실장 조형만을 보호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전부 날카롭구나.’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겨우겨우 살아남은 생존자들이었다.
스무 명 밖에 되지 않는 자들이 고스트들을 피해가면서 유일하게 놈들이 들어오지 않는 단 하나의 장소를 찾았다.
그곳이 이 용광로가 있는 공장 건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시 전체의 전기가 끊기면서 상황이 바뀌어갔다. 용광로가 점차 식어가면서 공장의 온도가 빠르게 낮아지고 있었다.
‘저놈이 제일 문제지만.’
한준표 역시도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한다.
마음 같아서는 조형만을 두드려 패고 싶었지만 윗사람인데 어쩌겠는가.
게다가,
[한준표 차장.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나를 보호해준다면 우리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국무원 무림부서로 발탁되도록 힘써주겠네.]
그 말이 가장 컸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를 어떻게든 케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것도 점점 힘들어졌다.
“칫. 머저리 같은 놈들.”
“뭐가 어째?”
조형만은 주변 사람들의 심기를 너무 많이 건드리고 있었다.
몇 번이나 만류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태생이 금수저라서 그런지 본성이 갑질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자였다.
그가 유일하게 잘 보이는 자는 딱 한 사람뿐이었다.
[문 비서. 기획실장님 좀 말려 보게.]
한준표의 전음에 갈색 스커트에 고혹적이면서 아름다운 단발의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기획실의 비서장으로 조형만이 유일하게 잘 보이기 위해 안달이 난 여인이었다.
“실장님. 참으세요.”
그녀의 사근사근한 목소리에 조형만이 못이기는 척 물러났다.
유부남인 주제에 이 상황에서도 그녀에게만 잘 보이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에이. 문 비서는 걱정 마. 저놈들은 어떻게 될지 몰라도 문 비서만큼은 이 조형만이가 지옥 같은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줄 테니까.”
조형만은 가슴을 탕탕 치며 호언장담했다.
마누라가 어제 죽은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철면피였다.
“우리 아버지가 안전부 부장이야. 곧 방위군이 몰려와서 구출할 테니, 나만 믿고 있...”
“꺄아아아아악!”
그때 고막이 찢겨질 듯 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한 여인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유, 유령!”
-스르르륵!
그것은 바로 고스트의 등장 때문이었다.
유령 같이 흰 입자의 족적을 남기며 공장 벽을 통과해온 고스트는 비명 소리를 들었는지 곧바로 사람들을 향해 날아왔다.
“빌어먹을 벌써!”
전기가 끊긴지 두 시간 밖에 되지 않아서 아직 용광로의 열기가 남아있었는데 너무 빨랐다.
놀란 사람들이 고스트를 피하기 위해 공장 여기저기로 도망을 쳤다.
이를 한준표가 다급히 사람들을 만류했다.
“모두 진정하십쇼. 아직 한 마리 뿐입니다. 계속 소란을 피우면 놈들을 더 끌어들이게 됩니다!”
그런다고 사람들이 도망가는 것을 멈출 리가 없었다.
고스트가 날아오는 방향에서 최대한 멀어졌다.
각자가 살기에 바빴다.
“하, 한 차장!”
“제 뒤에 계십쇼.”
-챙!
한준표는 조형만을 보호하기 위해 도를 뽑았다.
이미 도망치는 도중에 몇 차례 놈들과 싸워봐서 고스트들이 도기에 베인다는 것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이놈!”
-촥!
한준표가 단번에 날아오는 고스트의 몸을 일도양단했다.
반으로 갈라진 고스트가 양 옆으로 하늘거리며 입자를 흩뿌리며 나눠졌다.
‘됐다.’
한준표가 방방 뛰어다니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유령을 죽였으니 이제 그...”
-스르르륵!
그 순간 둘로 나뉘어져 있던 고스트의 몸이 동시에 한준표의 몸을 파고들었다.
“컥!”
고스트가 스치고 지나가자 한준표의 몸이 하얗게 변색되어갔다.
얼어붙듯이 피부에 서리가 내려앉더니 이내,
-쿵!
그는 쓰러지고 말았다.
“하, 한 차장!”
한준표의 어이없는 죽음에 조형만이 절규하듯이 소리쳤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그가 아니면 이곳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도망치던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길 봐!”
“유, 유령들이 떼거지로 온다.”
-스르륵! 스르륵! 스르륵!
공장의 벽면을 통과하여 수많은 고스트들이 안으로 침투해왔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고스트들로 퇴로가 없었다.
아연실색 한 사람들이 어찌나 두려웠는지 발을 떼지 못하고서 망연자실한 눈으로 다가오는 고스트들을 보았다.
“빌어먹을! 씨발! 망할 아버지는 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두려움을 넘어서 조형만을 울먹거리는 얼굴로 욕을 내뱉었다.
이런 순간에도 그다운 모습이었다.
그때 그의 옆에 있던 문 비서가 앞으로 나섰다.
“문 비서. 지, 지금 뭐하는 거야?”
조형만이 의아해 하는데, 그녀가 자신의 허벅지까지 내려와 있는 스커트를 과감하게 찢더니 구두를 벗어 던지며 중얼거렸다.
“하아.....웬만하면 안 나서려고 했는데.”
-화르르륵!
그 순간 그녀의 양손에서 불꽃이 치솟았다.
“헉!”
몰랐던 그녀의 능력에 조형만의 입이 벌어졌다.
그녀가 팔을 뻗자, 양손에 있던 불꽃이 화염 방사기라도 된 듯이 날아오는 고스트들을 향해 뿜어졌다.
-화르르르르륵!
불꽃을 직격당한 고스트들이 흰 입자의 족적만을 남기고 녹아내렸다.
거의 휩쓴다고 하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파팍! 파팍!
그녀가 손을 뻗을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화염에 고스트들이 스파크를 튀기며 사라졌다.
“와아아아아아!!!”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어째서 그녀가 이런 능력을 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을 지도 모른다고 여겼던 상황 속에서 영웅이나 다름없었다.
‘하아....’
그런데 그녀의 얼굴에 땀방울이 흥건했다.
그리 오래 힘을 발휘한 것도 아니었는데, 상당히 지쳐보였다.
‘으윽.’
문 비서가 인상을 찡그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힘을 쓸 때마다 꽤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겨우겨우 참고서 공장에 들어온 고스트들을 전부 처리했다.
“하아....하아.....”
문 비서가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오랜만에 무리해서 발휘한 화기(火氣) 덕분에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문 비서!”
그런 그녀의 뒤를 누군가가 와락 끌어안았다.
조형만이었다.
“이런 능력이 있었으면 왜 말을 하지 않은 거야? 문 비서. 게이트 키퍼였어?”
조형만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한준표가 죽고 나서 이대로 끝인가 싶었는데, 그녀 덕분에 활로가 생겼다 싶었다.
“이거....이거 놓으세요. 실장님.”
지친 그녀가 힘없이 말했다.
조형만이 놓기는커녕 오히려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문 비서 많이 지친 것 같은데, 우리 둘이 몰래 빠져나가자. 저런 버러지 같은 것들이랑 다 같이 도망치려고 하면 죽을 수도 있어.”
조형만은 다른 사람들을 버리자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그녀가 자신 하나만 챙긴다면 무사히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문 비서가 다소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놓으라고 했어요.”
“흐흐, 문 비서가 내 말에 동의해줄 때까지 계속 안고 있을래.”
오히려 조형만은 몸을 더욱 밀착하고서 음흉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이를 참지 못한 문 비서가 상기된 얼굴로 그를 뿌리치려고 하는데,
-꽉!
“으억!”
누군가 조형만의 머리통을 움켜잡고 들어올렸다.
당황한 조형만이 머리를 움직여보려고 했지만, 어찌나 손아귀의 악력이 강한지 오히려 머리통이 깨질 것 같았다.
“끄으으으!”
그런 그에게 누군가 말했다.
“야이 씨벌놈아. 너는 뭐하는 새낀데 남의 마누라를 처 끌어안고 있냐?”
‘마, 마누라?’
조형만이 두 눈이 커져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문 비서가 고개를 돌리더니 활짝 밝아진 얼굴로 소리쳤다.
“봉봉!”
봉봉이라는 애칭으로 불린 자는 바로 허봉이었다.
머리가 붙잡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 차리지 못한 조형만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끄으으...이런 씨발....기혼이었....”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콰직!
허봉의 손가락이 조형만의 골을 파고들었다.
“끄아아아아아악!”
< 28화 S등급 위험개체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