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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82화 (82/234)

< 26화 마신의 유산 (3) >

'어, 어떻게 기억을?'

분명 뇌 세포가 전부 회복되기까지는 한 달은 족히 걸린다고 했다.

정상적으로라면 말이다.

그것은 우연에서 비롯되었다.

거센 불꽃의 회오리에 갇혔을 무렵, 격렬히 반항하는 허봉을 제압하기 위해 천여운은 그의 회복력을 믿고서 머리에 타격을 입혔다.

이것이 발단이 되고 말았다.

회복력이라는 것은 참으로 특이하다.

머리를 다치는 순간 불기린의 영력은 이를 상처 입었다고 판단하여, 빠르게 회복을 촉진시키게 되었고 뇌 세포가 더욱 급격하게 재생된 것이었다.

이렇게 일어난 현상을 모르는 천우경으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 허봉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꽈악!

"켁켁!"

진정한 정체를 밝힌 허봉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기억이 돌아오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무슨 짓을 했는지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감히 너 따위가 그분을 사칭해?"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허봉에게 있어서 천마는 오직 단 한 사람뿐이었다.

'수, 숨을 쉴 수가....'

체내를 들끓게 만드는 화기로 내공을 끌어올리기 힘들었으나, 천우경이 억지로 공력을 일으켜 허봉의 손목을 내리치려 했다.

그러나,

-팍!

허봉이 재빨리 그의 손을 잡아버렸다.

"이, 이거.... 놓..."

"뭘 놓아."

허봉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손목을 꺾어버렸다.

-우득!

"끄읍!"

비틀면서 꺾어버리는 바람에 손목의 뼈가 튀어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목을 붙잡히는 바람에 빨개졌던 천우경의 얼굴이 더욱 달아올랐다.

허봉은 전혀 분이 가시지 않았다.

"감히 너 따위 놈이 주군이 가지셔야 할 유산을 노리다니!"

천우경이 기린의 피를 마신 것조차도 굉장히 열이 받아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허봉."

'!!!'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허봉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두 눈시울이 붉어져서 감정을 주체 못하던 허봉이 천우경을 바닥에 내팽개지고는 냉큼 천여운의 앞으로 달려가 납작 엎드렸다.

"주구우우우우우우운!"

허봉 특유의 호들갑스러운 말투에 천여운의 얼굴 역시 상기 되었다.

감정 변화가 다소 무딘 그라고 해도 이 시대에서 허봉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허봉이 고개를 들어 올리고서 말했다.

"주군의 영원한 제 일의 심복 허봉이 배알...배.....크흑."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천여운을 보게 된 허봉의 심경은 말로 이를 수가 없었다.

"그대로구나. 허봉."

천여운 또한 잠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그의 변치 않는 충심에 감격했기 때문이었다.

"주구우우우운. 흐허허헝."

허봉이 천여운을 보면서 오열을 하듯이 눈물을 흘려댔다.

삼십대 초반의 성숙한 얼굴을 해서도 변함이 없었다.

허봉은 허봉이었다.

"끄으으으으."

허봉에게 내팽개쳐진 천우경이 부러진 손목이 아닌 복부를 잡고서 고통스러워했다.

그의 전신에 핏줄이 불끈불끈 튀어나와 있었는데, 상태가 좋지 않았다.

'화, 화기를 조절할 수가....'

체내에서 갈수록 화기가 커져갔다.

오장육부 전체가 내상을 입은 것처럼 들끓었다.

운기조식을 해서 이 기운을 통제하지 못하면 기린의 영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몰랐다.

'끄으으, 여길 벗어나야 해.'

천우경은 고통을 억지로 참아가며 도망을 시도하려 했다.

통증이 너무 심하기에 그에겐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이성 따윈 남아있지 않았다.

기어서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푹!

그때 그의 왼쪽 종아리로 무언가 박혔다.

"끄악I"

그게 끝이 아니었다.

-푹!

오른쪽 종아리로도 날카로운 무언가 날아와 박혔다.

"끄억!"

천우경이 비명을 토하며 자신의 종아리에 박힌 것이 무엇인지 바라보았다.

'이, 이건?'

그의 종아리에 박힌 것은 다름 아닌 얼음검이었다.

얼음검 두 자루가 종아리를 관통해 땅에 박혀버리는 바람에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스륵!

당황해하고 있는 그의 앞으로 천여운이 나타났다.

"누가 네놈을 보내준다고 하더냐?"

"처, 천마!"

바로 앞에서 대면하게 되자 천우경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동영상에서 처음 그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 언젠가 이런 순간이 다가오게 될 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던 그였다.

"네놈의 죄는 네가 잘 알겠지?"

천마검의 모조품을 만든 것부터 시작해, 천여운의 신분패와 유해 조작.

스스로를 천마로 사칭하고 대호법을 속여 유산을 취했다.

말로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을 만큼 죽음이 확정된 죄들 뿐이었다.

-으득!

천우경이 이를 갈았다.

두려움 이상으로 천여운을 증오하는 눈빛이었다.

'네놈만....네놈만 나타나지 않았어도....'

죽음 앞에서 비굴해졌던 천유성과 달리 그의 태도는 되려 천여운을 원망하고 있었다.

천우경으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천여운만 나타나지 않았어도 그의 계획은 차질 없이 이뤄졌을 것이다.

'천마신교.....천마의 칭호.....불로불사.....'

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갔다.

이것의 원흉인 천여운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어차피 도망가기는 글렀다고 판단한 천우경은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모든 응어리를 내뱉었다.

"본교가 와해되는 그 순간에도 지금까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과거의 잔재가 새삼 제멋대로 나타나서는 후손들의 일에 참견하는 겁니까? 당신의 후예들끼리 교주 자리를 두고서 경쟁하는 것이 그리도 잘못..."

-퍽!

"끄에엑!"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여운이 얼굴을 걷어차 버렸다.

-투투툭!

맞은 부위의 이빨이 전부 부러지고 말았다.

부러진 이빨을 피와 함께 토해내며 억억대고 있는 천우경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참견? 웃기는 놈이구나."

"끄으으..."

"그래. 교주 쟁탈전을 벌이든 말든 그건 네놈의 자유다만, 누가 네 멋대로 천마의 칭호를 사칭하라고 했지?"

연신 피를 토해내던 천우경이 고개를 들어 천여운을 노려보며 말했다.

"끄으으....천 년....자그마치 천 년이 넘게 공석이던 천마의 칭호로 뿔뿔이 흩어진 교인들을 하나로 뭉치려고 한 게 무어가 그리 잘못되었단 말입니까?"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자들이 있다.

천우경이 그런 존재였다.

그는 절대로 자신이 했던 행동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본교가 와해된 후로 교인들은 세 파벌로 나뉘어서 27년이 넘게 서로를 적으로 여겼습니다. 외부에 적이 도사리고 있어서 대치 상태로만 그렇게 오래 지속되었는데, 무슨 수로 본교를 다시 하나로 통합한단 말입니까? 서로 죽여가면서 본교의 힘을 더 약화시키면서 하나로 만듭니까?"

천여운이 아무 말이 없자 천우경이 울분을 토해내듯이 말을 이어갔다.

"우리 후손들이 사라진 천마검이 훼손 되었는지, 행방불명 된 당신이 천 년이나 살아있을 지를 무슨 수로 안단 말입니까? 가짜 천마검을 만들어서라도 교인들이 하나가 되기 위한 명분을 만든 것이 그리도 못마땅한..."

-쾅!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우경의 얼굴이 바닥에 처박혔다.

머리를 짓밟혔기 때문이었다.

천여운이 싸늘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더는 못 듣겠군."

"끄읍읍."

"본교를 그리도 생각하는 놈이 내가 나타났다고 암살 의뢰를 하나?"

천우경의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의뢰 했던 기관과 연락이 되지 않아 혹시나 했었는데, 역시 천여운은 자신이 암살 의뢰를 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의 감정이 어떻건 간에 천여운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27년이나 본교가 와해된 것 또한 네놈들이 하나같이 무능력해서 이건만, 온갖 개소리를 잘도 갖다 붙이는구나."

어떤 이유든 변명이 될 수 없었다.

후손임을 감안해서 곧바로 죽이지 않고 그의 말을 일부 들어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실망만을 안겨다주었다.

"네놈도 도저히 살려둘 가치가 없군."

-슥!

천여운이 머리에서 발을 떼자 천우경의 몸이 강제로 일으켜 세워졌다.

허벅지에 꽂혀 있는 얼음검 때문에 그것조차 고통스러웠다.

"끄으윽!"

코가 부러지고 안면이 함몰된 천우경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천여운은 그것을 개의치 않고 그의 단전에 손바닥을 갖다 대었다.

"무슨 짓을...."

"분에 맞지 않게 탐낸 것을 받아가겠다."

"뭐?"

-우우웅!

그 순간 심후한 진기가 그의 단전으로 밀려들어왔다.

"흐헉!"

파도와 같은 기세에 천우경의 허리가 활처럼 휘어버렸다.

단전을 타고 들어온 진기는 순식간에 천우경의 몸을 헤집어 놓고 말았다.

천여운이 혀를 찼다.

"조금이라도 흡수했을 줄 알았는데, 네놈은 재능마저도 하찮구나."

"그게 무슨..."

-파팍!

천여운이 그의 혈도를 타혈했다.

그리고는 단전에서부터 천천히 갖다 대고 있던 손바닥을 위로 쓸어 올렸다.

"우욱!"

그러자 천우경은 속에서부터 무언가 역류하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천여운의 손바닥이 그의 목까지 도달하자,

"끄웩!"

그의 입에서 붉고 진한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강한 열기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이 액체는 바로 기린의 피였다.

극도의 양기를 지닌 기린의 피를 천우경은 조금도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던 것이다.

-둥둥!

천우경의 몸에서 빠져나온 기린의 피는 천여운의 진기에 의해 한 방울도 흘려지지 않고 뭉쳐져서 허공에 머물렀다.

그것은 천우경이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더럽지만 네놈에게 주긴 아깝구나."

-슉!

"여기 있습니다. 주군."

어느새 옆으로 나타난 허봉이 호리병을 내밀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척이었다.

천여운이 진기로 모아놓은 기린의 피를 다시 호리병 안으로 집어넣었다.

"으으으."

결국 원하는 것을 하나도 얻지 못했다.

유일하게 천여운에게서 빼앗았다고 생각했던 기린의 피마저 도로 빼앗겼으니 말이다.

천우경은 너무도 원망스럽다는 듯이 천여운을 노려보았다.

"끝까지 한결 같구나. 그건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군."

그렇다고 살려둘 마음은 없었다.

천여운이 손을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천우경의 머리통이 진기의 압력에 의해 우그러지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끄아아아아악!"

그리고 천여운이 완전히 주먹을 쥐는 순간,

-콰직!

천우경의 머리가 수박처럼 부서져버리고 말았다.

천마신교의 교주를 꿈꾸었던 세 파벌의 마지막 수장치고는 비참한 최후였다.

그래도 혈손이건만 천여운은 아무런 미련조차 없는지 허봉에게 명했다.

"허봉."

"네. 주군!"

"태워버려라."

"넵!"

-화르르륵!

허봉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불꽃이 죽은 천우경의 몸을 불 살랐다.

*   *   *

천우경을 비롯한 죽은 종주들의 시신을 전부 태우고서 동굴을 나온 천여운과 허봉은 천우경 일파가 세워놓은 주둔 막사로 가서야 제대로 된 해후를 가졌다.

천여운은 허봉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허봉이 지금까지 살아서 이곳에 있던 연유가 제일 궁금했다.

여전히 천여운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 기쁜 허봉이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말했다.

"주구우운! 주군께서 혼자 머나먼 미래에 떨어졌다고 하는데, 제가 어찌 기다리지 않고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뭐?"

그 말을 들은 천여운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대호법과 다르게 허봉은 자신이 깨달음을 얻어 선계로 간 것이 아니라 미래에 불시착 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 26화 마신의 유산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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