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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80화 (80/234)

< 26화 마신의 유산 (1) >

천우경이 눈앞에 앉아 있는 사내를 보면서 흡족함을 감추지 못했다.

다소 말이 어눌하고 지능이 떨어져 보였지만 그 무력만큼은 인외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강하다.

-달그락! 달그락! 우적우적!

이 추위에도 하의만 입고 있는 붉은 머리카락의 사내가 바닥에 앉아서 막사 내에 있는 비축 식량을 쉬지 않고 먹어치우고 있었다.

맨손으로 게걸스럽게 입에 집어 넣고 있는데, 그 동안 먹지 못했던 것을 한 번에 채우려는 것만 같았다.

'벌써 식량의 절반 가까이나 먹어치웠어'

'걸신이라도 들렸나.'

붉은 머리의 사내가 먹은 식량의 양은 지금까지 총 86인분에 달했다.

이를 지켜보는 천우경 일파의 종주들이 혀를 내둘렀다.

"천마이시여. 저렇게 내버려둬도...."

"상관없다. 식량이야 더 구해오면 되는 일이니까."

그보다 저 사내의 상태가 중요했다.

동굴에서 천우경에게 무릎을 꿇었던 저 괴인은 얼마 있지 않아 쓰러졌다.

천년빙옥이 그 원인인 듯 했다.

[저....저 괴물은 얼음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화상에 의한 부상을 입은 해검종의 종주 하우찬이 했던 말이다.

어떻게 빠져나왔고 살아있는지는 의문 투성이었지만 확실한 것은 천년빙옥 안에 갇혔던 후유증이 남아있었다.

천년빙옥의 차가움은 절대영도에 가까웠다.

섭씨온도 -273.15°C인 절대영도에서는 분자 운동이 완전히 정지하게 되는데, 오히려 저 정체 모를 사내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저 말도 안 되는 생명력에 불노불사의 비밀이 담겨 있을 지도 모른다.'

인류의 꿈이라 불리는 불로불사(不老不死).

천우경의 눈빛이 탐욕으로 가득 찼다.

"히히히! 맛있다! 더! 먹고 싶다! 더 내놔라!"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건육포를 전부 먹어치운 사내가 신이 나서 말했다.

종주들이 질린다는 얼굴로 나머지 통조림을 뜯었다.

그때 천막으로 한 반백의 중년인이 들어왔다.

"호 종주."

"천마이시여."

반백의 중년인이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확인했나?"

"그렇습니다."

호의성.

그는 천우경 파벌의 종주이자 뇌의학을 전공으로 한 신경외과 전문의였다.

천우경 파벌의 든든한 팀 닥터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떻던가?"

천우경의 물음에 호의성이 놀랍다는 듯이 태블릿 PC를 건넸다.

태블릿 PC에는 뇌를 스캔한 사진을 비롯해 여러 검진 결과들이 적혀 있었다.

"여길 보시면 알겠지만 얼마나 오랫동안 얼음 속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뇌세포들이 많이 손상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저런 건가?"

천우경이 통조림을 맨손으로 파먹는 붉은 머리의 사내를 쳐다보며 물었다.

행동만 보면 야인이면서 아이와도 같았다.

"뇌의 신경 세포들이 절대영도의 냉기에 의해 손상과 정지 상태로 오랫동안 방치되었기 때문에 저렇게 퇴행성 행동 증후군을 보이는 겁니다."

"그렇군."

천우경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략적인 짐작과 들어맞았다.

그에게 호의성이 말했다.

"뇌뿐만이 아니라 신체 역시도 손상이 심한데, 저렇게 움직이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재생력 때문입니다."

"재생력?"

"세포의 재생력이 일반적인 사람의 수배에 달합니다. 상처가 난다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낫는 것이 보일 정도로요."

그 말에 천우경이 큰 관심을 보였다.

의료적인 시술 없이 인간이 자생적으로 빠른 재생 능력을 갖춘다는 것은 불로불사의 근원에 다가갈 수 있는 입구일지도 몰랐다.

"이 정도 속도의 세포 재생력이라면 한 달 내로 치료만 잘 병행하면 퇴행성 행동 증후군도 완화시킬 수 있는 가망성이 보입니다."

"흠."

천우경의 표정이 묘했다.

의아해진 호의성이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뇌 세포가 재생되지 못하도록 막는다면 계속 퇴행성 행동 증후군을 유지시킬 수 있나?"

"네?"

천우경의 말에 호의성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은 계속 저 상태를 유지시키고 싶다는 의사나 다름없었다.

"어찌해서?"

그 물음에 천우경이 입술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저 상태가 딱 좋거든."

천우경이 원하는 것은 오직 저 사내의 힘뿐이었다. 쓸데없이 퇴행된 머리가 원래대로 돌아와서 기억이 온전해 지길 원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자신을 철썩 같이 천마로 믿는 상태가 최적이었다.

"히히히! 배부르다. 좋다."

정확하게 120분을 먹어치운 붉은 머리카락의 사내가 기분이 좋은지 볼록하게 나온 자신의 배를 통통 치면서 만족스러워 했다.

그런 그에게 천우경이 다가가 물었다.

"적아."

"응. 주군!"

천우경은 그를 적아(赤兒)라고 불렀다.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좀 배가 부르나?"

"응. 역시 주군이 최고다!"

종주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만큼 먹고도 배가 부르지 않는다면 인간이 아닐 것이다.

천우경이 몸을 숙여서 바닥에 앉아 있는 적아와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

"적아. 기절하기 전에 내게 했던 말 기억하나?"

"무슨 말? 적아. 아무 말도 안 했다."

"동굴 안쪽에 무언가가 있다고 했잖느냐?"

"동굴 안쪽?"

적아가 머리를 가우뚱거리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동굴 안에 있다. 그거 아주 뜨겁다."

"그래! 그거!"

천우경의 두 눈이 반짝였다.

처음에는 그저 적아가 마신이 남긴 유산이라고만 여겼지만 그게 아니었다.

적아는 기절하기 전에 동굴 안에 무언가를 지킨다고 했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그 말을 했던 것을 고스란히 잊었지만 말이다.

"그게 있는 곳으로 안내해다오."

"주군이 명했다. 적아는 주군의 말을 잘 듣는다. 히히."

적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천막을 나가려 했다.

그런 그를 천우경이 붙잡았다.

"그 전에 이걸 입어라. 널 위해 준비했다."

아무리 추위를 타지 않아도 벗고 가게 할 순 없었다.

막사 내 테이블 위에는 상의와 더불어 특이한 무언가가 있었는데, 그것은 헬멧과 비슷한 형태의 머리 전체로 쓰는 가면이었다.

고글 부분이 선팅이 되어 있어서 얼굴을 완전히 가릴 수 있었다.

"이거 갑갑하다. 주군."

한 번 머리에 써보고는 바로 벗으려는 것을 제지했다.

"항상 쓰고 다녀라. 천마의 명이다."

"으으으."

그 말에 적아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우경은 다른 자들에게 적아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태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특히 '그 자'가 알아봐서는 안 되었다.

"절대로 벗으면 안 된다. 알겠나?"

"알겠다."

처음에는 헬멧 같은 가면에 거추장스러워 하던 적아였지만 몇 번 어르고 달래자, 더 이상의 불만은 없어졌다.

모든 준비를 마지자, 천우경은 적아를 앞장세워 다시 동굴 재진입을 시도했다.

퇴행성 증후군 때문에 매사에 어눌한 적아였지만 움직임 만큼은 확연하게 달랐다.

-팟!

'엄청나군.'

천천히 가라는 말에도 신이 나서 앞서 가는데, 눈 깜빡할 사이에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경공이 틀림없어.'

어렴풋이 보인 자세를 보면 경신법을 썼다.

자신이 누군지조차 모를 만큼 퇴행성 행동 증후군이라고 했는데, 몸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듯 했다.

동굴의 중후반부 쯤 들어왔을 때, 천우경은 종주들과 교인들에게 명했다.

"너희들은 이곳을 지키고 있어라."

"알겠습니다!"

"명 없이 누구도 들여보내지 마라."

동굴 안에는 마신의 유산으로 짐작되는 보물이 숨겨져 있었다.

그것을 다른 이들과 공유할 생각이 없는 그였다.

"어서 와라. 주군!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기다려라."

수하들을 남겨놓은 천우경은 적아와 단 둘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들어가지 않아서 처음 적아를 발견했던 공동이 드러났다.

공동 안에는 적아가 내뿜던 불꽃이 한바탕 휩쓸었는데도 여전히 천년빙옥의 얼음들이 건재하고 있었다.

“어디에 있는 것이냐?"

"저기다. 주군."

적아가 익숙하게 공동의 어딘가로 뛰어갔다.

그곳은 천년빙옥의 얼음으로 단단히 막혀 있는 곳이었다.

"막혀 있지 않느냐."

"적아가 부술 거다. 주군은 기다려라."

"응?"

적아가 얼음 벽면에 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뜨거운 불꽃이 솟아오르며, 천년빙옥의 차가운 얼음벽이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역시 대단해!'

천우경이 흡족함을 감추지 못했다.

화경의 고수인 그 역시도 천년빙옥의 얼음을 진기로 녹일 수 없었다.

워낙 강도가 강해서 강기를 써도 부수는데 한계가 있었는데, 적아는 너무도 손쉽게 얼음벽을 녹여버렸다.

'적아만 있어도 최고의 전력이다! 하하하하핫.'

적아의 무위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이 정도 괴물이라면 어쩌면 천마조차 상대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여겼다.-첨벙!

'물이 고이는 구나.'

어느새 그들이 서있는 공동 바닥이 얼음이 녹은 물로 인해 발목 부근까지 차올랐다.

얼마 있지 않아 앞을 가로막고 있던 얼음벽이 완전히 녹아 내리며, 그 뒷면에 숨겨진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천우경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놀랍게도 천년빙옥의 뒷면에 숨겨져 있던 나머지 공동은 사막에라도 온 것처럼 후덥지근했다.

"저거다."

적아가 가리킨 곳에 제단 하나가 있었다.

천마신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붉은 글씨로 마(魔)가 새겨진 제단 위에는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한 호리병이 올려 있었다.

"하하하하핫!"

천우경의 입에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찾아 헤맨 마신의 유산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팟!

천우경이 경공으로 단숨에 제단의 앞으로 다가섰다. 제단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만큼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 근원은 제단 위의 호리병에 있었다.

"청옥석으로 만든 것인가?"

이 정도 열기를 천 년이 넘게 견딜 만한 재질은 많지 않았다.

은은한 녹색 빛을 띠는 것이 청옥석이 틀림없었다.

천우경이 진기로 몸을 보호하고서 호리병의 병마개를 열었다.

"하아!"

안에서 뭔가 비릿한 향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혈향(血香)과 닮아 있었다.

천우경이 입 꼬리가 양옆의 귀까지 벌어져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찾았다.'

그가 그토록 바랐던 것이 호리병 안에 담겨 있었다.

"불기린의 피!"

안에 담겨 있는 붉은 액체는 전설로만 내려오던 불기린의 피가 틀림없었다.

오대 영물 중 하나인 불기린의 영력이 담겨 있는 것으로 한 방울만 마셔도 크게 공력을 증강시킬 수 있는 희대의 보물이었다.

"주군이 기분 좋아한다. 적아도 좋다."

적아가 뒤에서 덩실덩실 팔을 흔들며 좋아했다.

그런 그에게 천우경이 말했다.

"적아. 떨어져서 호법을 서라."

"호법? 그게 뭐냐?"

"누가 나를 건들지 못하게 지키란 말이다."

천우경은 이 자리에서 기린의 피를 마실 생각이었다.

'이걸로 나 역시도 불로불사에 다가설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영물의 진원을 취하거나 그 피를 마신 자는 불로불사 한다고 전해져 왔다.

게다가 영물에는 속성의 힘이 담겨 있었는데, 이 불기린의 피를 복용하면 불꽃의 화신이 된다고 했다.

'적아의 힘의 근원이 바로 이것이겠지.'

이것을 마시게 되면 적아와 같은 힘을 가지게 된다.

천우경은 어서 빨리 이것을 취하고 싶었다.

"우음. 어디까지 떨어져 있으면 되는 거냐? 주군."

다 좋은데 이게 힘들었다.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것이 말이다.

천우경이 한숨을 내쉬며 공동에서 동굴이 연결되는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하아....저기 입구 쪽에 가서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휙!

바로 그때였다.

적아가 갑자기 고개를 뒤로 돌려 동굴이 있는 방향을 예리하게 노려보았다.

"왜 그러는 것..."

-끄아아악!

동굴 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공동으로 오는 동굴의 길목은 종주들과 교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 비명소리는 대체 뭐란 말인가.

적아가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누군가 오고 있다. 주군."

"오고 있다고?"

"강하다. 아주 강하다."

적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비명소리가 이어서 터져 나왔다.

-끄아악!

-끄악!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는 점차 공동 가까이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기뻐했던 천우경의 표정이 굳어졌다.

적아의 말대로 강한 적이 침입한 게 틀림없었다.

'누구지?'

이 장소를 알고 있는 자는 오직 자신과 대호법 마라윤 뿐이었다.

마라윤이 설사 다른 두 파벌에 마신의 유산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해도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 리가 만무했다.

거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필 이럴 때....'

비명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종주들과 교인들이 침입자를 저지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고심에 빠진 얼굴로 동굴을 쳐다보던 천우경이 이내 호리병을 붙잡았다.

'기린의 피는 내 것이다!'

절대로 다른 자들에게 빼앗길 수 없었다.

호리병을 들어 올린 천우경이 단숨에 그것을 들이켰다.

-꿀꺽꿀꺽!

마치 팔팔 끓인 물처럼 호리병에 나온 기린의 피는 굉장히 뜨거웠다.

그 뜨거움을 억지로 견뎌내며 천우경은 피를 전부 삼켰다.

"끄으으으."

속이 전부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기린의 피에 담긴 화기는 매우 강렬했다.

-팍!

기린의 피를 전부 삼켜낸 천우경이 자리에 정좌를 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기린의 피에 담긴 영력을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적아. 절대로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못...."

"왔다."

"뭐?"

적아의 말에 천우경의 두 눈이 동굴 쪽으로 향했다.

동굴의 벽면에 설치된 휴대용 등불들로 인해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보였다.

정말로 벌써 도착한 것이었다.

-저벅저벅!

이윽고 공동으로 들어오는 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바로,

'!!!'

천우경의 두 눈이 커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나타난 것이었다.

'처, 천마!'

< 26화 마신의 유산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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